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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증언 4권 (3)
그대는 말에 관해서는, 진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대가 행함으로 그대의 믿음을 보여야 할 때는 큰 부족함이 있었다. 그대는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대표하지 않았다. 그대는 이득에 대한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을 손상시켰으며, 매매와 언쟁에 관한 애착은 그대에게 좋지 않았으며, 그대와 접촉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건강에도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대는 거래에 있어서 각박한 사람이며, 종종 도가 지나치다. 그대는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는 그대 자신의 유익을 구하면서, 제일 좋은 흥정을 얻어 낼 때를 포착하는 특이한 솜씨를 가지고 있다. 만일 한 사람이 스스로 속고 그대는 이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될 것 같으면, 그대는 그에게 그것을 하도록 내버려둔다. 이것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4T 350.2)
하나님과 그대의 동료 인간에 대한 그대의 관계는 그대의 삶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산상설교에서 세상의 구속주의 명령은 이것이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요, 우리의 행위를 재는 황금률이다. 이것은 정직의 진정한 척도이다. 매우 많은 것들이 이 말씀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이웃을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4T 359.2)
재산의 획득이 어떤 사람에게는 열병이 된다. 매번 황금률은 깨뜨려지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도에 속한 사람 때문에 모욕을 받으신다. 성도이거나 죄인이거나 간에 동료 인간들에게서 취하는 모든 이득은 하늘의 원장 (元帳) 에 사기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인류의 향상에 있어서 거룩한 부분을 담당함으로써 우리의 위대한 모본자의 생애를 대표하도록 의도하셨다. 이 일에는 이생에서는 결코 볼 수도, 깨달을 수도 없지만 미래의 생애에서는 충분히 식별될 한 진실한 위엄과 영광이 머물게 된다. 친절한 행동과 관대한 행위의 기록은 영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람이 동료의 불리한 처지를 이용해서 자기 자신이 이 (利) 로워지고자 하는 바로 그만큼 그의 심령은 하나님의 영의 감화에 무감각해질 것이다. 이렇게 얻은 이익은 무서운 손실이다. (4T 490.2)
구호봉사 (2)
황금률을 준수하라 — 하나님께서는 이따금, 심지어 불리한 일을 당할지라도 가난한 자가 손해되는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해 줄 누군가를 일으키신다. 이것이 자기 동료에 대한 인간의 의무이다. 행동의 결과를 분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람의 무지를 이해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가 맹목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그리고 당연히 그의 것이 되는 자원들을 잃지 않도록, 각 방면으로 문제를 고찰하여, 직접적으로 그 사람 앞에 분명하고 성실하게 그 문제를 보여 주는 것이 그의 형제가 해야 할 의무이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 7:12) 고 하신 황금률을 준수하면,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이 신속히 조정되었을 것이다. — 서신 85, 1896 (WM 202.2)
세상 나라의 화폐로 종종 갚음을 받음 — 황금률은 그같은 진리가 산상교훈의 다른데도 암시로 가르친 바되었으니 곧 “너희가 남을 헤아린 대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으리라” (마 7:2) 한 그 말씀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행하는 것은 선이거나 악이거나 틀림없이 우리에게 축복이나 재앙으로 재연 (再演)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시 받을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 나누어 준 이 세상의 축복은 때때로 같은 것으로 받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나누어 주었든지 우리가 필요한 때에는 흔히 이 세상 나라의 화폐로써 4배나 더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외에도 모든 선물은 현실 생애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한층 더 풍족히 받나니, 이는 곧 하늘나라의 영광과 그 보화의 극치가 되는 것이다. — 산상보훈 194 (WM 312.2)
그리스도인 문서선교 (1)
말에 관한 한, 그대는 진리에 깊은 흥미를 가져왔다. 그러나 행위로써 그대의 믿음을 보여 줄 경우가 될 때면 큰 부족이 나타났었다. 그대는 우리의 믿음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않았다. 그대는 돈벌이에 대한 마음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을 훼손시켰다. 장사하고 언쟁하기를 좋아하는 일은 그대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고 그대와 접촉하는 사람들의 영적 건강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대는 장사에 영리한 사람이므로 때때로 사람을 속인다. 그대는 최선의 거래 방법을 찾아내는 특별한 재간을 가졌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유익보다는 그대 자신의 유익을 살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속을 경우 그것 때문에 그대가 유익해진다면 그대는 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것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PM 329.3)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2 (1)
황금률은 행복을 만듦—“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구주께서는 인류를 불행이 아니라 행복하게 만드시기 위해 이 원칙을 가르치셨다. 왜냐하면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행복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남녀들이 더욱 고상하게 생활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단순히 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인류에게 위탁하신 일 - 동료 인간들의 필요를 찾아 해소해 주는 일—을 행함으로써 더욱 높은 능력을 증진하도록 생명의 축복을 그들에게 주셨다. 사람은 자신의 이기적 관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영향력과 친절한 행위로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그 모범이 제시되어 있다.—MS 132, 1902.(ML, 165). (2MCP 645.1)
높은 부르심 (1)
“종교가 그들을 더 낫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아방종하고 세상적이며 상거래에 있어서 예민한 자들이다”라는 말을 우리 중 누구에게서도 증거되지 않게 하라. 이러한 열매를 맺는 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헤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계속적으로 승리의 길을 가는 자들의 길에 방해물을 놓는 자들이다.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우리 구세주의 황금률과 동일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이 위대한 계명들을 우리가 순종한다는 명확한 증거를 세상에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우리의 의무이다(영문시조, 1882년 1월 12일). (OHC 241.5)
복음전도 (1)
인간의 청지기 직분 — 그리스도께서 교훈하신 황금률에는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무지와 암흑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그들의 처지에 있었다면 그가 은혜 받기를 얼마나 원하였을는지 그만큼 나누어 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되 “헬라 사람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롬 1:14)고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한 선물을 받으므로서 이 세상에 가장 우매하고 타락한 사람에게 이 은혜의 선물을 주어야 할 빚을 진 것이다.— 산상보훈 193 (1896) (Ev 255.1)
산상보훈 (6)
황금률은 진정한 친절의 원칙이며 예수님의 생애와 성품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아!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이 우리 구주의 생애에서 비쳐 나왔던가! 그분의 임재에서 흘러나온 향기는 또 어떤가! 이와 동일한 정신이 그분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자들은 거룩한 분위기로 둘러싸일 것이다. 그들의 순결한 흰옷은 여호와의 동산에서 풍기는 향기가 될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주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반사하고, 피곤하여 비틀거리는 발을 위하여 길을 밝혀 줄 것이다. (MB 135.1)
그러나 황금률에는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의 청지기가 된 사람은 모두 무지와 암흑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그 은혜를 나누어 주되 그들과 처지가 바뀌었을 때 자신에게 나누어 주기를 그들에게 바라는 만큼 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사도 바울은 “헬라 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장 14절)고 말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 이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고 타락한 사람보다도 더 그분의 풍성하신 은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대는 그 영혼에게 이 선물들을 나누어줄 빚을 지고 있다. (MB 135.3)
황금률은 산상 설교의 다른 곳에서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막 4:24)는 말로 동일한 진리를 암암리에 가르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선한 것이거나 악한 것이거나 간에 축복 혹은 저주의 형태로 우리에게 분명히 되돌아온다. 우리가 주는 것은 무엇이나 다시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세상의 축복은 같은 방법으로 되돌아 올 수가, 아니 종종 그렇게 되돌아온다. 우리가 주는 것은 필요한 때에 종종 네 배의 가치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이 외에도, 우리는 하늘의 모든 영광과 그 보화의 총체가 되는 하나님의 더없이 풍족한 사랑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선물로 보답 받는다. 그리고 우리가 끼친 악 또한 다시 돌아온다. 정죄하고 낙심시키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해 온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통과하게 한 그 땅을 자신도 지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동정과 친절의 부족 때문에 그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MB 136.2)
황금률의 표준이야말로 바로 그리스도교의 참 표준이다.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다 기만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주시기까지 귀중하게 여기신 인간을 낮게 평가하며 사람들을 경하게 여기도록 이끄는 종교, 인간의 궁핍과 고난과 권리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종교는 거짓 종교이다. 가난한 자들과 고난당하는 자들과 죄 많은 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때,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자들임을 입증하게 된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에서 이처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실제의 생활에서는 그분의 품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은 이런 일로 인해 모독을 받는다. (MB 136.4)
하늘과 땅을 살펴보라. 우리의 동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비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보다 더욱 능력 있게 나타나는 진리는 없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황금률의 원칙을 실천할 때, 복음 사업에는 사도 시대에 나타난 것과 동일한 능력이 따를 것이다. (MB 137.2)
예수께서는 가정과 안식처로 이어지는 좁고 비탈진 길을 그리스도인의 노정에 대한 인상적인 상징으로 사용하셨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 앞에 제시한 길은 좁고 그 문이 들어가기에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황금률이 모든 교만과 자기 본위의 마음을 제거해 버리는 까닭이다. 물론, 넓은 길도 있다. 그러나 그 종말은 멸망이다. 만일, 영적 생애의 길을 올라가고자 한다면, 그대는 계속해서 올라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르막길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적은 무리와 함께 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많은 무리가 내리막길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MB 138.2)
새자녀 지도법 (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고 하신 구세주의 황금률은 모든 청소년의 교육의 책임을 지는 사람의 법칙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도 하나님의 가족의 어린이들이요, 우리와 함께 생명의 은혜를 받을 후사들이다. 아무리 머리가 둔하고, 나이가 어리고, 늘 잘못만 하는 아이에게도, 또한 과오를 범하고 반항하는 아이에게까지도 그리스도의 법칙은 신성히 준수되어야 할 것이다.—교육, 268. (CG 260.2)
선지자와 왕 (1)
세상 풍습들은 그리스도의 표준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민활한 간계(奸計)와 기만과 착취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동료에게 행한 모든 불의한 행위는 황금률을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행한 잘못은 당신의 성도들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에게 행한 것이 된다. 다른 사람의 무지와 약점과 불행을 이용하려는 모든 기도(企圖)는 하늘 책에 사기로 기록된다.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과부와 고아를 압박하거나 나그네로 그들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해서 이익을 얻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밤낮 수고하며 빈곤의 떡을 먹기를 원할 것이다. (PK 651.3)
성적행실과 간음과 이혼에 관한 권면 (1)
방심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그대의 신앙을 지켜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만들라.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준수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자신의 영혼을 죄악된, 타락시키는 상상들로 더럽히고 오염시킬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라. 세상의 구속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이상한 일들을 행한다. 그들의 의는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그분 앞에 일종의 허세요 가면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연구하거나 계획하지 말고, 우리의 영혼들을 순결하게 지킴으로써 청년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모본으로 보이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서신 5, 1890. (TSB 157.3)
안식일학교 사업에 관한 권면 (1)
구주의 황금률,-“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는 말씀은 어린이와 청년의 훈련을 맡고 있는 모든 사람의 황금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이와 청년들은 주님의 가족의 젊은 구성원이요, 우리와 더불어 생명의 은혜를 받는 상속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이 황금률은 아주 둔한 사람에게나, 가장 나이 적은 어린이에게나, 실수가 제일 많은 사람에게나, 잘못을 저지르고 반항적인 사람에게까지도 누구에 있어서나 한결같이 성스럽게 지켜져야 한다.... (CSW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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