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레교회 담임 이문장 목사. 이 목사는 두레교회 취임 전까지 미국 고든콘웰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1. 2014년 9월 22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99회 총회가 열린 소망교회 앞. 두레교회바로세우기협의회(두바협) 소속 교인 20여 명이 총대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며 "이문장 목사는 이단으로 판명됐다", "두레교회를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2. 2015년 9월 16일, 예장통합 100회 총회가 열린 청주 상당교회. 장내는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대위) 보고로 소란스러웠다. 이대위가 올린 보고서에는 이문장 목사의 이단성을 지적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몇몇 목사들은 '정치적' 판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대위가 작성한 <연구 보고서>에는 이 목사가 용납할 수 없는 이상한 사상을 가르쳐 왔으며, 원죄·죄·속죄 교리에서 비성경적·반기독교적·이교적 사상을 가졌다고 나와 있다. 총대들 의견은 분분했고, 결국 이문장 목사에 대한 이단성 보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 2014년 9월, 예장통합 99회 총회가 열린 소망교회 앞에서 이문장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이 시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 2015년 9월 열린 100회 총회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보고로 시끄러웠다. 일부 총대들은 보고 내용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거칠게 항의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3. 2016년 5월 16일. 두레교회는 한 신문에 교단 탈퇴를 공고했다.
"두레교회와 이문장 목사는 5월 8일 오후 4시에 개최된 공동의회의 결의에 따라 5월 9일 0시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을 탈퇴하였음을 공고한다."
앞서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은 5월 2일 이문장 목사를 면직·출교 판결했다. 이대위의 <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재판국은 "교단과 교회가 용납하기 어려운 이단적 괴설을 설파했고, 비성경적이고 동양 종교적 색채가 드러났다"고 했다. 노회 재판국이 판결한 정직 2년보다 징계 수위가 높았다.
수천 명이 출석하는 교회 담임목사가 이단으로 내몰리기까지 2년도 채 안 걸렸다. 이문장 목사는 2010년 3월, 김진홍 원로목사의 뒤를 이어 두레교회 2대 위임목사가 됐다. 이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과 예일대 신학부를 거쳐,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성서해석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레교회 취임 전까지 미국 고든콘웰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김진홍 목사가 시작한 '두레 장학생' 출신인 이 목사는, 소위 말하는 정통 교단 출신에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온 사람이다. 김진홍 원로목사의 총애를 받았다. 그런 그가 이단으로 낙인찍혔다.
두레교회 내부 갈등은 2013년 말부터 시작됐다. 교회 운영에 불만을 품은 장로들이 재정 의혹 등 문제를 제기했다. 재정 의혹이 해소되며 안정을 되찾는 줄 알았으나, 이 목사에 대한 '이단성' 문제 제기가 나왔다. 노회와 총회 이대위가 끼어들면서 두레교회 갈등은 깊어졌다.
이 목사는 다수 교인에게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노회와 총회는 달랐다. 2014년 12월 이대위가 이문장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판결했다. 반대 교인들은 "이단 목사는 물러가라"며 이 목사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대위는 반대 교인들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 목사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 목사가 한 설교에서 7가지 문제점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예수님의 죽음, 원죄, 속죄 △독, 해독, 죄의 소멸 △영적 세계 △종교다원주의 및 모호한 정체성 △기독교에 대한 비하 △이교적 사상과 행태 △영적 급수 등 용어에 관한 것이다.
이문장 목사는 설교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오해가 빚어진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장통합 총회 이대위가 문제 삼은 설교 내용과 이 목사의 반박·해명을 차례로 게재한다. 참고로 <두레교회 이문장 목사의 이단성에 대한 연구 보고서>와 '이대위 <연구 보고서>에 대한 이문장 목사 답변서'는 2015년 1월 <뉴스앤조이>에 게재된 바 있다.
예수님의 죽음, 원죄, 속죄에 대하여 |
다음은 이문장 목사가 설교 시간에 한 발언이다.
이대위 / 예수님의 죽음을 뱀의 죽음으로 말하는 것은 교리를 떠나 정서적으로 공감하기 힘들다. '육신 속에 들어 있던 본래의 예수님'이라는 표현 속에는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는 사상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는 칼케돈 신조(451년)에 위배되는 것으로 기독론적 오류다. 예수님의 죽음을 뱀의 죽음, 사탄의 죽음이라고 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속죄론에 완전히 위배되는 이단 사상이다. 속죄론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임당하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죽지 않고 뱀 또는 사탄이 죽었다면 속죄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실상 죽지 않았다라든지, 뱀, 사탄이 죽었다라든지 하는 주장은 이단이다. 신약성경은 결코 십자가에서 사실상 뱀이 죽었다라든지 사탄이 죽었다고 기록한 적이 없다. 원죄를 뱀에게 물린 것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원죄와 속죄에 대한 이 목사의 이단적 사상의 출발점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죽음을 해독 사건으로 표현한 것과 일관되기 때문이다. 원죄는 아담의 불순종이지 뱀(사탄)에게 물림으로써 그 독이 몸속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이런 잘못된 교리는 통일교의 이단적 원죄설과 연관된다. 통일교는 원죄를 하와와 뱀(사탄)의 성관계를 통하여 뱀의 피가 인간의 몸속에 들어온 것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재림주라는 문선명을 통한 피 가름 교설을 주장했다. 이 목사의 원죄와 속죄 사상은 통일교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구조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 뱀의 독이 인간의 몸속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해독제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이 목사는 통일교의 문선명을 구원파의 박옥수 등과 함께 동양적인 것으로 세계에 통하게 한 인물로 묘사하였으므로 그의 원죄와 죄 그리고 속죄 사상에 통일교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은 이단적 사상이지 성경에서 나온 바른 교리가 아니다. 이문장 목사 / 예수님의 죽음을 뱀의 죽음으로 말한 적 없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이고, 그 죽음과 더불어 사탄(뱀)이 멸망하게 된 것을 부연하여 설명해 주었을 뿐이다.
본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분명히 언급했다. 예수님의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것을 부인할 목회자나 신학자는 없을 것이다. 요 3:14에서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셔서, 구약의 다른 상징들도 많은데 왜 하필 '뱀'을 언급하셨는지, 그 배경에 어떤 뜻이 들어 있는 것인지 성도들에게 풀어 준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신 구원의 승리는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의 죽음을 가져온 것임을 설명해 준 것이다. 또한 '사실상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한 것은 뱀'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사실상 창 3:15에 기록된 내용, 즉 '뱀'으로 표상되는 사탄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성취된 것으로 설명해 준 것이다. '육신 속에 들어 있는 본래의 예수님'은 '인자'를 달리 표현한 말이다. 즉, 설교 본문인 요 3:14에서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고 하셨는데, 그 '인자'(Son of Man)를 달리 표현해 준 것이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여 설명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같은 설교에서 본인은 '인자' 예수님을 '육신으로 이 땅에 사셨던 그 예수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014년 4월 13일 종려 주일 설교에서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를 본문으로 설교했다. 예수님은 '인자'로서 본래 하늘에 계셨던 분인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다고 설교했다. 설교의 요지와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이미 이러한 내용으로 종려 주일 설교를 들은 두레교회 성도들은 '인자'에 대한 전 이해(pre-understanding)를 가지고 있어서, '육신 속에 들어 있는 본래의 예수님' 또는 '육신으로 이 땅을 사셨던 그 예수님'을 말하면 그것이 '인자'를 언급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으나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격으로 계셨던 그 '인자'이며, '권세와 나라와 영광'을 갖고 계시는 그 '인자'라는 사실을 반복하여 언급한 것이다. 복음서에는 소위 '오심 어법(elthon-sayings)'이 있는데, 예수님은 종종 "내가 온 것은(I came…)", "인자가 온 것은(The Son of Man came…)" 등의 어법을 사용하셔서,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요 3:14 본문도 이러한 '오심 어법'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자'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선재하셨던 분이시라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알려 주려는 차원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연구 보고서>의 어법을 빌리자면, 본인은 그리스도의 신성(인자 예수님)과 인성(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구별하여 언급한 것이지, 분리를 말한 것이 아니다. |
독, 해독, 죄의 소멸에 대하여 |
다음은 이문장 목사가 설교 시간에 한 발언이다.
이대위 / 이 목사의 주장은 우리가 믿을 때 원죄가 소멸된다고 주장하는 결과가 된다. 원죄의 죄가 다 소멸된다는 것은 구원파로 분류되는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목사는 박옥수 씨를 통일교의 문선명과 더불어 세계에 통하는 한국의 인물로 거론한 적이 있는데 이런 사상은 문선명과 박옥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다고 인간의 죄가 다 해독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전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지 우리의 죄가 다 녹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얻는 칭의는 죄가 있지만 의롭다고 여김받는 것이지(simul iustus et peccator) 원죄의 소멸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죄를 몸속에 들어온 뱀의 독, 사탄의 독으로 여기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 독이 다 해독된다는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지어낸 것일 뿐이다. 이문장 목사 / 본인은 '성도의 확신' 시리즈 '성경 연구'를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통일교 문선명과 구원파 박옥수를 동양적인 것으로 세계에 통하게 한 인물로 묘사한 적이 없다. <연구 보고서>는 본인이 강의에서 문선명과 박옥수를 언급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가 성경을 연구하고 깨달은 것을 가지고 세계 교회를 섬겨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고, 서구 교회도 한국교회의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이제는 우리가 분발할 때가 되었다는 취지로 강의한 것이다. 서구 신학을 충분히 배운 한국교회가 이제는 한국적(아시아적) 시각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을 정리하여 서구와 세계 기독교인들을 섬겨야 한다는 도전을 한 것이다. 엉터리 같은 이단들은 한국적(동양적)인 것을 가지고 전 세계로 나가서 설치고 다니는데, 정통 교회요 정통 신학을 가진 우리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라고 도전하는 맥락에서 통일교와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를 예로 들었을 뿐이다.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본인은 원죄를 뱀에게 물린 것으로 표현한 적이 없다. 아담이 뱀의 유혹(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사실을 뱀에게 물린 것으로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즉, 아담이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을 '뱀에게 물렸다'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요즘에도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성적으로 타락하게 된 현상을 '꽃뱀에게 물렸다'라고 표현하듯이, 성도들이 아담의 불순종과 그 결과를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한 것이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와 영원히 죽게 된 우리 자신의 현실을 뱀에게 물려 죽게 된 것으로 설명하여 성도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일종의 예화적 차원에서 설명해 준 것이다. 아담의 불순종과 뱀에 물린 것을 별개로 언급한 적이 없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물에 빠졌다'는 '그림 언어'로 언급하시고,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과 같은 차원의 그림 언어에 해당한다. 즉, '물에 빠져 죽어 간다'와 '뱀에 물려 죽어 간다'는 것은 인류의 상태를 설명하는 같은 그림 언어다. 따라서 광야에서 뱀에 물려 죽어 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들어 올린 뱀을 보고 살아났던 것처럼, 죄악에 물들어 살던 인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살아나게 된다는 사실을 그림 언어로 설명한 것이다. <연구 보고서>가 인용한 설교에서도 본인은 아담의 불순종이 죄의 기원(원죄)임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본인은 고난주간 두 번째 새벽 예배 설교 "많은 열매를 맺는 씨앗"에서도 아담의 불순종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또한 본인은 '많은 열매를 맺는 씨앗' 설교 안에서 아담의 불순종과 함께 예수님의 대속적 십자가 죽음도 뚜렷하게 강조했다.
이것은 아담의 불순종(타락)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와 죄와 죽음과 사탄에 종노릇하며 살던 인류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음으로 '예수 안에서' 믿음을 통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사실을 구구이 풀이한 것이다. |
영적 세계에 대하여 |
다음은 이 목사가 설교 시간에 한 발언이다.
이대위 / 이 목사는 성경 연구를 통하여 취득하게 되는 영적 세계가 우리나라의 무속 세계를 포함한 다른 종교들에서 경험된다는 신비한 세계와 같은 차원의 것으로 생각한다. 동양 특히 한국 무속인들의 귀신의 세계와 성경의 영적 세계를 동질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경과 무속적 세계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다. 그의 가르침은 교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게 할 뿐더러 무속적인 세계를 신앙 속으로 끌어들이는 통로로 이용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 계시의 세계와 이교적 신비 세계를 동일시하는 것으로서 종교다원주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문장 목사 / 본인은 싱가폴 트리니티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2002년에 장로회신학대학교(김중은 총장)에 초청을 받아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신학하기'라는 주제로 다섯 차례 공개 특강을 하였고, 그때에도 동일한 도전을 던졌다. 또한 미국 고든콘웰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2008년에는 대전 침례교 신학교에서 개최된 '한국기독교학회'에 해외 신학자 초청 강의에 초청을 받아 (노영상 박사 초청) 전국에서 모인 500여 명의 신학자 교수님들에게 '한국적 신학(교육)의 방향성'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동일한 도전을 던진 적이 있다. 본인은 고든콘웰신학교에서 신약신학을(Th.M.), 예일대 신학부에서 신약학을(S.T.M.), 그리고 에든버러대학에서 성서해석학으로 박사 학위를(Ph.D.) 받았으며, '아시아적 성서해석학'이 주 연구 분야인데, '아시아적 성서해석학'의 맥락도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서구로부터 기독교를 전래받은 이래 서구로부터 성경과 신학을 배웠다. 각 문화권마다 사각지대가(cultural blind spot) 있어서, 한 문화권이 성경의 진리를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다. 서구의 정신세계는 계몽주의 이후 성경적 세계관과 결별할 정도로 세속화되어 왔다. 서구의 계몽주의적 세계관(합리주의, 이성주의, 실증주의 등)에 영향을 받은 서구의 성서학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깨닫는 데 한계를 느끼고 또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성서 해석에 문제가 있고, 복음주의자인 영국의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의 성서해석도 합리주의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영적 세계에 대한 감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제는 한국(아시아) 기독교인들의 시각에서 성경을 연구하여 깨달은 내용을 가지고 서구 기독교를 돕고 가르쳐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서구인의 시각에는 보이지 않는 성경의 진리를 한국인(아시아인)의 시각에서 깨달을 수 있는 해석학적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성도의 확신'에서 강의한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을 육성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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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및 모호한 정체성에 대하여 |
이대위 / 이 목사는 2014년 1월 5일 주일예배 설교 시간에 <마음 깨침>이라는 책의 표지를 화면에 띄워 회중들에게 보여 주면서 소개했다. 그 책은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한 사람의 반(反)기독교적 주장이 잔뜩 들어 있는 바 대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교 서적인 <마음 깨침> 속에는 위와 같이 성경을 인간이 인간을 세뇌시키고 지배하기 위해 만든 결과물이라거나 우리 육신은 절대 부활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반기독교적 주장이 강하게 들어 있다. 설령 그 책 속에 교양에 도움이 될 만한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성경과 기독교의 핵심 사상(성경의 권위, 부활 등)을 부정하는 주장이 들어 있다면 목회자가 회중들에게, 그것도 대예배 시간에 그 책의 표지를 들고 나와 보여 주며 추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성경적 신앙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극단적 반기독교적 내용이 들어 있는 책을 양떼들에게 권했다는 것은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이문장 목사 / 본인은 <마음 깨침>이라는 책을 설교 중에 성도들에게 추천한 사실이 없다. 2014년 신년 첫 주일 설교에서 한 해 주제인 '말씀으로 흥왕하는 교회'를 설교하면서, 네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기(수도원 전통). 둘째, 우리 안에 있는 육신과 세상 버리기(청교도 전통 self-mortification). 셋째, 세상을 사는 하늘 지혜, 실천적 지혜 얻기(성서학 전통). 넷째,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 받기(카리스마 전통)'다. 본인은 두 번째 설교 요지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불교의 <마음 깨침>과 힌두교의 <Freedom through Inner Renunciation(내면의 버리기를 통한 자유함)>이라는 두 권의 책 겉표지만 화면에 띄워 주었다. 그것은 그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마음 공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고, 기독교인들이야말로 마음 공부의 원조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즉,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 부인'과 '육에 대하여 날마다 죽은 삶'이 있어야 하고, 이런 부분에서 타 종교 사람들보다 한 수 우위에 있어야 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종교성이 강한 한국인(아시아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결국 그렇게 되어야 전도가 가능하고 한국(아시아)를 복음화할 수 있게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면서 육신에 대해 죽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자고 도전을 던진 것이다. 관련된 부분의 설교 내용을 육성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연구 보고서>는 <마음 깨침>이라는 책에서 '무신론, 창조 부인, 계시 부인, 성경 비하, 기독교 비하, 부활 부정' 등의 내용을 찾아 마치 본인도 그러한 내용에 동의 내지 동조한다는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 이것은 <마음 깨침>이라는 책을 샅샅이 뒤져서 본인에게 해가 될 만한 내용, 본인의 이단성을 주장하는 데 쓸 만한 내용을 찾아내려 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마치 어느 목회자가 설교에서 "몰몬교라는 이단은 몰몬 태버내클 합창단의 높은 수준의 음악성을 앞세워 성도들을 미혹한다"라고 한 것을, "목사가 몰몬교에 다녔다. 그래서 이단이다"라는 식으로 모함하여 이단으로 모는 사례와 흡사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연구위원들조차 사실관계를 확인한다거나 진상을 규명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이런 의도적인 조작을 행한다면 선량한 목회자들은 이런 억울한 모함과 누명을 쓰게 되었을 때 어디에 호소를 하고 누구를 의지할 수 있겠는가? |
기독교에 대한 비하에 대하여 |
다음은 이 목사가 한 발언이다.
이대위 / 현재의 기독교와 신학교가 문제가 많이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사람이 깔고 앉은 돌과 대화를 못한다고 해서 기독교를 맹탕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신학교에서 그런 것을 안 가르쳐 주니까 맹탕 기독교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는 이상한 기독교를 추구하는 듯하다. 이상한 세계, 곧 입산수도하여 도를 닦음으로써 여러 가지 신비한 현상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추구한다기보다 이교도들의 소위 도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며, 기독교까지도 그런 범주에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문장 목사 / 본인이 한국과 아시아의 종교적 배경에서 회람되는 이야기들을 종종 소개하는 이유는, 그것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또한 아시아 선교학자로서 한국인(아시아인)이 어떤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그들의 삶의 정황(life-situation)과 종교적 인식을 형성한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익숙해 있는 종교적 현상들을 지적하고, 한국과 아시아인의 종교적 심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기독교가 한국인(아시아인)의 마음을 얻고, 우리의 삶과 토양에 복음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또한 타 종교 세계에서의 종교 체험과 수련 수행 방법을 간혹 언급하는 것도 한국(아시아)의 기독교인과 신학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즉, 기독교의 영성이나 도덕적 실천이 타 종교의 영성이나 종교적 감화력을 능가해야 한다는 전도적 및 선교적 관심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가 한국(아시아) 백성에게 비난을 받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비판을 하지만, 그것은 "이상한 세계, 곧 입산수도하여 도를 닦음으로서 여러 가지 신비한 현상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추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이교도의 소위 도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며, 기독교까지도 그런 범주에서 이해"하려는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본인이 교회와 신학교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기독교가 타 종교보다 더 나은 모습, 더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국과 아시아에서 복음 전파와 선교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결국 기독교가 한국인(아시아인)의 "현장 신앙"(actual belief)이 될 수 있는데, 교회와 특히 신학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반성하자고 요청하려는 것이다. 한국인(아시아인)이 기독교를 "한국인(아시아인)의 종교"로 인식하게 되고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그 일에 중추 역할을 해야 할 신학교가 한계를 드러내고 신학 교육의 갱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기독교가 복음성, 사상성, 운동성에 있어 한국인(아시아인)의 종교적 인식과 경험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다. 초대 기독교는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을 실전 상황에서 실천하는 일(logos·사역)과 표적과 기사가 따른 일(charisma·사역) 두 가지 측면이 통전되어 유럽 사회를 복음화했듯이, 21세기에 초대 기독교의 모습을 회복해야 세계 복음화가 가능할 터인데, 본인은 그것이야말로 오랜 세월 종교적 및 영적인 환경을 모판과 토양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아시아)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주어야 할 역할임을 강조했다. 본인은 신학교 교육에 대하여 여러 차례 강의와 강연도 하였고, 논문도 다수 발표했다. 특히 본인의 은사이신 월즈(Andrew F. Walls) 박사를 기념하는 논총에서 '21세기 신학 교육'에 대한 주제 청탁을 받고 'Theological Education as Embodiment of Jesus(신학 교육과 예수님 체득)'이라는 글을 실은 적 있다. 현재의 신학 교육을 비판하는 맥락은 주로 서구 신학 교육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이고, 서구 신학교의 '학제(academic schooling)'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교회와 한국 신학교가 이제는 서구가 잃어 가고 있는 영적 감수성을 토대로 새로운 신학 교육을 조타해 내어 세계 기독교에 기여를 해 주어야 할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신학교에 대하여, seminary(신학교)가 cemetery(공동묘지)가 되었다는 말은 서구 신학교 안에서조차 공공연히 하고 있다. 신학교가 불이 붙어 입학하는 신입생들의 불을 끄는 소방서 역할을 한다는 말도 한다. 신학교 교육을 받으면 입학할 때보다 덜 종교적(less religious/ less spiritual)인 사람들로 만들어 졸업시킨다는 말도 한다. 한국(아시아)의 목회 현장은 깊은 영성과 말씀 훈련을 받은 영적 지도자들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학교가 그런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많은 사람이 많은 방식으로 지적하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신학 교육을 받아서는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 뿌리 깊은 종교적 토양에 태어나고 살아온 한국(아시아)의 백성들을 감화 감동을 시키기 어렵고, 따라서 이제는 말씀(logos)과 능력(charisma)를 제대로 갖춘 영적 지도자들을 배출해 내지 않으면 기독교의 미래가 어둡다는 사실을 그동안 강의와 강연들을 통해 누누이 역설해 왔다. |
영적 급수 등 용어에 대하여 |
다음은 이 목사가 한 발언이다.
이대위 / 이 목사는 영의 세계의 급수를 운운하면서, 신자들을 영적 고수와 하수로 나눈다. 이런 언행은 영적 히에라르키를 구축하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지배하는 근거가 되는 것으로써 위험한 사상이다. 다른 사람의 영적 상태에 대해 급수를 매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날뿐더러 영적 교만을 조장할 것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도, 도인, 실력자, 고수, 급수 등의 용어들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은혜의 진리와 거리가 먼 자기 수행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들이다. 이런 용어들은 교인들로 하여금 성경이 가르치는 은혜의 진리가 아니라 수행의 도, 즉 일종의 율법주의로 향하게 만들 것이다. 이문장 목사 / 본인은 성도들의 영적 급수를 매겨 본 일도, 고수와 하수로 나눈 적도 없다. 본인이 도, 도인, 고수, 실력자 등의 용어들을 사용한 것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독려하고 예수님 닮기에 분발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지, "아무개 장로님은 몇 급입니다"는 식으로 성도들에게 적용한 적이 전혀 없다. 영적인 고수와 하수를 언급한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적 성장과 관련한 가르침을 한국 성도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이미 문화적으로 친숙한 개념들을 동원하여 설명한 것이고, 이것은 선교학에서, 복음의 타 문화권 전달(cross-cultural communication)에 있어 현지 용어와 개념을 동원하여 복음을 전달하는 한 유형에 해당할 뿐이다. 초대교회에서부터 기독교 신학과 복음 이해의 지평은 '상징 빼앗기(symbol stealing)'를 통해 확장되었고, 현지 문화권에서 사용하던 용어들을 기독교화(christiainize)한 일은 항상 있어 온 일이다.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보다는 "주(kyrios)"로 소개한 일이나, 헬라 철학의 "로고스(logos)" 개념을 기독교 신학에 도입한 것이나, 중국 개신교에서 하나님을 "상제(Shang-ti)"로 번역하고 부르는 일과 같다. 한국인들은 태권도나 바둑 등 '급수 문화'에 익숙해 있어 영적 성장이나 말씀 체득, 예수님 닮기 등을 급수 개념으로 설명하여 이해를 돕고 분발하도록 도전을 던지기 위하여 사용한 것뿐이다. |
▲ 예장통합 이대위는 이문장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이대위와 이문장 목사의 결론 |
이대위 / 위 연구 내용을 종합하면, 이문장 목사는 교회가 용납할 수 없는 이상한 사상을 가르쳐 온 것이 확인된다. 원죄, 죄, 속죄의 교리에서 비(非)성경적, 반(反)기독교적, 이교(異敎)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등에서도 위험한 사상이 두루 발견된다. 특히 원죄를 뱀(사탄)에 물려 그 독이 몸속에 퍼진 것으로 본 것, 속죄를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해독 사건으로 본 것은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또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한 오류(칼케돈 신조 위배), 성경이 가르치는 영적 세계와 무속적 세계와의 구분이 모호한 점, 종교다원주의적 경향 등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따라서 이문장 목사는 장로교회의 목회자로서 회중들을 영적으로 지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단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사료된다. 이문장 목사 / 설교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일부 표현상 공연히 오해할 여지도 있을 수 있다고 사료되지만, 2014년 고난주간 새벽 예배에서 행한 본인의 설교 내용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본인이 간혹 아시아 제 종교의 다양한 종교 현상들이나 체험들 그리고 개념들을 사용하여 성경을 풀이하는 데 이용하고 강의에서 언급하는 이유는 아시아의 다원 종교적 상황, 특히 전통 종교가 새로이 부흥하는 시점에 복음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아시아 복음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선교적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지독하게 전통적인 종교적 감성이 살아 있고 전통 종교의 다양한 종교 현상, 체험 및 기적적 이야기들에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와 아시아 교회가 초대 기독교와 같이 말씀과 은사 능력의 통전을 이루어야 아시아 선교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아시아 복음화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러한 도전을 던지는 과정에서 한국교회 성도들이 성경의 진리를 좀 더 실감나고 현장감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이미 익숙한 전통적인 개념들과 종교적 현상들을 예화로 사용하여 전달하려고 한 것이다. <연구 보고서>는 고소인들이 제출한 한정된 자료를 근거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결론을 내리고 있는 바, 본인의 설교나 강의 혹은 저술 등 좀 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