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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4년 8월 6일(흙날).
정동진 리조트에 동의학 식구들 냉겨놓고 아침 일찍 나무나루로 떠났다. 솟터회장 용철이랑 초등학교 6학년 상훈이랑 국제여객선터미널 개찰구에 가는디 뜻밖에 최진호 동지가 서있다. 강정마을 가는 사람들 배웅허로 왔단다.
스타크루즈호에 올랐다. 배가 징허니 크다. 민노당 박명기 목포시위원장이랑 그의 반쪽 이구인 의원, 딸랑구 민지, 백동규 의원, 조영규 동지들을 만났다. 412호실에 짐 부려놓고 놀 만헌 데를 찾아다녔다. 마침 가운데 갑판이 사람들 왕래도 적고 배 굴뚝 기둥에 그늘도 져서 안성마춤이다. 용철이랑 상훈이 데꼬 소리북이랑 음석 들고 그리로 갔다. 근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상훈이가 흥보가를 허는디 바람에 소리가 떨려 퍼진다. 택시노조 박주표 동지랑 골판지 상자에 음석 깔고 있다가 다시 주섬주섬 거뒀다. 상훈이 소리에 한 두 사람씩 구경을 헌다.
상훈이 소리 헐 만큼 허고는 아래 식당 탁자로 내려갔다. 민주노총 식구들 민노당 식구들이랑 자리를 같이 했다. 문저리 회무침에 목포막걸리 다섯 병이 게 눈 감추대끼 했다.
1시 30분. 제주국제여객선터미널(제6부두)에 도착했다. 백금렬 선생이 시킨 대로 택시 타고 공항으로 갈라고 했는디 박명기 동지가 버스(전세)를 타고 가잔다. 차에는 붉은 티를 입은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2011 대학생실천단, ‘생명평화의 바람’학생들이다. 그 붉은 티 등거리에는, ‘야간노동 철폐, 정리해고 분쇄,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핵정책전환’이란 구호가 적혀있었다. 용철이가 그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2시에 출발헌 버스가 3시가 조금 넘어서 강정마을에 이른다. 차 안에서는 항꾸네 탄 사람들 소개를 허고 대학생들의 교양이 있었다. 강정마을 곳곳에 펼침막들이 걸려있다. 역실로(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겄는디, ‘해군기지 껒여!’라고 쓴 깃발도 있다. 노랑 베에 ‘강정 사수’를 써놓은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차가 강정마을을 지나 강정천을 지나친다. 차창으로 내다봉게 강정천 끄트머리에 집채만한 파도가들이 연신 부서진다. 용철이가 소리친다.
“미친 놈들. 저렇게 아름다운 데에다가 해군기지를 만들어?!”
3시 07분. 풍림리조트에 도착했다. 짐을 챙겨들고는 한길로 나섰다. “mb 정권 심판하여 해군기지 몰아내자!”는 펼침막들이 걸려있다. 강정마을 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디 찦차가 한 대 오더니 백선생이, “투쟁~!”하고 외친다. 여그서 봉게 더 반갑다.
“아이고, 선생님 오셨습니까요?” “예.”
“이 애는 누굽니까요?” “박상훈이라고 초등학교 6학년인디 소리허는 아이요.”
“하하하하. 나는 어른이 오는지 알았그만요?” “준석이놈은 신검 연기헐 수가 없다고.”
“아예.”
우리는 강정천 옆에 있는 행사장으로 갔다. 백선생을 태우고 온 차에서 악기를 내렸다. 축구장에 무대가 설치되어있고, 그 젙 나래비로 늘어선 정자에 사람들이 앙거있다.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 모습도 보인다. 이 시대가 낳은 성자이시다. 문정현 신부님은 아예 주소를 강정으로 욍기셨단다. 백선생이 머리 꼽슬한 백인을 가리킴선 벤자민씨라고 소개헌다. 그는 미국인이란다. 3시부터 부대행사를 허고 5시부터 집회를 헌단다.
백선생은 꽹과리를, 용철이는 징을 들고 나는 장구를 맸다. ‘생명평화의 바람’ 한 여학생이 와서 장구를 맨다. 그도 필봉가락을 쳤단다. 우리가 악기를 똥당거리고 있응게 바로 젙에서 몇 사람이 풍물을 꺼낸다. 그들은 제주도 풍물패 ‘신나락’이란다. 그들도 좌도굿을 쳤다가 최근에는 우도가락을 친다고 헌다. 신나락 상쇠가 판을 이끈다. 우리는 행사장에서 강정마을 네거리 코사마트까지 행진하고 갔다. 4시다.
“아따, 상쇠영감. 심들어서 못허겄소. 막걸리 한 잔 허고 헙시다.”
코사마트 쥔네 아짐이 음료수허고 물을 거져 내준다. 고마운 분이다. 알게 봉게 열혈 반대자다. 막걸리 니(네) 병허고 종이잔 몇 개를 샀다. 부쇠를 했던 신나락 사람이 막걸리 마실 시간이 어디 있냐고 거식허더니 자기는 담배를 피워문다. 행사 진행 담당한테서 전화가 왔는디 4시 50분까지 길놀이를 해도라고 했다고 써(혀)를 내두른다. 쥔네 사람들이 차에 물을 싣는다. 용철이를 비롯해서 치배 몇 사람이 물뭉치들을 차에 실어준다. 한 큰애기가 오더니 행사장이 어딨냐고 묻는다. 짐을 다 싣자 그 차를 타고 떠나게 했다, 묵다 남은 막걸리 두 병 손에 들려서.
차가 떠나자 다시 굿가락을 내고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가다가 강정천 다리 오른쪽에 있는 군사기지 사업 사무소로 향했다. 입구는 굳게 닫혀있다. 신나게 두드렸다. 부쇠랑 백선생이 굳게 닫힌 문을 궁댕이로 톡톡 밈시로 익살을 떤다. 한참을 그러고 신바람을 낸디 민중의 몽댕이 짭새놈들이 들이닥친다. 우리를 몰아낼 기세다. 책임자로 보이는 놈이 그만 됐응게 여그서 나가란다. 좀 더 놀다가 발을 뺐다. 정복을 입은 짭새놈들 눈초리들이 곱들 않다. 장구를 치고 나옴서 한 놈 한 놈한테 한껏 째려줬다.
4시 55분. 행사장에서 길놀이를 마치고 나자 대학생 통일행진단 공연을 시작으로 제2차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촉구 제주강정 평화대회를 시작헌다. 5시에 묵념을 헌다. 근디 님을 위한 행진곡은 안 불러분다.
‘음마, 이러믄 안 된디?’
제주주민자치연대 ‘모다정’사람들이 혜은이씨의 감수광을 개사해 노래헌다.
“.... 맙서게 맙서게 해군기지 당최 맙서게 .... 해군기지~~~~ 절대 안 돼요~~~~
갑서게 갑서게 해군기지 혼저 갑서게....”
여러 공연들이 이어지고 5시 41분, 이정희 민노당 대표의 말을 시작으로 야 5당 대표나 최고의원들이 결의의 말들을 헌다. 사회자가 국회 의석수로 보믄 민주당이 제일 먼저해야 헌디 자기 실수로 맨 나중에 배치했다고 이해해도라고 헌다. 내가 큰소리로 잘했다고 소락때기를 질렀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맨 나중에 소리대를 잡더니 자기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저지른 일이라고 사과를 헌다. 글씨(글쎄)다.
5시 44분. 서울 오광식, 최은서 선생이 왔다. 원래 예약헌 비행기를 놓쳐서 인자사 왔단다.
6시 17분. 야5당 연사들의 행동(퍼포먼스)-“해군기지 결사반대”라는 글을 흰 베에 쓰는 일-이 끝나자 제주노래패 ‘소리와 시’, 노래패 ‘청춘’이 연이어 공연을 허고, 이 시대의 성자 문정현 신부님이 무대에 오른다. 쓰레기들을 향해 불호령을 내리신다.
“뭐, 무기를 들고 평화를 얘기해? 해군기지를 뭐라고 부르더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거짓말이여! 완전히 거짓말이여~! 어디 관광미항? 에라이, 엿이나 먹어라, 이 날강도 같은 놈들아! 엿 먹어라!”
7시부터 행진을 헌단다. 또 길놀이를 해란다. 다리 욱에서 방송차허고 대열을 지달리고 있는디 공연이 안 끝나 늦어진다. 누군가 선동을 헌다. 목소리가 우렁우렁허다. 비가 쏟아진다. 소나기다. 우리들끼리 굿가락을 내다가 천막으로 갔다. 근디 비가 잠시 멈칫허는가 싶더니 아예 장대비로 쏟아진다. 행진을 강행헌단다. 에라 모르겄다. 우덜은 미친 듯이 쳐댔다. 비겁헌 견찰놈들이 닭장차 두 대로 아까 놀았던 사업소 입구를 막아부렀다.
7시 반께나 시작했던 행진은 8시 20분에 멈춘다. 쇠 다섯에 징 둘, 장구 싯, 북 싯이 내는 소리에 강정이 들썩인다. 나는 이번에는 용철이허고 같이 징을 쳤다. 한길을 따라 코사마트까지 갔다가 왼쪽으로 접어든다. 현애자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쇠사슬을 몸에 걸치고 지켰다는 삼거리를 지나 구럼비 젙에 있는 평화캠프장까지 갔다. 바람은 비에 젖은 몸땡이를 몰리고(말리고) 징을 춤추게 했다. 상훈이도 이번에는 꽹과리를 쳤다. 부쇠를 했던 이가 상훈이를 앞세우기도 헌다. 평화캠프장 젙에 있는 공터에 가서 마무리 집회를 했다. 우리 전교조의 영원한 청년인 오종렬 선생님의 말씀과 강동균 이장의 말씀-평화와 나눔을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삼거리 농성장에서 악기를 반납허고 짐을 챙겨 코사마트 네거리로 갔다. 행사장에 놔뒀던 짐을 찾아서 오광식 최은서 선생이 나타난다. 근디 10시가 다 되야부러서 식당 문들도 다 닫혔다. 잠 잘 데를 백선생이 알아봐 뒀단다. 한뎃잠을 자는 대학생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는 미안헌디 그리로 가기로 허고는 라면허고 술을 샀다, 제주막걸리 두 병에 한라산물 두 병.
가다 봉게 호프집이 있다. 최선생이 일단 통닭으로라도 배를 채우자고 헌다. 글로(그리로) 들어갔다. 알탕이 된단다. 따땃헌 것이 묵고 잪아서 그것을 시켰다. 혹시 밥 있냐고 물어봉게 안주인 언니 집에 전화해서 밥을 해도라고 헌다. 생맥주 500씨시 다섯 잔을 시킨다. “용철이 자네는 술 묵으믄 안 된담선.” “한 잔 해부러야제 안 되겄소.”
맥주 한 잔 거자 마신 년에 주인네가 밥을 내준다. 큰 접시에 고봉으로 쌓았다. (밥도 어찌 그리 맛나든고!) 우리 숙소 아짐이 어째 안 온가 허고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엄니 한 잔 허이쑈.”허고 이놈 저놈이 아무리 꼬셔도 안 자시고 가셔분다. 오, 최 두 선생은 그곳에 냉겨두고 우리 셋은 먼저 숙소로 들어가 씻었다. 개완~허다!
얼마 안 있어서 두 선생이 들어온디 백선생은 다른 사람들한테 잽혀부렀다고 안 온단다. 주인 아짐이 두 번 다녀가신 뒤에사 백선생이 온다. 상훈이를 먼저 재우고 우덜은 좀더 거시기허다가 몸땡이를 뉘였다.
4344년 8월 7일(해날).
새복부터 비가 쏟아지더니 아침에도 쐬쐬거리는 비바람에 문들이 덜덜거린다. 최선생이 물에 빠진 생쥐꼴을 허고 들어온다. 구럼비에 갔다 왔단다.
“그렇게 큰 파도는 10년만에 처음 봤어요.”
11시 40분. 용철이랑 상훈이랑 삼거리 천막농성장에 갔다. 주민들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우덜은 잠 자는 데로 갔다. 용철이가 장단을 치고 상훈이 흥보 박타는 대목을 헌다. 한 아저씨가 지갑을 꺼내더니 배춧잎 두 장을 건넨다. 정 주실라믄 천원짜리 한 장만 주라고 했는디도 막무가내다. 그러믄 배춧잎 한 장만 도라고 했더니 미안허다고 험서 건넨다. 나도 소리 몇 자리 허고는 점심 때가 돼서 숙소로 갔다. 라면 낋애서 한라산물 몇 잔 마시고는 오후 내내 상훈이랑 번갈아감시로 소리 질렀다.
저녁 아홉시에 의례회관(강정마을회관)에서 집회를 헌단다. 오늘 저녁은 마을 회관에서 묵었다. 아홉시가 되자 우리 여섯은 굿을 쳤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한 분이 강의를 허고 뒤이어 한 분이 경찰에 대처하는 법을 영상을 통해 설명헌다. 근디 목소리가 귀에 익다. 아, 원조둥글이 선생이다!
“워매, 이분이 누구요? 원조둥글이 선생님이제라?” “아, 고선생님이시죠? 반갑습니다.”
상훈이가 공연을 허고 내가 노래선동을 했다. 어제 무대에서는 못했어도 이런저런 자리에서 참 많이도 헌다. 산토끼로 강정 찾아가고 사철가로 맹배기를 비롯헌 쓰레기 씹어댔다. 그라고 뱃노래를 했다. 의례마을회관이 흥청거렸다.
단기4344년 8월 8일(달날).
아침 8시에 눈을 떴다. 태풍은 멀리 도망가불고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Ep고 있다. 목포에 있는 국제여객선항에 배편 알아볼라고 전화했더니 12시 반께나 연락해준단다. 방 청소를 허고는 의례회관으로 갔다. 마을회관 유리창에 붉은 글씨로, “생명평화 사수!”가, 회관 입구 바닥에는, “해군기지 결사 반대!”, “해군의 하수인들아, 일 강정을 떠나라!”라는 글귀가 씌여있다.
9시가 조금 넘어서 우리는 구럼비로 갔다. 몇 키로나 되는 해안이 기기묘묘헌 바위로 뒤덮혀있다. 근디 그것이 한 덩어리다. 물론 자잘헌 바우들도 가끔 눈에 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그저그 흩어져서 바다를 향해 절을 허고 있다. 108배라도 허는 모냥이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따라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몸을 구부려 구럼비에 납작 엎드린다. 울컥허더니 눈물 몇 자락이 흐른다.
그 분들 젙을 지나서 강정천 쪽으로 가봤다. 구럼비 바우 속에서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곳곳에 호수맹키로 물이 고여있다. 손꾸락으로 살짝 찍어 간을 봤다. 아조 민물도 아니고 바닷물도 아니다. 간기가 쬐께 있다. 상훈이랑 용철이가 따라오는가 싶더니 뒤돌아 봉게 한 곳에 앙거서 뭔가를 허고 있다.
더는 갈 수가 없다. 구럼비가 끊어지고 그 새를 파도들이 굼실대고 있다. 발길을 되돌렸다. 사람들이 여전히 바다를 향해 절을 허고 있다. 그 분들을 지나쳐 사진 전시관으로 갔다. 낯익은 분이 바람에 쓰러진 잔해들을 치우고 있다. 원조둥글이 선생이다. 그 분한테는 미안헌 일인디 우리 셋은 올레길을 따라 걸었다.
10시 3분. 올레 7길이 끝나는 지점(?)에 전경 아그덜이 서있다. 그들을 지나쳐서 가는디 강정어촌체험관광마을이란 간판이 있고 무슨무슨 해녀집(이들이 해군기지에 찬성을 했다.)이 있다. 용철이가 대뜸 그런다.
“해녀집 안 가야 쓰겄소, 이?”
군복일 입은 젊은이 둘허고 전경 아그덜이 태풍이 맹글어놓은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음마? 짜들은 착헌 군인이네?’했는디 그 바로 젙 건물에 ‘제주해군기지 홍보관’이란 간판이 붙어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그 놈들이 일허다 말고 쭈뼛쭈뼛 쳐다본다.
더 쭉 내려가볼까 했는디 용철이가 그만 마을로 돌아가자고 헌다.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고갯길을 올라가는디 질가상에 질게질게 장벽(펜스)이 쳐져있다. 마침 독뎅이 한나가 있길래 집어들고 시카리 꽂았다.
싸이렌이 울린다. 근디 멈추들 않는다. 나는 저 소리만 들으믄 신경이 곤두선다. 83년 군대에 있을 때, 한 달 동안이나 저 소리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오밤중에 잠 자다가도, 홁날이나 해날 쉴 때에도 저 소리만 나믄 완전군장 꾸리고 연병장에 집합해야 했다. 나중에는 잠을 잘 때도 군화를 신고 잤다. 당시 서울에는 대학생들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그 때 내 주댕이가, “이 씨벌 놈들아! 데모 더 씨게 해라. 우리 서울구경 좀 허자.”고 씨부린 적이 있었다. 위험천만헌 생각이었다.
싸이렌 소리가 그치들 안 헌다. 삼거리 농성장 입구 가차이 가봉게 닭장차들이 서있다. 그 젙에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서 있고 사복경찰들도 여럿 보인다. 아까 삼거리 농성장에 들어갈 때 봤던 짭새한테 어디서 나는 소리냐고 물응게 주민들이 울리는 소리란다. 대체나 견찰 놈들 차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고 전봇대에 매달아 놓은 나팔(스피커)에서 울려 나온다. 삼거리로 들어갈라고 헝게 거그로 못 갈 거라고 헌다. 한 떼의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삼거리 쪽으로 뛴다. 가들은 곁길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정복을 입은 전경 아그덜이 팔장을 낀 채 우리를 가로막는다. 가들허고 몸싸움을 조깨 허고 있응게 백선생이 나타난다. 그가 고함을 지른다.
“책임자 누구야! 길을 왜 막아! 책임자 나오란 말이야!”
한참 옥신각신 허다 봉게 용철이랑 백선생이 안 보인다. 전화했다. 곁길로 들어갔단다. 강정마을 여성위원장님이랑 우리 재워주신 아짐이랑이 오신다. 제주 말로 견찰놈들한테 뭐라뭐라 호통을 치신다. 우리 같이 외지인 듯한 큰애기가 견찰놈들한테 한 방 날린다.
“세금 받아쳐먹고 뭐하는 짓이야?!”
안경을 낀 한 젊은 놈이 해군이란다. 그 놈이 농성장에 들어와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능갑다. 주민들이 그 사내를 못 나가게 헌다. 그 젊은이가 사진기를 몸에 걸치고 있다. 바로 끈을 잡았다. 밀고 밀리는 통에도 그 놈 대갈통에서 줄을 빗겨 냈다. 나 말고도 한 분이 그 줄을 잡아챘다. 그 놈이 죽겄다고 소리치는디 줄만 끊어져불고 그 놈도 사진기도 사라지고 없다. 분허다.
10시 45분. 드디어 뚫렸다. 이 놈들이 철수허기 시작헌다. 한 아짐이 소리친다.
“이 경찰놈들아, 강정을 지켜! 해군 지키지 말고!”
한 분은 철수허는 견찰들을 못 나가게 막는다. 힘이 보통이 아니다. 장사다.
“이 놈들아, 어디 가냐! 강정을 지켜야 할 것 아니냐! 강정을 지켜라, 이 놈들아!”
백발에 검게 그을린 문정현 신부님이 지팽이를 짚고 삼거리 쪽에서 오심시로 짭새들한테 호통을 친다.
“나가! 나가! 네 이 놈들!”
견찰놈들이 한길까지 물러가자 삼거리 농성장으로 갔다. 민노당 현애자 전의원허고 백발을 헌 한 여성이 몸에 쇠사슬을 걸치고 앙거있다. 쇠사슬, 쇠사슬....
이 얍삽헌 놈들이 태풍 뒤 끝에 피해복구 허니라고 사람들이 없을지를 뻔히 알고 농성장을 침탈헐라고 했다가 야물게 당했다.
한 여성이 길 한 쪽에 옹송거리고 앙거있더니 농성장 푹신의자에 가서 몸땡이를 부린다. 탈진했단다. 침을 놔주고는 어찌냥게 고맙단다.
용철이는 천막 치는 것을 돕는다. 백선생이 구럼비로 가서 손 한나라도 보태잔다. 장갑을 챙겨들고 뒤따랐다. 평화캠프장 가는 길에 삼거리가 있다. 그 삼거리에 녹슨 큰 물통이 있는디 섬뜩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첫날 저녁 얼핏 보았던 그 그림이다, 상훈이가 무서워 했다는. 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한 어린이 코에 총 가늠자가 열 십자로 겨눠진 그림이다. 그 그림 밑에는 이런 경고가 씌여있다.
경고
이 지역은 해군이 불법으로 점령한 군사지역입니다.
허가 없이 무단출입 시 남녀노소, 관광객 등 구별 없이 발포함!
해군 1818부대장
11시 58분. 사진전시관에서 문정현 신부 주재로 미사를 올리고 있다. 그의 젙에는 아우인 문규현 신부가 있고 몇 분의 수녀님과 신도들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견찰놈들허고 상대헐 때와는 달리 목소리가 나직나직허다. 허나 단호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결코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 분들의 찬송을 듣고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삼거리 농성장 초입에 아직도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있고 주민들이 여그저그 앙거서 이런저런 야그를 나누고 있다. 봉게 우리 재워주신 아짐도 있다. 그 분한테 인사를 했다, 인자 가겄노라고.
상훈이를 보더니 소리 한 자리 허라고 시킨다. 견찰 젙에 앙거있던 아저씨들이 박수를 친다. 이 놈 여그서 연예인 되야부렀다. 용철이가 빈 물병을 들더니 전봇대를 북 삼아 친다. 상훈이 소리를 헌다. 하, 이놈 빼는 법이 없다. 배포도 두둑허고 소리도 지복산이다. 소리가 끝나자 모다들 좋아라고 박수를 친다.
“아짐, 특급호텔에서 잘 묵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예, 또 옵서!”<땡>
첫댓글 동참을 못한 죄책감이 있는데 이 글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한 기분입니다. 백금렬, 고재성, 김용철, 그리고 상훈이꼬마소리꾼, 또 최은서샘, 오광식샘 . . .고생많이 하셨다고 이제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