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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갤러리 기획
최영욱의 '달 항아리' 전
2010. 3.31(Wed)~4. 6(Tue)
가가갤러리
I 초대의 글 I
2010 미국 LA ART FAIR에서 호평 받은 바 있는
최영욱의 달항아리는,
우리나라 전통 조선 백자의 모티브를 통하여
면면히 이어온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와 은근과 끈기
여백의 여유로움, 또는 비움과 채움의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미학을 이번 작품전을 통하여 담담하고 소박하게
우리에게 조용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졸미와 우아미, 숭고미가 함께하는 최영욱의 달 항아리전은
척박하리 만치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현대문명 속의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여유로움을 안겨주고, 삶의 재충전이라는
조용한 휴식의 '쉼표' 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가가갤러리
최영욱 Choi, young wook
1964 서울출생
1991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200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1992 1회 개인전(가인화랑,서울)
1996 2회 개인전(김내현갤러리,서울)
2000 3회 개인전 (대안공간 풀,서울)
2000 4회 개인전 (홍익대학교 미술관)
2003 5회 개인전 (노암갤러리,서울)
2004 6회 개인전 (예술의전당,서울)
2006 7회 개인전 (오노갤러리,토쿄)
2007 8회 Ⅰ 개인전 (후쿠오카 한중일아트페어,일본)
Ⅱ 개인전 (경향아트페어,경기)
2007 9회 개인전(우리은행 강남갤러리,숲갤러리,서울)
2009 10회 개인전 (이트게이트갤러리,뉴욕)
2010 11회 개인전 (공화랑, 서울)
2010 12회 개인전 (가가갤러리.서울)
아트페어
2010 LA Art Fair (LA)
그룹전
한중교류전(인테코화랑)
한일교류전(지구당갤러리 일본)
한국 불가리아 교류전(소피아갤러리,블가리아)
한미교류전(LA중앙일보갤러리,미국)
메트로 그룹전(인사아트센터)외 80여회 참여
현
한국미술협회회원
강남미술협회회원
오리진회화협회회원
주소 286Country rd, Tenafly,NJ,USA,07670
Tel C)201-546-2442, H)201-266-6577
email young3121@yahoo.co.kr
최영욱 개인전
I 가가갤러리 기획 I
2010. 3.31~4. 6
가가갤러리 725-3546
백자철화운용문호 70x70 mixed on canvas 2010.jpg
백자청화화조문호 70x70 mixed on canvas 2010
김정남 개인전 4월7일 ~ 4월13일
김정남 작
김정남 展
가가갤러리 기획 2010년 4월 7일~13일
自然의 時間
시간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문명 이래 많은 이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부단히도 확인 해왔다.
삶은 곧 존재이다.
존재성 확인을 위한 연습은 예술적 세계와도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왔다.
나는 그러한 시간의 자연을 빠름과 느림 동적임과 정적임에서 찾고자 한다. 반복성의 시간은 특히나 우리와 밀접할 것이다. 자연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율동의 변화를 이루며 그 형상들을 드러내고 있다.
본 인은 그러한 흐름의 형태를 반복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선을 사용하여 거대한 자연을 내재된 심상의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시간으로서 자연의 대지를 율동감있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자연은 인간을 포용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 자연을 감싸고 있는 공기 즉 바람의 현상들을 중첩된 자연을 통하여 부유하는 현상을 읽고 싶다.
자연은 시간을...
시간의 흐름은 거대한 자연을...
서서히 심상의 자연으로 움직이게 한다
*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의 형태에서 선은 동양화의 준법과 서양미술의 옵아트의 개념을 응용하였으며 불규칙하면서도 명료해 보이는 율동감, 준법으로 자연의 형태를 밀도감있게 표현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더하고자하였다.
* 내용적인 면에서는 진시황이 자주 머물렀다는 원 정원(遠 庭園 - 일반인은 갈 수도 없으며 전설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정원 이라함 )을 이상적인 도형인 삼각형의 형태로 표현하여 그 상징성을 더하여 커다란 하나의 완성된 자연을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현대적인 해석으로 자연에서의 여유와 편안함을 생각해보고자 그에 잘 어울릴 수 있는 골프장으로도 표현해보았으며 아래 부분의 나무는 구체적인 시간의 흐름의 과정을 좀 더 명확히 그리고 부유하는 정원(삼각형)을 통하여 이상적인 자연의 중첩된 현상과 움직임을 보고자 하였다.
<작품설명>
김정남 작_거닐다
* 거닐다, 거닐다II
깊고 깊은 산 속에 아무도 갈 수 없는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던 정원이 있었다. 상징적 이긴 하지만 그 정원을 원 정원(遠 庭園)이라 한다고 한다. 진시황은 그곳에서 희노애락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 정원을 사진 자료조차도 보지는 못했지만 그러 했을 거라고 상상을 해본다. 자연의 깊은 선을 율동감으로 표현하고 그 사이에 상상의 정원을 삼각의 도형으로 그려보았다. 나는 그 평평한 삼각의 정원이 더 신비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그 넓은 정원에 골프장 깃대를 꽂아 보았더니.... ?
김정남 작_담다
* 담다
올 해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다. 모두 합치면 3m가 넘는 양이다. 작업실 동료들이 하루 종일 눈을 치워도 뒤엔 그만큼 또 쌓여있다. 흐 아 ~~~
몇 개월 전만해도 비가 오지 않아 식수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담고 싶다. 깊은 산 속에 꼭꼭 눌러서..
김정남 작_오르다
* 오르다
내 작업실은 산 속의 폐교를 사용하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져 있지만 산을 올라가보지 않았다. 그 사이 몇 번이고 올라 가보았을 텐데 말이다. 그저 그 산들을 바라보기만 한다. 멀리서 보는 산의 형세가 음영에 의해 너무 좋다. 나는 그런 관조를 좋아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저산들을 올라가 보겠지...
김정남작_자연의 시간_91x61cm_pen_on_canvas_2010
* 자연의 시간
이 작업은 나에게 의미가 큰 작업이다. 조형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지는 않지만 내 작업에서 현재 까지 단골 소재가 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반복된 선과 율동이 시각적인 굴곡에 의해 큰 에너지가 되어 보인다. 서양미술의 옵아트의 반복적인 선과 동양미술의 준법에서의 형세를 표현한 선과 이 두 가지 선을 나름 데로 결합하여 사용해 보았다. 몇 번의 착오와 실패 끝에 이러한 작업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 기법을 옵준이라 붙여봤다. 선 하나하나를 긋기에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안된다. 선이 엉켜서도 안 되며 간격이 너무 넓어져도 안된다. 불규칙 하면서도 일정한 반복과 리듬을 가지고 있어야 전체적인 이미지의 밀도와 율동감을 느낄 수 있다. 장시간 작업은 무리다 눈이 아파온다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매일.....
* 휴식
멀리 붉은 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래의 정원도 조용해지면서 고요함이 몰려오면서 주변의 산들도 흘러 녹아내릴 것 같다. 홀로 있는 깃발이 휴식을 취하듯 편안해 보인다. 오늘하루도 수고했습니다..
연극인생 40주년 기념
장두이 연극소품특별전 4월14(수)~4.27(화)
I 초대의 글 I
2008년 12월 ‘대중의 예술화’와 ‘예술의 대중화’를 모토로 인사동사거리 코너에서
개관한 저희 가가갤러리는 금번 연기인생 40년을 맞는 장두이 선생의 ‘연극 특별
소품전’을 열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한미국 최초의 연극소품전시회로 자리매김하게될 이번 전시기획은 개관이래 21세기
문화의 대화와 소통이라고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기획된 특별전입니다.
젊은 신진작가의 발굴과 숨겨져 있는 중견작가의 비전을 꾸준히 제시하고 화랑과
미술애호가는 물론, 일반 소시민 또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다양한 기획전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중의 인식은 화랑의 문턱이 높고, 아직도 부유층, 전문가, 또는 소수 미술
애호가 외에는 가까이 하기에는 알 수 없는 부담과 어려운 문화공간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극 특별 소품전’은 화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 보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예술의 각 장르가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최근의 경향에 비추어 이번 전시는 연극과 미술,그리고 일반 대중이 함께 호흡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21세기는 다원주의의 시대입니다.
특별히 하나의 이념이나 사조에 집중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하나에 천착하는 고집스런 태도보다는 다른 장르에 대해서도 마음의 문을 열고 즐기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그간 큰 교류가 없던 연극인과 미술인을 한 자리에 모아 넓은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긍정과 포용이라는 넓은 그릇속에서 예술 장르는 함께 호흡하며, 저마다 창의적 발전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며, 그 시도에 대한 구체적 고민은 기실 일반 대중인 관람객들의 몫이기도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여유 있게 전시 관람을 즐기시며 연극과 미술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더욱 풍부한 감동과 고민을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차 한 잔 드시고 가셔도 좋겠습니다.
가 가 갤 러 리
■ 연극인 장두이 프로필
고려대학 국문학 학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재학중 도미.
뉴욕 시립대학교 브루클린대학 대학원 연극학 석사 과정 수료
인덕대학 방송연예학과 부교수
대경대학 연극영화학과 조교수
(현) 서울 종합예술학교 연기 예술학부 전임 교수
제 31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분 남자연기상
제 24회 한국 희곡문학상 대상
뉴욕 드라마클럽 특별상
미국 소수민족 아시아 예술인상
제 4회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 상 등 수상
첼로, 뮤지컬 고래사냥, 마당놀이 옹고집전, 햄릿, 세종 32년, 춘향아 좋을 씨고, 악극 이수일과 심순애, 댄스컬 성공을 넘어, 심청의 노래, 흥부야 청산가자, 통일 익스프레스, 러빙유, 국악 뮤지컬 흐르는 강물처럼, 뮤지컬 칸타타 춤추는 파도, 황금연못, 일인극 춤추는 원숭이 빨간 피터, 영웅을 생각하며, 사랑을 주세요, 물속의 집, 아버지가 사라졌다, Tirai,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Strangers, Agamemnon, Three Sisters, Summer Face Women, Medea, Trojan Women, Oh Jerusalem, Barnum's Last Life, Korean Shaman Chant, Moses Mask, Liturgy, Red Snow, Camino Real, The Fallen Angel, Moses & Wandering Dervish 외 220여 편 국내외 작품 출연 및 연출
연극인_장두이 교수
Nick Marking Solo Exihibition
4.28(wed)~5. 4(tue)
가가갤러리[인사동사거리]
관람문의 02-725-3546
Nick Marking Solo Exihibition 4.28(wed)~5. 4(tue)
< 닉 마킹(Nick Marking) >
I was born into a Yangban family and was always afforded the opportunity to learn about and experience many different facets of society. From the age when I could barely crawl I was supplied with crayons and pencils. I can remember drawing for hours with my brothers on the backs of used test papers my father brought home from SkagitValleyJuniorCollege, where he taught Philosophy. My brothers all had some talent, too, and our parents (particularly our mother) nurtured this with oil painting lessons. We were also supplied with a steady stream of art books dealing with subjects ranging from the great European masters to African tribal art. I don’t remember when I first realized that I was an artist. I have no doubt that it happened quite early in my life, reinforced by several photographic appearances in local papers displaying my art work before I had even reached puberty. Powerful stuff for an impressionable youth!
나는 여러 곳으로 전근을 하면서 근무를 하는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문화예술의 다양한 면들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갓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크레용과 연필을 쥐어주셨다. 스캐짓계곡대학(Skagit Valley Junior College)에서 철학을 가르치셨던 아버지께서 가져다 주시는 이면지에 나는 형제들과 함께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우리 모두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지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에게 유화 레슨을 시켜주셨다. 또한 우리들은 유럽의 거장에서부터 아프리카 부족미술에 관한 것까지 다양한 미술책들도 항상 접할 수 있었다.
나 스스로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언제 깨닫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꽤 어렸을 때부터인 것 같다. 사춘기가 되기 이전에 내 작품들이 지역 신문에 여러 번 실리기도 했는데, 이는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나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주었다.
When our family moved to the Upper Peninsula of Michigan I received water color lessons from the best instructor I have ever had the privilege of being taught by – John Heath, an excellent naturalist painter. During this time, I also first learned to make paper mache masks, something I still love to do. By the time I reached High School on the cold plains of NorthDakotaIhaddecidedthatIneededtostuffmybrainwithasmanydiverseimagesandexperiencesaspossible,believinginthesurrealistmannerthattheseinfluenceswouldpercolateinmysubconscioustoemergelaterasinspirationforworksofart.ItseemedtobeworkingformeasIwontheMinot,NorthDakotaMayor’sawardforsculptureasajuniorinHighSchool.ArtschoolatBriarCliffCollegeinSiouxCityIowawasarudeawakening.Ihad never imagined in my naïveté that art could be so structured and elitist. As a true child of the American 70s, I rebelled against the instructor’s insistence that all students should become minimalist field painters and also against the Eurocentric nature of the curriculum.
온 가족이 미시간주의 상부반도(Upper Peninsula)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나는 내 일생 최고의 선생님이신 뛰어난 자연주의 화가 죤 히스(John Heath) 선생님으로부터 수채화 레슨을 받기도 하였다. 당시 나는 빠삐에- 마쉐(papier-mache, 종이뜯어붙이기) 가면 만들기도 배웠는데, 이것은 내가 아직도 좋아하는 작업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의 나는 노스 다코다주의 추운 평야에서 자연의 다양한 이미지와 경험들을 나의 뇌리에 기억시키려고 애를 썼던 적이 있는데 이들이 내 영혼의 무의식에 스며들게 하면 결국에는 창작에의 영감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초현실주의적 사상을 믿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조각부문에서 노스 다코다주의 마이노트(Minot )시 시장상을 받은 것을 보면 이런 노력이 효과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이오와 주 수시티(Sioux City)의 브라이아 크리프(Briar Cliff)대학의 미술학과에 진학하면서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그때까지 나는 순진하게도 미술이라는 것이 그렇게 구조화되고 엘리트주의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학생 모두가 미니멀 화가가 될 것을 강요하는 교수와 유럽 중심적 커리큘럼에 대하여 당시의 나는 진정한 70년대 미국의 반항아답게 반기를 들었다.
I dropped out of school and began a 10-year string of manual labor jobs: construction worker, meat cutter, cabinet maker, airplane painter and warehouse laborer to name a few. During this time I continued making art with many different media: pen and ink, acrylic, paper mache… and I learned airbrush painting on motorcycle tanks. When I moved to NewMexicoin1979,IwasgreatlyinfluencedbythemythologicalSouthwestIndianartstyle.IenteredtheNewMexicostatefairyearlyandwontwoprizesformyairbrushpaintingsofOrchidsandhadmyfirstworksdisplayedingalleries.AfterreturningtoTechnicalSchoolandstudyinglasersIgravitatedtowardsthecomputerasanartmedium.
Since my move to Portland,OregontoworkforIntelCorporation, the computer has been my primary medium, although I have also greatly enjoyed the yearly color crayon contest at the Brasserie Montmarte and made a set of masks for the Spanish language Theatro Milagro production of Jardin de Suenos. My latest works have been a series of Venetian style paper mache masks and a series of automatic surrealist paintings with Copic pens with the intent of achieving some of the spontaneity that computer artwork lacks.
결국 나는 미술 대학을 중퇴하고 10여년간 공사장 인부, 정육공장 근로자, 캐비닛 공장 기술자, 항공기 페인트칠 노동자, 창고 노동자 등으로 일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펜과 잉크, 아크릴, 빠삐에- 마쉐 등의 다양한 소재로 미술작업을 했으며, 오토바이 가스 탱크에 에어브러시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1979년 뉴멕시코 주로 이사했을 때는 신화적인 남서부 인디안 미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때 나는 뉴멕시코주 박람회에 참가해 에어브러시를 이용한 난초 그림으로 두 개의 상을 받았고,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작품 전시를 하게 되었다.
그 후 기술학교에 입학해 레이저를 전공하면서 나는 컴퓨터를 미술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오레곤주 포틀랜드의 인텔 (Intel Corporation)에서 근무하면서부터 컴퓨터는 나의 주된 작업도구가 되었다. 또한 해마다 열리는 Brasserie Montmarte 컬러 크레용 컨테스트에도 참가하였으며, Theatro Milagro의 스페인어 공연 Jardin de Suenos을 위한 가면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컴퓨터 아트에는 없는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베네치아 스타일의 빠삐에 마쉐 가면과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을 사용한 코픽 펜 작업을 하기도 한다.
My work is currently hanging in galleries in Hillsboro,OregonandLakeWorth,Florida.
현재 나의 작품은 오레곤주 힐스보로(Hillsboro)와 플로리다주 레이크 워스(Lake Worth)의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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