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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쑥남카페* 부드러운 남자들의 보금자리 원문보기 글쓴이: 글쟁이 선생님
※ Warning : 모든 글은 저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w. 글쟁이 선생님
01. 선
넘어오지 마. 왜 자꾸 손 잡는 거야? 왜 자꾸 날 보며 웃는 거야? 왜 자꾸 날 건드는 거야? 마음도 없으면서 찔러보지 마. 너 때문에 헷갈린단 말이야. 진짜, 또 너 때문에 그 선이라는 게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어.
"우린 어디까지 그리고 어느 정도인 사이일까?"
밤에 연락하면 반갑게 받아주는 그 선. 생각났다며, 보고 싶다는 한 마디로 날 설레게 하는 그 선. 기쁨과 슬픔에 너와 내가 서로를 묶어두는 선. 내가 주체하지 못하고 넘어버리는 선은 언제나 그런 것들이었다. 너의 작은 말 한마디에 나는 또다시 무너진다. 오늘도, 넘어버린 선에 나는 당혹스럽기만 하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지켜야 하는 선이고 어디까지가 제재를 해야 하는 선인가.
그리고 당혹감, 아니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이 감정의 표현을 무엇이라 해야 상대방에게 입장표명이 되는 것일까. 문득,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찌 너를 알겠느냐'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제대로 표현 못하더라도…, 과연 저 웃음의 진의는 무엇일까? 정말 선의의 웃음일까 아니면 거짓으로 위장된 웃음일까. 만일 둘 다 아니고 그냥 나오는 웃음이라면? 의중을 깨우치지 못하는 내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본인이 가진 패 전부를 나에게 보여주며 백기를 들고 있는 순진하디 순진한 토끼 한 마리를 내가 그림자에 비친 대검을 든 무시무시한 피의 기사라고 보고 있는 것일까. 단순하게 바라보자면 진짜 별것도 아닌 모습이지만, 아직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 너무 결과가 뻔하게 보이는-마치,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보지 않는 내 스스로의 시선처럼- 상황을 꼬아 보는 것이 아닐까? 나 자신에게 있어 모든 상황을 선한 것 따위 하나 없는, 모든 본질을 성악설마냥 쳐다보고 있는 것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Writer : 이동휘, 침대에누워서폰보는보노보노, 곰돌이
02. 목줄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넥타이를 꽉 조여맨 것처럼 목 주변이 답답하다. 불편해, 짜증나. 알 수 없는 압박감에 괜히 손톱을 세워 그 주변을 긁어내린다. 여린 살을 타고 붉은 줄이 그어진다. …갑갑해. 땅에 처박혀 있던 시선을 위로 올린다. 싱긋 웃고 있는 너와 마주한다. 네 손에 잡힌 검은 목줄이 보인다. 맨들맨들한 가죽 재질의 그것은,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사라진다. 아, 환상이다.
이런 환상은 약 6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환상에는 항상 검은 목줄이 보였다. 쓰읍- 나는 입안에 맴도는 쓰디쓴 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집이었지. 퀘퀘한 냄새가 가득한 집안에는 어디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를 찾을 수 없었다. 내 목을 죄어오던 목줄을 쥔 그녀가 세상을 떠난 그 후로부터 내 삶에는 그저 바다 위를 표류하듯 추락한 삶의 부산물들이 흐를 뿐이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드는 목을 뿌옇게 먼지 쌓인 거울을 통해 보자. 아차, 아까 쥐어 긁어내던 목에는 생채기가 깊게 남아있다.
"…아파."
오랜만에 그녀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눈꼬리에 맺혀있던 한 방울의 눈물은 곧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물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 눈앞엔 그녀가 있었다. 현실인지 꿈인지 생각지도 못할 겨를도 없이, 나의 목줄을 잡고있는 그녀가 내게 묻는다.
"당신이 나의 마스터인가?"
그렇다. 그녀는 죽었다. 이건 그녀와 닮은, 아니 똑같이 생긴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어쩌면… 지독한 환상일지도.
Writer : 인터누텔라, 베인
03. 여명
날이 밝다는 것은 아침이 온다는 뜻일까.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삶이 끝난다는 뜻일까. 일각에서는 여명을 희망의 빛으로 표현하기도 한다던데. 그렇다면 내게도 희망이 오는 것일까. 어디서 들었던 말인데, 누가 얘기했었더라.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그러나 이 말은 그와 그 주변인이 살고 있던 세상이 북반구의 중위도였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 아니었을까. 이름모를 이가 살았던 곳과 달리 내가 사는 곳은 극지방인 것 같다. 날이 밝아오기만 할 뿐, 해가 뜨지 않는다. 마치 극야처럼.
그러니 이 여명은 나에겐 참 감질나는 시기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애태우는 시간이다. 희미했던 여명이 점차 밝아지기까지가 어두웠던 금방 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도대체 해는 언제 떠오르는 것인가! 빛이라는 것을 보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얀 벽이었다. 흐려지던 벽 뒤로 빛은 내 눈을 향해 오지 않았다. 사라지던 빛이 겨울철의 활엽수처럼 바스라진 뒤, 난 더이상 빛이라는 하얀 가닥을 볼 수 없었다. 삐- 삐- 하고 들려오는 기계의 날카로운 소리와 시큼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어둠. 어둠. 어둠.
Writer : 침대에누워서폰보는보노보노, 데프콘
04. 열병
아프다. 붉게 타는 몸과 달뜬 숨소리, 오락가락하는 정신에 머리가 아프다. 이러다 콱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온몸을 못살게 구는 지독한 열병에 생리적으로 눈물이 흐른다. 아프다, 아파. 단 한 번의 스침이었다. 물론 너의 기준에서는…, 난 그 한 번 스침의 인연 이후 매일 너를 앓았다. 앓는 하루하루는 아이러니하게도 살아가는 힘이 되곤 했다. 오늘, 당신의 결혼식을 보기 전까지는.
정신의 아득한 고통이 몸을 달아오게 할 줄이야…. 숨을 조여올 줄이야…. 당신의 웃음에 말도 못하고 돌아선 이 밤, 나는 죽지 않기만을 빌며 달 밑에서 울부짖는다. 당신의 새로운 시작이 오늘 내 남은 고통을 모두 모아 소진시키는 불이 되길 바란다. 이를테면, 나는 당신의 행복을 위한 장작인 셈이다. 당신에게 목이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지던 내게 그대의 결혼은 이 육신을 불태우기 위한 충분한 불씨였다. 불이 오르고 열이 오른다. 이렇게 당신을 앓는다. 오르내리는 열처럼 당신이 밉다가 그립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분노인지 절망인지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소망인지 분명치 않다.
이내 내리는 식은땀. 축축해진 몸을 이끌고 무거운 눈꺼풀을 뜨며 바라본 나의 초라한 천장은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먹지 같은 내 천장에는 네가 그려진다. 네 옆에는 내가 그려지기도 했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식은땀 한 방울에 씻겨나갈 의미 없는 허상이었다. 다음에 그려진 너는 지금의 남편과 함께였다. 분하게도 너의 표정, 몸짓. 모든 것이 내 옆에 있을 때 보다 어울렸다. 그런 너를 바라보다 참담하게 눈을 감는다.
괴로운 몸부림에 아까 먹은 약의 잔재들이 부스럭거리며 항의한다. 아스피린과 타이레놀, 너희는 나를 치유할 수 없으리라. 이 분노와 슬픔과 절망을, 열정과 그리움을, 고독과 간절함을 감히 무엇이 치료할 수 있을까. 이 방황하는 감정들은 오직 너로 인한 병이니 나를 치료하는 것도 너여야만 한다. 그러니 나는 너를 앓아 이 병을 고쳐야겠다. 너와 관련된 그 무엇도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없었지만 너를 앓는 것은 온전히 나의 소관이자 권리이다. 그러니 기꺼이 앓겠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너를 앓겠다. 그러다 흘린 땀이 식어갈 때쯤, 개운한 마음으로 일어나겠다.
너를 보내지 못해 열병으로 몸져누운, 못난 육신이 타들어간다.
Writer : 한화 이글스, 침대에누워서폰보는보노보노
05. 수심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거라. 아버지가 남긴 말은 문신처럼 남아 이따금 날 아프게 한다. 따끔거리는 통증은 아프진 않지만, 가끔 날 힘들게 하지. 그의 말을 따라 난 언제나 속깊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하해와 같은 아량을 가져야 했으며, 모든 이를 포용해야만 했다. 말의 무게는 날 깊다란 심해로 눌러 내린다. 언제까지 가라앉아야 하는 걸까. 그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의 깊이. 아버지의 말은 나를 그 끝없는 심해로 밀고 밀고 밀어 넣었다. 너는 바다와 같은 사람이다. 너는 심해와 같은 사람이다.
너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바다와 같다는 그 말은 나를 끝없는 배려와 마음으로 치환해버렸고, 어두운 심해마냥 그 누구에게도 남에게 나의 심연을 드러내지 않게 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 누구도 차별 없이 품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나의 심해를 밝힐 수 없었다. 나의 심해에는 빛을 내는 심해어가 단 한 마리도 살지 못했으니까.
심해의 짙음은 나 스스로까지 잠식해간다. 모두를 포용하기 위한 깊이는 되레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할 공포가 되었고, 광활한 넓이는 그 누구도 중심을 가늠하지 못하게 했다. 그 속에서 나는 고립되어간다. 무거운 수압이 내 몸뚱아리를 누른다. 구역질, 공포감, 그리고 이어지는 무력감. 나는 무엇을 위해 넓어지고 깊어졌던가. 나는 그저 홀로될 뿐. 마치 생명이 살 수 없는 화산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공허히 울기만 한다. 차라리 화산이 되어 뿜어지기라도 하면 어떨까. 새까만 심연 속에서 피처럼 붉은 용암이라도 나오면 어떨까. 잠깐이라도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뿜어내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달라지지 않겠지. 이러면 어떨까. 안 되겠지…? 저러면? 그것도. 나는 바다처럼 깊고 어둡고 무거웠기에 결국 달라질 수 없었고, 그저 남아있었다. 달라지려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며 검은 마음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Writer : 탐스럽네, 데프콘, 깡슬
06. 바닥
바닥에 가만히 누워 저 편을 바라본다. 마룻바닥에 소복하게 쌓인 먼지. …아, 청소 해야 하는데. 뿌연 먼지를 손으로 닦아낸다. 지문 사이사이에 회백색 먼지가 끼인다. 몸을 돌려 천정을 바라본다. 아, 높다.
"역시, 60평짜리 강남 대치동의 익스트럼 펜트하우스는 천장도 높고 좋군. …성공한 인생이야."
발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헐레벌떡 일어나 옆에 두었던 걸레를 집는다. 금수저 집 가정부, 그게 나의 직업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난 대리석 바닥과 하이얀 벽지 대신 찢어지고 낡은 천장 벽지를 바라본다. 단정하지 못한 내 삶과 같은 천장을, 단출한 이 방에 누워, 단지 얇은 이불을 하나 덮고서, 단지 하나의 생각만을 가진 채, 단호히 천장을 바라본다. 이제,
단념 속에 미련을 담아 버리고, 단단한 의지를 갖추고 맞이할, 단 하나의 내일을, 단검처럼 짧고 굵은 다짐을 가지고, 단 하나의 망설임 없이 뛰어나가기를 바라본다.
모로 누워 바라본 천장이 높다. 어릴 적에 부른 노래를 흥얼거린다. 높으면 비행기, 비행기는 빨라, 빠르면 기차, 기차는 대륙횡단…. 대륙횡단이라니, 허무맹랑한 운율을 만들어낸 지금 나 자신의 공허한 상태와 내 방의 상황을 보자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Writer : 지바냥, 탕구리, 인사이드 아웃, 곰돌이
* * *
모든 작품은 쑥남 여러분들이 만든 것입니다.
해당 주제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은 주제 아래에 Writer에 모두 적어두었습니다.
문장의 매끄러움을 위해 댓글의 일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수정 없이 원래의 버전을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Q1. 어떤 움짤이 가장 찾기 힘들었나?
A1. 4번에 있는 열병이다.(웃음) 거의 두 시간 넘게 찾은 것 같은데. 사실 5개 정도를 미리 찾아놓고, 최종적으로 다음 움짤과 위에 놓은 움짤이랑 고민했다. 글에 첨부한 움짤이 더 잘 어울린다고 판단되어 위의 것을 해놨다.
찾느라 힘들었다.(웃음)
거의 한 달만이군요. 사실, 한 달이 되기 전에 2편으로 찾아뵈려 했었으나,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오지 못했었습니다.
되도록 보름이나 한 달과 같이 주기적으로 찾아뵙고 싶지만, 제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3편부터는 눈이 내릴 즈음에 몰려서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 소곤소곤 [부사] :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첫댓글 다블 글잘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