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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접한 활쏘기
김 선 구
활에 시위를 걸고 살을 매긴다. 호흡을 멈추고 아랫배에 힘을 준다. 양다리의 근육을 긴장시켜 기둥처럼 고정하고 상체를 세운다. 눈은 과녁에 집중한다. 어깨를 젖히면서 왼손으로 활을 밀고 각지 낀 오른손으로 시위를 지그시 당긴다. 정신을 집중하고 활이 충분히 당겨졌다고 여겨질 때 자신도 모르게 깍지 낀 손을 놓는다. 화살이 ‘쓩-’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과녁을 향하여 날아간다. 이윽고 “땅”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과녁에서 튕겨 나온다. ‘명중이다.’ 마음속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정년을 앞두고 퇴임 후 무엇으로 소일할까하고 일거리를 찾던 중 중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친구의 권유로 활소기를 배웠다. 이 나이에 골프를 시작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터이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국궁활쏘기라고 안내해줬다. 국궁이라니? 양궁은 올림픽 종목이어서 익히 들어 알지만 국궁은 별로 접해보지 못한 운동이었다. 사극을 통하여 활을 쏘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취미생활로 흔하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운동은 아니라고 여겼다..
수소문 하여 국궁 활터란 곳을 찾아가 보니 강가에 과녁을 세워놓고 활쏘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콘테이너를 사무실로 쓰면서 ‘대한궁도협회 **정’이라고 달아놓은 간판은 그럴 듯 했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에 신입회원으로 등록하고 활쏘기 연습을 시작하였다. 사대(射臺, 활을 쏘는 자리)에서 과녁까지 거리가 145m나 되는 먼 거리였다. 과녁까지 화살을 날려 보내는 일 자체가 벅찼다. 시위를 당겼다 놓는 순간 시위의 현이 팔목을 치는 바람에 팔목이 시커멓게 멍이 들고 부어올랐다.
그렇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연습에 전염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활과 친해질 수 있게 되었다.
화살은 원래 전쟁무기였다. 그러므로 활을 다루는 데는 엄격한 규율과 예절이 따랐다. 초보자는 사범(師範)의 지도로 기본자세를 익혀야 했다. 함부로 화살을 날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어느 정도 자세가 잡혀야 사대에 서는 것을 허락하였다. 한 달 정도 연습기간이 소요되었다. 드디어 사대에 서서 살을 날려 처음으로 과녁을 맞혔다. 음식을 준비하여 그동안 도움을 준 사범과 사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것을 1중예라 했다. 또 연속하여 세발을 맞히자 3중예를 했다. 이것은 우리 전통무술 속에서 예를 중시했던 모습으로 이어져 온 관습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5중예이다. 살을 연속하여 다섯 번 명중시키면 몰기(沒技)라 했다. 몰기는 앞으로 활을 계속 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몰기를 하고나면 나름대로 활 쏘는 요령을 터득했다는 징표가 되기 때문이다. 첫 몰기를 하자 간단한 연회와 함께 사두(射頭)의 이름으로 몰기증서가 수여됐다. 이때 5중예를 올렸다. 몰기의 관문을 통과하면 ‘접장‘이라는 칭호와 함께 소속과 성명이 적힌 궁띠(허리에 둘러서 화살을 꼽을 수 있게 만든 띠)를 하사받았다. 이제 한사람의 궁도 인으로서 자격을 부여 받은 샘이었다.
접장(接長)의 칭호를 획득하자 각종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었다. 전국대회가 있고, 지역별 친선대회, 지역축제를 겸한 대회 등 행사가 많았다. 나는 가끔 친선대회에 참여하여 하루를 즐기고 오곤 했다. 대회전에는 단체전과 개인전이 있고, 개인전에서도 장년부, 노년부, 여성부로 나누어 경기하고 수상하였다. 그러나 아직 한번도 상을 받아보지 못했다.대회참가는 명분이었고 관광을 겸한 나들이였다. 여러 지역의 풍물을 접해보고 그 지역 향토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활쏘기에 재미를 붙여 활동하던 중 어느 해 여름이었다. 세차게 비가 내리자 강물이 불어 올랐다.
강가에 세워 놓았던 과녁들이 떠내려 가버렸다.
이 후 활터를 잃어버리고 이곳 저곳 남의 활터를 전전하였다. 활터에서는 다른 활터 소속의 손님이오면 정중하게 맞이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연습하는데는 부담이 없었다. 한동안 경산시내에 위치한 경조정에 회원으로 의탁했다가 지금은 ‘삼성현정’에 자리를 잡았다. 경산시에서 ‘삼성현문화공원’을 조성하면서 전통적인 모습의 활터를 마련하였다. 지금은 여기에서 여러 사우들과 함께 활쏘기를 즐기고 있다.
활터는 많은 회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활터에 가면 회원들 중 누구든 먼저 와있어서 언제 던지 대화를 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다보니 지켜야 할 규칙이 필요했다. 이를 위하여 궁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율이 만들어져 내려오고 있다. 인애덕행, 성실겸손, 자중절조 등 회원 간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궁도9계훈(弓道九戒訓)이라 명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실천함으로써 회원 상호간의 예절은 물로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덕성을 키워가게 하고 있다.
궁도란 단순히 활쏘기 기술이 아니다. 활쏘기를 통하여 인격을 도야하는 수행과정이다. 활을 쏠 때는 먼저 활터의 지형을 살피고 바람의세기를 파악토록 해야한다. 사대와 과녁주변의 지형을 살펴 그에 상응하여 궁술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기상 조건에 따라 살을 겨누는 방향과 살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한다. 그리고 활을 잡을 때면 왼손은 태산을 밀 듯 무겁게 버티고, 시위를 당기는 오른 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은 듯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살을 보내고 나서 맞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세를 고쳐가야 한다. 이것은 활을 잡을 때 명심해야 할 원칙들이다.
활을 잡으면 무상무념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명중시키겠다는 욕심이 생기면 자신도 모르게 자세가 흔들리고 살은 빗나가게 된다. 명중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얻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활쏘기는 신체의 단련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록 늦게 접한 활쏘기지만 궁도의 묘미를 깨닫고 이를 즐기고 있다.(2016. 11. 13)
첫댓글 사극에 장수들이 쏘는 활이 국궁입니까? 오늘 배웠습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무상무념의 경지에 도달아야 명중을 한다는 활의묘미, 모든일이 그러하듯 어느 한가지라도 헛수이 해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진리를 배우고 갑니다.
올림픽때 우리나라 선수들이 한발 한발 10점 과녘을 명중할때 느낀 짜릿함 외에는 활의 진수는 커녕 활에대한 문외한이 선생님의 글을 통해 좋은 정보를 알게되었읍니다. 감사드립니다.
국궁, 말로만 들은 생소한 운동인데 그동안 많은 정진을 하신 것 갘습니다. 아마도 수양과정으로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운동이라 생각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멋있는 운동을 하고계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국궁이" 정신일도 하사불성" 운동임을 한번더 느꼈습니다.좋은 운동같습니다. 범어공원에 국궁장이 있어서 뒷받침도 좀 하였는데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후회도 해보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