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05월11일(토요일) 함양군 [오도봉&삼봉산&금대산] 산행일정
회비 44,900원 4월17일 송금필, 10열 C좌석 예약
산 : 함양군 [오도봉&삼봉산&금대산]
[코끼리를 타고 코끼리 전체를 자세히 볼 수 없듯 지리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지리산 인근의 봉우리, 바로 함양의 삼봉산과 금대산이다.
서쪽에는 백두대간이 길고 긴 병풍을 치고 있고, 남북으로 각각 지리와 덕유가 첩첩이 벽을 두르고 있는 산의 고장 함양땅에서 삼봉산과 금대산은 사실 명함 내놓기가 좀 쑥스럽다.
산세로 봐서 거망산이나 황석산에 비할까, 해발고도로 남덕유산에 갖다 붙일까. 어디 하나 뚜렷하게 내세울 것 없는 삼봉산과 금대산이 전국 산꾼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까닭은 바로 조망의 산, 다시 말해 '지리산 전망대'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봉산과 금대산보다 지리산 주능선에 더 가까이 위치한 삼정산도 지리산 전망대라 할 수 있다. 허나, 너무 턱 밑에 있어 일부 봉우리가 인근 봉우리와 겹쳐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산꾼들은 "삼봉산과 금대산에 서면 서쪽 끝단의 노고단을 제외한 지리산 주능선의 모든 봉우리들과 거미줄처럼 얽힌 주요 계곡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산행코스의 들머리이자 함양읍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오도령 정상에 새로운 볼거리인 '지리산 제일문'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리산 제일문 산신각은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여섯마당 중 하나인 가루지기전의 변강쇠와 옹녀가 전국을 떠돌다가 마지막에 정착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행코스: [오도재~관음정~오도봉~삼봉산~등구재~백운산~금대산~금대암~당흥 버스 정류장] (약 12km)
일시 : 2024년 05월 11일(토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6시간 소요)
07:10~10:40 "엠티산악회" 버스로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 4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여 오도재로 이동 (282km) [3시간30분 소요]
[오도재는 경상남도 함양군의 마천면 구양리와 함양읍 구룡리 사이를 넘는 고개이다. 오도령은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유랑의 고개이자 함양사람들이 남쪽의 남해와 하동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지리산 벽소령이나 장터목으로 가려면 넘어야 했던 생존의 길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함양)과 『천령지』에, "오도재[悟道峙]는 군 남쪽 20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다. 1716년에 승려 탄천(坦天)이 쓴 『등구사적기(登龜寺蹟記)』에도 지리산에 들어와 머물 곳을 찾으려고 오도치(悟道峙)에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1807년에 지리산을 유람하였던 남주헌(1769~1821)의 『지리산산행기(智異山山行記)』에도 벽송정(碧松亭)을 거쳐 오도치(悟道峙)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함양군지』에는 "지금의 휴천과 마천의 경계에 있다. 삼봉산이 동쪽으로 내달은 것이 이 고개이다. 높이는 773m이다. 유호인(俞好仁)의 시가 있다."라고 하였다. 『영남지도』(함양), 『광여도』(함양), 『1872년지방지도』(함양)에서 오도치가 표기되었다. 『대동여지도』에는 오도재의 길목에 오도봉(悟道峯)을 표시하였다.
이 길을 오르게 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으며, 김종직, 정여창, 유호인, 서산대사, 인오대사 등 많은 유학자들과 수행자들이 넘었던 고개라고 한다.]
[함양 오도재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산 조망공원과 지리산 제일문은 지리산을 효율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기도 한 오도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 지리산 조망공원과 제일문을 만날 수 있다. 지리산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고, 그 경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또한 다양한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어 쉼터 역할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10:40~11:50 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산 123-20 번지에 있는 오도재(해발 773m)에서 산행 출발하여 오도봉(悟道峰, 1,039m) 정상으로 이동
11:50~11:55 사진촬영
11:55~12:45 삼봉산(三峯山, 1,187m) 정상으로 이동
[함양 삼봉산(三峯山)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일대에 있는 산.
[명칭 유래] 삼봉산은 투구봉·촛대봉·삼봉산 세 봉우리를 합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자연환경] 삼봉산의 산줄기는 크게 알파벳 대문자 ‘T’자 형태를 이룬다. 서룡산-투구봉-삼봉산으로 동서 방향의 산줄기가 이어지고 다시 삼봉산-백운산-금대산으로 남북 방향의 산줄기가 이어진다. 삼봉산 정상은 두 능선부의 결절점에 해당한다. 삼봉산의 동쪽 능선부에는 오도재가 자리하고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부에는 등구재가 안부에 자리하고 있다. 금대산 아래로는 지리산 산지와의 사이에 임천이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현황]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창원리,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일대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187m이다. 삼봉산은 지리산을 시원스레 볼 수 있는 ‘조망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 삼봉산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위시해 지리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양군 마천면의 등구마을과 남원시 산내면의 실상사 등을 조망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팔량재를 지나 경상남도 함양과 전라북도 남원의 경계 능선을 따라가다 남덕유산의 산줄기도 볼 수 있어 삼봉산은 지리산과 덕유산, 백운산, 금대산, 기백산 등을 모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힌다. 삼봉산 산지의 북쪽 사면으로는 삼봉산 국유림경영시범림이 조성되어 있다. 함양에서 삼봉산을 오를 경우 산행은 주로 함양과 전라북도 남원의 경계인 팔량재에서 시작하며 투구봉을 거쳐 삼봉산 정상에서 오도재로 향하거나 남쪽 금대산으로 하산한다.]
[삼봉산 정상에는 삼각점과 이정표가 있다. 서쪽으로 가는 오른쪽 능선 길은 투구봉 서룡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가는 왼쪽 길은 등구재를 거쳐 백운산 금대산으로 이어진다]
12:45~13:00 사진촬영 후 간식
13:00~14:30 등구재로 이동
[등구재의 높이는 해발 650m이다. 삼봉산(1,186.7m)과 백운산(902.7m) 사이에 있는 안부(鞍部;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에 걸쳐 있다. 아홉 구비를 오르는 고개라는 의미로 등구치(登九峙)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교통로로 이용되었는데 함양에서 이 고갯길을 넘어 지리산 성삼재에 이르고 구례까지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고개 양옆으로 흐르는 물줄기들은 남천으로 흘러들어 간다. 고개 바로 아래에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 가까이에 지방도 60번과 1023번이 지나간다.]
14:30~15:05 백운산(白雲山, 904m)으로 이동
[정상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서 조망은 힘들고 표지석과 삼각점이 산객을 반겨준다]
15:05~15:10 휴식
15:10~15:40 금대산(金臺山, 852m)으로 이동
[금대산 암봉 정상에 올라서자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왼쪽 끝에서부터 상내봉 새봉 쑥밭재, 두류봉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벽소령 형제봉 반야봉 만복대 고리봉 세걸산 바래봉을 거쳐, 지리산 대종주의 마지막 봉우리인 덕두산까지, 반야봉이 가리고 있는 노고단만 빼고는 다 보인다. 게다가 광점골 국골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광대골 등 눈 밝은 사람이라면 지리산 주요계곡들의 흔적까지 일별할 수 있다.]
15:40~15:45 사진촬영
15:45~16:03 금대암(金臺庵)으로 이동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함양 금대암(金臺庵)
한국농어민신문 기사 승인 2022.11.01. 17:58 신문 3438호(2022.11.04) 16면
글 : 조용섭/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이사장]
정토사상 서려있는 지리산 으뜸 절집
지리산 북쪽 산자락의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 전북 남원시 산내면 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 산자락 길 입구에 세워진 ‘지리방장제일금대(智異方丈第一金臺)’라는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방장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니 짐작컨대 금대암이 지리산에서 으뜸가는 절집이라는 뜻으로 새겨놓은 듯하다. 정확히 말하면 금대암은 큰 하천(임천)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마주하고 있는 금대산(851.5m) 자락에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옛사람들은 금대산도 지리산에 속한 산으로 보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문지리서에도 인근의 안국사와 더불어 금대암을 지리산의 절집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금대, 즉 ‘황금(金)자리(臺)’라는 뜻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조선후기의 고승 경암응윤(1743~1804)은 금대암의 내력을 기록한 「금대암기」에 ‘정토경에 염불의 공덕이 높은 자는 목숨을 마칠 때, 서방의 성인이 금대로 와서 맞이함이 으뜸이요, 은대 등은 그 다음이다’라는 내용으로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즉 사람이 죽어 극락으로 갈 때, 염불의 공덕이 높은 수행자에게는 신중(神衆)들이 삼생상품의 구품연화대 중에서 상생품인 금빛 연화대를 가지고 와서 영접하는데, 이를 금대로 일컫는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금대암은 그 이름에서 불교의 정토사상이 깊이 서려있는 절집임을 알 수 있다.
금대암의 창건 시기는 인근에 있는 안국사와 같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등구사의 내력을 기록한 『지리산등구사사적』에는 행호라는 승려가 등구사를 창건한 이듬해인 657년(신라 태종 연간)에 안국사를 지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암응윤 역시 ‘근거할 만한 사적은 없으나, 신라~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동안 고승 대덕이 머물렀던 곳’이라며, 금대암이 신라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찰이었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금대암기」에 전하고 있다.
한편 16세기 초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대암·보월암·안국사 모두 지리산에 있다. 본조(本朝) 중 행호가 창건한 것이다’라며, 조선전기에 활동한 천태종의 고승 행호를 창건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 인물인 이규보가 쓴 ‘진각국사비명’에 ‘진각국사가 금대암에서 수도하였다’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집이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사실에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법명이 혜심인 진각국사(1178~1234)는 스승인 보조지눌에 이어 수선사(송광사) 제2대 사주(社主)를 지낸 인물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의 대표적 교과서인 『선문염송』을 편찬한 고승이다. ‘진각국사비명’에 의하면, 국사는 오산과 지리산 등에 은둔하여 수년 동안 자취를 감추고 수행에 전념했는데, 지리산 금대암에 머물고 있을 때는 ‘대(臺) 위에서 연좌하여 눈(雪)이 이마가 묻힐 정도로 쌓였으나, 오히려 우뚝하게 앉아 마치 고목처럼 움직이지 않고 각고의 수행을 하였다’고 전한다.
이렇듯 고려시대 진각국사의 수행처로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금대암은 조선전기 고승과 성리학자들에 의해 또 다시 세상에 드러난다. 안국사와 금대암의 중창주로 알려진 행호대사는 조선전기 세종임금의 신임을 얻어 판천태종사로 임명된 천태종의 고승으로, 억불의 기운이 점점 드세어지던 시기에 순교한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김종직을 비롯한 조선전기의 이름난 성리학자들도 금대암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1489년 4월 지리산 유람에 나서 금대암에 들른 김일손(1464~1498)은 당시 이곳에서 펼쳐졌던 범패수행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의 「속두류록」에 그려내고 있다.
“4월 15일, 한걸음에 금대암에 닿았다. 누더기 승복을 입은 승려 20여 명이 가사(袈裟)를 입고서 뒤따르며 범패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내가 물어보니 이곳은 정진 도량이라고 했다.”
금대산 자락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금대암은 이렇듯 우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인물들의 흔적과, 치열한 수행 현장으로서의 풍경이 선명하게 서려있는 곳이다. 또한 금대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화대 외에도, ‘지리산 조망의 으뜸자리’라는 공간적 의미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절집 마당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지리산 주능선의 장쾌한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이름이 지닌 뜻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절집 마당 아래에는 500여 년의 세월을 견딘 전나무 한 그루가 묵상에 든 수도승처럼 서 있다. 치열한 수행과 바라봄의 환희가 어우러졌을 금대암에서 옛사람들의 흔적과 지리산의 풍경을 읽는다.]
16:03~16:08 함양 금대암 전나무를 사진촬영
[함양 금대암 전나무
함양 금대암 전나무(咸陽 金臺庵 전나무)는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에 있는 전나무이다.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전나무는 사시사철 잎이 푸른 상록침엽수로 추위에 대한 내한성이 강해 전국 어디에서나 자란다. 잎은 길이 4㎝정도의 침모양이고, 꽃은 4월 하순에 피며, 열매는 원통형으로 위를 향하면서 10월초에 익는다.
금대암의 전나무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산맥을 잇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금대암 입구에 두 그루가 서있다. 나무의 나이는 5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큰 나무의 높이가 40m, 둘레가 2.92m로 우리나라 전나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크다.
탁영 김일손이 쓴 기행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행호조사(行乎祖師:1403년)가 다시 세운 금대암에는 오래 된 소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현재의 전나무 두 그루도 당시의 나무로 추측된다.]
16:08~16:40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에 있는 당흥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16:40~20:30 "엠티산악회" 버스로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에 있는 당흥 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으로 귀경 (299km) [3시간50분 소요]
함양군 [오도봉&삼봉산&금대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