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7:14
어제는 결혼 34주년이었습니다.
간단한 선물이라도 아니면 짧은 편지라도 기대했지만 며칠째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 남편이 예민해져서 서로 말다툼만 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은 34년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완벽한 아내도 엄마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족함을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는다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상처를 동시에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냐고 태국 직원이 물었습니다. 그녀는 금요일 성경공부 교재를 주중에도 손에 들고 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읽곤 합니다.
나의 불완전과 부족함을 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주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죄를 낳고 낳고…..
이 반복의 시간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이 오직 하나님!
예수님 믿는 가장 최고의 선물을 받아서 감사하다는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우매한 자의 가슴이 되어 노를 품고 살 인생을 불러주셔서 사랑에 눈 뜨게 하시고 기뻐하고 되돌아보는 사람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지혜도 사람을 보호하고 돈도 사람을 보호해 주지만, 지혜가 돈보다 나은 것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11~12절)
돈의 그늘 아래 있으면, 현실에서 겪는 많은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위해서는 돈보다 지혜를 얻는 것이 낫다 말씀하십니다.
돈은 우리의 영혼을 지켜 줄 수 없지만, 지혜의 보호 아래 있으면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은 다 알 수도 없고, 그 일을 모두 사람이 통제할 수 없기에(13절) 지혜 되신 하나님을 구해야 함을 묵상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재앙의 날에는 살펴보아라. 이 모든 날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미래를 알지 못한다.”(14절)
주신 하루를 사는데 필요한 은혜를 구하는 지혜로운 사람 되길 원합니다.
장래 일을 알려고 애쓰기 보단 형통한 날에 기뻐하며, 곤고한 날에 내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자녀 되길 원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4절)
지난 한주간 4건의 장례와 오늘 시댁 조카의 결혼식까지 정신없는 한 주를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들이었 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보내고 불효했던 아들의 후회의 눈물도 보았고, 많이 불편했던 남편을 끝까지 정성으로 돌보셨던 권사님의 눈물, 나이 드신 권사님의 나이 드신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다가 보내신 장례식과 오늘 조카의 행복한 출발을 축하해 주고 오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출발과 마침을 지켜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며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림자와 같이 허무한 며칠을 사는 인생 중 삶의 최선이 무엇인지 아는 자가 누구 일까? 사람이 죽은 후, 해 아래서 무엇이 일어날지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을까? (12절)
온전히 하나님만을 인정하며 살때 허무한 삶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음을 묵상합니다.
1-2 좋은 이름이 값진 향수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 보다 낫다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을 묵상하며 처음에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 생명의 탄생보다 죽음이 낫다? 계속하여 생각해 보니 이 말씀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아직 저는 하나님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이 먼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라며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
죽음이 시작이고 소망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러가는 길이며 그 길의 입구에 들어서는 것인데 죽음을 떠올리면 이 땅에서의 삶의 끝, 생명의 끝을 먼저 떠올리는 저입니다.
할머니 할어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더 이상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아직 세상의 것을 더 누리고 싶고 세상이 더 좋은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것 보다도 하나님을 만남이 가장 기쁘길 원하며 내 삶의 소망이 되길 기도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참 기쁨과 소망을 늘 하나님께 두는 주의 자녀 되길 기도합니다.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들은 그 분의 성품이 우리 안에 있음을 잊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가장 악한 사람이라도 정직하게 지으셨음을 전도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임은미 선교사님의 사역 중에 교도소에 묵상글을 보내주는 사역이 있는데 선교사님의 묵상글을 읽고 회개하고 변화되어서 교도소로 파송된 선교사로 살아간다는 간증을 듣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하나님이 정직하게 지으셨기에 그 분의 사랑안에 거하면 변화지 않는 사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에 속해 많은 꾀를 내는 삶에서 정직을 벗 삼아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