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공산의 전통찻집 1
2005. 11. 7. 월요일.
월요일 출장일과가 끝난 뒤에 공군 군부대 정문을 빠져나와 동대구 시내로 나갔다.
생선회로 저녁을 먹은 뒤 팔공산(八公山, 1192.9m)으로 향했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역습을 당해 위기에 빠졌을 때 신숭겸이 태조와 옷을 바꿔 입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했다.
신숭겸을 비롯하여 8명의 장수가 이 산에서 전사했기에 훗날 팔공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팔공산 도립공원은 동대구 시내에서도 상당히 먼 거리.
가로수가 붉게 물든 거리는 짙은 어둠에 깔렸다. 스쳐 지나가는 차도 드물었다.
시내를 벗어나 산 쪽으로 달릴수록 중대동 길가에는 음식점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산오리 음식점이 많았다.
호젓한 산자락을 따라 차는 계속 산 쪽으로 달렸다.
이정표에 파계사(把溪寺) 방향표시가 보였다.
계곡이 여덟 갈래로 갈라진다는 뜻이라니 산이 제법 웅장하다는 뜻도 되겠다.
팔공산으로 가는 길이 예상보다 더 멀어서 중도에서 포기하고 차를 돌려 시내로 다시 나오기로 했다.
길가에 작은 트럭을 세워두고 파는 이동차량에서 사과 열세 알을 만 원 주고 샀다. 대구지방 사과가 맛있다고 했으니 먹어 보면 알겠지.
산자락 아래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데 오른쪽 인도에 '차 한 잔에 이천 원'이란 팻말이 있는 찻집이 눈에 띄었다.
길 옆 공터에 임시로 지은 가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나무로 만든 선반 위에 가즈런히 올려져 있는 찻잔과 다기(茶器)가 한눈에 띄었다.
굵은 대마무를 받침대로 천장을 쳐받들었으며, 높은 천장은 갈대발이 쳐져 있었다.
둥근 대나무를 길게 묶어 만든 선반 위에는 작은 난화분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엽녹색의 난(잎사귀가 작은 난종류)이 무척 많았다.
벽면에는 헝겊에 그린 그림 몇 폭이 걸려 있었다.
우리말로 쓴 '처음처럼' 이란 시화(詩畵)가 걸려 있었다.
나무선반 위에는 씨앗 구멍이 조금씩 뻥 뚫린 연꽃 열매 껍데기 십여 개가 간즈런히 놓여 있었다.
큼직한 도자기류도 있었다. 눈을 부릅뜬 달마화상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 '청산은 말없이 살라 하네'라는 시귀 전부를 한글로 써서 구운 도자기도 있었다. 크고 작은 찻잔 세트와 차 요리기구가 어수선하나마 진열되어 있었다.
자갈을 깐 땅바닥 위에서 연탄난로가 따스한 온기를 내뿜고, 전기 가열기(펜)가 벌겋게 달아서 돌고 있었다.
구석에는 검은 빛깔의 19공탄 연탄이 잔뜩 쌓여져 있었다.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너무 먼, 그러나 옛것의 정취가 묻어날 것 같은, 아늑한 운치를 자아낼 것 같은 작은 공간이었다.
여러 차례 소리쳐 불러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덧문을 밀었더니 주방. 간소한 주방 설거지통에는 주걱, 수저, 젓가락이 씻지 않은 채 담겨 있었다.
부억 딸린 주방이 곧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수작업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비닐에 싼 찰흙 한 덩어리, 찰흙으로 빚은 뒤에 탁자 위에서 말리는 작은 찻잔들, 흙칼, 연꽃그림이 세 점, 화구, 벗어놓은 작업복 앞치마....
다실 안을 가득히 채운 다기류와 화분에 심은 난초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인기척이 났다.
40대 초반의 작은 여자. 얼굴 피부가 무척 곱다.
"어서 오세요."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가 간지럽게 들렸다.
우리 일행 다섯 명은 둥근 테이블 탁자에 둘러앉아서 천장에 매단 나무판자에서 차(茶) 이름을 골라내고 하나씩 주문했다.
잠시 뒤에 여주인이 큰 그릇에 뜨거운 물을 떠 왔다.
'저걸 다 마셔?'
대나무뿌리 손잡이가 달려 있는, 작고 둥근 茶具에 물 부어 차 찌꺼기를 걸러낸 뒤 작은 찻 잔에 물을 따랐다.
첫 번째 우려낸 물이어요.
두 번째 우려낸 물이어요.
세 번째 우려낸 물이어요.
또 여러 종류의 차를 차례로 찻잔에 부었다.
손님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오래 눌러앉을 수 있어서 좋았다.
茶道에 관한 이야기, 小品를 직접 만들어 소매나 도매로 판다고 했다. 진열한 도자기 세트 가운데 다른 사람의 작품도 있으며, 위탁판매한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실내를 맴돌면서 小品을 둘러보다가 다시 차를 조금씩 마셨다. 그렇게 천천히 밤시간을 보냈다.
2005. 11. 8. 화요일.
둘째 날에는 팔공산에 가는 길목에 있는 '촌닭집' 매골식당을 눈여겨 찾아냈다.
산자락 끝에 붙은, 허름한 시골집을 개조한 음식점.
닭 두 마리를 잡아달라고 주문한 뒤 진짜로 촌닭인지를 확인하려고 늙은 영감 뒤를 따라서 집뒤로 올랐더니 정말로 닭장이 나왔다.
넓은 터 안에 여러 채의 닭집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보였다.
흰 거위 여러 마리가 낯선 사람을 피해서 구석으로 몰려 도망치고 있었다.
꿩집과 염소집도 있을 것 같은 어둠.
닭을 골라서 붙잡겠다고 자청했던 우리 일행은 닭장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혼자서 닭장 안으로 들어간 영감의 양손에는 닭이 묵직이 들려 있었다.
길가의 수돗가에서 털 뽑고 내장을 걷어내는 것을 잠깐 지켜보았다.
뱃속에 든 노란 알집.
'암탉이구나.'
쇠난로 아궁이에서 장작불이 달아오르고 .....
주인집의 과년한 딸이 난로 뚜껑 위에 덮개가 달린 그릇을 올려놓고 고구마 몇 알을 굽고 있었다.
복도에 작은 화분 여러 개가 눈에 띄었다. 긴 손가락 선인장, 가시 선인장.
벌레 먹어 못생긴 모과 몇 알, 대추 바구니, 홍시 .....
작은 어항 속에는 가재 두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헤엄치고 있었다.
둘째 날에도 음다소(飮茶所)에 다시 들렀다. 손님이 또 없었다.
여주인이 가져온 커다란 그릇(茶器) 안에 떠 있는 푸른 빛깔이 도는 연꽃 한 송이.
"한 송이를 8천 원씩 사서 냉동시켰다가 물 끓여 파는데 이 그릇에 든 차라면 3~4만 원어치가 될 거예요."
우리는 또 여러 차례 조금씩 거듭 마셨다.
난(蘭) 한 촉이 몇 만 원에서 몇 백만 원짜리도 있다고 했다.
이백만 원짜리 난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내 눈에는 작은 화분에 든 작은 풀에 불과했다.
변종일수록 가격이 천차만별이란다.
얼마 전, 대구의 어떤 회원은 오천만 원짜리 난을 잘못 관리해서 죽였다고 했다.
회원끼리 난 전시회를 열며, 또 인터넷으로도 전시하며 서로 사고 판다고 했다.
난 관련 소책자에는 많은 동호회가 있었으며, 회원들의 얼굴과 소품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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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 3. 20. 수요일.
2005. 11. 7 ~ 9.까지 일기 가운데 첫날과 이틀째의 일기이다.
전화번호와 이름은 보안상 감췄다.
일기를 쓴 지도 만18년이 더 지나갔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이런 일기라도 남았기에 조금은 다행이다.
부하 직원들과 함께 대구 군부대로 출장갔던 옛일을 회상한다.
첫댓글 일기를 오랫동안 쓰셨군요.. 지나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겠습니다. 건강하게 지내십시요. 내일 새벽에 3박4일 중국황산 트레킹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일기는 지금껏 날마다 씁니다.
A4용지, 컴퓨터에 쓰고... 컴에 쓴 글은 자칫하면 전부 날아가서.. 제일 좋은 방법은 종이에 프린트해 두는 것...
부럽습니다.
해외 등산하신다니...
저는 일전 옛 직장 동우회에서 백두산 방문한다고 알려왔지요.
며칠간의 경비는 고작 100만원. 나머지는 동우회에서 다 지원한다는데도
저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포기했지요.
지난해에는 독도 방문도 포기하고....
부럽습니다.
아직은 젊기에 해외 여행, 견문을 넓히시니 존경합니다.
'오늘이 남아 있는 생애 가운데 가장 젊은날이다'
라는 말처럼 두루두루 여행 잘 다니시기를 빕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대구 팔공산 지역이 무분별하게 변질되었군요.
오래 전 두어 차례 팔공산 파계사 등에 올랐지만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지네요.
큰아들 처가가 대구라서.... 대구에서 혼인 치뤘고....
일기 형태로 컴퓨터에 글 썼는데 많이도 사라져서... .
부하직원 장교들의 안내를 받아서 대구 군부대에 방문했던 기억이 이제는 가물거리는군요.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 교가에
팔공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가야산~
으로 교가가 시작됩니다.
구봉 님 말씀처럼 대구쪽에는 팔공산이
들어가는 교가가 많습니다.
영천 은해사에서 팔공산을 넘어
동화사로 가는 길도 등산가들에겐
참좋은 산행코스가 될 것 같습니다.
옛날에 써두신 일기장을 펼쳐 주신
덕분에 옛생각이 많이 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저도 오래전 젊은날에 동화사를 방문했지요.
펜팔 여자친구와 함께.
일기 산행기를 썼는데....
일전에 확인하니 글이 모두 사라졌대요.
그 아가씨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