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강산(176.7m)
1.산행구간 : 굴불사 주차장-백률사-소금강산-구곡지-금학산-약산-석탈해왕릉-굴불사 주차장
2.산행일자 : 2019 03.01(금요일)
3.산행거리 : 12.3km
4.산행참가자 : 김두한 부부,아내
5.코스별 산행시각
◎ 굴불사 주차장(09:30)
◎ 굴불사지(09:40)
◎ 백률사(09:50)
◎ 소금강산/176.7m(10:00)
◎ 옥고개/백률사1.1km,다불마을0.4km,승삼마을1.5km(10:10)
◎ 구곡지 상단(11:30)
◎ 돈&콩부인/식사(11:40~13:00)
◎ 금학산/x276.4m(13:45)
◎ 약산/x272.2m(14:10)
◎ 석탈해왕릉(14:55)
◎ 경주 표암(15:00)
◎ 굴불사 주차장(15:30)
6, 산행기
정제박이란다.
모임의 이름을..
박규리님의 아이디어다.
톡톡튀는 아이디어는 젊은 사람답다라는 말보다 항상 긍정적으로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여인네의 모습이다.
참 이쁜모습이다.
보길도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억지춘향으로 밀어부쳤다
그러고 보니 1박2일로 그곳까지 가기는 사실 무리다.
젊을때면 몰라도..
해서 타협을 한게 여수 금오도이다.
1박2일동안 일정도 나오고
또 하루밤 묶을 숙소도 예약하고..
그런데
3월 2일 오후부터 비온다는 기상청 예보다.
가장 좋아야 할 날씨라야 계획한 일정을 소화할수 있는데 비가 온다면 끔찍스러운 결과 일수밖에 없다.
하여 취소다.
대신 경주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스케줄을 또 다시 잡는다.
다행인건 진수형님의 지인의 켄싱턴 리조트 무료이용권(21평)이 있어 그것을 이용하기로 하면서다.
1일차 소금강산 산행
2일차 해피랑길중 포항의 연오랑 새오녀길 트레킹
3일차 보문호 둘레길 & 양동마을 투어다.
이 모든게 2월 22일 마우나 콘도 별장(현대중공업)에서 이뤄진 일들이다.
뭐 어째튼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나쁨단계까지 올랐다는 기상청 예보다.
문제는 날씨가 너무 따뜻하다는데 있다고 한다.
어느정도 바람이 불면 날아가고 이를텐데 대기권에 정체되어 있는 날씨는 미세먼지을 안고 있는 모양인지 전국적으로 심각할 수준이라고 기상청은 말한다.
09시까지 켄싱턴에서 만나자는 카톡은 어제 이미 날렸다.
그런데 진수형님이 문제다.
2월 28일 고향인 함양가서 볼일보고 3월 1일 저녁약속 해결후 저녁에 올라온다는 정보다.
그리고 28일 경주 간다는 두한씨부부는 동무없다고 가지않는다는 정보이고..
우리는 고성가서 가지고 올라온 짐등 정리하느라 안될것 같고..
그러니 자동 3월 1일 출발이다.
켄싱턴리조트이다.
이차 저차하여 체크인한다니 연박은 첫날 체크인을 하지 않으면 자동 취소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난 하루만 취소되는게 아니고 마지막날 모두란다.
이런거 보고 난감하네라는 노랫가락이 떠오른다.
그렇게 어찌 어찌하여 오늘부터 3박을 살려준다고..
무슨 인심 쓰는냥 부시시한 얼굴로 나와 모바일 숙박티켓을 가져오란다.
그리고 지금은 입실이 않되고 나중에 오후 3시부터 입실이라니 그때 오라면서.
뭐 어째튼 다행이다 싶다.
190301소금강산.gpx
굴불사지 주차장이다.
켄싱턴에서 두한씨부부와 조인하여 우리차량으로 굴불사지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켄싱턴 리조트에서 금방이다.
준비랄것도 없지만은 그래도 베냥은 둘러멘다.
출발이다.
경주 굴불사지 석조 사면불상이다.
통일신라 시대 작품인 사면불상은 보물 21호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향을 피우지 말래도 향을 피우는 이도 있고 또 제례를 지내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관리가 되지 읺는다는 이야기다.
굴불사지 석조 사면불상은 3m 높이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형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서쪽면은 아니타삼존볼,동쪽면은 약사여래좌상,남쪽면은 삼존 입상, 그리고 북쪽면은 보살상 두분이새겨져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보살상중 한분의 얼굴이 열하나에 팔이 여섯이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것이라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경덕왕(재위 742∼765년)이 백률사(柏栗寺)를 찾았을때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한다.
하여 그곳을 파게 하였더니 이바위가 나왔는데 바위 사면에는 불상을 새기고 그곳에 절을 세우고 굴불사(掘佛寺)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1985년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 건물터가 확인되어 출토유물 가운데 굴석사라는 명물이 있어 굴석사라는 명문이 있어 이 상이 바로 굴석사의 불상이라 전해 지고 있다고 한다.
소원돌이다.
규리님의 소원은 뭔지 몰라도 번쩍 들더라
송죽대
즉 백률사 스님들의 공간이다.
백률사 대웅전이다.
찾아오는 불자들이 많은지 겨울에도 춥지 않겠끔 하우스를 설치 해놓았다.
그리고 대웅전문은 닫혀 있고 그야말로 절간이다.
백률사는 삼국유사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일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만약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14년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일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타고 그이후 다시 지은 건물이라는 설명도 덧붙혔다,
산불감시타워다
운동기구
176.6m의 소금강산이다.
그리고 경주 433이라는 삼각점 은 있지만 그흔한 정상석 하나 없는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자료를 참고 해보면
소금강산(小金剛山)은 경상북도 경주시의 북동쪽에 있는 용강동·동천동과 천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 : 177m).
소금강산은 금산, 금강산 등으로 불리었다.
『삼국유사』에 신라 6촌 중의 하나인 금산가리촌(金山加里村)에서의 금산이 "지금의 금강산으로 백률사 북쪽에 있는 산이다."라는 기록과 "6촌 중의 하나인 명활산고야촌장인 호진(虎珍)이 처음에 금강산으로 내려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금강산은 신라 수도의 중심지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삼국사기』 이외에도 많은 기록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경주)에도 소금강산이 아니라 금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주에는 "경주 중심지의 북쪽 7리에 있는데, 신라에서는 북악(北嶽)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신라 수도의 중심지에서 북쪽에 있는 돌산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지도에는 금강산이 나오는데, 소금강산이라 기록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일제시대 이후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이 알려지면서 소금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옥고개다.
다불,승삼마을로 가는 갈림길이다.
전망대다.
경주시내가 멋지게 조망되는 곳이긴 하지만 미세먼지인지 뭔지몰라도 뿌였다.
선도산 주변이 하나도 안보인다.
누군가의 노력이 많은이들의 입가에 웃을을 자아내게 만드는 하트다.
솔방울로 만들어 놓은 하트의 안과 밖은 2019년 3월1일이라는 글자를 만드는걸로봐서 매일 와서 일자를 고치는지 옆에는 예비 솔방울을 모아 놓았다.
누군가가 누군지는 알수 없지만 그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지싶다.
언젠가는
전망대다.
그런데 박규리님 한마디다.
썬글라스?
모자에 걸쳐놓은 썬글라스가 없다.
뒤돌아 서는 걸음이 바쁘다.
어느새 없어 졌다.
가면서 카메라를 확인하는데 산불감시초소까지는 있었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솔방울의 하트에서는 없다.
그렇다면 ..
그렇게 뒤돌아간곳은 옥고개지나 x148.7m 까지 뒤돌아 가는데 디시 리턴해서 온다
산불감시초소까지 갔는데 없더란다.
그러면서 추축하길 더워서 옷벗을때 모자를벗었는데 그때 떨어졌던 모양이라고
그런데 옷을 벗을때가 어딘지 일수 없다는 아쉬움만 더해간다.
용강동 운동기구시설
용강아파트 갈림길에서 구곡지 상단으로 내려선다.
뭐 길을 알아서 가는게 아니고 길을 있을거라는 믿음때문인데 결론은 길은 있지만 여름이면 다닐수 없는 그런길이다.
뭐 어째튼 궁상각치우라는 식당앞으로 나오더라
돈&콩부인 식당이다.
쫌 이른 시간이지만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대구의 양방송사에서 맛집이라고 방송도 했다는 현수막도 걸어 놓았다.
지리산 흑돼지와 소주 1잔...
아니 참소주 2병이나 해치운다.
넷이서
게다가 밥과 됀장찌개도..
물론 2인분으로 끝냈지만.
금학산 올라가는 입구다.
사실 어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살펴 봤다.
그중에서 이길이 가장 좋더라는 나의 판단이어서이다.
하지만 그보다 식사하고 가는 길이 가장 가깝더라는 표현이 어울릴것 같다.
솔방울 제기차기로 내기를 하잖다.
하지만 번번이 우리가 이기는 게임이다.
누구때문인지 이야기는 않겠지만..
그보다 웃고 즐기자는 이야기이다.
금학산이다.
x276.4m이다.
다불마을 가는 이정표와 낙뢰발생시 행동요령 안내판도 그리고 금학산에서 보는 선도산이라는 지도가 금학산을 메우고 있다.
그 흔한 정상석 하나 없이..
경고문도 잇따라 세워져 있다.
사격장 인근으로 위험한 지역이라는 이야긴데 길따라 내려오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말하면 뭐하겠노
당근..
암만...
약산이다.
주능선에서 벗어난 곳이다.
몇년전에 난 산불로 아직도 숫검뎅이로 변한 나무들의 모습이 아직도 그대로이다.
어쩌면 작은 불씨 하나가 이토록 큰나무등 산하를 횡페화를 시킬수 있는지 궁금할뿐이다.
어째튼 조심 조심 불조심 뿐이다.
보문호수등 주변이 시야에 들어 온다.
미세먼지등 날씨만 좋으면 멋지겠구먼은...
다시 돌아선다.
보문호수
산아래는 완연 봄이다.
바닥에서는 초록잎이 제법 보인다.
쑥도 제법 올랐고..
예년도보담 계절이 빠르다는 예감이다.
내만 느끼는는지 모르지만..
불국사부설 유치원도 보이고 찻집도 보인다.
하산하는 모습
다불로
그러니까 용강동과 동천동을 연결하는 도로다.
산불감시초소도 있고 저만치 군부대도 있다.
그리고 등산로는 걸건너편 소나무길이다.
석탈해 왕릉이다.
신라 4대왕으로 신라최초 석씨 왕으로 62세에 즉위하여 2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왕은 왜국(倭國)의 동북쪽으로 100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다.
다파나국의 왕이 여국(女國)의 왕녀를 아내로 맞았는데 왕비는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고 한다.
왕이 이를 상서롭지 않은 일로 여겨 버리게 하였으나 왕비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 비단에 보물과 함께 알을 싸서 궤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웠다.
궤는 파도를 타고 가다 먼저 금관국(金官國)의 바닷가에 이으렀으나 그곳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건지지 않았고 혁거세 재위 39년에 진한(辰韓)의 아진포(阿珍浦) 어귀에 닿았다고 한다.
해변에서 한 노파가 궤를 건져 열어 보니 아이가 들어 있었고 노파가 기른 아이는 장성하여 키가 9척에 풍모와 지식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이름은 궤가 바다에 떠왔을 때 까치 한 마리가 울며 따라왔다고 하여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 변을 떼어 석(昔)으로 성을 삼고 담긴 궤를 풀고 알에서 나왔다 하여 이름은 '탈해(脫解)'라고 하였다고 한다.
탈해는 노파를 어머니로 삼아 고기잡이로 봉양하다가 노모의 말을 좇아 학문에 정진하고 지리를 익혔으며 나중에 양산의 호공(瓠公) 집을 길지(吉地)로 여겨 계책을 써서 빼앗아 살았는데 그 땅이 훗날의 월성(月城)이라고 한다.
남해왕이 그가 현명한 사람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딸과 혼인시켜 사위로 삼은 뒤 대보(大輔)로 등용하고 정사를 맡겼다고 하는데 유리왕이 임종할 때 나이 많고 어진 사람에게 왕위를 잇게 하라는 선왕의 뜻에 따라 자신이 왕이 되었다며 자신도 왕위를 탈해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탈해왕릉 옆에 자리한 표암제다.
표암이란 박바위, 밝은바위를 뜻하는데, 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하여 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B·C 69년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했으며, 그후 B·C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같이 표암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이고 화백이라는 민주 정치제도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곳이라는 설명이다.
해서 이러한 뜻을 새긴 유허비가 조선 순조 6년(1806)에 세웠고, 1925년에 표암재가 건립된 뒤 매년 3월에 그 뜻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한다.
표암 유허비다.
박바위는 경주이씨 시조 알평공이 하늘로부터 내려온곳이라고 한다.
순조4년(1804)에 후손 좌의정 경일이 현인을 공경하고 조상을 추모할곳이라는 내용의 비문을 짓고 형조판서 집두가 쓰고 장령 진택이 감독하여 이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원래 표암앞을 흐르던 동천가에 있었으나 홍수로 1879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광림대 석혈이다.
알천 양산천의 시조이자 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목욕한곳이라 전해 진다.
특히 이곳은 경주이씨 형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건국의 산실로 광명이세의 이념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큰 뜻을 밝히고 신라의 화백회의가 시작된유서 깊은곳이다라는 설명이다.
굴불사지 주차장이다.
어쩌다 보니 오늘 걸음이 12km나 된다.
물론 중간에 썬글라스때문에 왔다 갔다한적은 있지만 제법 거리가 나오는 그런길이다.
주차장 한켠에 산불감시원이 있어 썬글라스 이야기를 하니 주워온사람이 없다라는 짤먹한 답변만 돌아온다
15시 30분이다.
켄싱턴 리조트까지 10분이면 갈거고 그리고 체크인하고 짐들여다놓고 가면 되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동궁식물원으로 들어 가려는 차들로 도로까지 주차장이 되어버린 보문로..
이건 머무한다 싶다.
주차장을 확보하던지 아니면 외곾에 주차후 셔틀버스를 운영하던지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이건 무슨 특권인양 싶다.
괜히 열받네
16시 켄싱턴 리조트다.
시간 관계상 짐만 내려놓고 목적지인 울산으로 달린다.
1시간만에 목적지인 공장까지다.
모화에서 농소까지 차량지체만 빼면 그런대로 휴일 차량대열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