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박성은 리아입니다.
양근성지를 방문 했던 날 마재성지도 방문했습니다.
양근성지에서 마재 성지를 가는 도중 비를 만났습니다. 장마철이어선지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답니다.
마재성지는 역경에서도 믿음을 지킨 정약종 가족, 정씨 형제의 고향이 마재마을입니다. 이곳으로 들어가기 전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 끝자락에 마재성지가 자리 잡고있습니다.
빗길을 달려 마재 성지에 도착하니 단아한 기외집이 나왔습니다. 누구도 그곳을 성당이라 생각하지 못할 아담하고 정갈한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이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빗소리와 성당에서 흘러 나오는 미사드리는 소리가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성가를 듣는듯했습니다. 제가 도착한 시간이 11시 미사가 진행중이던 시간이었네요~.
저는 비도 피할겸 미사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성당 처마 밑에 앉아 비구경을 하고있었습니다.
빗방울이 처마끝을 타고 흘러내리고, 젖은 흙길은 더 조용해 졌습니다.
처마끝으로 쉴새 없이 흐르는 빗물은 저를 어린시절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옛날 제가 살던 그 기와집, 그리운 그곳으로 저를 이끄는듯했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성지의 뒤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어머, 생각지도 못한 예쁜 데크길이 나왔습니다. 데크길을 덮고 있는 나무들은 비에 젖어 더 생기가 돌고 아름다웠습니다.
데크길 옆의 성모님이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었구요~^^ 성모님은 내게 서두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듯했습니다.
성모님은 아마도 제 성격을 다 알고 계시나봅니다...^^
성모님 말씀처럼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걷고, 잠시 멈춰 기도하며 대크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데크에서 내려와 보니 이미 미사는 끝나있었습니다.
성전은 크고 우람한 성당이 아니라 한옥으로 지은 아담한 한옥입니다. 성전 앞에는 툇마루가 달려 지친 다리를 쉬기에 안성맞춤인곳입니다.
성전 안은 천장도, 벽도, 의자도 모두 나무다. 나무의 물결을 이루는 성전 안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성전 안 예수님은 한복을 입었다. 천주교가 조선에 처음 전해졌을 때 한옥에서 예배를 보았다는 걸 떠올리면 한옥 성전과 한복 입은 예수님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이제 마재성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정약용 집안은 조선의 대표적인 천주교 집안으로 정약용 집안을 빼놓고 천주교의 역사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정약용도 한때 천주교 신자였으며 이 일로 반대파의 집요한 공격을 받아 오랜 세월 귀양을 떠났다.
정약용 형제 가운데 기억해야할 인물이 정약용의 형 정약종이다. 동생인 정약용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그는 천주교의 역사에서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 정약종 집안은 본인뿐만 아니라 부인과 자식들까지 죽음으로 믿음을 지켰습니다. 천주교를 받아들인 정씨 형제들과 대를 이어 순교한 정약종 가족을 기리며 만든 곳이 성가정 마재성지입니다.
도마성전 옆으로 건물이 있었는데. 이곳에 온 사람들이 정약종 가족의 초상화를 보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쉬기도 하는 명례방입니다. 명례방은 어디에서 유래한 이름일까? 1784년 중국에서 돌아온 이승훈은 한양의 수표교 근처 이벽의 집에서 이벽, 정약용, 권철신에게 세례를 주었다고합니다. 그 후 천주교 활동이 늘어나면서 활동 장소도 김범우의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집이 있던 곳이 명례방으로 지금의 명동성당 근처다. 명례방이란 이름은 천주교 초기 역사에서 무척 중요했습니다.
명례방 안으로 들어가면 성가족을 이룬 정약종 가족의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가장 먼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있는 정약종 가족의 그림인 ‘마재의 성가정’이 보이고 그 뒤로 정약종 가족의 개인별 초상화가 늘어섰습니다. 정약종은 1786년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 굳건하게 믿음을 유지했습니다.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를 이끌었고 교리를 깊이 연구했습니다. 1801년 정조가 승하한 후 천주교도를 박해하는 신유박해가 일어났을 때 서대문 밖 형장에서 순교했고 첫째 아들 정철상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정약종의 남은 가족도 온갖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특히 둘째 아들 정하상은 천주교의 확산을 위해 목숨을 걸고 활동했습니다. 직접 중국으로 들어가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뜻이 로마 교황청까지 전해져 마침내 조선 교구가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에 선교사가 파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정하상은 천주교의 발전을 위해 애쓰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소문 밖 형장에서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었습니다.
남아있던 가족도 박해를 피하지 못했다. 정약종의 아내인 유조이는 79세의 고령으로 문초를 받다 끝내 세상을 떠났으며, 딸인 정정혜 역시 아버지와 오빠들의 뒤를 따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했습니다. 지금 정약종 가족은 한 폭의 그림에 평화롭게 모여 명례방을 찾는 우리들에게 포근한 미소를 전합니다.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s://www.joongboo.com)
명례방을 나와 저 나즈막한 산기슭에 아주 예쁘게 가꾸어 놓은 십자가의길이 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기 좋은곳입니다.
비는 풍경을 적셨지만, 하느님께 향한 마음은 더 맑아진듯합니다. 마재 성지는 화려한 성지가 아니라, 조용히 마음을 머물게 하는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