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산악회.혼조산악회 일본 초카이산 스키등반
4월 눈보라는 알프스보다 매서웠다 글·사진 김병구 양정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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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3일 눈보라 치는 초카이산 정상에 오른 양정·혼조산악회원들. |
설마 했던 일기예보가 적중하고 있었다.
숙소인 유스플라토(Youth Plateau) 양철지붕을 장맛비처럼 굵은 빗줄기가 새벽부터 시끄럽게 때리고 있었다. 숙소에서 미소국에 아침을 먹으며 계속 눈은 창밖만을 주시했다.
오히려 동이 트며 기온은 올라갔을 텐데 굵은 빗줄기는 함박눈으로 변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고맙게도 숙소에서 등반팀 전원의 점심으로 주먹밥을 마련해 주었다.
하나씩 챙겨들고 산행 입구까지 이동해줄 버스에 오른다.
우리 양정산악회는 이곳 일본 아키타(秋田)의 혼조(本莊)고등학교OB인 혼조산악회와 1968년 동계 설악산등반을 계기로 교류등반이 시작되어 이번에 세 번째 초카이산(鳥海山) 합동등반을 갖게 되었다. 우리 측에서 참가한 인원은 65세 대선배부터 18세 재학생, 그리고 지도교사, 형수님들까지 모두 33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초카이산 등반에 나선 인원은 정기범 회장을 비롯해서 모두 18명으로 이들 중에서 ‘2005년 양정창학 100주년 기념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대원을 선발하게 되어 있었다.
숙소를 떠난 버스는 눈으로 통제된 길을 30여 분간 올라 우리를 내려놓았다. 도로 옆 겨우내 치웠을 눈이 3m는 족히 되어 보인다.
혼조산악회 쇼지 아키오(莊司昭夫) 회장을 비롯해서 4명의 대원이 산악스키를 신고 앞장을 섰다. 스키등반, 나에겐 몸에 배지 않은 낯선 몸짓이지만, 최대한 숙지한다는 목표로 꺼내 신는다.
‘데와후지’라고도 불리는 초카이산은 야마카타와 아키타현에 걸쳐있는 휴화산이다. 표고는 2236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엄청난 적설량과 멋진 경치를 자랑하며 등산객들을 불러 모은다.
아키타 공항에 비치된 안내 책자의 짧은 글과 인터넷으로 본 사진 몇 장 그리고 20여 년 전 형들의 등반 경험, 이것이 내가 아는 초카이산의 전부였다.
양옆의 터널처럼 눈이 쌓인 도로를 벗어나니 세찬 바람이 그대로 온몸에 부딪힌다.
눈이 수평으로 날아와 그대로 얼굴을 때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처박고 한 줄로 나아간다. 오늘의 목적지는 하라이가와 산장.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한발 한발 나아갈 뿐 미친 듯 불어대는 바람 탓에 대화도 휴식도 없다. 도로 옆 구릉을 오르는 길이라 경사도 없이 완만한 길로만 이어지는데 초강력 바람에 실려 오는 얼음 알갱이 탓에 주위를 둘러볼 틈 없이 스키만 밀어댈 뿐이다. 스키가 없는 대원들은 설피를 신고 운행했다.
그렇게 세 시간 가량 전진하니 적설기가 아니면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고마노즈 주차장이다. 여기서 산장은 불과 200여m 앞에 모습을 보인다.
하라이가와 산장(1250m)은 5월부터 9월까지만 관리인이 상주하여 1박에 1370엔을 받고 유료로 운영되지만, 지금처럼 적설기에는 무료로 대피소 역할을 한다.
산장은 2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은 관리인실, 화장실, 취사실과 아담한 홀이 있어 식사하기에 좋고, 2층은 침대방과 다다미방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수용 인원은 100명 정도라고 한다. 주먹밥으로 점심을 챙겨먹고, 온통 젖어버린 옷가지를 말리며 산장을 둘러본다. 산장 바로 앞으로 맑은 물이 흘러 식수로 쓸 수 있고, 주변은 캠프장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밤이 되어도 미친 듯 불어대는 바람은 그칠 줄 모른다. 내일 새벽에는 4시에 기상하여 날씨를 살펴본 후 출발하기로 하고 오후 9시 취침한다.
바람은 어제보다 멎은 듯하다. 쉴 새 없이 요동치던 창문이 잠잠할 때가 있다. 알파미로 아침을 해결하고 동이 트니 시야가 어제보다는 한결 좋다. 눈은 내리고 있지만 폭설은 아니다.
6시 다시 스키를 신고 출발한다.
산허리를 오르내리면서 북쪽으로 계속해서 트래버스해 나아간다. 오늘 우리가 오를 루트는 적설기에만 가능한 북벽 루트이다. 산장에서 정상을 바로하고 우측으로만 나아간다.
세 시간을 전진하니 왼쪽으로 북벽이 나타나고 더 나아가면 북릉으로 이어지는 포인트가 나온다. 이 갈림길을 토리츠키라 부른다.
북벽에 붙기 위해 스키를 배낭에 달고, 아이젠을 착용한다. 40° 정도의 설벽이 이어진다.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지만, 노출된 벽에 붙으니 지겨운 바람이 다시 불어댄다. 피할 곳 하나 없이 이어지는 설벽은 오르면 오를수록 위압감을 준다.
정신 바짝 차리고 차분히 아이젠을 깊이 박고 한발 한발 나아간다. 고도계는 1950m. 이 지점부터는 직상하던 설벽에서 왼쪽 바위지대로 나아간다.
며칠 전까지 기온이 높았던지 간간이 나오는 얼음 구간은 다시금 긴장을 하게 한다. 주머니 속에 초콜릿 하나 꺼내 물고 싶던 마음도 사라지고 불어대는 눈보라 때문에 다시 발걸음만 재촉한다.
바위 구간을 넘어서니 완만한 설원이 나온다. 시계가 좋지 않다. 설원을 지나니 악어 등가죽같이 눈이 달라붙어 있는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정상이다. 바위 밑에 배낭을 벗어두고 깃발을 챙겨들고 정상에 섰다. 11시 45분, 6시간 만이다.
초카이산은 두 개의 봉으로 되어있다. 정상인 신산(新山·2236m)과 시치코산(2230m)이다.
하산은 시치코산으로 잡고 나아가니 북릉을 통해 오르던 팀과 만난다. 시간상 다같이 시치코산 정상으로 향한다. 12시 40분, 시치코산 정상에 올라 함께 기념촬영을 한다. 한번쯤 보여줄 만도 한데, 여전히 파노라마는 보여주지 않는다. 초카이산, 새가 많고 바다가 보인다 하여 ‘초카이산(鳥海山)’일 텐데 우리에겐 행운이 따르질 않는다. 지긋지긋한 바람만 불 뿐….
하산길은 힘들게 메고 온 스키 덕을 단단히 볼 참이었다. 그러나 미숙한 나의 스키 실력과 세상이 온통 하얗게만 보이는 화이트 아웃 그리고 처음 경험해 보는 자연설에서의 활강. 나는 이리 고꾸라지고 저리 처박히며 지친 대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크레바스나 위험 구간은 없어 나 같은 초보자에게도 스키등반에 부족함이 없는 좋은 대상지인 것 같다. 도망치듯 어두워지기 전에 초카이산을 떠나 다시 유스플라토에 도착한 것이 오후 6시, 꼭 12시간의 산행이었다.
4월 4일. 오늘은 일본 혼조산악회와 양정산악회의 합동등반하는 날이다.
혼조산악회의 쇼지 회장 말로는 설상 위의 하이킹이라는 기사카타 루트 등반이다. 어제의 눈과 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화창한 봄볕이 오히려 야속하다.
산행 초입지에 모인 혼조팀 39명과 양정 33명 대식구가 삼삼오오 섞여 너도밤나무 숲 설원을 걷는다.
장비도 제각각이다. 물푸레나무 설피부터 노르딕 스키까지 각양각색으로 봄볕을 받아 빛나는 설원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거닌다.
거닐다 설동을 하나 만났는데 우리처럼 산비탈이 아닌 길가에 수직으로 내려 파내었다. 적설량을 짐작케 한다.
숲을 빠져나와 조그만 언덕을 올라서니 우리에겐 동해지만 여기에서는 서해가 되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닷가의 조그마한 마을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한번도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초카이산이 선명히 들어선다. 정말 장관이고 멋지다. 대설원까지 세 시간 여의 짧은 합동등반을 마치고 산행 일정을 모두 접는다.
낯선 스키등반을 조금은 익숙하게 만들어주고, 또한 일본 산악인들과의 우정도 돈독히 하는 의미 있는 산행이었던 것 같다.
이번 행사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준비했다는 혼조산악회원들의 성의와 철저한 준비정신이 인상 깊었고, 5월까지 산악스키를 즐긴다는 일본의 산악 환경이 부러웠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우리와 전혀 다른 자연환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초카이산을 찾게 될 희망을 가져본다.
멋진 활강으로 설사면을 헤치며 질주하는 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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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 산악스키와 설피를 신고 하라이가와 산장에 올랐다. |
Interview
아키타현 길잡이
볼거리
초카이산(2236m)
해안에서 정상까지 15㎞밖에 되지 않는 외딴 산봉우리 초카이산은 쓰시마 난류의 영향으로 산 동서편의 식생이 달라 풍취를 달리하는 등산 루트를 즐길 수 있다.
야생꽃밭이 볼 만하며 너도밤나무, 졸참나무 등의 풍부한 산림에는 용수지나 습지, 폭포가 산재하는 등 아름다운 매력을 가진 산이다.
다자와호
일본에서 가장 깊은 수심을 자랑하는 호수.
다마가와에서 흘러 들어오는 강한 산수성의 영향으로 깊은 푸른빛을 띤다.
오가반도
기암괴석과 절벽이 절경을 이룬다.
보기 드문 폭렬화구 등 동해의 침식활동과 화산활동이 빚어낸 경관이 변화무쌍하여 보는 이를 압도한다.
즐길거리
골프장
츠바키다이 컨트리클럽, 아키다 컨트리클럽, 다이헤야마 컨트리클럽, 로얄센추리클럽 등 여러 개의 골프장이 있다.
스키장
아키타현 다자와코 스키장, 다자와코 모리요시 스키장, 모리요시산 아니 스키장 등에서 5월까지 산악스키를 즐길 수 있다.
온천
라듐 성분이 녹아있는 강산성 온천 다마가와 온천,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해 풍광이 좋은 뉴토 온천향, 온천과 함께 맛볼 수 있는 이시야키 요리가 매력적인 오가 온천향, 대자연에 둘러싸인 보양지로 산악인에게 특히 사랑받는 하치만타이 온천향, 온천 수질이 나트륨·칼슘 염화물로 유명한 모리타케 온천향, 산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그대로 사용되는 노천온천인 오유온천 등 아키타현 어느 지역에도 온천이 있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먹거리
특히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인 아키타현은 기리탄포, 이시야키(돌구이), 아키타 일본주, 하나이 토종닭, 도루묵 초밥, 이아니와 우동, 조개구이, 돌굴 등의 음식으로 유명하다.
항공편
인천↔아키타간 항공편은 현재 대한항공에서 월·목·토 각각 1편씩 일주일에 3편 운항하고 있으며, 여행 일정은 3일에서 6일 정도로 다양하게 잡을 수 있다.
자료제공 : 혜초여행사(02-733-3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