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로,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담아 두면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전설의 물건으로 본디 ‘하수분(河水盆)’이란 말이었다고 합니다.
진시황 때 만들어진 말인데, 만리장성을 쌓을 때 거대한 물통을 만들어서 거기에 황하의 물, 즉 하수(河水)를 담아 와서 사용했는데 그 물통이 워낙 커서 물을 아무리 써도 전혀 줄어들지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였고, 이것이 '무언가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신비한 단지'라는 뜻을 지니고 화수분이란 말로 바뀐 것입니다.
고전 문학 작품 및 근대 문학 작품들 사이에서는 간간이 사용되는 용어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냥 잊힌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화수분은 보통 세계정복을 꿈꾸는 악당들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그들은 뭐 배트맨이나 아이언맨 같은 잘난 대기업 사장도 아니고 블랙 팬서나 닥터 둠 같이 한 나라의 지배자도 아닌 출신불문의 떨거지(?)밖에 안 되는 주제에 각종 첨단 병기와 시설들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법인카드, 법카가 화수분인 것 같습니다. 공직만이 아니라 기업체에서도 법카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접대비는 법카로 결제하다보니 하룻밤에 수백만 원의 술값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여러 차례 탄식이 나왔다.
‘이재명 부부의 법인카드 미스터리를 풀다’는 부제가 달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란 책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재직 시절, 이 대표와 부인 김혜경 씨가 법인카드를 유용했다는 공익신고를 한 전 경기도청 공무원 조명현 씨가 낸 회고록이다.
2021년 3월 경기도청 7급 공무원으로 채용된 조 씨는 도지사 비서실의 ‘사모님 팀’에 배속돼 김 씨의 최측근인 배소현(별정직 5급)씨의 지휘를 받았다. 명색은 비서였지만, 주요 업무는 이 씨 부부와 관련된 허드렛일 처리였다.
이 지사가 혼자 거주하는 수원 화서동의 도지사 공관에서 아침 식사를 주문해서 차리고 속옷, 양말, 이불 빨래를 하며 출장 때 여행용 가방에 넣을 소지품까지 챙겼다. 주말도 부르면 달려가서 식사를 차려줘야 했다.
조 씨가 공노비나 다름없었다고 자탄한 ‘갑질’은 빙산의 일각이다. 식사비 등 이 지사 개인 돈으로 써야 할 것들이 경기도청 법인카드로 결제됐다. 이 지사는 샌드위치 2개, 닭가슴살 샐러드 한 개, 컵 과일 2개로 구성된 이른바 ‘모닝 샌드위치 3종 세트’를 매일 먹었다.
매끼 3만원,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드는 이 모닝 세트를 조 씨는 모두 경기도청 법카로 긁었다. 조 씨는 배씨의 지시를 받아 성남 수내동의 사저에 거주하는 부인 김 씨가 즐겨 먹는 초밥과 고기, 샌드위치, 과일도 매주 3~4차례 자택으로 배달했다. 결제는 ‘카드깡’으로 했다.
이 지사가 쓰는 일제 샴푸, 약, 즉석밥, 부인 김 씨의 생일 선물에도 세금인 경기도 법카가 사용됐다. 이 지사의 장모, 여동생, 처남 등에게 명절 선물로 한우와 사과, 배를 보내는 데도 법카가 동원됐다. 심지어 이 지사 집안 제사상에 올릴 음식과 성묘 세트도 경기도청 법카로 결제됐다.
책을 읽는 내내 목에 가시 걸린 것처럼 불편했던 건 그 집요함과 과도함 때문이었다. 문제의 지출들은 어떻게 보면 1000만 원 이상 월급을 받는 도지사에게 그리 큰 부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공공의 돈을 ‘걸리지 않고’ 사용(私用)하기 위해 공무원까지 동원, 이토록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조작’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7년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 비서였던 문상철 씨가 쓴 ‘몰락의 시간’도 출간됐다. 다른 결이지만, 한국 정치의 속살, 정치인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안 전 지사는 초기에는 도정을 혁신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후 안 전 지사가 빠르게 추락한 데는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해 보이는 그에게 쏟아진 주위의 충성 경쟁과 견제 받지 않는 자치제도 등 구조적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문 씨의 지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약과이고, 견제와 감시가 아예 작동하지 않는 ‘제왕 자치단체장’이 진짜 문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문 씨의 지적에는 경청할 대목이 있다. 그렇지만 근본 원인은 안 전 지사의 도덕성, 윤리 의식의 기준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직 윤리의 첫째는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고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이 안 전 지사의 의식에 각인돼 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김지은 씨가 첫 피해자가 아니었고 몇 년 전부터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증언 등에서 드러난다. 안 전 지사는 공직 윤리, 민주적 리더십에 대한 인식이 태부족한 상태에서 권력에 도취했고 오만에 빠졌다고 봐야 한다.
두 회고록에서 드러난 이 대표 부부와 안 전 지사의 사사로움이 진보세력이나 특정 정파에 국한된 걸로 봐서는 안 된다. 여권도 예외일 수 없다. 인사 때마다 검사를 비롯한 법조인이 중용되고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 학연 등 개인적 인연이 인사 배경으로 회자되는 것을 심상히 볼 게 아니다.
최근 한국갤럽 정례여론조사에서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까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공익보다 사익을 위하는 사람’이라는 답변이 32%로 가장 많았다. 또 총선에서 ‘청렴하고 도덕적인 사람’(도덕성)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1위였다.
국민의 공직자 윤리에 대한 기대치는 이처럼 높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파렴치 행위자, 각종 불법으로 기소돼 유죄가 선고된 이들도 잇달아 ‘공천 적합’ 판정을 받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이런 후보들을 단호히 심판해야 함은 물론이다. 공직 윤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정당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국민일보. 배병우 수석논설위원
출처 : 국민일보. 오피니언 배병우 칼럼, 사사로운, 너무 사사로운 우리 정치인들
지금 검찰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법카 남용의 죄를 수사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오래 전의 일인데도 여직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은 먼저 문재인 정권 시절에 검찰이 경기지사와 그 부인의 법카 남용을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디 경기지사 뿐이겠습니까? 공직에 있으면서 재산이 줄지 않았거나 는 사람들은 다 공금을 사적인 일에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전 정권의 어느 장관은 한 달 생활비로 60만원만 지출했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 소리인지 다들 놀랐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공직이든 사기업이든 '법카'가 '화수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