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의 열쇠
예레 31,31-34; 마태 16,13-23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연중 제18주간 목요일); 2024.8.8.
불가에서 구도하는 제자들의 깨달음을 돕기 위해 스승이 주는 가르침을 일컬어,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합니다. 어미 닭이 품고 있던 달걀 속의 병아리가 때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달걀 속에서 어떤 한 부위를 부리로 쪼기 시작하면, 병아리가 여린 부리로 쪼아대는 그 작은 소리를 어미 닭이 감지하고 달걀 밖에서도 병아리가 쪼는 부위를 아주 정확히 단 한 번 쪼아줌으로써 달걀을 깨고 병아리가 태어나게 되는 부화의 과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진리를 깨우치겠다고 수행의 길에 들어선 제자들이 그 깨우침의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을 때 스승의 질문 한 마디는 천금과도 같은 무게로 깨우침을 주는 법이라서 구도자들의 언어와 문법으로 애용되는 격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상황이 예수님께서는 이 ‘줄탁동시’의 때가 왔다고 여기신 듯합니다. 숱한 기적 사건을 목격하고도 아직 깨달음에 굼떠서 눈을 뜨지 못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갈릴래아 호수를 떠나 북쪽으로 60km 떨어진 카이사리아의 필리피로 도보 여행을 가셨습니다. 이곳으로 가는 길은 왕복 삼백 여리가 되어 꽤 멀지만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군중을 피해서 스승과 제자들만의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당한 환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시려는 듯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16,13)고 에둘러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답변은 예수님께 대해 군중이 지니고 있던 막연한 예언자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군중도 자신들이 목격한 그분의 신적 능력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분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작정해 두셨던 질문을 제자들에게 던지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6,15) 이 질문 한 마디는 예수님께는 물론 제자들에게도 결정적인 물음이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에게 믿음의 눈을 뜨게 해 주시려고 일러주신 그 모든 가르침의 결정체였기 때문에 그분에게 이 물음이 중요했다면, 제자들로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스승의 참된 신원을 결국 알게 되었는지 여부가 판가름나는 것이고 따라서 계속해서 따를지 말지를 결정하는 물음이어서 제자들에게 이 물음이 중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을 드렸습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이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시면서 교회를 맡기시고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주셨습니다. 이 열쇠가 교회가 거행하는 성사권의 근거입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위임에 따라 교회가 예수님의 일로서 성사를 거행하면 그분이 성령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지만 이 성사권은 권한이기 이전에 책임입니다. 교회가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을 천국에 들여보내거나 들여보내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권한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모으고 계신 당신의 백성을 성화시켜 천국으로 들여보내야 하는 임무라고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화답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신 까닭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천국의 열쇠를 맡으려면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해야 하고 자신들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부활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자가를 마냥 미루고 싶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십자가로써만 부활할 수 있고 하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이치가 하느님의 일이기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가슴에 하느님의 법을 새겨 주고, 하느님의 계획을 깨닫게 해 주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복음의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하는 물음의 답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성사생활을 통해 하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십자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부활하는 이치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일찍이 예언자 예레미야는 십자가로 부활하는 이들이 새 계약을 맺을 그 날이 오리라고 예언한 바 있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시고,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 계약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하느님이 되시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가슴에 넣어야 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하느님의 법이요 하늘 나라의 열쇠입니다. 우리에게도 줄탁동시의 때가 다가와 깨달음이 생겨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