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는 지금 '사면초가'…살 길은 구조조정뿐
이태경 편집위원 / 시민언론 민들레
2023.12.25
올해만 종합건설사 551곳 폐업, 작년의 1.7배
지방건설사 중심 가파른 증가로 17년 새 최대
공매도 두 배 넘게 늘었지만 낙찰 1.4% 그쳐
분양보증 사고 5천억 규모 2012년 이후 최대
재무구조 악화로 건설사 신용등급 줄줄이 하향
총선 의식 부실 키우지 말고 구조조정 나서야
건설업계가 첩첩산중에 사면초가 상태다. 종합건설사의 폐업 건수가 17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고, 분양보증사고 금액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2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으며, 중대형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팽창할 대로 팽창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수반되는 필연적 현상이다. 윤석열 정부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포함한 건설업계의 부실이 더 커져 시스템 리스크로 옮겨 붙기 전에 구조조정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총선 이후까지 구조조정을 미뤘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17년만에 최고를 기록한 종합건설사 폐업 건수
25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총 551곳으로 전년(327곳) 대비 약 1.7배 급증했다. 이는 2006년(557곳)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다. 올 상반기(1∼6월) 112곳이었던 지방 건설사 폐업이 올해 하반기 들어 189곳으로 늘어나는 등 지방을 중심으로 폐업한 기업이 가파르게 늘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부도를 맞은 건설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908위인 광주의 해광건설은 만기가 된 어음을 막지 못해 이달 13일 부도 처리됐고, 이달 1일엔 285위인 경남 창원의 남명건설이 부도났다. 대우산업개발(75위), 대창기업(109위), 에이치엔아이엔씨(133위), 국원건설(467위), 금강건설(578위) 등도 부도처리되는 운명을 맞았다.
한편 시행사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매도 폭증하고 있다. 신탁사의 토지 매각 공매가 급증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개발사업 도중 대출 연장이나 상환에 실패한 시행사가 늘었다는 의미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온비드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개찰이 진행된 신탁사의 토지(대지) 매각 공매 건수는 334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년 동안 진행된 공매 건수(1418건) 대비 무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이렇게 넘어온 공매 중 올해 낙찰 건수는 46건으로 전체의 1.4%에 그친다. 전년도는 낙찰률이 4.0%에 달했다. 업체 입장에선 공매라도 빨리 되어야 자금 조달이 일부라도 되는데 낙찰이 거의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공매시장이 얼마나 얼어붙어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 신일해피트리’ 현장은 지하철 4·7호선 이수역에서 2분 거리인 역세권 알짜 땅으로, 시공능력평가 순위 113위인 신일이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올해 6월 당시 공정 45%에서 전면중단됐다.
PF 대출 연장까지 실패하자 1195㎡(약 362평) 규모의 땅과 공사 중인 건물이 공매로 나왔는데, 서울의 핵심 요지라 할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이른바 ‘더블 역세권’ 땅인데도 공매가 6차례 유찰되며 가격은 617억 원에서 364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충격적인 건 공매에 참여한 입찰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5대 시중은행 건설업 대출잔액 추이
건설업종에 대한 금융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11월말 현재 5대 시중은행의 건설업종 대출 잔액은 23조 2387억 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보다 14%, 2021년말과 비교하면 46%나 불어난 규모다.
대출 못지않게 연체액과 연체율도 급증하고 있다. 건설업종의 연체액은 현재 1051억 원 규모로, 작년 말의 2배, 2021년 말의 3.2배나 된다. 연체율도 2021년 말 0.21%, 2022년 말 0.26%에서 지난 11월에는 0.45%까지 급증했다.
2012년 이후 최고치를 찍은 분양보증사고 금액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발생한 분양보증 사고는 11건, 사고액은 약 755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사고액이 4881억원이었는데, 4개월 만에 3000억가량 폭증한 것이다. 이는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부동산 경기가 폭락했던 지난 2012년(14건·9564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분양보증이란 시행사·시공사 등 주택 사업자가 부도·파산을 겪어 공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HUG가 계약자에게 계약금과 중도금 등을 대신 지급해 주는 일종의 보험을 말한다. 현행법상 분양사업자는 아파트를 선분양할 경우 의무적으로 분양보증에 가입해야 한다. 분양보증 사고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2021~2022년에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증사고가 폭증하는 원인은 단연 부도나거나 도산한 건설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분양보증 사고가 늘면 HUG의 부실이 심화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수분양자들도 입주지연 등의 여러가지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아파트 공사현장
줄줄이 신용등급이 하락 중인 건설사들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이 줄지어 떨어지고 있다. 25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22일 GS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부정적 검토)에서 A(안정적)로 하향했다. 이는 지난 8월 말 ‘부정적 검토’ 리스트에 등록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직전일인 21일에는 한기평이 태영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안정적)’에서 ‘A-(부정적)’로 변경했다.
신용등급이 강등된 건설사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상반기 정기평가 당시 한신공영(BBB+→BBB)과 태영건설(A→A-) 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지난 10월에는 일성건설(BB+)의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됐고 11월에는 신세계건설의 신용등급 전망이 A(안정적)에서 A(부정적)로 강등됐다.
특기할 대목은 붕괴 사고를 낸 GS건설을 제외한 모든 건설사들이 미분양 등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를 이유로 신용등급이 하향됐다는 사실이다.
태영건설 여의도 사옥
부실 더 키우지 말고 총선 전 과감한 구조조정에 착수해야
위에서 살핀 것처럼 건설업계는 눈 위에 서리가 내린 형국과 다를 바 없다. 부풀대로 부푼 부동산 거품이 마침내 꺼지면서 벌어지게 마련인 일들이 건설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이라도 집값 떠받치기와 부동산 PF폭탄돌리기를 중단해야 한다. 건설업계와 금융업계에 대한 옥석 가리기에 착수해 정리할 업체들은 조속히 정리하고 살릴 수 있는 업체들에 대해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윤 정부에게 최악의 선택은 총선 승리에 연연한 나머지 건설업계와 금융업계의 부실을 키우고 그 부실이 시스템 전체로 전이되는 것이다. 그건 범죄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