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꿈을 꾸어도
아침마다 대개는 잊어버리고
어쩌다 한토막씩 말도 안되게 남아 있다.
나는 한평생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나
잊어도 좋을 꿈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고,
꿈꾸며 살 날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나는 한평생 얼마나 많은 꿈을 잊었나
사는 것이 잊어버리는 연습이라면
말도 안되게 남은 꿈들은 언제 다 잊을 것인가
그 꿈 다 잊으려고 아침마다 잠이 모자라나보다
아침마다 말도 안되는 몇토막 그리움으로
모자란 채로 나는 남는다.
정 양 / "그 꿈 다 잊으려고.."
가끔 친구들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만약.. 우리네 삶을 계절처럼 4등분으로 나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
가을쯤에 해당될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가만히 서서 머물러 있는 계절이 없듯이
우리는 여지껏 쉼없이 흘러왔을 것이고..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흘러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곧 겨울을 닮은 시점에 도달할 것이었다.
황혼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지만..
떠오르는 여명처럼 활기차고 희망 가득할 수 없듯이
겨울이 되면 모든것이 텅 빈 벌판 마냥 황량하게만 느껴질 것이며
더더욱 분명한 것은.. 계절은 마치 윤회처럼 반복되지만..
우리의 삶은.. 생(生)은.. 그렇게 두 번 다시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친구 아들이 장가를 가는 날이었다.
같은 고등학교 동기였지만 대부분의 친구들보다도
호적상으로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아서인지
아직 사위를 보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며느리를 보는 일은
초등학교 친구들 말고 고등학교 동기생 친구 중에서는 (나 가까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겐 너무나도 낯익은 거리.. 낯익은 장소에 있는..
성서지구의 세인트 웨스턴 호텔에서 치뤄진 그날 결혼식은 청승맞게도
추적추적 늦은 가을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축하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몇 해 전..
처음 지을 때부터 호텔이 들어서기엔
그리 적합한 위치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호텔로서의 구실보다는(주위의 여건과 환경을 봤을 때)
예식장 영업에 더 열을 올리는 것이 왜 그런 곳에 굳이 호텔을 지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기 충분했다.
만약 호텔이 아닌 예식장으로서의 허가를 얻어내려 했다면..
틀림없이 교통영향 평가에서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좁은 부지로 인한 주차장 확보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었으니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편법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장례식장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역 주민의 반발과 손쉽게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서..
병원은 그냥 형식만 갖추는 정도로 실제로는 장례식장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방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예식이 치뤄지는 웨딩'홀을 한 개라도 더 만들기 위해..
통로는 턱없이 좁게 만들어져서 각 각의 다른 결혼식을 보기 위해 찾아온 하객들이
축의금을 접수하는 창구 앞에서 마치 콩나물 시루같이 빼곡하니 엉켜버려서
약간만 움직여도 자칫하면 다른 사람의 발 등을 밟을 정도로 복잡했다.
농협중앙회에 평생을 근무 중이고..
성품 또한 흠잡을데 없는 친구여서 정말 많은 축하객들이 찾아와 주었다.
제법 큰 웨딩'홀이었음에도 우리 친구(고등학교 동기생)들은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입구에 서서 멀찌감치 신랑인 친구 아들과 곧 친구의 며느리가 될
예쁜 신부의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부모 곁을 떠나 경기도 어느 곳에서 교사로 있는 친구의 큰아들은
정말 보기에도 점잖고 듬직한 젊은 이였으며..
역시 교편을 잡고 있다는 며느리 될 새색시도 나무갈데 없는 규수처럼 보였다.
모두 함께 진심어린 마음으로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고..
가족친지들의 사진촬영이 시작 될 무렵 우리는 혼주(婚主)인 친구가
미리 마련을 해 두었다는 부근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모여 앉았다.
경제적인 능력도 되는 터였지만 평소 성격답게 미리 미리 세심하게
모든 준비를 다 해둔 모양이었는데 횟집도 메뉴판 가격을 보니
예사로운 곳이 아니었고 바로 옆 가까운 곳 지하에
30여 명은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시설이 잘 된 노래방까지
벌써 예약을 해두었다고 했다.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기분좋게 술기운이 돌 무렵..
혼주(婚主) 친구 부부가 잠시 찾아와서 답례 인사를 했다.
그많은 손님 일일히 챙기느라 적잖이 바빴을 텐데도
그렇게 친구들에게까지 반듯하고 깎듯이 예(禮)를 갖춰주는 친구 부부에게
우리 모두 진심어린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깔끔한 정장차림의 친구와 품위있고 단아한 한복차림의 친구 부인의 얼굴에는
어느 듯 세월의 그림자를 드리운 주름이 잔잔히 깔려 있었다.
저 두 사람이 오늘의 아들 내외처럼 젊고 씩씩하며 예쁘고 청초했던 때가
그저께만 같은데.. 벌써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러와 있었다.
"야.. 시어머니 시아버지 될 사람이 너무 예쁘고 멋있다.
내친 김에 너희들도 오늘 결혼식 한 번 더 올리고 아들 며느리 뒤따라
신혼 여행이라도 한 번 더 다녀와라... 하 하 하!"
쑥스러워하는 친구 내외에게 러브'샷 한 잔을 권하고는
한바탕 더 크게 박수를 보내고 끝으로 모두 함께 건배를 들었다.
"자.. 친구가 이쁜 며느리를 얻게된 것을 진심으로 우리 모두 함께 축하하면서..
오늘의 주인공인 혼주(婚主) 친구 부부의 건강하고 행복한 성(性) 생활을 위하여
다 같이.. 건배! 건배! 건배!"
약간은 짖궂은 건배 삼창을 우렁차게 하고는 바쁠 혼주(婚主) 친구 부부를 돌려 보낸 뒤
몇 몇 볼 일이 있는 친구들도 떠나고 모두들 가요방으로 내려갔다.
부부가 함께 온 친구들도 많아서 서로 적당히 예의를 갖추느라
술을 과하게 마시는 사람도 없어서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한 편이었고
지나치게 소란스럽지 않게 차례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한 곡 씩 불렀다.
음악에 맞춰 흥겹게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 우리가 어느 새 이렇게 늙고 나이든 모습으로 변했구나!'
그래서 예전에 어릴 적 뜻도 모른 채 그냥 따라 불렀던
유행가 가사들은 이젠 가슴 속에 절절히 느끼면서 부르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수를 치는 모습도 젊은이 마냥 힘이 넘치지는 않았고..
흥겨워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는 것도 왠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랜 삶에 지치고 피곤해져서 무겁게 짓눌려온 어깨는 힘이 빠지고
뼈마디 마저 차츰 굳어져만 가서 유연하고 부드러움은 자취를 감추고
무슨 로봇의 동작처럼 약간은 어둔하고 어색해 보이는 것 같았다.
숱한 세월이.. 새털처럼 많았던 시간들이..
우리를.. 친구들을.. 그렇게 변하게 만든 것 같아서 조금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이젠 부르는 노래 마저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버렸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나이 먹거나 더러는 더 먼저 나이 먹어 있을..
그런 옛노래들을 즐겨 부르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왠지 마음 한 귀퉁이가 썰렁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착잡해졌다.
'그래.. 모두들 수고 많았다.
그동안 열심히.. 열심히.. 가정과 가족들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그리고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을 내 사랑하는 친구들아!
이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들아...'
01. 딕훼밀리 - 흰구름 먹구름
02. 영사운드 - 등불
03. 이장희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04. 이치현과벗님들 - 짚시 여인
05. 장계현-잊게해주오
06. 전영록-애심
07. 홍삼트리오-기도
08. 최현- 당신은 몰라
09. 박인희 - 하얀 조가비
10. 윤형주 - 어제 내린비
11. 어니언스 - 편지
12. 조영남 - 딜라일라
13. 이진관-인생은 미완성
14. 박상규-조약돌
15. 박건 -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16. 김종찬 - 사랑이 저만치 가네
17. 이장희 - 한잔의추억
18. 노고지리 - 비와 찻잔 사이
19. 소리새.그대 그리고 나
20. 김범룡 -바람 바람 바람
21. 백영규-하얀 면사포
22. 조영남&김도향-꿈의대화
23. 최헌 -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