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 한 송이 +
백무산
길이 끝나는 길에 나는 앉아 있었네
나도 끝이 나서 할 일을 잃었네
둑은 터지고 마을은 물 아래 있었네
사람길 다 끊겨 적막한 밤에
끊긴 길 위에서 밤을 지새네
나와 오래 한몸이던 이 길이
이 밤 이리도 낯서네
이대로 이 적막 위로 동이 트는데
아무도 없는데 누가 날 쳐다보는 듯
자꾸 귓불이 가려웠는데
낮은 길섶 안개 속에 구절초 한 송이
옅은 햇살에 뽀얀 얼굴로 날 보고 있었네
저리도 따스웁게 날 보고 웃는 꽃 한 송이 아,
저 꽃 한 송이가 나를 일으키네
아하, 언젠가 우리 어디선가 어디에선가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내 곁에서
눈을 반짝이며 말없이 오래 머물다 간 사람
이렇게 다시 만나네
금생에 이렇게 다시 만나네
첫댓글 💌 별 하나 꽃 한 송이가 켜져 있고 피어 있다는 것은 끊긴 길 위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일으키고 다시 시작하게 하려는 아주 오래 전 내 곁에서 아주 오래 머물다 간 사람의 어떤 신호임을 새삼 가슴에 새기게 하는 詩네요.
절망어린 상황을 마주할 때면 지금껏 겪어온 힘겨운 시간들이 함께 떠오르고, 그때마다 힘이 되어 주었던 누군가도 함께 떠올려지겠지요. 세월이 무심히 흘러가면서 먹고 사느라 그 고마운 이름들을 잊고 지니다, 다기 찾아온 인생의 적막의 밤..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지는 때에 우연히 마주한 꽃한송이가 그 옛날 힘이 되어주었던 고마운 인연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래, 그때도 그랬지..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야' 하며 다시금 주저앉은 몸을 일으켜 봅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소환되는 고마운 이들이 있지요. 큰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