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허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내 꿈에 나타났다.
‘아이고 얘야아, 니가 웬일이냐아.......
우짤라고 여적지 이런 곳에 와서어,
그리 형편없는 몰골로 자빠져 있단 말고오.....
... 야 이놈아, 정신 몬 차리겄나아.......’
내 몰골이 대체 어떻기에 그러시냐고
몸을 살피니, 아니, 하반신이 완전히 달아난
반동가리 몸이질 않나. 소스라쳐서 몸을
일으키다보니 할머니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대신
흰자위 많은 눈알만이 공중에 댕그마니 떠서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나를 향해
육박해 오는 것이었다.
“으악!”
내 온 몸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몹시 불길한 꿈.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
나타났다는 것부터가 기분 더러웠다. 꼴에
내 신변을 염려해주다니.......
어린 시절, 너나 할 것 없이 어렵던 그
시절에 나는 할머니에게 일종의 원한을
품게 되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나는 어느 날
우리 집 툇마루에 책 보따리를 던지기가
무섭게 큰집으로 내달았다. 종손인 수만
형이 자기 집으로 올라갔으니 할머니가
어김없이 밥상을 차릴 것이고, 밥상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이 올려지기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형이나 큰아버지의 밥상은 언제나 다른
식구와 차별이 극심했는데, 목기나
바가지에 꽁보리밥이 든 다른 식구들의
밥그릇과는 달리, 두 분의 식기는 죄다
놋그릇인데다가 허연 쌀밥이 수북이 퍼
담겨 있곤 했다. 부엌에서부터 하얀 밥상보가
덮어져 들어가는 큰아버지와 형의 겸상을
한 번씩 구경할라치면 항상 그러했는데, 두 분
다 밥 먹는 식이 최대한 몸을 구부리고
돌아앉아 수저를 들지 않은 한 쪽 팔은 밥상에
올리고서, 손바닥을 한껏 펼쳐 밥그릇을 가렸다.
그리고 마지막 밥알을 다 긁을 순간까지도
그 놋 식기를 가린 손바닥은 밥상에 찰싹 붙어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의 지엄하신 분부를
따른 치열한 ‘밥그릇 수호 작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쌀밥이 드문드문 박힌 보리밥을 먹는
형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순수한 백색으로
반짝이는 수만형의 밥상에 항상 껄떡증을 내곤 했다.
아버지는 이를테면 자수성가한 분이었다. 일본에서
나올 때 나와 내 바로 아랫동생과 아버지는 각자의
배낭에 돈을 가득가득 넣어서 귀국했는데, 환전을 한
돈인지 뭔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그 돈으로 꽤 여러
마지기의 논을 장만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5남 2녀의 자식들을 줄줄이 낳아 기르면서
내핍에 또 내핍생활을 하였다. 아버지는 당신 손으로
논마지기를 마련하는 일에 재미가 들린 분이어서,
우리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곡식을 보며 ‘저걸 한
숟갈씩만 계속 아끼면 어느 순간에 가서는 논으로 둔
갑할텐데......’하는 궁리를 하곤 했다. 오죽하면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 있는 아들의 월급으로 논 살
생각을 다 하셨을까. 내 월급이 어쩌다 늦게 도착하거
나 수령액이 모자라거나 하면 아버지는 수만형을 시켜
득달같이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 편지는 항상 안부도
날씨도 고향소식도 모두 생략한 채, 단지 ‘이번 달엔
돈이 늦구나. 행여 헛되이 쓰지 말고 속히 보내거라’
‘전쟁터에서 돈 쓸 일이 뭐 있다고 돈이 모자라느냐?
밥도 주고 옷도 주고 담배도 주지 않느냐? 혹시
여자에게 쓰는 것은 아니냐? 부디 똑 바른 정신으로
모자라지 않게 보내라’ 등등의 간략하기 짝이 없는
편지가 가끔 날아들곤 했지만, 정작 내가 차츰 계급이
오름과 때를 같이하여 수령액이 많아지면 그 사실에는
쓰다 달다 말이 없던 아버지였다. 아마도
‘이놈이 정신 차렸구나.’하고 머리를 끄덕였을
것이었다. 그 정도로 유별스레 땅 욕심이 많던 아버지
의 권속인 우리들이라 끼니때마다 한 숟갈이라도 더
퍼 넣으려는 쟁탈전을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희망에 들떴다. 용케 맞닥뜨리면 사촌형의 허연
쌀밥을 한 숟갈 얻어 먹을지도, 아니, 한 숟갈이
아니라 다 같은 손주인데 나라고 한 사발 수북하게
못 퍼다 주실까, 오오냐, 이리 와서 내 껄 먹거라 하고
육중한 무쇠 솥을 열고 한 사발의 밥을 후후 불어가며
꺼내 오실지 누가 아는가.
나는 군침 삼킬 여유도 없이 큰집 마당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방 앞의 길다란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겁지겁 달려드느라 기운도 빠진데다가 내가 온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으며, 한편으론 구수한 밥 냄새가 나를
혼절시킨 때문이었다. 나는 방문 고리를 잡고 펄쩍
열어젖혔다.
“성, 꼴 비러 가자.”
순간, 할머니가 흠칫 놀라면서 무언가를 치마 속으로
쑥 밀어 넣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쌀밥이 담긴
뜨거운 놋 사발이 분명하였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시치밀
뚝 따고서 치마를 여미었다.
“먼저 가제, 나는 밥 묵고 갈 낀데......”
형의 머뭇거리는 변명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나는 오로지 할머니의 오그린 무릎 밑만 뚫어져라
주시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선 김이 솔솔 새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형은, 내가 이미 알아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고구마 사발을 불쑥
내미는 것이었다.
“이것 쫌 묵고 가라.”
그러자 할머니도 능큼스런 표정을 하며 얇은 입술을
오무작거렸다.
“오이야 그래, 사촌형제끼리 그래 정이 도타와야재,
고매는 또 있으잉께나, 게춤에 털어넣고 쉬엄쉬엄 감서
묵그래이. 오이?”
할머니의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물씬
피어오르는 심술을 꾹꾹 다져누르며 계속 할머니의
치마 밑을 감시했다. 그리곤 밥에서 오른 그 김이
할머니의 치마폭 안쪽에 이슬이 되어 조롱조롱 맺혔을
것이라고 짐작이 갔을 때쯤에야 고구마를 한 개씩
손바닥에 올렸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고
나가다가 그것을 돼지우리에 냅다 던져버렸다.
“아나! 너거들이나 마이 처묵고 팅팅하이 살 찌워라.”
할머니는 그 뒤에도 종종 그런 눈꼴사나운 짓을
했는데, 때로는 인절미가 때로는 삶은 계란이, 심지어
는 쇠고깃국이 그 치마 속으로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물론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은 불시에 기습하여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내 탓으로,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린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어느덧 그 짓에 재미를
붙인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한 번쯤은
배고픈 손주를 위하여 양보할 법도 하였건만,
할머니는 나 보는 앞에선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체되어도 그걸 도로 꺼내는 법이 없었으므로 결국
나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저주를 퍼붓곤 했다.
“허벅지나 확, 데어라!”
그 후에 문득 할머니의 허벅지 살갗에는 상당한
저항력이 생겼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고,
그걸 알고부터는 할머니에 대한 나의 분한 마음이
좀체 잦아들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할머니를 치가
떨리게 미워했는데, 할머니 장례식에 상복도 입지
않았을 정도였으며 산소에도 절대로 가지 않으리라
굳게굳게 맹세까지 할 정도였다. 그랬는데,
뜬금없이 꿈에 나타나서 불길한 소릴 잔뜩
늘어놓고는 내가 죽인 그 부이시의 흰자위
번들거리는 눈알로 둔갑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야 어찌되었건, 불길한
꿈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첫댓글 나쁜그림에는 없단다^&^*
그렇지만 [나쁜 그림] 안에 든 소설 중에서 [하필이면]이란 글을 읽어보면 좀 비스무리한 냄새가 나지^&^*
그런 가용.. 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