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 다른 부분들은 연기적 관점에서 이해가 되는데 순간순간 선택하는 마음 그것은 연기적 관점으로 잘 납득이 안 됩니다.
[사야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선택합니다. 선택하는 것도 낄레사가 선택하는가? 지혜가 선택하는가? 선택하는 것은 바로 결정하는 그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정하는 그 마음이라는 그 뜻이 바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의미입니다). 로바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지혜가 결정하는가? 이런 것은 마음이 작용하는(일어나는) 과정, 진행하는 과정을 알 때에 이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의 원인, 결과 그것도 내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원인, 결과도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결정하는 마음이 있고 마음의 행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상에 다가 기울이는 마음(이쪽에 기울였다 저쪽에 기울였다) 하고 아는 마음하고 다릅니다. 생각합니다. 생각해서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 적당한가? 적당치 않은가? 생각해서, 결정해서 고를 때에 고릅니다.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지혜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사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도사의 마음이 일어나면 그때 마음이 말을 합니다. 생각하는 마음이 도사냐? 생각하는 마음은 생각하는 마음이고 도사는 도사고 그렇습니다. [생각하는 마음과] 도사는 따로따로입니다. 생각 뒤에는(밑에는) 빠라맛타가 있습니다. 생각 뒤에서 작용하는 마음 그것은 빠라맛타입니다. 그 이치는 빠라맛타인데 생각 그 자체는 빤냣띠입니다. 생각은 빤냣띠인데 생각하는 마음 그 자체는 빠라맛타입니다.
일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일을 같이 하기는 하지만 하는 일이 서로 다릅니다. 멧따의 마음도 말을 합니다. 도사의 마음도 말을 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마음도 말을 합니다. 도사의 질하고 멧따의 질하고 지혜의 질하고 질이 다 틀립니다.
의도도 보면 ‘이것을 하고 싶다. 저것을 하고 싶다.’하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말하는 마음은 의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하는 마음을 알고 나서 의도를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의도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말하는 마음만 안 것입니다. 말하는 마음하고 의도는 틀립니다. 의도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의도는 의도의 자연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도마나사웨다나, 소마나사웨다나, 우뻭카웨다나에서 웨다나와 도마나사, 소마나사, 우뻭카는 따로따로입니다. 도마나사, 소마나사, 우뻭카 그것은 빤냣띠고 웨다나는 빠라맛타입니다. 도마나사웨다나, 소마나사웨다나, 우뻭카웨다나 이렇게 말은 하지만 도마나사, 소마나사, 우뻭카는 빤냣띠고 웨다나는 빠라맛타입니다.
지혜는 웨다나를 이해합니다. 보통의 마음은 도마나사, 소마나사를 압니다. 도마나사, 소마나사를 대상으로 보면 원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게 됩니다. ‘즐겁다. 괴롭다.’하는 것을 보게 되면 로바, 도사가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