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11편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 욱보사가 간첩 한 명을 붙잡아 왔다. 손안이 그를 보고, 북군 총관 섭청임을 알아보았다. 손안이 송강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평소에 의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혼자서 성을 나온 것을 보면 필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송강은 군사를 불러 섭청의 포박을 풀게 하고 가까이 불렀다. 섭청이 송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에게 기밀이 있으니, 원수께서 좌우를 물리치시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여기 있는 형제들은 모두 한마음이니, 얘기해도 무방하오.”
섭청이 말했다.
“성중의 우리는 지난번 전투 때 독을 바른 화살을 맞았는데, 지금 독이 퍼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중의 의원이 치료했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습니다. 저는 의원을 찾아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소식을 정탐하러 성을 나왔습니다.”
“지난번에 사로잡혀 간 우리 편 두 장수는 어떻게 되었소?”
“저는 두 장군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우리가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서 거짓 명을 내려 두 장군을 감옥을 가두게 하였습니다. 지금 감옥 안에서 무사히 지내고 있을 것입니다.”
섭청은 구신 부부가 전호에게 살해되고 경영을 납치해 갔던 일 등을 자세히 얘기하면서, 슬피 울었다. 송강은 섭청의 사연을 듣고 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섭청이 북군 장수이기 때문에 혹 거짓 모략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때 안도전에 송강에게 말했다.
“참으로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인가 봅니다. 이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안도전은 지난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장청 장군의 꿈에 한 선비가 나타나 어떤 소녀에게 돌팔매질을 가르쳐 주라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그녀는 장장군과 전생에 혼인의 인연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장군은 꿈에서 깨어난 후, 그 생각 때문에 병이 났습니다. 그때 형님께서 저더러 장청을 데리고 고평으로 가서 치료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장청의 맥을 짚어 보았더니, 칠정(七情)이 엉켜 생긴 병이었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물었더니, 비로소 장장군이 병의 근원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을 써서 병은 나았습니다. 오늘 섭청의 얘기를 들어 보니, 장장군의 꿈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항장 손안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손안이 대답했다.
“소장도 경영이 우리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은 들었습니다. 저의 부하인 아장 양방이 우리의 측근들과 아주 친하기 때문에 경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섭청의 얘기는 결코 허위가 아닙니다.”
섭청이 또 말했다.
“저의 옛 주인의 따님인 경영은 부모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뜻을 평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인이 보니, 이번에 경영이 전장에서 원수의 범 같은 위엄을 여러 차례 범하였습니다. 성이 깨지는 날 옥석이 함께 타 버릴까 두려워, 소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렇게 와서 원수께 애원하는 것입니다.”
오용이 섭청의 말을 듣고서, 일어나 섭청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송강에게 말했다.
“저 사람의 낯빛을 보니 슬픈 감정이 참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분명합니다. 하늘이 형님을 도와 공을 세우게 하고, 효녀로 하여금 부모의 원수를 갚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용은 송강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군이 비록 세 길로 나누어 적의 소굴을 공격하고 있지만, 만약 전호가 금(金)나라와 손잡으면 아군은 양쪽에서 적을 맞이하게 됩니다. 설혹 금나라가 나오지 않더라도, 전호는 궁지에 몰리면 필시 금나라에 투항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반란을 평정한 공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는 계책을 세워 내응을 얻으려 하고 있었는데, 마침 하늘이 기회를 주셔서 장장군의 이런 인연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차여차하면, 전호의 수급은 경영의 수중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규의 꿈에 나타난 신인(神人)도 이미 그런 예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전호의 무리를 평정하려면 반드시 경시족과 화합해야 한다.’라고 한 말, 형님도 기억하시죠?”
송강은 오용의 말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하였다. 그리고 즉시 장청·안도전·섭청 세 사람을 불러 은밀히 계책을 주었다. 세 사람은 계책을 받고 떠나갔다.
한편, 양원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섭청이 돌아와 소리치는 것을 보았다.
“빨리 성문을 열어라! 나는 우리 원수부의 섭청이다! 의원 전령과 전우 두 분을 찾아 모시고 왔다!”
군사들은 즉시 원수부에 알려 허락을 받은 뒤 성문을 열었다. 섭청은 전령과 전우를 데리고 성으로 들어가, 우리 국구의 원수부에 당도하였다. 안에서 의원을 데리고 들어와 치료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섭청은 전령을 데리고 원수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시중을 들고 있던 군사가 군주 경영에게 알렸다. 경영은 전령을 인도하여 우리가 누워 있는 침상 앞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는 실낱같은 숨만 쉬고 있었다. 전령은 진맥을 한 다음 상처에 고약을 붙이고 기운을 돋우는 약을 먹였다. 사흘이 지나자 피부가 점점 붉어지고 하얘지면서 음식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닷새가 지나지 않아 상처는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음식은 예전처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크게 기뻐하면서 섭청에게 의원 전령을 불러오라고 하였다. 우리가 전령에게 말했다.
“족하의 신술(神術) 덕분에 상처가 점차 회복되고 있소. 후일 부귀를 얻게 되면 그대와 함께 누리겠소.”
전령이 절하고 말했다.
“저의 하찮은 의술은 입에 담을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저의 아우 전우는 오랫동안 저를 따라다니면서 강호의 무예를 익혔습니다. 지금 저를 따라와서 약 짓는 일을 돕고 있는데, 상공께서 발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명을 내려 전우를 안으로 들이게 하였다. 우리는 전우의 의표가 범속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전우에게 원수부에서 명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전령과 전우는 절을 하고 물러나왔다.
나흘 후, 홀연 송강이 병력을 이끌고 와서 성을 공격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섭청이 원수부로 가서 우리에게 보고하고 말했다.
“송강의 병사들은 강하고 장수들은 용맹하여, 반드시 군주가 출전해야만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즉시 경영을 데리고 교련장으로 가서 병마를 점검하게 하였다. 그때 전우가 연무청으로 올라와 아뢰었다.
“상공께서 소인에게 명을 기다리고 하셨는데, 지금 적병이 성에 임하였으니 소인이 재주는 없지만 병력을 이끌고 나가겠습니다. 적들이 갑옷 한 조각도 제대로 챙겨 가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총관 섭청이 노한 척하면서 전우에게 말했다.
“네가 감히 큰소리를 치는데, 나와 무예를 겨뤄 볼 수 있겠느냐?”
전우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18반 무예를 배웠습니다. 오늘 장군과 한 번 겨루어 보겠습니다.”
섭청이 우리에게 아뢰자, 우리는 허락하고 쟁과 말을 내주었다. 두 사람은 쟁을 들고 말에 올라 연무청 앞에서 무예를 겨루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한 덩어리가 되어 안장 위에서는 사람들이 다투고 안장 아래에서는 말들이 다투었다. 4~5합을 싸웠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때 경영은 우리 곁에 시립하고 있었는데, 전우를 보고서 마음속으로 놀라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저 사람은 전에 어디서 본 것 같아. 쟁법도 나와 똑같은데.”
경영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꿈속에서 나에게 돌팔매질을 가르쳐 준 분이 바로 저렇게 생겼었어. 저 사람도 돌팔매질을 잘 할까?”
경영은 화극을 들고 말을 몰아 두 사람에게 다가가 화극으로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섭청이 이미 전우와 한통속인지 모르고 있는 경영은, 혹시 섭청이 전우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경영이 화극을 들고 전우에게 달려들자, 전우는 쟁을 들고 막았다. 두 사람이 50여 합을 싸웠을 때, 경영이 땅을 박차고 말을 돌려 연무청을 향해 달아났다. 전우가 기세를 몰아 추격하였다. 경영은 돌을 꺼내, 몸을 돌리면서 전우의 겨드랑이 사이를 향해 돌을 날렸다. 돌이 날아가자, 전우는 이미 눈치 채고 오른손을 내밀어 가볍게 돌을 받았다.
경영은 전우가 돌을 받아내는 것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