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오늘 소개해 드릴 성지는 양근성지입니다.
양근성지는 단아하고 기도하기 좋은 분위기의 성당이었습니다. 양근성지는 규모가 큰 성지는 아니지만 평신도도 교회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성지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양근(楊根)이란 고구려 시대에 근거를 둔 지명으로 버드나무 뿌리란 의미입니다. 옛부터 폭우와 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남한강변에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 한편으로 양근 이라는 말에서 양제근기(楊提根基)라는 말이 파생되며, 이 말은 튼튼한 근원, 기초란 의미로 한국 천주교 역사 안에서 차지하는 양근 성지의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양근성지는 신유박해 이전 천주교 도입기에 천진암 주어사에서 강학을 주도한 녹암 권철신과 한국 천주교 창립 주역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권일신이 태어난 곳이며, 최초의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전국으로 천주교 신앙이 퍼져 나간 모태입니다. 또한, 주준모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하여 두 차례나 북경에 밀사로 다녀온 윤유일(바오로)과 그 동생 윤유오(야고보)와 4촌 여동생 윤점혜(아가다), 윤운혜(마르타)와 유한숙, 권상문(세바스티아노), 김일호, 이 아가다, 그리고 조숙, 권 데레사 동정 부부 등이 태어나거나 살다가 체포되어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곳입니다.(윤유일, 윤유오, 윤점혜, 윤운혜, 권상문 등은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복자’로 시복됨).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하느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양근천이 한강과 만나는 일명 오밋다리 부근 백사장에서 그들의 목이 잘리고 시신이 내버려진 곳입니다. 양근성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용문사는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1785년 봄 명례방(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하다 형조 관리에게 발각되는, 즉 을사 추조적발사건 이후 양근 사람 조동섬 유스티노와 함께 8일간 침묵 피정을 한 곳입니다. -천주교 수원교구 성지소개에서 발췌-
양근성지의 전경입니다.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오밋다리가있습니다. 오밋다리는 양근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에 있던 다리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 부근 백사장에서 순교 하고 버려진곳입니다.
오밋다리를건너면 십자가의길이 나옵니다.
양근성지의 십자가의길은 예수님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상징만을 남겨 순례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신앙과 삶을 담아 스스로 묵상하도록 여백을 만들어 주는 것같습니다. 이 작품들의 조각가는 정답을 보여 주기보다 묵상으로 초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의 이숙자세실리아 수녀님의 작품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묵상 해 보시면 좋을거 같아서 14처 사진을 모두 보여드립니다.
양근 성지는 신유박해 이전 천주교의 도입기에 천진암 주어사 강학을 주도한 녹암(鹿菴)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과 그의 동생이자 한국 천주교 창립 주역의 한 명인 이암(移庵)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 태어난 곳입니다.
십자가의길 끝에는 아기천사와 성모님 그리고 예수님께서 양팔 벌려 순례자들을 맞이하고계십니다.
예수님 뒤편으로 구비구비 남한강이 흐르고있습니다.
이승훈(李承薰)은 1784년 북경의 북당(北堂)에서 그라몽(Grammont)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신자입니다. 그는 고국에 돌아와 서울 수표교 근처 이벽(李檗)의 집에서 한국 천주교의 창립 선조들인 이벽과 권일신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 후 이승훈은 양근으로 내려와 권철신과 훗날 충청도와 전라도의 사도가 된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과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양근 성지는 1801년 전주에서 순교한 이순이(李順伊, 루갈다)와 유중철(柳重哲, 요한) 동정부부와 쌍벽을 이루는 조숙(趙塾, 베드로)과 권천례(權千禮, 데레사) 동정부부가 태어나고 신앙을 증거한 곳입니다.
조 베드로는 훗날 성직자 영입 운동을 벌인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가르친 조동섬(趙東暹, 유스티노)의 종손자(從孫子)이고, 권 데레사는 권일신의 딸입니다. 조 베드로와 권 데레사 동정부부는 한국 교회의 성직자 영입 운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잡혀서 순교하였습니다. 이들은 결혼생활 15년 동안 오누이처럼 지내면서 동정을 지켰고 마침내 동정 순교부부의 영광을 차지하였습니다. 이승훈 베드로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들은 몸소 조과(朝課, 아침기도), 만과(晩課, 저녁기도), 성로신공(聖路神功, 십자가의 길 기도) 등을 바치며 천주교 신앙생활을 실천했습니다. 당시 천주교의 교리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천주교 창립의 주역들은 신부의 역할을 하며 2년간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양근 성지는 주문모 신부를 영입하기 위해 두 번이나 북경에 밀사로 다녀온 윤유일(尹有一, 바오로)의 동생 윤유오(尹有五, 야고보), 4촌 여동생 윤점혜(尹占惠, 아가타), 권상문(權相問, 세바스티아노)이 참수형(斬首刑)으로 순교한 곳입니다.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중 양근 성지와 관련 있는 순교 복자는 조용삼(베드로, 1801년 3월 27일 순교, 독신), 홍익만(洪翼萬, 안토니오, 1802년 1월 29일 순교, 평신도 지도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 1802년 1월 30일 순교, 평신도 지도자), 조숙(베드로)와 권천례(데레사, 1819년 8월 10일 이후 순교, 동정부부)입니다.
성당 내부사진입니다.
양근 성지의 중요성을 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첫째로 최초의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고, 전국으로 천주교 신앙이 퍼져나간 모태이다. 둘째로 조 베드로와 권 데레사 동정부부가 태어난 곳이다. 셋째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양근천이 한강과 만나는 일명 오밋다리 부근 백사장에서 목이 잘리고 시신이 내버려진 곳입니다.
이상 good news의 성지 사적지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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