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 평론가 특별 영상 ]충격! 현대사의 진실!이리역 폭발과 5.18, 동일범 간첩 소행 맞다 -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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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원로회 서신 141호 '전사와 연인'장중한 스토리채영순1 month ago
소름이 돋아요 ㅡ장중한 ㅡ
이리역폭발사고The Explosion Accident of I-ri station , 裡里驛爆發事故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이리역(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
내용
1977년 11월 9일 인천을 출발하여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주식회사의 화약열차는 10일 11시 31분에 다른 열차와 함께 이리역에 도착, 1605호 화물열차에 중계되어 목적지인 광주로 출발하기 위해 사고지점인 4번 입환대기선(入換待期線)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화약주식회사의 호송원 신무일 씨는 화약류 등의 위험물은 역 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곧바로 통과시켜야 하는 원칙을 무시하고 수송을 늦추고 있는 이리역 측에 항의를 제기했으나 묵살되자 이리역 앞 식당에서 음주를 한 후 화약열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화물열차 속이 어둡자 논산역에서 구입했다는 양초에 불을 붙여 화약상자에 세워 놓은 뒤 침낭 속에 몸을 묻고 잠에 빠져 들었는데 미쳐 끄지 않은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어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폭발한 열차에는 당시 다이너마이트 상자 914개(22톤), 초산암모니아 상자 200개(5톤), 초안(硝安) 폭약 상자 100개(2톤), 뇌관상자 36개(1톤), 합계 1,250상자 30톤분이 실려 있었다.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이리역 구내에는 깊이 15m, 직경 30m의 큰 웅덩이가 패였다. 역 구내에 있던 객차·화물열차·기관차 등 30여 량 남짓이 파손되었고 철로가 엿가락처럼 휘어져버렸다.
전라북도가 집계한 열차 폭발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자 59명, 중상자 185명, 경상자 1,158명 등으로 총 1,402명에 달한다. 피해 가옥 동수는 전파가 811동, 반파가 780동, 소파가 6,042동, 공공시설물을 포함한 재산피해 총액이 61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이재민 수만도 1,674세대 7,873명이나 되었다.
이리역 폭발사고 직후 중앙재해대책본부 등이 구성되어 재해 복구 활동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천막촌을 건설하여 이재민을 수용했고,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1977년 11월 19일 ‘새이리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裡里驛爆發事故
1977년 11월11일 이리역에서 다이너마이트가 실린 화물열차가 폭발하면서 큰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소도시였던 이리 시는 이 폭발사고로 가옥의 73%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폭발 장소와 가까운 극장에서 공연을 하던 가수 하춘화 씨도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하춘화쇼의 사회를 맡았던 이주일 씨는 본인도 부상을 당했지만 같이 부상을 당한
하춘화 씨를 업고 병원에 뛰어갔다고 하죠.
당시 최고 인기가수 중 한사람이었던 하춘화 씨는 무명이었던 이주일 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뜻에서
‘내 쇼 사회자는 이주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이주일 씨는 인기있는 극장쇼 사회자로 '
클 수가 있었습니다.
화물호송원이었던 범인은 화물열차 안이 너무 추워서 촛불을 켰고 자다가 촛불을 걷어차면서 이불에 불이 붙은 게 대참사의 원인이 되었다는...
이리역 폭발사건글쓴이: 편돌이
靑山 노승렬 1923.03.31
이리역 폭발사건
1. 시기
1977년 11월 11일 21시 15분
2. 관련인물과 사고전개
가. 관련인물
신무일(한국화약주식회사 수송원)
나. 사고전개
사고열차는 사고 이틀 전인 11월 9일 11시 인천시 남구 고잔동에 있는 한국화약주식회사 제1공장에서 상기 화약류를 싣고 9시 43분 광주를 향해 출발했다. 화약열차는 그날 밤 11시 31분에 15량의 다른 화차와 함께 이리역에 도착했고 1605호 화물열차에 의해 중개되어 목적지인 광주로 출발하기 위해 사고지점인 4번 입환대기선에 머물러 있었다. 사고당시의 철도수송규정 제46조를 보면 화학약품의 수송은 되도록 도착역까지 직통하는 열차를 이용 수송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화약열차는 광주로의 연계수송을 위해 무려 22시간여 동안이나 대기 중에 있었다. 한편 한국화약주식회사의 수송원이던 신무일(38세)은 화약류의 직송 원칙을 무시하고 수송을 지연시키는 데 대해 이리역 측에 항의를 하였으나 묵살되자 이리역 앞 식당에서 2홉들이 소주 한 병을 곁들인 식사를 한 뒤 다시 2차로 역전주점에 들러 막걸리를 마시고 얼큰한 취기에 초겨울의 한기를 느끼면서 화약열차에 들어갔다. 화차 속이 어두웠기에 그는 논산역에서 구입한 양초를 찾아 불을 붙여 화약상자 위에 세워놓은 뒤 취기에 한기가 엄습해오자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 그 사이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으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 사고로 인한 피해상황을 보면, 인명피해 - 사망 59명, 중상 185명, 경상 1,158명, 재산피해 - 가옥파괴 7,866동 등의 피해액 3억 5천만 원과 공공시설, 철도, 객화차량, 건물 등 파괴로 피해액 26억 4,600만원의 대형피해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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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관련 책에서 장중한 스토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탈북자들이 들었던 5.18관련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중한이 5.18에서 폭약을 설치한 인물이라는 것은 처음 듣네요.
더군다나 이리역 폭파사건에도 장중한이 했다는 것도 쇼킹하구요.
근데 이게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네요.
대남공작 요원들은 보통 토대가 안 좋은 남한출신들을 이용해서 훈련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왕조사회인 북한에서 과연 김경희와 연인이 될 수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장중한의 집이 굉장히 가난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장중한이 일기를 꼼꼼히 기록했고, 그것을 어머니께 읽어줬다고 하는데 그것도 좀 이해가 안 됐습니다.
모든 것이 비밀인 그들이 과연 그런 기록이 가능하고, 그런 기록물을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아들을 죽인 놈들을 용서하고, 그들이 어머니께 그 일기를 읽어주었다는 것이 정말 재미는 있었지만
과연 이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하는 의심을 했었습니다.
탈북민들중에도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많고,
국방부도 땅굴 신고하면 무시하고
국정원도 5.18진술을 덮으려고 한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정말 아무도 신뢰하기 어려운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