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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글쓰기 스크랩 Two-headed Eagle-17세기의 보병대 (2) 무적 테르시오
카이사르씨 추천 0 조회 701 07.11.12 14:04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출처: 학생역갤 블로그 http://blog.naver.com/ggacn/90019388703

 

<스페인 테르시오>

17세기 초반 보병 방진 전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스페인에서 개발되어 카톨릭군이 주로 사용했던 테르시오 전술이었고, 두 번째는 네덜란드에서 개발되어 신교도군이 주로 사용했었던 선형 전술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테르시오 전술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테르시오 (Tercio)라고 하는 것은 스페인어로 ‘연대(聯隊), regiment’ 뜻하는 말입니다. 15세기에서 16세기 초반에 걸쳐서, 이탈리아를 놓고 스페인군과 프랑스군이 격돌하면서 곤잘로 페르난데즈 데 코르도바 (Gonzalo Fernandez de Cordoba)가 개발한 전술입니다. 파이크의 방진과 머스킷, 아르퀘부스 총병 진형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적을 상대하는 방진을 뜻하지요. 이것은 1530년대에 거의 정형화 되어가고 있었고, 뒤로 갈수록 총병 비율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17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거의 무적의 전술로 군림하게 됩니다.

 


(테르시오를 개발한 위대한 장군, 곤잘로 페르난데즈 데 코르도바 (1453-1515).테르시오 전술을 개발하여 스페인군이 200년동안 무적 시대를 여는 토대가 된다.)

 

이 방진의 중심은 바탈리온 (대대(大隊), battalion)이라고 불리는 창병대의 전열입니다. 지금 현대 군대에서는 소대-중대-대대-연대의 순으로 올라가지만, 17세기에는 보병 연대의 하부 직속 단위는 중대(company)였습니다. 대규모 회전 당시, 몇몇 중대들이 모여 형성하는 파이크병의 전열을 대대라고 했고, 이 규모가 중대와 연대의 중간 규모 정도 되었기 때문에 현대 군대의 체계에 도입된 듯 합니다. 이 바탈리온의 중앙부에는 장교들이 보호를 받으면서 지휘했으며, 파이크병은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스위스의 파이크 방진과 마찬가지로 방진을 형성하여 기병대의 돌격을 막아내었지요.

이 때 테르시오의 전방에는 주로 중갑주를 갖추어 입은 정예 파이크병을 주로 배치시켰고, 그 뒤에는 갑옷 일부만을 갖추어 입은 파이크병, 마지막으로는 가죽 갑옷만을 입거나 갑옷을 입지 않은 파이크병 (주로 신병)을 배치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테르시오는 정예병력만이 적의 기병대를 상대하였으며, 뒤쪽의 신임 파이크병은 점점 경험과 돈이 쌓여 가면서 갑주를 갖추어 입고 앞쪽 전열로 시간이 지나면서 승진해 갔지요.

 

(테르시오의 파이크병의 모습)
 
이러한 방진을 중심으로, 총병들이 사방에 느슨한 형태로 둘러싸면서 사격을 하게 됩니다. 사정거리가 길지만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머스킷병들은 주로 파이크병과 가까운 쪽에 배치되었고, 빠른 속도의 사격이 가능한 아르퀘부스 병력들은 좀 더 먼 쪽에 배치되었습니다. 총병들은 적에게 사격을 가하다가, 적이 가깝게 접근하면 파이크 병의 뒤로 숨거나, 파이크병 주변을 돌면서 사격을 계속했지요. 이러한 파이크 방진과 총병의 결합은 사면에서 공격하는 적에 대해서도 매우 강력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테르시오의 모습. 가운데 파이크의 바탈리온이 보이고, 그 주위를 총병들이 둘러싸고 있다. 총 3,000명 정도의 전술 단위이다.)

 

<독일 테르시오>

이 스페인 테르시오가 독일로 들어와서는 약간의 변형을 겪게 됩니다. 약 3,000명의 전술 단위 방진이었던 테르시오는 독일에서는 좀 더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 작은 단위의 테르시오로 구성되게 됩니다. 이것은 독일의 연대들의 정식 정원 역시 3,000명이었으나, 대부분 1,000-2,000명 선밖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카톨릭 리그의 총사령관이었던 틸리 백작이 주로 선호했던 것은 2,000명의 전술 단위 방진이었습니다. 스페인 테르시오에서는 총병들이 사방에 분포되어 있어서, 전면에 집중되는 화력은 떨어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틸리 백작은 파이크병의 뒤쪽에 배치된 총병을 줄였고, 양 옆 (슬리브(sleeve)라고 부름)과 파이크 방진 앞쪽에만 총병을 배치하였지요.

 


(17세기 초, 독일에서 변형된 형태의 테르시오. 카톨릭 리그군의 2,000명 단위의 테르시오, 제국군의 1,000명 단위의 테르시오가 있다. 크게 보려면 클릭)
 
 

이에 반해, 신성로마제국군의 연대는 대부분 1,000명을 조금 웃도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주요한 전술 단위는 1,000명 단위의 테르시오였습니다. 테르시오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민한 움직임은 힘들었지만, 대신 그 규모 때문에 적의 공격에 대한 저항력은 매우 강했습니다. 원래 전투 중에는 군중 심리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적은 규모의 전술 단위는 적의 공격이 가해지면 빨리 무너졌지만, 큰 규모 전술 단위는 강한 공격에도 상당 기간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틸리 백작은 화력과 기동력보다는 사기와 쇼크 효과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큰 전술 단위를 선호했다고 전해집니다. 


<테르시오의 진격과 사격>

테르시오와 상대편 방진이 접촉했을 때 물론 파이크 밀치기 (Push of Pike; 파이크병 사이의 전투)로 전투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전 편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당시의 주요 화력은 총병이었습니다. 이 총병들이 여러 횡열로 서 있었기 때문에 총병들이 전면에 나서서 화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대 행진 (countermarch)라고 불리는 전술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총을 쏜 병사가 횡열의 뒤쪽으로 돌아가는 행진을 말합니다.

 


(카운터 마치(반대 행진)의 모습. 사격을 한 총병은 뒤로 돌아가 장전한다.)

 

물론 테르시오의 총병들은 한 개 횡열이 일제히 사격한 후 뒤로 돌아가고, 한 개 횡열이 일제 사격 후 뒤로 돌아가는 것 같은 형태의 정교한 집단 사격은 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병사들이 스스로 준비되는 대로 발포하고, 다시 뒤쪽으로 돌아가서 장전하고 했지요. 이 때문에 총병들은 그리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계속된 사격을 위해서는 1분에 5열 정도의 사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계속된 카운터마치를 통해 1열이 12초당 한 발씩을 쏘아대는 것이었지요. 그럼, 계산을 해 보겠습니다. 아르퀘부스의 경우, 분당 1회 사격이 가능했으니 만약 연속적으로 사격하기 위해서는 

 5 (열/분) / 1 (회/분) = 5 (열)

즉, 연속된 사격을 위해서, 아르퀘부스는 5열이 필요했습니다. 같은 계산법으로, 3분당 1회 사격이 가능했던 더블 머스킷의 경우에는

 5 (열/분) / 0.333 (회/분) = 15 (열)

이 필요했지요.


 

(테르시오의 장교. 주로 할버드나 파르티잔을 들고, 바탈리온의 안쪽에서 지휘했다.)

 

즉, 제국군의 테르시오는 얼추 15열에 맞아 떨어지고, 카톨릭 리그 테르시오는 26열이므로

15/26 = 58% 정도의 화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쉬는 사람 없이 계속해서 발사한다면 15열으로 족하고, 나머지 11열은 일종의 화력 완충 역할을 했습니다. 테르시오의 파이크병이 전진하게 된다면 분당 60m 정도의 속도로 전진했다고 하는데, 15열의 총병들로만 이루어진 전열이 쏘면서 전진할 때에는 분당 30m 정도의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리그 테르시오는 40% 정도의 잉여 화력이 있었기 때문에, 파이크병과 같은 분당 60m 정도의 속도로 전진하면서 계속해서 총을 쏘아댈 수 있는 이점이 있었지요.
 
 

(독일 파이크병이 형성한 테르시오의 모습)

 

<테르시오의 약점과 강점>

1. 테르시오는 화력의 60%만 발휘한다 (화력 효율이 떨어진다) 
         <-> 빠른 속도로 전진하면서도 계속된 사격이 가능하다.

 


2. 규모가 커서 움직임이 둔중하다 
         <-> 사기 효과가 커서 전열이 잘 무너지지 않는다.

3. 전후 좌우에 총병을 배치시킴으로써 전면 화력이 떨어진다. 
         <-> 포위 공격 당할 시에 유리하다.

4. 병력의 밀집도가 커서 대포에 약하다.
         <-> 적과 접촉했을 때 이러한 밀집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5. 사격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격으로, 총병들이 철저하게 훈련받지 않아도 빨리 익숙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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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16 01:06

    첫댓글 실제로 5열 사격은 거의 시도하지는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뤼첸전투에서나 신교군이 사용해서 전세를 뒤집어 버리긴 했지만요. 제가 언급한 거로 기억하는데 17세기에 서구군대는 2열을 표준으로 했고요. 5열하면 총열이 쉽게 녹아버려대는 위험이 있어서 정말 급하지 않으면 2열에서 3열을 기준으로 했죠. 그래도 글이 참 깔끔하고 좋네요..좋은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 07.11.16 08:55

    그런데 근대시기의 총기는 근세시기의 총기보다 내구성이나 안정성의 측면에서 더 향상된 것일까요?

  • 07.11.17 23:01

    향상되어도 전술에서 마지막 한방 계산하고 싸워야 하니 아무래도 총열이 녹아댈 정도로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작성자 07.11.16 08:29

    나폴레옹 시대때 글을 보니 머스킷의 지독한 화약연기 때문에 실제 병사 한명당 기껏해야 2-3발 정도 쏘고 총검전으로 돌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더군요~.~ 근세에도 사격시 발생하는 열기와 화약 때문에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사격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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