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morning 36! / 요즘 내가 살아가는 얘기
1. 고향 다녀 온 얘기
덥습니다. 우리 집은 10층 인데 창문을 열어놔도 바람이 별로입니다. 저는 요 며칠 내내 고향 춘천에 일이 있어서 전철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그런데 그저께 아흔 넷 되신 큰 고모님께서 오만원 짜리 지폐 두 장을 제게 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고 제 머리에 남아있네요.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
그저께 점심때입니다. 춘천시 온의동에 사시는 큰고모님 댁에는 서울에서 나와 같은 일로 내려온 친지 여덟 분이 둘러앉아서 다과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함께하신 친지 분들 면면은 이렇습니다, 큰고모님(94세). 가운데 고모님(91세), 막내고모님(83세)그리고 그 자손들(거의가 70전후)이 다섯 이랬습니다. 다과를 곁들이며 나눴던 무상 하기만 한 우리들 인생살이 얘기가 잠시 소홀해질 무렵이었습니다. 큰 고모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내가 살 테니까 우리 막국수 먹으러 가자!. 춘천 왔으니 막국수는 먹고 가야지, 이 근처에도 막국수 식당은 있지만 이왕 먹을 거 시내로 나가서 먹는 게 더 났겠지? 이 말씀에, 모두들 동의를 하시더군요. 우리는 세 고모님을 모시고 남부막국수 집으로 갔습니다.
그날은 남부막국수식당이 이전 개업을 하는 첫날이었습니다. 이전 허물어져가는 좁은 기와집근처에 새로 지은 번듯한 새 건물 1, 2층이 식당이었습니다. 우리는 2층에서 막국수 여덟 그릇, 수육 두 접시와 백세주 한 병으로 참 맛있게 들 점심을 먹었습니다. 큰 고모님께서 홀을 왔다갔다하시며 뭔가를 찾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랬습니다. 계산을 하시려고 카운터를 찾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아무리 당신께서 사시겠다고는 하셨지만 큰 고모님이 돈을 내시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1층 카운터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카드를 내밀며 결재를 요청했는데 오늘이 첫 날이라 이 카드 읽는 기계에서 결재가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이 큰 고모님이 1층 카운터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용범아범아, 그러면 안 된다. 내가 내마, 이러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카드결재는 완료됐습니다. 고모님, 제가 세 고모님께 막국수 한 그릇 대접하면 안됩니까? 고모님, 됐으니 올라가시죠. 그리고 저는 고모님 팔짱을 끼고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고모님께서 슬그머니 제 바지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고모님, … 얘, 아무 소리 말고 차비하거라.
2층으로 올라오신 고모님께서는, 아, 글쎄 병석이가 막국수 값을 냈단다. 저는 친지 분들 앞에서 말 그대로 멀쑥해졌습니다. 냉철히 말 하자면 그 분들은 큰 고모님 손님들이었고 고모님께서는 그 분들께 집안의 최 연장자로서 권위 있고 진정 어린 대접을 하고 싶으셨을 텐데 그만 제 알량한 마음, 쓸데없는 오지랖이 큰 고모님의 권위에 상처를 입혀 드린 것입니다. 우리 큰 고모님께서는 제가 찾아 뵐 때마다 매번 2만, 3만 또는 5만원씩 아무도 모르게 차비하라고 제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셨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고모님, 오늘은 영선이하고 막국수 점심약속이 있어서 내려왔다고 말씀 드렸더니 영선이 막국수 사주라고 3만원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고모님, 식사대금이 78,000원이네요. 제가 계산 도와드릴 테니 돈을 제게 주세요. 했으면 됐을 것을 왜 내가 나서서 돈을 냈을까. 참 후회가 많이 됩니다. 올라오는 전철 내내 지금까지도 맘이 편치 않습니다. 세상을 제법 살았음에도 인생살이가 참 쉽지 않습니다.
Good night!
2. 안경 찾아 우면산 둘레길을 다시 간 얘기.
내가 안경을 잊어먹은 걸 알게 된 건 서울고등학교 교문 앞에 거의 다 와서였다. 아, 내가 안경을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바로 알아챘다. 그래 1차 목적지인 정자 옆 화장실근처 우리가 잠시 쉬어갔던 자리에 뒀구나. 나는 항상 안경을 두 개 갖고 다닌다. 하나는 돋보기고 다른 하나는 시력과 난시를 도와주는 안경이다. 시력이 달려서 양쪽 눈을 안쪽으로 모으며 미간을 찌푸리게 될 때, 운전 할 때 또는 영화 볼 때는 이 시력과 난시를 도와주는 안경을 쓴다. 지난 주 토요일 아침, 걷기그룹모임에서 말씀을 나누고 우면산둘레길을 들어섰을 때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써니 데이{Sunny day}’ 였다. 선 그라스를 쓸까?, 하다가 좁은 길을 가니까 이 안경을 쓰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 잃어버린 안경을 쓴 것이다. 그리고 한 50분쯤 걸어 정자근처에 왔을 때 잠시 쉬어 가면서 총무가 나눠준 유인물을 보는 데는 이 잃어버린 안경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벗어서 옆에다 놓고 대신 돋보기를 쓴 것이다.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래 중요한 건 절대로 안경을 잃어버렸네 어쩌네 하는 말씀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다. 서울고등학교 캠퍼스 한 켠 조용하고 편안한 자리를 이선생님의 모교라는 말씀 한마디에 우린 당당히 점령하고 앉았다. 점심,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비빔밥, 김밥, 샌드위치, 과일+야채 꼬챙이, 삶은 계란, 샌드위치, 쿠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etc… 아, 날씨 좋은 날 야외의 나무그늘아래서 먹는 점심은 왜 항상 맛있을까?
한 삼 년 썼으니까 도수를 다시 조정할 필요가 있을 거야, 월요일 안과에 가서 시력검사를 하고 새 안경을 맞추자. 짐짓 잃어버린 안경에 대한 아쉬움을 잊고 이 사건에 대해 결말을 지은듯했지만 마음 한 켠은 생각만큼 정리가 된 건 아니었다. 아직도 사용함에 전혀 불편하지 않은 안경이라는 생각, 나이 들어감에 따라 잦아진 분실사건에 대해 느끼는 쓸쓸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정까지 끌어낸 것이다. 다시 온 길을 되 돌아가며 찾아볼까?.
그러나 그 날은 오후3시에 집사람 사촌 여동생 아들의 결혼식이 강남역 근처에서 있는날이다. 그래서 집사람이 내 양복을 갖고 잠실역 롯데백화점 분수대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던 것이다. 괜히 나는 잠시 투덜거렸다. 아니, 세시에 결혼식을 한다는 것은 점심을 먹고 오라는 거야 뭐야, 이른 저녁을 주나? 그래 안경은 잊자 그리고 새로 하자. 나는 집사람과 세시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그리고 월요일아침, 오늘 안과를 가야 하나? 아니다. 사 오 년을 내게 봉사한 안경을 한 번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잊어버린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잊어버린 장소를 비슷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 가서 찾아보자. 그리고 다음 모임도 이번 장소에서 하되 좀 더 멀리까지 가기로 했으니 답사차원에서라도 가보자. 그게 있겠느냐고 다시 하지 그 먼델 또 가느냐는 집사람의 잔소릴(?)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지난 토요일 우리가 처음 모여서 출발했던 예술의전당 근처 대성사 앞에서 출발했다. 날씨 좋은 월요일의 우면산둘레길은 정말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안경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하늘로 벌려 포옹이라도 할 것처럼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작은 해후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벅찬 감정(?)을 누르고 나는 사당역방향으로 걸었다.
한 20분 정도 사당역방향으로 움직이면 두 번째 정자가 나오며 “남태령전원마을입구”란 표지가 서 있다. 나는 여기가 다음 번 터닝포인트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뒷주머니에서 한번도 써보지 않은, 교회에서 어버이날선물로 준 손수건을 꺼내 길옆나무의 내 키만큼의 위치에 질끈 묶어놨다. 2002년인가?, 내가 카자흐스탄을 처음 갔을 때 알마티의 메데우란 국제 빙상장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텐산(천산/해발4,000m)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길옆 나무에 달린 형형색색의 리본을 본적이 있었다. 동행하던 카자흐스탄 친구가, 이렇게 손수건을 나무에 묶어놓으면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는 리본의 의미를 얘기해주었다. 그때도 나는 사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손수건을 뒷주머니에서 꺼내 나무에 묶었었고 그 뒤로 한 번 더 텐산을 방문했었다.
12시,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점심으로 사당역 근처에서 ‘죽순추어탕’을 한 그릇 사 먹었다. “하나님 아버지, 제게 왕성한 식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맥아더장군의 식사기도문을 잠시 떠 올리며 게눈 감추듯 추어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당고개로 가는 4호선 전철을 탔다. Have a good time!
3. 우분트! 우분트! 우분트! 이야기
중앙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어떤 인류학자가 반투족(Bantu)아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그는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달아 놓고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것을 다 먹을 수 있는 게임임을 알리고 출발신호를 했다. “시~작!”
그런데 아이들은 각자 뛰어가지 않고 모두 손을 잡고 함께 가서 그것을 공평하게 나눠먹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그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한 명이 먼저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 함께 갔지?"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분트! 나눠먹으면 분량은 적겠지만 그렇다고 빨리 달려가서 나 혼자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우분트(UBUNTU)'는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 라는 뜻의 반투족 말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대통령이 자주 강조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분트! 너를 내버려두고 어찌 나만 살 수 있겠니?
우분트! 네가 불행한데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 있겠어?
우분트! 네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지.
Good night!
첫댓글 고향에서 고모님들과 함께한 모습이 어느날의 나를 보는것 같어서
눈에 선하게 다가오는군요.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자주보며 함께하는 시간이 많었으면 합니다.좋은 일요일 보내시구요.
박형, 지난 목요 아차산모임에 나가려 했으나 춘천에 급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뵙죠.
세계를 무대로 크고 넓은 체험을 한 병석대형은 박학다식하시면서도 우리들 인생이 안고 가는 자상한 인정과 내면까지 공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가까이 앉아 찻잔(술잔)을 나누며 얘기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병석형의 글에 접하면 늘 함께 있는 듯한 깊은 우정을 느낍니다.거듭 고맙습니다. 춘천에서 류재웅
류형, 춘천 갈 때 연락하겠습니다. 막국수나 같이 하시지요. 서로서로 건강 챙기고요.
세가지 이야기 모두가 나이들어가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네요.
비단 올램와산악회 뿐만 아니라 동문들 모이는 기회때마다 참석하여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지씨 가문이 장수하는 명문가네. 지미카터. 지나로로부리지다. 지학순주교. 지석영. 지져스 크리스도. 지바고 닥터. 등 인물
영문 표기가 달라서 종씨는 아닙니다. 근데 동광형이 우리 카페 가입하는 방법을 물어왔
는데 쉽게 설명 좀 해 주시지요. 부탁합니다.
http//www.daum.net 에 가입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찿아보기란에서 춘고36, 또는 chungo 36 이라치고 검색하면 떠요.
36Cafe 가 독자적인 홈피가 아니고 다움 Domain 에 더부살이 하는거라 원하지 않는 배너광고를 볼수 밖에 이해하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