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각 모습, 2017년 9월>
<효자 증조봉대부동몽교관유완지문 성상이십팔년 신묘삼월 일 명정>
<현판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2017년 9월>
앙성면지(2014년)를 보면 문화유씨 문중에서 유완(柳琓) 관련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니 <정려이건문(旌閭移建文)> 원본도 있으리라 본다. 새로 현판을 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대촌 마을 유래비>
高祖考旌閭移建文
維玆蘂城府治之西六十里 國望山下 智堂村 有旌閭 卽我高祖考 贈通政大夫 童蒙敎官府君 諱琓之表門也 高宗辛卯 以公孝行 特命旌閭 建丹雘之閣 歲今百有餘來 礎砌敧傾 牆壁崩頹 基地亦爲 他人之攸有也 噫 竊惟府君 家傳淸貧 性賦卓越 平生惟以悅親爲務 及其終也 禱天嘗糞 幸得回春 有若古人者 根天之孝 警世之行 何可盡述哉 今不肖鉉永 不勝惶感 卜地于數步之外 構棟單間之營 竣功移安
時維檀君紀元後 四千二百九十四年 夏正 辛丑四月十九日也
鳴呼 惟我邦國 雖僻在海隅 蕞爾江山 然上帝之降 衷厚加培養 忠臣孝子烈婦節義之出人特行 此屋有之堂(이하 해독불가)爲小中華者 數百禩于玆 而古今天下 更無其二 豈不爲矜誇於千秋者耶 地不忍荒 水不忍廢 維玆旌門永世存安 使府君之特行 不泯於萬代 則警世耳目 感人性情 化民成俗 固不在玆乎 不肖玄孫鉉永 感慕謹以爲識
원문(표점)
維玆蘂城府治之西六十里,國望山下智堂村,有旌閭,卽我高祖考贈通政大夫童蒙敎官府君諱琓之表門也。
高宗辛卯,以公孝行,特命旌閭,建丹雘之閣。歲今百有餘來,礎砌敧傾,牆壁崩頹,基地亦爲他人之攸有也。
噫!竊惟府君,家傳淸貧,性賦卓越。平生惟以悅親爲務。及其終也,禱天嘗糞,幸得回春,有若古人者。根天之孝,警世之行,何可盡述哉!
今不肖鉉永,不勝惶感,卜地于數步之外,構棟單間之營,竣功移安。
時維檀君紀元後四千二百九十四年,夏正辛丑四月十九日也。
鳴呼!
惟我邦國,雖僻在海隅,蕞爾江山,然上帝之降衷,厚加培養。忠臣、孝子、烈婦、節義之出人特行,此屋有之堂……。爲小中華者,數百禩于玆,而古今天下,更無其二,豈不爲矜誇於千秋者耶!
地不忍荒,水不忍廢。維玆旌門,永世存安,使府君之特行,不泯於萬代,則警世耳目,感人性情,化民成俗,固不在玆乎!
不肖玄孫鉉永,感慕謹以爲識。
<번역>
예성(蘂城, 忠州의 古號) 고을 중심에서 서쪽으로 60리 떨어진 국망산(國望山) 아래 지당촌에 정려가 있으니, 이는 곧 나의 고조부이신 증 통정대부 동몽교관 부군 휘 완(琓)의 정려문이다.
고종 신묘년(申卯年, 고종28 1891년)에 공의 효행을 기려 특별히 정려를 내리시고 단청을 한 정려각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백여 년의 세월이 지나 주춧돌은 기울고 담장은 무너졌으며, 터마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고 말았다.
아, 삼가 생각하건대(竊惟) 부군(府君)께서는 집안은 대대로 청빈하였으나 천품은 뛰어나셨다. 평생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을 삶의 근본으로 삼으셨으며, 부모님이 위독하셨을 때에는 하늘에 빌고 변(便)을 맛보아 병세를 살피는 정성을 다한 끝에 마침내 병환이 회복되었으니, 그 효성은 옛사람에 견줄 만하였다.
하늘에서 타고난 효성과 세상을 일깨우는 행실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이에 불초한 후손 현영(鉉永)은 황송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새 터를 잡고 한 칸 규모의 건물을 세워 공사를 마친 뒤 정려를 옮겨 모셨다.
때는 단군기원 4294년(1961) 신축년 4월 19일이다.
아!
우리나라는 비록 바닷가에 자리한 작은 나라이고 강산 또한 크지 않지만, 상제(上帝)께서 사람들에게 선한 본성을 내려 주시고 이를 두텁게 길러 주셨다. 그리하여 충신과 효자, 열녀와 절의를 지킨 뛰어난 인물들이 끊임없이 배출되었으며, 이와 같은 훌륭한 전통이 이어져 우리나라는 소중화(小中華)라 불리게 된 지 이미 수백 년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천하에 이와 같은 나라가 다시 없으니, 이는 참으로 천추에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 터를 황폐하게 내버려둘 수 없고, 이 정려를 폐하게 할 수도 없었다. 이 정려문이 영원히 편안하게 보존되어 부군(府君)의 뛰어난 행적이 만대에 이르도록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일깨우고 성정을 감동시키며, 백성을 교화하여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는 데 그 뜻이 또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불초한 현손(玄孫) 현영(鉉永)이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삼가 이 글을 기록한다.
※참고
<앙성면지(2014년)에 수록된 유완 효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