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집착(執着)
집안 곳곳에 경찰들이 단서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처음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선우는 지수가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침에 갑자기 그룹의 작은 사고로 자신이 불려 나가고 난 뒤 혼자 남은 지수가 서진을 데리고 어딘가로 숨어버렸을 수도 있다고..... 그러나 집안에 서진의 물건과 지수의 소지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선우는 즉시 경찰에 연락했다.
귀가해서 보니 대문이 열려있었고, 정원에 파라솔도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서진을 덮어주던 작은 타올만 사라지고 없었다는 할머니의 증언도 그러했고, 지수가 서진의 물건을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사라졌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안 정원에 나갈때 조차도 서진의 타올이나 장난감등을 세세히 챙기던 지수였다. 그러나 지금 이집엔 서진의 물건들 중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말은 누군가가 집에 들어와 그녀와 서진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었다.
해가 져서 어느덧 밤이 다 되어 가는데도 지수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흔히 돈을 노린자들의 협박전화도 한 통화 오지 않았다.
그날도, 그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다음날도....
경찰들은 단순한 부부불화에 의한 가출일 가능성쪽으로 심즈을 굳히는 것 같아 보였고 결국 나흘째 되는날, 몇몇 경찰들만 남겨두고 철수하는 경찰을 보며 선우는 그룹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혹시 모르니 한명훈과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부탁합니다. 지수의 실종에 한명훈이 관여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무리 그래도 한명훈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멍청할까요? 자신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텐데... ”
“그렇지만 모든 것을 망각 할 정도로 사람을 어리석게 만는 것이 사랑이라는 놈이 하는 짓이니...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단서를 찾으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지수와 서진이 사라진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경찰관계자들은 더 이상 가정사에 관여 할 수 없다며 철수했다.
지수와 서진의 몸값을 요구하는 어떤 전화도 없어 돈울 목적으로 하는 유괴는 아니라는 판단하는 경찰측에게 무리한 조사요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결국 철수를 동의했다.
이미 한명훈의 짓이라고 단정을 내린지 오래된 선우로서는 더 이상 경찰의 협조가 필요 없었다. 외부로 나가봐야 좋을 것 같지 않은 재계의 애증관계는 결국 당사자인 자신과 명훈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는 판단이었다.
지수가 사라진 날부터 명훈이 한신에 출근 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로도 모든 것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단지 어디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여러 루트로 알아보고는 있지만 명훈과 한신의 이름으로 된 모든 부동산을 다 찾아봤지만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한신주변을 지켜보라고 한 팀에게서 어떤 단서라도 얻어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견디가 힘들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 생사조차 알 수없는 상황임에도 자신이 할 수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에 선우는 무기력한 자신을 저주 하고 싶었다.
“명훈씨... 이제 그만 우릴 보내주어요.. 우리를 이렇게 여기 숨겨두고 있어도 나와 서진이 당신의 것이 될 순 없다는 것을 알잖아요...”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명훈씨! 난 알아요. 당신은 내가 모르고 사용한 마력에 중독 된거예요.”
“훗,, 지수씨가 마력을 쓴다구요? 그럼 지금 마력을 써서 여기서 나가지 그래요? ”
“난 이상한 능력을 가졌어요, 그렇지만 그 마력을 사용하면 상대방이 불행해져요. 특히 그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경우는 더욱 더.... 그러니 명훈씨 우리를 보내줘요.”
“지금 난 이미 건너지 말아야 할 다리를 건넌 사람이예요.”
“세상에 다시 돌아 갈 수없는 다리는 없어요.”
“글쎄... 그럴까요”
“나줘요..”
“지금 내겐 지수씨 마저 없음 끝이라고 해도 말예요?”
“다 그럴 것 같아도 살아져요.”
“사람마다 다르죠.”
“명훈씨.. 제발...”
“그만 자요.”
명훈은 지수가 힘들어 하는 것을 알기에 지수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아니 자신보다 먼저 지수의 마음을 가져간 선우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지수를 감춰두고 있다고 자신에게로 마음을 돌릴 지수가 아니라는 것을 어쩜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마력에 중독되었던 건지 모르지만 도저히 지수를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그 사내의 아이를 가지고 낳고 하는 그 시간도안 조금도 놓아버릴 수 없는 것을 어쩌랴.
이미 그녀 아님 자신도 안되는 것을...
8년전 정혼녀의 친구로 처음 본 그날이후 이미 그녀가 자신의 전부였음을....
저녁을 먹고 난후 서진이 자꾸 보채고 잠을 자지 않았다.
미열이 있는는 것 같아서 비상약으로 가지고 온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아이가 지쳐 힘들어서 인지 간신히 잠이 들어 지수도 서진이 곁에서 눈을 부쳤다.
아앙... 맘마마마 맘마....
넘어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이 깬 지수는 서진의 열린 동공과 열에 채여 저녁에 먹은 것들을 다 토해낸 음식물을 보고 아이의 상태가 저녁보다 더 심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겉옷가지를 벗겨내고 찬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었지만 쉽사리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어떤일이 생길 지 모르는 일이라 명훈이 머물고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명훈씨. 빨리 와요, 우리 서진이가 이상해요....”
“뭐라는 겁니까? 아이가 왜요?”
“저녁 무렵부터 이상했어요...”
“왜 여태껏 가만히 있었어요.”
“뭐라고 하죠? 당신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데요?”
“병원이라도..”
“병원가서 진찰하면 그 기록을 보고 선우씨가 찾아올텐데.. 그럴 수 있나요?”
“그건 좀....”
“빨리 열을 내리지 않으면 서진이가 ....
“..... ”
“서진이와 나만 잠시 병원에 다녀오면 안될까요?”
“ 지수씨.... 우리 그룹의 주치의가 있으니 그분을 이곳으로 모셔올께요.
“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어요?”
“ 일단 서진이가 아프니... 그렇게 합시다.”
“고마와요... 정말..”
선우는 전화기를 내려 놓으며 비서실장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 나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보안팀에게 연락해 놓았다던 실장에게 문제가 커지지 않게 근접거리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변경조치 하고 급히 서산으로 향했다.
그룹 주치의를 데리고 급히 서산으로 향했다는 연락을 해서그룹주변을 염탐하던 팀에게서 받고 신속하게 조치를 취한 실장이 선우에게 보고했을때 선우는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그룹의 주치의를 불렀다면 분명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이고, 그 대상이 지수일 가능성이 컸다. 발현이 진행되어 폭주하기 전 정신을 놓은 상태인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선우는 마음이 급했다.
아이의 체온이 40도를 오가며 떨어질 줄 모르고 계속 먹지도 못하고 토하는 탓에 지수는 안정을 취할 수 없었다.
주치의가 부근까지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걱정마라는 명훈을 그저 멍하니 마라보며 손톱을 잘근잘근 물었다.
방안을 오가며 계속 손톱을 깨무는 지수를 명훈은 앉히려고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를 머리를 만지고 다시 자신의 머리를 만지고, 아이의 뺨에 자신의 뺨을 대어보는 것을 반복하는 지수는 반쯤 정신을 놓은 사람이었다.
명훈은 서진의 상태도 걱정이었지만 그보다 오히려 지수가 더 불안했다. 알 수 없는 중얼거림과 불안한 눈빛 그리고 손까지 부들부들 떠는 여태까지 보아 온 지수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그것이 명훈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게 만들었다.
주치의를 모시러 갔던 직원과 주치의가 급히 뛰어들어오자 지수는 거의 광적으로 주치의의 팔을 잡아 끌었다.
“아이가 이상해요... 우리 서진이가 이상해요. 왜이런건지...”
“잠깐만요... 조금 진정하세요... 제가 진찰을 해야 ....”
“지수씨 잠깐 기다립시다. 일단 먼저 의사 선생님이 보셔야 .....”
“아뇨. 이것놔요. 선생님.... 빨리 우리서진이 좀.....”
“예 그러지요. 잠깐 안정좀 하십시오”
계속 주치의의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바짝 곁에 서있는 지수를 명훈이 두팔을 잡아 등을 토닥이며 진정하라고 했지만 지수는 좀처럼 가만 있지를 못했다.
“우리 아기, 서진이가 왜 이런거죠?”
“제 판단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좀더 생리학적인 실험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최상책일 것 같습니다.”
“왜죠? 무슨 특이증세라도?”
단순히 약간 이상있는 음식물로 인한 식중독 일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아기의 상태로는 단순한 식중독이 아닐 수도 있어서.... 일단 검사를 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이사님 잠깐만 저좀 보시지요 “
“그러지요. 지수씨 잠깐 선생님과 얘기좀 하고 오겠습니다. 잠시만요...”
주치의의 표정이 좋지 않아 명훈도 불안해져 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지수의 불안정한 상태를 생각해야 했다.
“왜 그럽니까?"
“혹시. 저 안에 있는 분과는?”
“제가 사라하은 여잡니다.”
“그럼 아기는요?”
“아기는... 왜그러지요?”
“혹시 이사님 아기입니까?”
“그것이 상관 있습니까?”
“아뇨. 제 판단으로는 뇌막염이지 싶습니다. 대개 1세 이후에 걸리지만, 6개월 미만에도 걸리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대천문이 커다랗게 부으며 경련이나 의식장애를 일으키는 일이 있고 두통, 발열, 구토를 동반합니다. 아기가 언제부터 저런 상태 였는지 혹시 아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한 이틀 된 것으로 압니다.”
“대천문의 부기를 보아하니 최대한 서둘러 병원으로 가야합니다.
입원치료가 필요한데 바이러스성과 세균성 두 종류가 있고 각각 예후가 다릅니다. 한시라도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원인이 뭡니까?”
“선청적일 수도 있고, 환경적인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먼저 옮기시는게.....”
“우리 서진이가... 서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래요?”
“지수씨.. 아니예요. 그렇게 두진 않을 겁니다. 제가...”
“아니!.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테니 한명훈 넌 그만 빠지지.....”
“강선우! 당신이 어떻게... 여길?”
명훈의 앞을 가로막는 강선우를 보며 명훈과 그 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서실장님! 빨리 서진이를 차에 태우십시오. 한명훈 지금은 일단 우리 서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니 나중에 얘기하지. 혹시라도 우리서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그. 땐 각오해야 할꺼야!..... 그리고 당신 의산가? 같이 가 줘야겠소. 혹시 가다 어떤일이 생길 지 모르니....”
같이 온 보안팀들이 의사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보며 선우는 명훈을 한번 바라다보고는 방 한켠에 멍하니 서 있는 지수에게 다가가며 그녀의 어깨를 않았다.
“지수야 미안해 늦어서.... 당신 지켜준다고 해 놓고 이제와 미안해... 가자. 우리서진이 병원에 데려가야 하니 가면서 얘기하자.....”
“그..래요. 가요.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