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3294
잠시 쉬어 가기
동봉
초서草書는 어떤 글자를 가리킬까?
풀잎이 평소에는 꼿꼿하다지만
비바람을 맞으면 제멋대로다
아니, 제멋대로라기보다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스스로 눕는다
앞서 태풍이 흘러간 때와 다르게
뒤이어 태풍이 불어닥치기라도 하면
풀잎 모양새가 다시 엉망진창이다
이를 한마디로 뭐라 표현해야 할까?
초서草書며 서명署名이라 한다
바람이 뒤훑고 지난 뒤 풀잎새 모양을
한자의 서체로 가져온 것이 초서다
전서체篆라든가 또는 예서체隷를
간략하게 표현한 글자체라 한다
대자연의 세계는 일정하지가 않다
우리 지구의 끝없는 움직임을 보면서
독일의 물리학자 베게너는 설파하였다
이른바 판게아Pangaea라고 말이다
당연히 전서체, 예서체가 초서체로
자리바꿈함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한 논리다
내가 소장하고 있던 명인名人 작품을
잘 아는 분에게 선물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그림에 쓰인
이른바 화제話題였다
초서의 '초'자도 잘 모르면서
설명도 없이 작품을 보낸 것이다
그 친구가 내게 슬그머니 물어왔다
"이 그림에 쓰인 글이 무슨 뜻입니까?
내 스스로 '한자의 대가'라 자칭하며
으스대곤 했는데 할 말이 없어졌다
"네, 지금은 그렇고 곧 말씀드릴게요."
그러나 내가 아는 한자는 해서楷書다
초서도 예서도 전서도 다 깜깜이다
나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52개월 동안 머물며 포교를 하였고
태광실업 고 박연차 회장님의 덕으로
학교 부지를 매입하여 종단에 기증하고
보리가람농업기술대학을 세우는 데
나 나름대로 일조一助를 하였다
그 과정에 복잡했던 게 서명署名이다
탄자니아에는 중국인들이 아주 많아
서명에 한문을 쓰기가 그렇고 해서
언제나 한글로 '동봉정휴'라 휘갈겼다
메모랜덤Memorandum은 물론이고
서류에는 서명signature을 요했다
그때마다 내 서명은 늘 한글이었다
영어 서명은 너무나도 흔했고
중국인들이 많은 아프리카에서는
현지인도 한글보다 한자에 능했으니
한자로 쓰는 서명도 마땅치 않았다
휘갈겨 쓴 우리 글 '동봉정휴'였다
초서는 쓴 사람만 알 수 있는 글자다
그런데 지금은 초서가 정례화되어
룰Rule대로 해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내가 초서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더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갸웃하곤 한다
외식 잘한다고 한식까지 잘하랴
그처럼 컴퓨터에 능하다 하여
대패질까지 잘하겠냐며 위로하나
이왕 연구하는 거 해서만이 아니라
예서, 전서, 초서까지 했어야만 하는데
실로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하여 작품과 함께 화제를 올린다
이 글이 어떤 내용인지 좀 알고 싶다
답 주시는 분과 함께 차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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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 임준신 화백 작품 & 내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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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2024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