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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인테리어의 양식과 개념 |
※ 21세기 트렌드 테크니시즘 ※
거부하고 콘크리트의 노출된 공간을 보여준 해체주의에서 찾는다. 미래파가 등장한 때는 20세기 초다. 기계를 찬미하는 의미 에서 플라스틱과 금속, 광택나는 패브릭(천), 곡선형태의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 등이 미래파 작품에 주로 쓰였다. 20세기 말에 나타난 해체주의는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거부한 건축과 가구를 만들어냈다. 시멘트 유리 철골조 등 건축구조의 틀을 그대로 노출시킨 건출물이 해체주의의 전형이다. 이 두가지 경향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보되어 갔다. 미국의 구겐하임 뮤지엄이 대표적인 예로 이 건축물은 비행기의 동체의 재질 중 하나인 가벼운 티타늄을 재료로 씀으로서 바람에 의해 움직이 는 3차원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전문가들은 구겐하임 뮤지엄 같은 건축물의 탄생은 과학기술의 발전없이 단순히 디자이너 의 상상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 이라고 말한다. 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마감된 외장재, 유리로 만들어진 건축외장 등은 현대의 급속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금속부품 하나로 무거운 무게를 지탱하거나 금속으로 매끈하게 실내벽을 도배할 수 있는 것도 기술발전 덕분임은 물론 이다. 모든 가전제품의 디지털화와 인터넷의 사용화도 주거공간에 영향을 준다. 집합주택 프로젝트에도 적용되고 있고, 소비 자들에게도 곧 선보일 컴퓨터가 부착된 냉장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 등이 그것이다. 기를 연출하려는 방향으로 진화된다. 최근 열린 인테리어 관련 해외전시회에서도 테크니시즘 경향을 읽을 수 있다. 다. 가구도 직선적인 미니멀 형태에서 자유로운 선을 이용한 제품들이 등장했다. 재료는 금속과 유리처럼 차가운 느낌의 소 재가 주재료로 쓰인다. 하지만 이와 반대의 이미지를 주는 극대칭의 디자인 컨셉도 눈에 띄는데, 원색 컬러를 배경으로 복고 풍 조명과 소품을 배치한 디자인이 그렇다. 디자인 전문가는 테크니시즘은 이제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21세기에는 인간생활에 보다 많은 즐거움과 자극을 가져다 줄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네오클래식 스타일 ※ 신고전주의란 말 그대로 고전주의의 부흥이다. 그렇다면 고전주의는 어느 시대의 스타일을 말하나? 유럽인들은 그들의 뿌리 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서 찾는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건축과 예술이라는 기본 재료를 삶기도 하고, 볶기도 하고, 갖은 양념을 하기도 하는데 신고전주의는 양념맛보다는 재료의 담백한 맛을 강조한 요리라 하겠다. 칠 정도로 오버하는 과장성, 흐트러짐, 자유분방함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다시 절제있는 디자인으로의 복귀를 요 구한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감각으로 되돌아 간 것을 프랑스에서는 1760년대에 구 그렉(Gout Grec, 그리스의 감각, 맛이라는 의미) 이라고 불렀다. 또한 숨겨졌던 고대 도시인 허큘레니엄과 폼페이가 발굴되면서 고전주의는 새로운 화두로 등 장한다. 이때 발굴된 벽화와 도기에 그려진 문양과 조각들은 신고전주의의 유행에 직접적인 촉매역할을 했다. 유럽의 귀족들은 이러한 유적지들을 답사하기 위해 그랜드 투어(The Grand Tour) 라고 불리는 패키지 여행을 앞다투어 떠났 고, 예술가들은 이태리에 머물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섭렵하며 자연히 이러한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를 자국의 건 축과 미술품에 응용하였다. 이러한 예술가중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로버트 아담(Robert Adam)이다. 프랑스, 미국 등지로 널리 퍼졌다. 아담으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헤플화이트와 쉐라톤이 출판한 캐 비넷 메이커와 업홀스터러를 위한 가이드 (The Cabinet-Maker and Upholsterers Guide, 1788) 에 의해 보다 보편화되었다 쉐라톤과 헤플화이트의 디자인에서 명확히 드러나듯 단호한 직선 이 신고전주의 디자인의 기본 컨셉이다. 통바지가 유행하고 나면 다시 타이트한 쫄바지의 시대가 돌아오듯 로코코의 C와S자의 구불구불하고 어지러운 선이 한물 가 고 정사각형, 직사각형, 타원형이 기본 아웃라인으로 많이 쓰였다. 의자 등받이의 형태로는 방패형도 매우 유행한다. 프랑스의 가구는 귀족들의 요구에 따라 작고 여러가지 기능이 복합적이며 화려한 가구들을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가구제작자 로서는 칼랑(Martin Carlin)과 바이스 바일러(Adam Weisweiler)가 있다. 이들은 흔히 프랑스 왕립 자기사인 세브르 도자기판 을 넣어 가구를 제작하였는데, 이로써 당시 화려한 귀족들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다. 그 위에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모티브들이 케이크 위에 뿌려놓은 아이싱 슈거처럼 깔끔하게 장식된다. 이러한 표면 장식법은 클래식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실내의 스터코(stucco) 장식이 가구, 도자기, 은제품과 같은 메탈워크 등에도 반영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도자기에도 고대 그리스의 도기는 매우 중요한 디자인 원천이 되는데 영국의 조사이어 웨지우드에 의해서 개발된 블랙 바솔 트(black basalt)와 재스퍼 웨어(jasper ware)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벽장식에서 보이는 색상이나 문양 또는 까미오의 영향 을 명백히 볼 수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모티브에는 비트루비안 스크롤, 기요쉬, 플루팅, 콜럼 (기둥), 팔멧이 있다. 이러한 클래식한 모티브들은 신고전주의 가구의 몰딩으로 흔히 사용되었다. ※ 리젠시 스타일 ※ 리젠시 스타일 가구는 네오클래식 가구의 사촌쯤 되는 것으로 신고전주의를 잘 이해했다면 쉽게 익힐 수 있는 스타일이다. 전한 단계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신고전주의에서 보았던 가늘고 섬세한 선들이 보다 굵직굵직하면서 대담해진다. 다시 말해 리젠시 스타일은 신고전주의의 연장선에 있지만 이에 프랑스의 엠파이어 스타일(Empire Style)의 영향을 크게 받 아 탄생한 스타일이다. 엠파이어 스타일은 나폴레옹의 제국주의적 열망을 고대 로마제국과 견주어 표현한 것으로 로마시대 에 사용되었던 군사 모티브, 예를 들면 활과 활통, 깃발, 군악기 같은 것이나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모티브 등이 대칭 적으로 사용되어 제국주의의 위엄과 위상을 보이려고 했다. 제국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을 상징하는 백조도 흔히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가구에서는 마호가니와 로즈우드 등 어두운 색의 나무를 선호하였고 이에 클래식한 모티 브들을 주로 오물루(금도금한 메탈)로 장식하거나 놋쇠를 상감하는 기법(brass inlay)을 썼다. 그러나 이러한 오물루 장식은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에서 보았던 입체적인 장식이 아니라 매우 평면적이고 대칭적이다. 이후 엠파이어 스타일은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과 함께 시들었지만 프랑스에서 처분한 많은 화려한 가구들이 영국으로 유입 되었을 뿐만 아니라 토마스 홉(Thomas Hope)과 같은 디자이너에 의해 발전되어 영국에서는 리젠시 스타일로 일컫게 된다. 토마스 홉은 신고전주의에서 나타났던 형식적인 반응이 아니라 좀더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고전주의를 지향한 사람이다. 예 를 들면 전형적인 리젠시 스타일의 의자는 항상 뒷다리가 휘면서 뻗어있는 세이버 렉(saber leg)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의 클리즈모스 의자 (klismos chair)형태에서 유래한 것이다. 리젠시 스타일에도 역시 신고전주의에서 볼 수 있었던 모티브들이 사용되지만 연속적이면서도 가는 디자인에서 벗어나 개 별적으로 부분부분 장식과 대담하면서도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넬슨 제독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 들어졌다는 트라팔가 의자는 밧줄형태의 다리와 등받이를 하고 있는데 이후 밧줄 모양의 등받이는 리젠시 스타일 의자에 흔 히 등장하는 모티브가 되었다. 또한 팔멧, 그리핀, 안티미온, 기요쉬, 라이언 마스크 핸들, 그리고 라이 언 마스크 핸들 등도 많이 사용되었다 ※ 데 스테일(De Stijl) ※ 1. 시대배경 ① 19세기말, 20세기초의 빅토리안 스타일에 대한 반대와 아츠 앤 크래프트와 아르누보의 모순에 대한 비판 ② 1차대전 직후 예술의 현대운동: 데 스테일, 입체주의, 구성주의로 표출됨 ③ 고전건축의 폐쇄적이고 육중한 형상을 새롭게 바꾸기 위한 노력 으로 건축분야에서는 데 스테일, 바우하우스 등의 건 축사조 형성 2. 형성 ① 네덜란드(1917-1928)에서 시작 :1917년 다수의 미술가, 건축가, 작가들이 네덜란드의 리덴에 모여 데 스테일 그룹을 형 성함 ⇒ 예술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꾸는 것을 목표 ② 데 스테일 운동은 잡지<데 스테일>과 함께 시작 ③ 데 스테일은 양식이란 뜻으로 선과 색에 관한 관계로서의 스타일을 의미함 3. 이념과 철학 ① 새로운 디자인 ⇒ 전통적 영향을 배제하고 단정함과 정확함을 나타냄 ② 데 스테일 철학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3원칙 ⇒ 4각형, 원색(빨강, 파랑, 노랑), 비대칭 4. 디자인 특성 ① 비대칭적이며 공간감각은 안과 밖, 개방과 폐쇄, 밝음과 어두움 등의 대비의 균형 ② 직사각형의 간단한 형태 5. 대표적인 디자이너 ① 게릿 리에트벨트(Gerrit Rietveld) - 직육면체로만 이우어진 가구 - 드 스틸의 사상을 분명히 표현 - 대표작품: 레드 블루 의자, 지그재그 의자, 쉬로더 저택 6. 영향 ① 바우하우스의 중요한 변화에 영향 ② 명확성, 원칙, 의도된 진보적 스타일로 발전 ③ 건축이나 그림에 끼친 영향에 비해 실내구성이나 장식적 측면에 끼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으나 디자인 영역에 대한 전반적인 충격은 오래 지속 ④ 데 스테일의 실내공간에 대한 개념 즉, 벽이 공간을 분리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개념은 후에 국제적 스타일의 기본 윤리가 됨 데 스테일 운동은 1917년 피에 몬드리안과 데오 반 되스버그에 의해 결성된 그룹이다. 데 스테일이라는 의미는 THE STYLE 즉, 양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입체주의와 미래주의, 러시아 구성주의를 접하게 됨으로서 기하 추상과 유토피 아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데 스테일의 최초의 선언문(1918)은 개인과 우주 사이의 새로은 균형을 요구하고 있으며, 개성의 숭배와 전통의 제약으로 부터의 해방을 요구하고 있다. 데 스테일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네덜란드의 캘빈주의적 배경- 청교도적 정설에 거한 직선과 직각의 선호 - 에 의해서,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에 의거하는 합리주의적인 철학적 사고에 의해서 영향을 았는데, 이들은 불변의 법칙을 강조함으로서 개인의 비극을 초월하는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1918년경 전부터 이운동은 쇼엔마에커즈의 이미 신 플라톤적인 철학 사상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는데 쇼엔마에커즈의 형이 상학적 세계관은 베를라헤와 라이트로부터 직접 유도된 보다 구체적인 태도와 개념들에 의해서 보충되고 있으며 - 프랭프 로이드 라이트는 그이 작품이 수록된 두 권의 유명한 바스무스(Wasmuth)판의 <작품집>이 1910년과 1911년에 각각 발행 됨으로서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베를라헤는 사회문화적 비평에 영향력이 있었으며 데 스틸의 예술가들이 자신들 의 기관지인 명칭으로서 THE STYLE 이라는 제목을 채택한 것도 바로 그로부터 나온 것이다. -- 쇼엔마커즈의 새로운 조 형 이라는 신조어로부터 신조형주의 라는 어휘가 유래하였으며 또한 파렛트를 3원색으로 한정하는 것도 그에 기인한 것임. 그는 신조형적 표현을 직교하는 요소들에만 국한시키기 위해서 상당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1917년 당시는 예술활기의 시대로 도시의 각 예술 그룹은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편견과 전통에 대항을 주제로 내세원고, 전시회를 많이 개최하여 1912년경부터 알려진 큐비즘, 퓨리즘, 표현주의 등의 이념은 많은 시선 이 집중되어 있었다. 데 스테일은 1917년에 단체로서 공표하였다. 데 스테일(1917.6.17)잡지 창간호가 발행되고 본격적으로 데 스테일적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의 서명인들은 몬드리안, 반 되스버그, 반트 호프, 반데렉, 오우드 등이고 이때 의 작품은 회화에서 몬드리안과 되스버그는 구상적 대상을 제거한 기하학적 완전추상으로 접어들었다. 이들의 시도는 동질의 통합체로서 표현이었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묶으려는 노력이었으며 동시에 서로 구별되는 개인의 경향과 표현의 예술적 감각을 멈추지 않고 최소한의 공통분모만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출발로 해서 전개된 데 스테일은 영향력을 갖는 하나의 단체로서1931년까지 계속되었다. 데 스테일의 전개기간은 1917년부터 1931년까지로 이기간에 데 스테일이란 제면하에 잡지가 출간되었고, 초기에는 네덜란 드 출신의 예술가들로 결성되어 점차 유럽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로 확산되었고 세계적인 그룹이 되었다. 초기의 큐비즘의 영향으로부터 - 큐비즘의 건축적 중요성은 그것이 데 스테일과 구성주의자 운동의 원천이 되었다는데 있다. 왜냐하면 회화 에 있어서 그것은 각진 공간을 정의하는 평면의 본질적 존재를 의미하는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 시작하여 이태리의 미래 파, 러시아의 구성주의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교적 다양한 변천을 거치는 데 스테일 그룹은 일관된 원리를 찾기도 어렵고 그 일원에 있어서도 서로간의 연계성을 유지한 것도 아니었다. * 1917(18) - 1921 제 1단계는 1918년 반 되스버그와 오우드의 합동작업으로 이루어진 De Vonk에서부터 면과 색채만을 사용하는 추상적인 회화가 건축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 1921-1925 제 2단계는 새로운 미학적 개념이 형태화한 기간으로 원심적 구성, 비대칭의 균형, 면의 분절과 군화(群花), 면의 강조 등 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는 De Stijl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반 되스버그와 엘 리시스키의 만남이다. 리시스키는 요소주의적 표현에 대한 자기 자신의 형태를 개발 하였는데 - 러시아 요소주의는 절대주의, 네덜란드 요소주의는 신조형 주의가 각각 그 원천을 이루고 있다. - 1921년 이후 리시스키에 의한 프로운(Proune) 이라는 구성의 영향하에서, 되스버그와 반 에스테 렌은 엑소노메트릭으로서 에온스 로젠버그가 소유한 파리소재의 현대의 성과( L Effort Moderne) 라는 화랑에서 개최된 자 신의 작품에서 신조형주의의 건축수법을 구체화하였다. 1924년에 리트벨트는 De Stijl의 개념을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한 슈뢰더 주택을 설계하게 되고 오우드의 단지 주택이 건설된다 * 1925-1931 제 3단계는 두가지로 구분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전자는 리트벨트에 의한 슈뢰더 하우스와 오우드의 카레 드유니 -카페 드 유니의 정면은 몬드리안이 그린 회화를 3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등의 명 작품으로 면의 요소화가 완전히 이루어지 고, 면 자체는 장식화의 경향이 뚜렷해진다. 후자는 도시적 차원에서 신 조형주의 해석의 시도로 오우드는 몬드리안의 회화 와 유사한 전면 파사드 구성을 하였고, 반 에스테렌은 미학적이라기보다는 기능적 해결에 중점을 둔 가로계획에 의거한 건 축을 시도한다. 1929년에 완성된 카페 오베떼는 신 조형주의적 건축 작품 중 최후의 중요한 작품이고 그 이후 De Stij과 관련있는 여러 예술 가들은 국제적 사회주의의 문화적 가치들에 속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서 되스버그의 저택 겸 아뜨리에를 들 수 있다. 데 스테일 그룹의 목적은 공간 안의 대상물의 분리를 없애고 형태와 공간을 결합된 것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데 스테일 그룹 은 서로 잘리우고 엉켜있는 면들에 의 해 한정되어지는 공간의 아이소메트릭 도면에 의해 전통적인 건축의 박스 형태 볼륨 이 보다 개방적으로 대치되는 간식을 시도 했다. 데 스테일 운동은 신 정신(新情神) 에 입각하여 형태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던 대부분의 근대 건축가들과는 달리 미학적 측에서 형태를 수용함으로써 근대 건축의 형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형태에 대한 다각적인 실험을 하였기 때 문에 실제 수행된 그들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건축형태와 구성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데 여기에 데 스테일 그룹 의 의의가 있다. 주요 건축가 * 데오 반 되스버그 (1883-1931) 1917년에 회화의 혁신과 제반에 예술의 통합을 목표로 하는 데 스틸 운동을 일으킨 사람이다. 데 스테일은 일반적인 그룹이 아니라 반되스버그가 편집하는 잡지의 명칭으로 1931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발간되다가 곧 폐간되었다 . 되스버그는 요소 주의에 바탕을 둔 회화와 건축계획을 발표하고 이 운동의 이론을 확대하기 위해서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몬드리안의 신 조 형주위가 관념적이고 드라마틱하다고 비판하면서, 그는 요소주위를 통하여 순수한 색채와 평면의 기본적 요소에 의한 구성 및 상호관계만을 추구하였다. 그의 요소주의는 이론상으로는 매우 명쾌하지만, 실천원리로서의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 코르넬리스 반 에스테렌 반 에스테렌은 1922년 벽돌건축을 연구하기 위해서 독일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제반 문제 들을 선호하였으며 바이마르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바우하우스 사람들과 접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당시 그곳에 체류하고 있 던 반되스버그와 만나게 되어 독일과 네덜란드의 전위운동의 영향을 받게 된다. 1923년 그는 파리에서 반되스버그와 함께 일하면서 「집단적 건설을 향하여」라는 선언문을 같이 작성하고 지도하였다. * 피에트 몬드리안(1872 - 1944) 네덜란드 화가이자 추상예술운동이 데 스테일의 대표적인 멤버였다. 그는 회화의 요소를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제한하고 3 개의 무채색만을 사용하여 비구상적인 회화의 양식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냈다. 그의 작품은 건축, 과고물, 인쇄술 등을 포함 하여 20세기 예술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신지학(神智學)철학자인 쇼엔 마에커즈와도 알게 되는데, 이 신 지학자의 선의 상징적인 의미, 우주의 수학적 구조에 대한 연구는 몬드리안의 형상을 보는 관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 다. 1917년에 완성된 이러한 회화의 변형은 그의 입체파 시대의 마지막 단계로서 백색을 바탕을 해서 검은 색이 수직선과 수평선의 단면으로 이루어진 구성이 타원형의 형태로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회화이후 몬드리안의 작품에 새롭고 근본적 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기존의 형태를 회화의 공식을 변형시키는 것이 이제는 외부의 주제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으로 교체되었다. 이러한 것은 몬드리안을 포함한 반 되스버그, 반 데 레크 등이 잡지 「데 스테일」을 발간하고 데 스테일운동 을 창설한 4명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 집단의 원리는 시각적으로 지각된 리얼리티를 결코 주제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 선이나 직각 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3가지 색(황색, 적색, 청색), 3가지 무채색(백색, 회색,흑색)등으로만 회화의 언어를 제한한다는 점이다. * 로버트 반트 호프(1887 - 1964)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에서 건축교육을 마친 후 1914년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라이트 의 작품을 연구하였다. 네덜란드에 귀국한 후 1915 - 16년에 그는 유트레히트 근요의 후이스테르 하이데에 두 채의 빌라를 건설하였다. 이 빌라의 콘크리트 구조, 편평하고 캔틸레버로 나온 지붕등은 명백하게 라이트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1917년에 반 되스버그가 잡지 <데 스틸>을 발간하자 그 기고가로 선발되었으며, 1920년에 데스틸그룹을 탈퇴하였다 . * 게리트 리트벨트(1888 - 1964) 네덜란드의 디자이너로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초까지 근대디자인의 규범을 확립하는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반 되스버그, 오우드, 몬드리안 등과 함께 데스틸 그룹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존재이며 데 스테일의 조형이론을 가장 충실하게 작품에 표 현한 건축가이다. 리트벨트가 데 스테일에 참여하기 직전인 1918년, 데 스테일의 이론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되는 <적/청의자>를 탄생시켰는데, 그것은 의자의 가능성을 고려하기 이전에 의자라는 대상 그 자체가 지니는 명쾌한 조형표현의 짜임새를 확실 하게 해야 한다, 라는 판단에 따라 일반적인 이음에 의한 접합법을 이용하지 않고 나무못에 의해서 옆에서 접합시키는 방법 을 사용하고, 면과 면, 선과 선을 교차시키지 않고 명확하게 분절시키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접합법 때문에 그 당시 에는 특수한 평면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각 부재는 독립하고 있으며 중력에 의한 역학적 관계를 표현한 요소는 모두 생략하 고 있다. 리트벨트는 부분적으로는 몬드리안의 격자와 같이 구성하고 원색을 사용하는 회화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으며 부분 적으로는 화가이자 저술가인 반 되스버그의 영향을 받았다. 리트벨트는 데 스테일이 개념을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한 슈뢰더 주택을 설계하게 되는데 이 주택은 완성되자마자 근대 건축의 이정표가 되었으며 비 형식성을 지닌 20세기 주택건축의 최초 본보기 중 하나가 되었다. * 엘 리시스키(1890 - 1941) 러시아의 스모렌스크 부근에서 태어난 그는 화가, 그래픽 예술가로서 전시회의 건축가로서 광범위한 비구상적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말레비치의 영향을 받아 예술적 경향을 절대주의로 전환하게 되며 이 절대주의가 그 로 하여금 포괄적인 종합적 예술작품, 일련의 추상회화를 창안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는 이것을 프로운(Proun) 이라는 의미 가 없는 집합적 이름으로 부르고 회화와 건축사이의 환승역 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선구적인 작품은 절대주의의 <두 정방형의 이야기;1920>, 대 베를린 전시회를 위해서 건축된 <프로우엔라움;1923>등 이 있다 ※ CLASSIC STYLE ※ 정통 클래식 스타일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실내 장식 기법을 말한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여서 많은 종류의 벽지 나 패브릭류가 실낸에 사용되었고, 시계나 조명, 사진 등이 실내 장식 소품으로 사용되어 복잡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특징 이다. 이런 패브릭과 바닥재, 벽기가 주는 자연 소재의 질감과 손때묻은 듯한 고풍스러운 소품들이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가구는 오크가 많이 사용되고, 패브릭으로는 면, 새틴, 벨벳,광택이 없는 실크를, 바닥재로는 나무와 함께 대리 석도 쓰며, 금장식과 장식이 많은 소품들이 많이 사용된다. 편안함과 중후함이 함께 느껴지는 클래식 스타일에는 너무 밝은 컬러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 될 수 있다. ※ MODERN STYLE ※ 현대에 들어 나타난 특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말한다. 비례와 조형성이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 바둑무늬나 스트라이프, 몬드리안의 비례를 사용한 무늬 등이 모던한 느낌을 준다. 그러다보니 곡선보다는 직선이 많이 요구 된다. 정리된 듯한 모습이 모던한 스타일인데, 예를 들어 거실에서는 소파, 테이블, 오디오 등 기능적인것을 우선 배치하고 장식품들을 절제해 공간을 마무리한다든가, 소파 배치에는 양옆에 대칭감을 주도록 사이드 테이블과 스탠드를 놓는다든가, 매끄럽고 깔끔한 느낌의 패브릭을 사용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색상에 있어서도 넓은 공간에서는 따뜻한 색이 좋으나 모던한 스타일에는 찬색이 더 잘 어울린다 ※ ZEN STYLE ※ 단순한 라인과 기능성으로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미니멀리즘은 이제 자연적이고, 간결하고, 정신적이고, 의도적으로 비워 두는 동양적인 느낌을 강하게 담고 있다. 단지 단순한 동양의 느낌이 나는 소품을 놓는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미니멀리즘의 한 부류로만 나타났던 오리엔탈 미니멀리즘을 넘어 이젠 명상, 구도, 비움으로 나타내어지는 동양의 선(禪, 일본어 발음으 로 ZEN) 사상과 맞물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다. 동양과 서양의 만나 만들어진 젠 스타일은 여백의 미학을 넘어 절제되 고 단순하고 또 세련된 느낌을 준다. 좌식생활에 어울리는 자연에 좀더 가까이하려는 높이가 낮아진 가구에서나 대나무나 나뭇잎과 같은 자연소재의 모티브, 자갈, 갈대, 등의 자연소재, 흔히 보는 인공적인 색감이 아닌 자연의 땅과 나무 등에서 볼 수 있는 브라운, 블랙, 화이트, 그린, 블랙 등이 젠 스타일을 만든다고 할 수있겠다. 젠이라는 말은 선(禪)을 일본식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동양의 여백의 미가 미니멀리즘과 어우러져 깔끔하고 담백한 이미지 를 보여주는 젠 스타일은 절제된 디자인으로 심플하고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동양적인 미가 풍긴다. 또 하나의 젠 스타일의 커다란 특징은 바로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는 점이다. 자연 소재의 사용이 두드러져 대나무, 자갈, 갈대, 나뭇잎과 같은 재료 들을 사용하면 젠 스타일 고유의 느낌을 줄 수 있다. 주된 색상 역시 자연에서 찾은 듯 블랙이나 화이트, 그린, 카키, 짙은 나 무색 등이다. 또한 패브릭 역시 면이나 공단과 같은 자연소재가 어울리는데 원색 보다는 무채색이 차분한 느낌을 준다. 가구는 우리나라 고유의 좌식생활을 연상키는 높이가 낮은 가구가 많이 선보인다. 침대 대신 매트리스만 놓는다든가 낮은 높 이의 침구만을 사용해 우리나라 보료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테이블 역시 그에 맞춘 듯 무릎 아래의 높이가 많이 보인다. 월넛 소재의 젠 스타일 가구들은 여백의 미를 보여주듯 전체적으로 라인이 간결한 제품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 ETHNIC STYLE ※ 에스닉이라는 말은 민속적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에스닉 스타일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민속적이고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표 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렌지나 검은빛이 감도는 붉은 색, 짙은 바닷빛이 언뜻 떠오르는 에스닉 스타일은 그 강렬 함 때문에 여름에 더욱 잘 어울린다. 에스닉 스타일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과 독특한 무늬를 이용한 손으로 만든 듯한 자연 소재 소품의 사용이 큰 특징이라 하겠다. 이국적이어서 언뜻 우리의 실제 생활에 응용하기엔 부담스러울 지도 모르나, 약간 은 투박하고 빈 듯한 느낌이 들게 페인트 등으로 벽과 바닥을 마감하고 페이즐리라든가, 화려하고 기하학적인 무늬의 알록 달록한 패브릭과 아프리카 느낌이 나는 목각, 면이 거친 도자기, 비즈나 구슬 소품 등으로 장식하면 어느 새 멕시코나 인도, 아프리카에 온듯한 에스닉풍의 독특함을 느낄 수 있다 |
http://cafe.daum.net/heartm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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