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중복·말복의 삼복(三伏) 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다. 그런데 삼복은 24절기에 속하지 않는다.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데, 초복은 하지(夏至)로부터 세번째 경일(庚日·천간이 경으로 된 날), 중복은 하지로부터 네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로부터 첫번째 경일로 정한다. 복날은 10일 단위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 20일이 걸리지만,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간격이 20일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월복(越伏)이라고 부른다.
‘복달임’은 복이 들어 몹시 더운철이라는 뜻이다. 또 복날에 그해 더위를 물리치려고 고깃국을 끓여 먹는 풍습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복달임 음식으로는 고단백의 보신탕·삼계탕·민어탕이 대표적이다. 복날의 ‘복(伏)’은 ‘엎드릴 복’ 자인데, 이는 ‘사람 인(人)’과 ‘개 견(犬)’ 자가 합쳐진 글자다. 사람들이 개처럼 엎드려 지낼 만큼 더운 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를 개가 사람 앞에 엎드려 있는 것으로 풀이해 ‘복날은 개고기를 먹는 날’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속설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복날에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에서 고관들에게 쇠고기와 얼음을 내렸다. 그러나 하급관리나 중인들은 귀한 쇠고기 대신 민어로 탕을 끓여 복달임 음식으로 먹었고, 서민들은 시원한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거나 냇가에서 모래찜질하며 보신탕을 끓여 먹었다. 이를 복놀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서민들의 보신탕 문화는 계속 이어내려와 1980년대 초까지도 대세였다. 그러나 서울올림픽 같은 국제적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젊은층을 중심으로 애완견 문화가 확산하면서 보신탕 문화가 급속히 퇴조하고 있다.
요즘 복달임 음식으로 주목받는 것은 민어탕이다.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민어가 잘 잡히지 않아 눈 밝은 미식가들만 민어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전남 남서쪽 바다에서 제법 많이 잡혀 일반 국민들도 민어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민어는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고급 어류로, 그 역사가 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으로 민어라는 이름이 나오고, 중종 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조에도 민어라는 이름이 기록돼 있다. 민어는 그 이름처럼 ‘국민 생선’이다. 예부터 부모님을 잘 봉양하지 못한 자식들은 후회하며 돌아가신 뒤에라도 드시도록 민어찜이나 민어전을 만들어 부모님 제상에 올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민어를 면어(참조기)라고 하고, 그 속명을 민어(民魚)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참조기는 민어과에 속한 어류지만 민어와는 다르다. 정약전은 민어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큰 것은 길이가 4~5자이다. 몸은 약간 둥글며 빛깔은 황백색이고 등은 청흑색이다. 비늘이 크고 입이 크다. 맛은 담담하고 좋다. 날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부레로는 아교를 만든다.’
‘복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어요리는 더위에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 데 좋다고 한다. 민어의 살은 회나 전으로, 머리와 뼈는 탕으로, 껍질은 무침으로, 부레는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 별미로 즐길 수 있다. 복달임으로는 단연 탕이 일품이다. 민어탕을 제대로 끓이려면 회를 뜨고 난 뼈나 머리만이 아니라 통민어를 써야 한다. 민어탕을 끓일 때 쇠고기를 몇점 넣으면 감칠맛이 난다.
민어탕은 지리탕과 매운탕으로 끓일 수 있다. 지리탕을 만드는 방법은 먼저 민어의 내장과 비늘을 긁어내고 토막을 쳐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이어 멸치·다시마로 낸 육수에 민어와 소주 2~3잔, 무·생강·마늘을 넣고 국물이 뽀얘지도록 끓인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에 미나리·대파·청양고추를 넣고 한소끔 끓이면 완성이다.
민어 매운탕은 먼저 된장과 고추장을 덩어리지지 않게 잘 풀어서 토장국을 끓인다. 이때 물 대신 쌀뜨물을 쓰면 좋다. 애호박은 반으로 잘라 반달 모양으로, 파는 어슷하게 썬다. 생강과 마늘은 얇게 저민다. 민어 비늘과 내장을 긁어낸 다음 토막 친다. 끓는 토장국에 민어와 썰어놓은 채소를 모두 넣고 팔팔 끓인다. 민어살이 얼추 익으면 파를 넣고 한소끔 끓이면 된다.
김학민은…
‘음식도 아는 만큼 맛있다’라는 믿음 아래 음식 속에서 문화를 탐구하는 음식칼럼니스트다. 저서로는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 <태초에 술이 있었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