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1만년 대한민족-대한민국 역사
고대 중국인들이 야만인 땅으로 매도한 만리장성 이북의 홍산문명의 의미
단군왕검의 신하로서 한국의 후손들이 살고 있던 중국.인도.중동지역까지 순방하면서 단국한국의 홍익정신을 전하고 동족으로써 친선하였던 유호의 아들인 순임금 때부터 단군한국의 감독을 받으며 중국지역을 다스렸던 은나라를 주나라 무왕이 결국 단군한국의 승인을 얻어 멸망시키고 난하이남의 동이국가들을 지배하며 천자국 행세를 하면서부터 주나라 이후부터 고대 중국 사람들은 황하지역 외에 만리장성 밖은 다 미개한 야만인들의 땅으로 보았다.
실제로 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만주 일대에서는 변변한 문화 유적이 발견된 적도 없었고,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면 모두 황하문명 지역에서 전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하늘 역사의 흐름과 맞물려 대한민족의 기운이 용솟음치는 에너너가 되는 [환단고기]가 세상에 출현하게 되는 1980년 초 만리장성 북쪽 요서 지방 일대에서 어마어마한 신석기 유적이 무더기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게 요하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홍산문명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기원전 7천 년까지 올라가는 소하서문화가 가장 이른 시기인데, 그보다 더 이른 시기의 유적과 유물이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요하지역의 홍산문명의 특징은 여신상과 여신전을 만들어 섬기고 제사를 지내는 모계문화였다는 사실이며,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원형제단과 적석총 문화였으며, 빗살무늬토기.옥.봉황.용.곰토템.암각화 문화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하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서남해 지역에서 시작하여 북유럽까지 이어지는 고대의 한류문화다.
요하지역의 옥보다 출토연대가 수천년 소급되는 제주지역의 옥과 봉황도 서남해 지역의 문화다. 고대에 사라진 마대륙과 연관되는 오키나와 지역은 거대한 피라미드가 해저에서 발견된 지역으로 오키나와라는 말은 한국말 "옥이나와"가 정확한 표기라 할 것이다. 즉 옥문화는 고대에 사라진 마대륙 문명이였다고 볼 수가 있다. 마대륙이 사라진 이후에 마대륙인들의 이주와 함께 오키나와와 서남해 지역을 거쳐 요하지역까지 이어 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곰토템은 서남해 지역의 고인돌에 새긴 북두칠성 별자리와 연관된다 할 것이다. 즉 북두칠성은 마고를 의미하는 별자리로 동물로는 곰의 형상을 닮았다. 그래서 북두칠성은 우리 해민족의 별자리가 되는 것이며, 어쩌면 우리 해민족이 떠나온 고향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장례식 때 북두칠성 자리로 혼이 잘 돌아 가기를 빌면서 망자가 눕는 관에는 북두칠성을 새겨 넣은 널판을 까는 장례풍습이 있었다. 이 널판을 지고 묻혀야 망자가 편안히 저승에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민족이 북두칠성에서 지구땅으로 왔다는 시원성을 의미하는 풍습이다.
따라서 고대 지구문명과 관련하여 태평양 지역에서 사라진 마대륙인들이 북두칠성 자리에서 지구땅으로 이주해 온 우주인들인지도 연구해 볼만한 흥미로운 문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 단군한국사까지 중국사에 편입시켜 한반도인들까지 중국화하여 지배하겠다는 장기적 꼼수가 내재되어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그 뿌리가 서남해를 중심으로 한반도땅임이 입증될 때 무너지는 것이다.
여신상과 여신전을 만들어 섬기고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은 우리 대한민족의 시왕모.할머니가 되는 마고를 섬겼다는 마고족의 문명이 요하문명이라는 명백한 고고학적 사료라 할 수 있다. 세계 최다 고인돌 지역인 전라도 지역의 남방식 고인돌 양식에서 발전한 석관양식의 적석총과 3단 원형제단은 하늘.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천신족인 한웅족의 문화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백두산 지역의 한웅족이 요하지역으로 이주해 와서 마고웅족과 더불어 살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계 피라미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원시형의 적석총은 압록강지역이 세계 최다로 1만 2천기에 달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 이전부터 압록강지역이 한웅배달족의 문화인 적석총의 고향이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12환국연방의 중심국가인 환인씨의 파나루국이 존재했던 흑룡강지역에서 남하한 한웅족이 불함산.태백산(백두산)에서 하나님께 홍익인간의 통치를 맹세하고 배달국을 세우고, 요하를 중심으로 신시를 건설했다고 할 수 있다. 부여 동명왕과 고추모가 수도를 삼을 만큼 중시했던 압록강지역의 수만기 적석총은 그러한 배달국의 역사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웅족출신으로 황하지역의 화하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중국의 동이족을 모아서 배달국 치우천왕에 도전했던 공손헌원씨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배달국의 신시를 백두산 지역에서 중국지역으로 천도한 이후부터 중국지역은 배달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역이 된다. 백두산 지역의 치우족은 강성해져 중국.티벳.중동.이집트까지 이주하여 번성하였다.
단군한국 초기에 권력집단 상징물은 비파형 청동검인데, 홍산문명으로 유명한 요서지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다. [환단고기]에서 "웅족 중에 단국이 가장 강성했다."라는 기록내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즉, 요하지역의 홍산문명의 중심세력은 바로 배달국 말기의 국가질서를 바로 세우고 단군한국을 세운 단군왕검을 배출한 단족이라는 사실이다. 단국은 바로 단족의 나라가 될 것이다. 즉, 18대 거불단 환웅천왕의 황후이며 단군왕검의 어머니가 되는 웅녀의 나라가 돌 것이다. 단군왕검은 단군한국의 임금에 오르기 전에 외할아버지가 왕으로 다스리던 단국의 비왕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
단군왕검의 외할아버지가 왕으로 다스리는 단국이 요하문명의 주역인 웅족 중에서 세력이 가장 강성했다는 기록내용만으로 단군왕검이 배달국 말기의 질서를 바로 잡고 웅족을 통합하고, 거불단 환웅천왕의 황태자로서 만주지역의 환족(숙신)도 쉽게 통합하여 단군한국을 건설했다 할 것이다.
그런데, 단국의 수도는 어디였을까? 비파청동검이 가장 많이 출토된 지역이 조양(아침의 태양)지역이기 때문에 조양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단군왕검은 홍산문명의 중심지가 되는 요서지역을 통치할 불한(불해)은 치우천왕의 후손 치두남에게 맡기고, 마고한국의 땅한 한반도을 통치할 마한(마고해)은 웅족(마고족)인 웅백다에게 맡긴 후에 백두산에 올라 하나님께 홍익인간의 통치를 맹세하고, 안파견 환인이 건설한 12환국의 중심지역이며 농사짓기 비옥하고 외침에도 안전한 송화강 지역에 황검성을 잡고 신한(신해)이 되어 만주지역을 다스렸다고 할 수 있다. 송화강 지역은 고고학적으로도 단군한국의 청동기 문명이 일찌기 발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윤복현
[영상자료]기원전 7천년까지 올라 가는 요하지역의 한국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