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문화현장 투어
-우산 넷이 나란히 우리문화 사랑-
2019년 1월 12일 오전 10시.
오늘은 평소 향토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전 대구대학교 사범대학장 정호완교수님. 그리고 자인면 원당리에 거주하시는 영천최씨 원당문중대표 최용석님. 평소 숲해설에 관심이 많은 동갑내기 옥산 출신 전병견 친구와 더불어 필자는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경산시와 연접한 대구광역시 문화유적 투어를 위해 이날 따라 아침부터 촉촉이 내리는 겨울비도 마다하지 않고 아홉시 30분에 경산정평역에서 서로 합류하여 지하철과 도보를 이용, 첫 답사지로 대구향교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대구향교 손영주 전교님과 인사를 나누고 전교님의 소개로 대구시 문화유산해설가의 도움을 받아 대구향교 전반을 안내받았다.
오늘 우리가 답사한 대구향교는 조선 태조 7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교동에 창건되었다 하였고, 당시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었으나, 정종 2년에 불타서 곧 재건하였다 했다. 본래 대구향교는 대구부 동쪽 2리에 있었다 하나,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 소실된 것을 선조 32년에 지금의 달성공원 자리로 옮겼다가 같은왕 38년에 교동으로 이건하였다 했다.
이후 조선 인조 3년에 향교의 명륜당을 중건하였고, 1932년에 총독부에 의해 대성전과 동·서무, 명륜당 등 주요 건물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였고, 1948년에 재단법인 경상북도 향교재단의 설립을 인가받았다고 했다.
이로부터 1974년 명륜당과 삼문, 사무실이 중건하였고, 1981년에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재단법인 대구직할시 향교재단 설립을 인가받았다 하였으며, 1990년에 지금의 동, 서재와 낙육재를 복원하고, 1995년에 유림회관을 신축하였다고 했다.
두 번째로 답사한 코스는 대구향교 인근 제일여자중학교 교정 한구석에 자리한 거북바위 현장이였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옛날 대구시 전역에는 나지막한 산들이 곳곳에 솟아 있었고, 그중 연귀산은 대구를 지켜주는 진산으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대구향교 남쪽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제일여중 교정이 바로 그곳이다. 현재 제일 여중 교정 한구석에는 특이한 바위가 남아있어 연구산의 유래를 전해 주고 있다. 윗부분이 거북등처럼 떡떡 갈라진 이 바위는 일명 거북바위로 여러가지 유래가 정해지고 있었다.
옛날 대구에는 불이 자주 나 불과 상극인 물에 사는 거북을 상징하는 바위를 두었더니 그후로는 정말 불이 나지 않았다는 설, 옛 무덤인 고인돌의 일종이라는 설 등이 있으며, '연구산' 이라는 지명에 얽힌 전설은 기록에만 남아있었다.
거북바위 앞에 서있는 안내판에 의하면, 경상도 각 고을의 연혁과 풍물을 소개한 『경상도 지리지 대구편』에는 연구산과 거북바위에 관한 기록을 소상히 전하고 있다. 즉, 이 산에 돌로 거북을 만들어 머리를 남쪽, 꼬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해 비슬산에서 뻗어오는 지맥을 통하게 했다. 그리고, 이 산을 이을연, 거북구로 하여 연구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우리의 세 번째 답사지는 bbs 대구불교방송국 청사가 있는 건너편에 자리한 건들바위 현장이었다.
이 바위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2호로, 고생대에 암벽의 균열로 생긴 입석으로 옆 절벽과 더불어 대구분지의 지반구조를 잘 나타내는 바위였다.
여기서는 평소 지명유래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정호완교수님께서 해설을 맡으셨다.
이는 삿갓 쓴 늙은이와 같다하여 ‘삿갓바위’라고도 한다는데, 20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는 맑은 물이 흘러 낚시를 하면서 즐기던 경치좋은 명소였다 하였고. 서거정의 대구십경 중의 입암조어 시제가 바로 이곳이라 하였다.
1776년 대구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이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하여 제방을 쌓아 물줄기를 신천으로 돌렸기 때문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 하였으며,
그 후로 질퍽한 논으로 변하여 이 바위는 절벽 앞 논 가장자리에 위치하게 되었고, 때때로 무당이나 점장이가 촛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리기도 하고, 기자석으로써 아낙네들이 비손하는 곳이기도 하였다고 설명했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에 대구시 소재 대한적십자사 청사 뒤편에 자리한 한 식당에서 우리 일행은 코다리찜으로 점심을 먹으며 주린 허기를 달래었다.
이어 네 번째 답사는 대구 동아소핑 건너편에 자리한 아미산 일대였다.
이곳은 오전에 답사한 연구산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선 곳으로, 예전에 대구적십자 병원에서 반월당 네거리에 이르는 곳에 언덕을 이루었던 자그마한 산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여인의 눈썹처럼 생겼다고 해서 아미산이라 불렀다 는 전설이 전승되기도 했다.
이 일대는 옛날 이 일대에는 무과시험을 관장했던 관덕정과 무사들이 무예를 닦던 연변장이 있었다 하였고, 여기에는 국법을 어긴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장이라 전승되는 곳으로, 당시 경상도 지역 천주교 순교자들이 무고한 생명을 잃은 곳이라 하였다.
이어 다섯 번째 답사지는 일제강점기의 시인 이상화 생가와 임란 원군 지관이었던 명나라 두사충의 설화가 남아있는 계산성당 일대를 둘러보았다.
이어서 여섯 번째로, 대구 동산병원 후문으로 오로는 3일 만세운동 계단과 구한말 계신교 순교자 유적 현장을 답사한 후, 도보로 서문시장을 거처 지하상가 통로를 이용하여 “달성공원”에 도착하여 토성인 달성공원 일대를 면밀히 살펴보고, 동물들 사육 현장도 관람하였다.
일행은 저녁 6시가 넘어 중구의 한 복어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하고, 인근 최회장의 아파트에 초대, 차 한잔씩을 나눈 후, 최용석회장의 차편으로 경산에 도착 각각 하루 일정을 모두 마쳤다. 정말 오늘 우리 일행의 대구광역시 문화유적 투어는 그 어느 답사보다 유익하였다. 글 김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