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리강과 월영교
지난 14일 매월 둘째 주 화요일로 정해진 날에 대구 동문들의 점심회를 가졌다.
2일 전 일요일 한 차례 폭우가 지나가기에 이제 찜통더위도 한풀 꺾이는가 했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모두들 점심상이 들어오기 전에 맥주한 잔을 앞에 놓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70평생에 올해 같은 더위는 처음 이란다.
오늘은 광복절, 지난밤 무더위는 여전했고 한 낮에는 또 폭염이 있을 것이란다. 어떻게 지낼까 걱정에 싸여 있는데 친구가 이나리강물 구경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며 카메라를 들고 나오란다.
얼마나 반가운 소리 인가? 그러나 견문이 좁은 내가 이나리강이 강원도 내린천 부근의 강인 줄 알고 가는 것은 좋은데 강원도 까지 갈거냐고 했더니 봉화 청량산 앞 강 이란다.
이렇게 해서 느지막이 출발해서 안동을 거쳐 도산서원 입구에 이르니 오후 1시경이 되었으므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등나무 아래 쉼터에 자리를 깔고 준비해 간 고기를 굽고 소주 한 잔을 하고 있는데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 두 쌍이 우리들이 앉아있는 등나무 넝쿨 아래로 들어오더니 조금 떨어진 옆에다 식단을 준비한다.
우리들은 소주 2병을 준비했으나 갈 길이 먼 탓에 한 병만 마시고 나머지는 나중에 마시기로 하고 준비 해간 밥을 먹기 위해 찌개를 끓이려 하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짐을 걷어야 하는지 그대로 주저앉아 찌개를 끓여야 하는지 마음과 몸이 몹씨 분주하다. 옆 동내 젊은 부부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와 같이 바쁘다.
하늘 한 쪽은 훤~히 터져있고 반대 쪽은 캄캄하였으므로 하늘의 눈치를 보며 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벼운 소나기가 지나갈 뿐이어서 점심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오후 2시가 되었다.
막 짐을 챙기려는데 옆 동내 젊은이들이 고기를 굽고 나더니 술을 빠트렸다고 야단이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우리를 보더니 참으로 죄송한 말씀이라면서 혹시 어르신들께서 드시다가 남은 술이 있으면 나누어 주실 수 없겠느냐고 한다.
한 병이 남았기는 하나 우리도 이 것 뿐이어서 한 병에 1만원이라고 하였더니 젊은 아낙이 정말 1만원을 가져 온다.
농담도 못하냐면서 술 한 병을 그냥 주고 떠나려 하니 젊은이들이 우리들의 차가 떠날 때까지 두 손을 모아잡고 서서 전송해 주었다. 아마도 안동지방의 사람들일까 양반의 티가 몸에 밴 듯했다.
서둘러 가는 길에 봉화 쪽 하늘은 맑지 않았고 비는 오다가 마다가 했다. 청량산 입구 청량산삼거리에는 전에 없던 외모 번듯한 식당, 민박들이 즐비하여 큰 마을을 이루었고 “1주차1실무료”라고 광고한 모텔도 있었는데 이용해 보지 않아서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 속에 자리 잡은 청량산박물관에 들어 전시물을 구경하고 전망대에 올라 청량산을 감상한 다음, 명호면 사무소 쪽으로 강을 따라 올라가다 드디어 목적지인 五馬橋에 이르러 차를 멈추고 물 구경을 했는데 오마교란 이름도 그 연유가 있을 터이지만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간간히 내린 폭우로 물은 약간 흐렸지만 청산은 이나리강을 두르고 한 없이 푸르기만 하다
그 중에 보드가 하나 둘 젊음을 싣고 떠내려 왔다
우리들의 카메라를 의식한 듯 우리를 향해 손짓한다
아~ 내가 내린천에서 저렇게 한 지가 언제이던가?
이젠 못한다. 아니 못하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는 거다.
보드를 타고 내려가다가 다른 보드와 만나게 되면 서로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깊은 곳에 이르면 물속에 빠뜨리기도 하는 것이 레프팅의 즐거음인데 70늙은이와는 그런 놀이를 같이 해 주려는 사람이 없다. 꼭히 하고 싶다면 천상 우리들 10여명이 레프팅계를 모야야 할 것이다.
내려가보자 즐거움 속으로
상류에서는 여러 대의 보드가 줄을 이어 내려온다.
이나리 강물은 五馬橋 아래를 흐르고
청량산 봉우리에 비구름이 오락가락 하니
운곡 나리(내)와 낙동 나리(내)가 황우산 앞에서 만나
이(2)나리 강물 되어 흘러가네.
인생이 흘러가듯
이나리강은
하나 둘 젊음을 흘러 보내고
청량산은 멀리서
구름을 이고 말이 없다.
모두를 흘러보낸 강물 위에는
연기처럼
안개만 피어 남았습니다.
귀가를 서둘러 오후 6시경 月暎橋에 도착하였다
운이 좋았던지 기이하게도 물안개가 막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친구는 불 켜진 월영교의 야경을 촬영하고 싶었던지라 천천히 저녁이나 먹고 나가보자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광경은 일생에 몇 번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몇 분 만에 사라질 수도 있는 지라 사진부터 찍자고 했다.
주차장에서 본 월영교
마치 우유를 뿌려놓은 듯 하다
월영교 왼쪽에서 본 광경
서쪽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아직 햇빛이 남아 있다.
10분이 지나자 갑자기 물안개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좀 더 머물러 주었으면 했다.
급한 마음에 월영교 반대편으로 가서 주차장 쪽을 바다라보니 물안개는 모두 날아 가버렸다.
아쉬워하는 마음도 잠시. 등 뒤에서 우루룽 쾅쾅 하고 천둥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하늘은 한 쪽은 아직 훤 한데 한 쪽은 먹구름이다. 또 비가 오려나? 걱정하면서도 설마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아니하겠지 하면서 카메라가 젖을 것이 걱정이 되어 가방에 넣은 다음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 계산이 영 잘못 되었다. 월영루를 막 지날 때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10여보도 못 가서 빗줄기가 세어지기에 뛰기 시작했는데 비는 내가 뛰는 속도에 맞추어 물동이로 내리 붓고 있었다.
사방이 어두워졌고 안경에 빗물이 흘러 앞이 보이지 아니하여 뛸 수도 없지만 20-30보를 뛴 사이에 옷은 이미 안동호에 빠진 꼴이 되었으므로 이제는 비에 젖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미끄러지지 아니 것이 문제였다.
겨우 주차장 한편에 세워진 광광안내도간판의 작은 처마 밑으로 들어가서 차를 세워둔 곳과 친구를 찾는데 전화가 왔다. 그 친구가 바로 옆 관광안내도간판 처마 밑에서 흠뻑 젖은 체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집중호우라는 말을 방송으로만 들었는데 직접 당하고 보니 정말 대단했다.
우리 일행 넷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그런 행색으로는 남의 음식점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생각에 어찌할까를 설왕설래 하며 약 30여분이 지났을까? 비가 그치기 시작하더니 월영교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비는 아직도 다 그치지 아니하고 가랑비로 변하여 내리고 있었지만, 친구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언제 또 월영교야경을 위해 올 것이냐면서 카메라를 꺼낸다.
그래서 나 또한 카메라의 고장을 무릅쓰고 두세 컷 불 들어온 월영교를 찍었다.
이 밤도 열대야의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가운데 잠이 깨여 이 글을 쓰는데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고생한 만큼 사진은 몇 장 되지 아니한데 사실만 너무 길다.
그래서 지나간 사진 몇 장을 더 올려본다.
지나간 것이라고 해야 불과 지난주의 사진이다.
금년 여름은 더위를 피한다는 이유로 유독 청도읍성의 수련을 많이 찾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관곡지란 곳의 수련은 비오는 밤에도 핀다고 해서 청도 읍성의 수련도 밤낮없이 피는 줄 알아서 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청도읍성의 수련은 오전에 피었다가 오후 2시경에 오므라들기 시작하여 오후 3시경이면 완전히 오므라들었다가 다음날 오전에 다시 핀다. 그 것도 밤비가 내린 날 아침이면 피지도 않는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오후에 늦게 찾았다가 못 보고, 비온 날 아침에 찾았다가 헛걸음하기를 몇 번이나 거듭한 끝에 겨우 알게 되었고 한자 표기로 水蓮이 아니라 睡蓮이고 그 종류가 수백 종류에 이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피서하는 고기
더위를 피하려고 이 곳에 와서 연잎 사이에서 튀어 오르는 이 쪼매난 놈을 찍으려고 장시간 땡볕에 쭈그리고 앉은 내 꼴을 상상하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 만큼이나 한심한 놈이 또 하나 있다.
큰 것 잡아묵어라. 이 쪼매한 놈을 잡아무글라고 이 곳에 와서 서성이다가 내가 삼발을 뻣치고 앉아 있으니 가까이 오지 못하고 눈치 보다가 가버린다.
분명 욕 했을 터.
가산리 효자각
이곳은 밀양 가산리라는 곳이다.
마을 앞에 있던 월산초등학교가 폐교되자 그 곳에 밀양시의 협조로 공연장과 연극제작소 등을 갖추어 "연극촌"을 꾸며놓고 마을 앞 수 만평의 논, 밭에 연밭을 가꾸어 놓아 지금은 "밀양연극촌"으로 더 알려졌다.
연꼳도 더위에 지쳐가고
옆집 아줌마가 힘내라고 하지만
그도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응원해도 소용이 없다.
해바라기
해를 좋아했지만
그도 지쳐 고개 숙이고
다만 대추만이 익기를 바랄 뿐
세월은 이렇게 흘러가는가 보다.
연잎 사이로 튀어
다.
첫댓글 우리나라 어느 곳에 이런 기막힌 경치가 있는지 몰랐네요. 하기사 좋은 경치도 그걸 담을 안목이 없으니 그냥 스치고 말았겠지... 경치도 경치지만 그걸 카메라에 예쁘게 포장해서 담는 솜씨가 분명 푸로급임에 틀림 없읍니다. 물안게가 걸쳐진 산허리에 맑은강, 그기다 월령교 다리! 이런 기막힌 장면을 어찌 이리도 정교하게 담아 왔을꼬!? 정말 환장할 정도로 멋지게 담아 왔군요. 어느것 하나도 버릴게 없을 정도로 정말 멋집니다. 글고 중간 중간 배어 있는 글귀도 마치 원숙한 시인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듯 하군요. 정말 멋진 사진에 아름다운 글귀 입니다. 글고 밀양은 내고향 인데도 이런 멋진데가 있는줄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