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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기도회 간증 요약[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8:32)]-김유비 목사(11월 15일)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유비 목사입니다. 은혜 많이 받고 계십니까? 저도 다니엘기도회 첫날부터 지금까지 참여하면서 은혜받고 있습니다. 다니엘기도회를 통해서 대한민국과 온 세계 디아스포라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 오늘 아니면 안 되는 사람, 살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사람, 저는 그 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을 오늘 하나님이 살려주실 것입니다.
□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지만, 진리로 가는 것을 ‘결핍과 마귀의 부추김’이 막습니다.
-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어디에서 자유케 할까요? 상처에서 자유케 하리라. 불안에서 자유케 하리라. 두려움에서 자유케 하리라. 외로움에서 자유케 하리라. 슬픔에서 자유케 하리라. 절망에서 자유케 하리라. 질병에서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께서 치유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 여기서 진리는 무엇일까요? 진리는 예수님 그 자체이십니다. 로고스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자기 자신이 하신 말씀, 자기 자신에 관한 말씀, 그리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인 성경 66권을 진리라고 하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속박에서 자유케 됩니다.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알지 못하면 속박된 채로 삽니다. 절망과 불안 속에서 사는 것이죠.
- 진리를 아는 삶과 진리를 모르는 삶에 이렇게 극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진리를 외면하며 살게 될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안의 결핍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결핍은 거짓말을 양산해내는 공장입니다. 그 결핍 안에서 무수한 거짓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마귀의 부추김이 있습니다. 마귀도 우리의 결핍을 압니다. 우리의 취약함을 아는 것이죠. 모든 것이 사탄의 역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마귀가 우리의 결핍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쉽게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는 우리가 진리를 쉽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러나 진리를 아는 자의 삶의 혜택은 명확합니다. 자유와 기쁨입니다. 결핍에 속박되어 거짓에 사로잡힌 삶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예수그리스도가 하시는 진심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저를 찾아오셔서, 저를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저의 결핍을 깨닫고, 저의 결핍에서 나오는 거짓말이 저를 잔인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치유해 가시는 여정을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제게 이 결핍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리고 이 결핍이 저를 속박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고통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단번에 치유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치유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단번에 치유하셨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치유하시고,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는 완전하게 영화롭게 되어 치유될 것입니다.
□ 우리 가족에게는 과거의 아버지 학대가 고통과 결핍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 어느 명절날, 가족 모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저희 어머니도 계셨고, 저희 가정과 여동생 가정도 있었습니다. 거기 없었던 유일한 사람은 저희 아버지셨어요. 제 여동생이 결혼하고 4~5년 동안 아이를 못 낳았다가 아들을 낳아 5살이 되었는데, 재롱을 부리니까 가족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겁니다. 제가 당황해서 “왜 그러세요?” 했더니, “내가 너희들 어릴 때 이렇게 못 키웠어.” 그러시는 거예요. 그 좋은 날, 지난날 어머니의 상처가 찾아온 것입니다. 어머니 옆에 앉아 어머니의 그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 가족한테 복음이 들어왔고, 저도 예수님 믿고, 부족하지만 목사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냐고 하면서 어머니는 최선 다했다고 말씀드리고 진정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다시 뒤에서 흑흑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이번에는 여동생이 울고 있는 겁니다. 제가 착한 오빠라서 인자한 말로 ‘왜 그래, 무슨 일이야?’하며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여동생이 짜증을 내면서 “오빠, 다 지난 일로 얘기하지 마. 나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하는 겁니다. “오빠 초등학교 때, 아빠한테 밤새도록 맞아서 시체처럼 굳은 채 담요에 돌돌 말려 있었어. 내 기억에 그게 세 번이 넘어. 난 오빠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오빠가 죽을까 봐 너무 두려웠고, 오빠랑 같이 학교에 가고 집에 오는 길이 유일한 내 안식처였는데, 오빠가 그렇게 시체처럼 굳어 있을 때 난 너무 두렵고 무서웠어.” 피해 당사자는 난데, 동생이 짜증 내는 것을 보고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제가 여동생한테 “그래, 힘들었어. 오빠도 쉽지 않았어. 그리고 사실 지금도 진행 중이야. 너 서두를 거 없어. 오빠가 오래 걸린 만큼 너도 오래 걸릴 거야.”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이제 여동생까지 진정시키면서 내적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까 제 아내가 울기 시작하였고, 저희 아이들도 따라서 우는 겁니다. 저는 아들 하나, 딸 둘입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토닥여주고 감정을 다 위로해 주었습니다. “옛날에 할아버지 힘들 때 일어난 일이야. 지금은 우리 너무 행복하잖아. 할아버지 재밌잖아. 아빠 어릴 때 할아버지도 너무 힘들었었어.”
- 그렇게 다 수습하고 나니까, 갑자기 현타가 왔습니다. 갑자기 제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막 밀려드는데, ‘이게 뭐지? 상처의 당사자는 난데, 학대받은 아이는 난데, 고통받은 아이는 난데, 그 누구도 나에게 사과한 사람이 없고, 그것에 대해서 공감해 주는 사람도 없고, 왜 나는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고 있지?’ 그래서 저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저는 김유비닷컴을 사역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밥 짓는 심정으로 글을 보내고, 아픔을 공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도 아픈데, 나도 학대받은 과거를 완전히 뒤로 하고 싶은데, 상처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보는 보람도 있지만, ‘나도 무너질 때가 있는데, 나도 연약한데, 내 옆엔 왜 아무도 없지?’ 하는 회의감이 밀려들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에게 “예수님, 저는 왜 안 돌아보세요?, 저는 왜 방치하세요?” 저는 이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감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이 따뜻하지가 않은 거예요.
- 저도 이 감정이 잘못된 것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목사인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목회자인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데, 하루 종일 말씀을 묵상하고, 하루 종일 기도하는 사람인데, 왜 나는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거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아세요? 전 제가 고장난 줄 알았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줄 알았어요. ‘너는 고장 났어! 너는 목사 하면 안 돼! 너부터 고쳐. 너는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없어!’ 이런 파괴적인 메시지를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의 결핍이 쏟아내는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왜 저는 그런 말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고통받았을까요? 저는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저는 저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너, 왜 그래? 너, 뭐가 문제야? 너, 뭐가 잘못됐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지금은 저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도 모르게 어떤 일을 겪었니?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거야?’ 저는 모든 고통을 과거와 연결 짓는 것에 대한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수용하는 것에는 굉장한 치료적 통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내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여러분, 과거의 나도 나고, 현재의 나도 나고, 미래의 나도 납니다. 내가 싫어하는 나를 예수님이 사랑하셨고, 어제의 나를 예수님이 사랑하셨고, 오늘의 나를 예수님이 사랑하시고 내일의 나를 예수님이 사랑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이 과거의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셨다면, 내가 미워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싫어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그걸 돌아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 과거의 나도 나고, 그 과거의 나도 한번 따뜻하게 바라봐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학대를 많이 받았습니다.
- 저는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저를 정말로 죽을 때까지 때렸어요. 전 아직도 기억나는 게, 5살 때 목부터 발목까지 완전 피멍이었습니다. 검은색과 보라색 멍은 때린 지 한참 된 피멍이고, 울긋불긋한 건 그 위에 또 때려서 생긴 피멍이었습니다. 그 어릴 때부터 그런 매질을 당하면서 컸으니, 그 아이가 정상일까요? 정상일 리가 없죠. 저희 어머니는 젊은 날 그런 남자랑 결혼했으니, 얼마나 인생이 비참했겠습니까? 가정을 지키고 싶었겠죠? 그러나 그 가련한 여인은 자기가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 이 아이들을 구출하고 싶어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어린 저는 버림받았던 겁니다. 전 어머니가 처음 집을 나갔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5살 때였어요. 어머니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순진한 저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어요.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요? 이제 집에 가야지 생각하고, 친구네 집 엄마가 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으며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온 순간 깜짝 놀랐어요. 도둑이 든 것처럼 집이 쑥대밭이 돼 있던 거예요. 어머니가 저를 친구네 집에 보내고 급하게 짐을 싸서 나간 거죠. 저는 그 충격에 실어증이 와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애착 트라우마고, 그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쇼크였고, 유일한 안전기지가 파괴됐던 겁니다. 그다음부터 저는 어머니가 집에 들어와도 어머니를 환대하지 않았어요. 애착의 불안이 형성됐던 거죠. 어머니는 수시로 집을 나갔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저를 때리면서 엄마를 찾아오라고 했어요. 저는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해 정서적으로 너무나 불안한 상황에서 엄마를 부르며 울면서 동네를 뱅뱅 돌았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가 동네에 없을 걸 알면서 돌았던 겁니다. 새벽이 되면 집에 가봅니다. 부스럭 소리가 나면, 들어가선 안 됩니다. 잘못하면 다시 화풀이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판자촌 단칸방이라 다 들리거든요. 부스럭 소리가 안 들려야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멀어진 구석에서 구겨진 채로 잠이 듭니다.
-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저한테 느껴지겠습니까? 은혜로운 말씀은 저를 스쳐서 지나가고, 무서운 말씀은 저를 압도하고 저를 짓누릅니다. 잘못해서 벌 받는 거는 너무 강렬한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그 은혜의 말씀은 저를 스쳐 지나갑니다. ‘이게 제 잘못인가요? 제 믿음이 부족한 겁니까?’ 저도 원치 않습니다. 만약에 제가 원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면, 저는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냥 그 가정에 태어난 겁니다. 그 학대받은 5살짜리 아이의 유일한 잘못이 있다면, 그 집에 태어난 거예요. 그 집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 일을 안 당할 겁니다. 그렇게 저는 저를 정죄했습니다.
- 저는 지독한 가난과 무시무시한 학대 속에서 저의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술을 끊고 갑자기 담배를 끊고 갑자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더니, 중학교 3학년 때는 속성반으로 목사가 됐습니다. 정식 신학교를 다닌 것이 아닙니다. 거의 세례받자마자 목사가 됐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저희 아버지도 새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나머지 목사가 되었지만,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성화되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 내려가서 목회를 하려니까, 열정은 있는데 인격은 성숙이 안 됐고, 상황은 열악하니까,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저는 그때부터 술 없는 학대를 받은 겁니다. 사람들은 “너희 아버지, 변화됐다! 너희 집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는데, 그 내부는 쑥대밭인 겁니다. 저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목회하고, 어머니가 사모하는데, 어머니는 눈이 시퍼렇게 되어 있고, 집은 완전히 난장판입니다.
- 저는 중학교 졸업하고 예배 시간마다 집을 나갔습니다. 저에게 기독교라는 것은 그냥 혐오의 대상이었고, 정말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며 너무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하나의 돌파구를 찾게 됐습니다. 어느 날 제가 단기 선교팀 형들이 우리 집에 두고 간 기독교 잡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청소년들이 보는 큐티 책에 나오는 기독 고등학교 사진을 보았는데, 운동장이 잔디밭이고 너무 좋아 보여서 이곳으로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은 비닐하우스에 스티로폼 깔고, 담요 깔고, 흙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사춘기 민감할 때 거기서 2년을 살았는데, 병아리 추울 때 켜주는 전구 밑에서 공부하여, 그 비닐하우스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학교 기숙사에 갔더니, 전국에서 공부 잘한다는 수재들이 다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엄청난 열등감을 느끼고,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느꼈습니다. 빈부의 격차도 느꼈습니다. 사랑받은 격차도 느꼈습니다. 기숙사니까 주말에 부모님들이 오셔서 밥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책도 넣어주고, 방도 청소해 주는데, 저희 부모님은 욕하러 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탈출한 것에 분노가 있었고, 하여튼 아버지는 건강하지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출장 갔다 오는 길에 기숙사에 들러 정문 앞에 차를 대고 뒷좌석에 태운 채, 3시간 정도 욕을 하며 언어폭력으로 저를 학대했습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아니야, 아니야,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아니야.’ 하다가 그거를 계속 당하잖아요? 그럼 나중에는 눈물만 계속 납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니까 못 살 것 같았습니다.
□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님의 진심을 들었습니다.
- 사람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아세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 겁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루 종일 눈물이 나는 겁니다. 수업 시간에도 눈물이 나고, 야간 자습 시간에도 눈물이 나고, 운동장에 나가도 눈물이 났습니다. 6개월 내내 울다가 결심을 했습니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했습니다. 부모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부모 앞에서 죽을 생각을 했습니다.(- 사춘기 아이의 생각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세요.) 그래서 저의 애착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은행나무에게 인사를 하고 부모 앞에서 죽으려고 집에 갔습니다. 그리고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밥을 차려 주셨고, 아버지는 상투적인 말로 많이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냥 못 들은 체하고 밥을 먹으면 되는데, 그때는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로 “많이 먹어? 아니 이게 밥으로 해결이 돼? 밥 먹으면 끝나?” 이렇게 병리적으로 된 거예요. 그러면서 상을 뒤집어 버리고,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준비한 노끈으로 매듭을 지었습니다. 밤에 논밭 길을 300m 걸어서 은행나무에 가는데, 너무 서러운 겁니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몰라.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무도 몰라. 살면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어.’ 내가 태어난 것을 저주하면서 울면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데, 아무도 말려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골에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만든 매듭이 내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들어가면 죽을 수 있는데, 여러 번 해도 안 들어가는 겁니다. 머리 큰 것도 짜증이 났습니다. 짜증이 나고 서러워서 은행나무를 치면서 막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몽롱해진 겁니다. 내 정신이 내 정신 같지 않은 해리 상태가 된 겁니다. 저에게 어떤 환상 같은 게 보이는데, 지하실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물고 속옷만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저를 때리는 장면입니다. 저는 거의 반은 죽어가고 있고, 아무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신의 존재를 저주했습니다. 부모님이 ‘하나님, 하나님’ 하니까 하나님을 저주한 겁니다. 만일 부모님이 이슬람이었으면 알라를 저주했고, 불교였으면 부처를 저주했을 겁니다. 제가 “당신을 저주한다.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다. 저 아이가 저렇게 학대받을 이유가 없다.”며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5살 아이 등에 하얀색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오열하면서 따졌습니다. “거기 서서 구경하고 있었냐? 당신의 존재는 정말 저주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제 마음에 울림이 있는 겁니다.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한 울림인데, 저의 일생 처음으로 들려진 진리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이런 통찰이 왔습니다. “유비야, 미안하다. 조금만 견뎌다오. 조금만 버텨다오. 내가 너를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보내고자 한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다오. 그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아 주렴. 내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너를 그 가정에 보냈다.”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아이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이 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통찰은 저의 운명을 바꿔주는 통찰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주저앉아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저는 ‘너 같은 인생은 필요 없어. 넌 잘못 태어났어. 너는 쓸모없는 운명이야. 너가 태어난 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어.’ 제 결핍이 거짓말을 쏟아내고, 사탄은 저를 부추겨서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너 같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어.’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저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유비야 살아야 한다. 너는 나의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너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내가 너를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냈다. 고통스럽지만 참아다오. 내가 너를 사용하기 원한다.’
- 제가 밤새도록 혼자 울고 나서, 숨을 들이마시는데, 공기가 그렇게 신선한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때 새 소리를 인생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꽃 향기를 처음 맡아봤습니다. 저의 폐에 들어오는 공기가 너무나 신선했어요. 그때 제가 학대받았던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때 제가 고통 속에서 살았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도 다 잊어버린 채로 그 순간에 들떠서 집에 갔습니다.
- 저희 부모님은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로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아들이 밤에 그렇게 하고 집을 나갔는데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저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다시 살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 출발을 했습니다.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그 후에도 자주 찾아오셔서, 저를 차에 태우고 혹독한 말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 기숙사에 가서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선배가 저한테 찾아오더니, 너 교회 찾고 있냐고 하더니, 자신이 다니는 상가 개척교회로 데려갔습니다. 청소년부 사역자도 없었습니다. 곧 3학년이 되는 고등학교 형 네 명과, 저 한 명인데, 차기 회장을 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후보자는 너 한 명인데, 다음 주에 투표한다고 합니다. 다음 주가 되었을 때, 후보자는 나가 있으라면서, 자기들끼리 만장일치로 저를 회장으로 선출했습니다. 교회 처음 온 새 신자인데, 하나님이 저에게 열정을 부어주셔서, 그 형들과 함께 열심히 해서 고등부가 120명이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 대학 원서를 쓰는 시기가 왔고, 원서는 네 군데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만끽하고 나니, 목회자가 되겠다고 원서를 하나만 썼습니다. 하나님께 대출받은 거도 아닌 데, 은혜를 갚겠다고, 은혜 주신 하나님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신학교에 원서를 쓴 것입니다.
- 신학교에 들어가고, 안산 동산교회 대학부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학부가 60명이었고,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그런데 대학부 목사님이 새로 부임한 이후 60명이 800명이 되는 부흥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된다는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저도 나중에 사역을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 학대로 인해 저에게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증상이 있습니다.
- 고등학교 시절, 남녀 공학이었는데, 남자반 6개와 여자반 6개가 있었습니다. 교실 안에서 남자들끼리는 편하니까 대화를 하는데, 교실 밖에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를 몰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는 남녀 학생들이 같이 먹기 때문에 여학생도 만납니다. 제가 식판에 밥을 받아서 먹고, 퇴식구로 가야 하는데, 여학생들이 앉아 있는 쪽에 퇴식구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저 스스로 항상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고 잔반을 버리러 갔는데, 어느 날 기둥에 부딪히면서 식판 음식물이 저의 몸에 다 쏟아진 것입니다. 하필 그날 입맛에 안 맞아 청국장이랑 음식을 거의 남겼는데, 저는 큰 망신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전부 저를 쳐다보게 되었고, 그 사건이 저에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 저의 대인기피 증상이 목회자로서 커다란 장애가 되었습니다.
- 신학교에 들어가서 1학년 때 감비아 선교사님이 오셔서, 신학생들이 공부만 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시는 겁니다. 본인은 신학교 다닐 때, 하루도 복음을 전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제가 그 말씀에 은혜를 받고 실천하기 위해, 학교 앞 허름한 상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밤에 담배 사러 아저씨들이 오는데, 제가 “교회 다니세요!” 한 마디 하면 아저씨들이 내 덩치와 모습에 무서워 깜짝 놀라는 겁니다. 신학교 졸업하면 목사가 되어야 하는데, 제가 설교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겁니다.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사영리를 사고 달달 외웠습니다. 그리고 평소 타고 다니던 4호선 전철을 타고 복음을 전하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지하철을 타면 마음이 편했는데, 막상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먹고 타니, 가슴이 콩닥콩닥했습니다. 지하철 첫 칸에서 맨 뒤 칸까지 복음을 전하리라 마음먹고 탔습니다. 첫 칸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다가, 다음 칸에 가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고, 마지막 칸까지 가서 내린 후 집으로 갔습니다. 심장만 뛰고, 땀만 나고,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게 자괴감이 드는 겁니다. 그래도 제가 성실하거든요. 주말이 되면 4호선을 타고 똑같이 말을 못 하고 마지막 칸까지 갔다가 내렸습니다. 그렇게 못 하고 있다가 운명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날은 지하철에서 천 원짜리 장난감 인형 파는 분을 본 겁니다. 조잡한 장난감으로 너무너무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는 겁니다. 갑자기 제 안에 열정이 생기는 겁니다. ‘저런 싸구려 장난감 파는 사람도 대담한데, 나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 자로서 이걸 전하지 못하고 있구나. 나도 할 수 있다!’ 그 아저씨를 보고 자신감이 생겨서 다음 칸에 가서 하려고 했으나 결국 못 했습니다. 완전 포기했습니다. ‘나는 안 된다. 나는 목회 못 한다.’ 자포자기를 하게 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날은 대학부와 청년부 사역을 하고 너무 늦게 막차 4호선을 탄 날입니다. 주변을 보니 술에 취해 의자에 누워 주무시는 분이 한 분 있어서 살짝 갔습니다. “아저씨!”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외우고 있는 5분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속사포처럼 끝냈는데, 아저씨는 계속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마가 다락방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다음 칸으로 가니, 세 명이 있었는데 모두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또 5분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너무 감사한 겁니다. 이제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을 기다려 낮에 지하철로 갔습니다. 그날은 지하철이 꽉 차 있었습니다. 내가 말하기 어려운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다리가 벌벌 떨리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습니다. 말은 더듬고, 몸은 굳었습니다. 그래도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총신대학교 1학년 신학생인데, 사람과 눈을 못 마주칩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제가 어떻게 설교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딱 5분만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몸에 전율이 흐르더니, 몸이 풀려서 말을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듣다가 박수를 쳐 주는 겁니다. 어떤 분은 허그를 하면서 “학생, 할 수 있어. 학생 교회, 어디야? 나 그 교회, 갈게!” 하는 겁니다. 저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겁니다. 저는 다음 칸에서도 했고, 다음 칸에서도 했습니다. 제가 지금 원고도 없이 설교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저의 고통과 상처를 아시고 치유해 주신 겁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지만, 1년 동안 전도를 한 명도 못 했습니다.
- 혀를 풀어주신 하나님은 앉은 자를 일으키십니다.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최소한 눈은 작지만, 눈을 교감하면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겁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은 제가 아닌 거예요. 일상생활에서 저를 만나면, 저는 조용히 도망 다닙니다. 제가 그렇게 말을 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제가 전도사를 하게 된 겁니다. 저는 부흥을 경험했기에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산 동산교회에서 교회 개척을 할 때, 첫 번째 교회 개척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너는 어느 부서 할래?” 물으셔서, “고등부를 맡아서 애들을 한번 살려보고 싶습니다.”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등부 학생이 한 명도 없다고 하십니다. 미친 듯이 1년 동안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PC방도 다니고 동네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제가 교회 전도사인지 모르는 학생이 없게 되었습니다. 새벽예배 마치고 승합차에 뜨거운 물통을 싣고, 고등학교 앞에서 3달 동안 학생용 코코아와 선생님용 커피를 타주었습니다. 놀라운 거는, 애들이 코코아만 맛있게 처먹고^^ 교회는 안 나오는 겁니다.ㅠㅠ 1년 동안 학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또 파괴적인 결핍 메시지가 생기는 겁니다. ‘고등학생도 전도 못 하는 너가 무슨 전도사냐? 너가 무슨 교회를 하냐? 니가 무슨 사역을 하냐?’ 그때 제가 25살이었습니다. 정말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기도하면 극단적으로 끝까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물어보시는 거 같은 거예요. ‘너, 이 아이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했냐?’ 저는 1년 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이 땅을 향한 수천 년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너의 열정은 알지만, 너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내가 한 영혼을 보내줄 테니 목숨을 다해 사랑해라.’ 이 말씀을 들으니, 제가 너무 얄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지쳐서 코코아를 일주일 동안 안 탔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었는데, 어떤 기대감도 없었습니다. 교회가 외곽에 있어 시내에서 3km를 걸어와야 했거든요. 그날은 사표를 품에 안고 오늘도 안 오면 사표를 내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예배를 드리고 끝날 즈음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길에서 만난 고딩 남학생 한 명이 온 겁니다. 제가 당황해서 “너, 왜 왔어?” 이랬습니다. 그 친구가 눈을 깜빡깜빡 하더니 “전도사님이 오라며요?” 어색하게 있다가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이 막 나면서 그 애를 끌어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한 명씩 한 명씩 보내주시는 거예요. 정말 한 영혼을 사랑하면서 한 교회에서 12년이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다듬어 가시면서 한 영혼의 소중함을 계속 주셨어요. 특별히 상처 입은 한 영혼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주셨어요. 왜냐하면 제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저는 상처 입은 한 영혼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 한 영혼만 바라보고 목회를 했는데 제가 엉겁결에 김유비 닷컴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 하나님이 죽을 지경까지 몰아가시고, 압도적인 은혜를 주셨습니다.
- 저는 한 교회에서 12년을 사역했는데, 교회 옮길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님들이 부족한 저를 너무 사랑하고 아껴주셨어요. 그런데 그릇이 안 되어, 교회 개척을 못 하겠는 거예요. 8년 차 되었을 때, 교회에서 개척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아서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했습니다. 또 4년이 지나서 순서가 왔는데,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상처 입은 한 명을 위한 블로그 사역을 말씀드렸는데, 서로 공감이 안 되었습니다. 교회 개척은 거절하고, 길거리에서 목회를 하겠다고 설득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지금 받는 사례비로 5년-10년간 제 사역을 지원해 주는 걸 고민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기도하는데,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빈 몸으로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다루시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 거절하고 나왔으면 당당하게 사역을 해야 하는데, 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너의 인생은 망했어. 너의 잘못된 선택으로 너의 가족과 자녀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거야.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너의 인생은 끝났어!’ 이렇게 자괴감에 빠진 겁니다. 공황장애 증상까지 보였습니다. 그렇게 절망 속에 있는데, 새벽에 제 마음속에 예수님이 또 진실을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너의 실수가 아니다. 내가 널 인도할 거다. 내가 널 돕는 자를 보낼 것이다.’ 또 이러시는 거예요. ‘상처 입은 한 영혼을 보내줄 것이다.’ ‘혹시 절박하니까 내가 듣고 싶은 것을 들은 건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 마음이 안정되고 여유를 찾고 나니까, 내가 뭘 두려워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뭐지? 제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아침에 우유 배달과 신문 배달하고, 인력시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일하러 가는 것, 그리고 저녁에 오면 샤워하고, 아이들과 저녁 먹고, 기도로 축복하고, 대리운전하러 가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그 일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게 최악이라면 두려워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평안한 겁니다. 통장을 뒤져보니 두 달치 생활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공유오피스가 생겨서 강남역 고층빌딩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 돈으로 공유오피스 계약을 하고, 평생 내가 해보지 못했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두 달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구상하고, 마음껏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쓰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출근을 했는데, 전화가 온 겁니다. 규장 출판사인데, 저에게 책을 내라는 겁니다. 저는 너무 당황해하는데, 다음 주에 출판사 대표님과 미팅을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대표님을 뵈러 갔는데, 대표님이 간증을 하시는 겁니다. 실장님이 김유비닷컴을 들어가 보래서 봤는데, 아무 컨텐츠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5층 기도실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부담 주지 마세요. 우리 선교 단체 아닙니다. 우리 사회복지단체 아닙니다. 그냥 기도해 줄게요.”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돕는 자로 보냈으니, 그의 사역을 자세히 들어보고 그를 지원하라.” 이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제가 공황장애 증상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들은 말씀이 헛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대표님이 ‘원고 있어요?’ 하시는데, 없다고 하니까 써서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먼저 출판 계약부터 하라고 하십니다. 대표님이 ‘요즘 뭐 하세요?’ 물으시고, 하는 것 없다고 하니까, 갓피플에서 설교 좀 해달라고 하셔서, 그것이 김유비닷컴 사역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압도적인 은혜를 주셨습니다. 죽을 지경까지 몰아가시고,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 예수님이 원하시면, 그 어떤 불가능한 질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 저는 오늘, 상처 입은 한 영혼 때문에 초대받았다고 확신합니다. 내 안에 혼자라는 감정, 내 안에 실패했다는 감정, 내 안에 절망이라는 감정, 그저 감정입니다. 감정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에요. 감정에서 멈추지 말고 그 감정에서 진리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진리로 나아갔을 때, 그곳에 참된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요. 그러나 저는 이제 압니다. ‘외로움은 감정이다. 예수님은 내 감정과 상관없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내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난 혼자라고 생각이 든다. 내 옆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래. 그런 감정을 내가 느낄 수 있지. 그러나 예수님은 내 감정과 상관없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실패라는 감정, 불안이라는 감정, 절망이라는 감정, 그 감정을 존중합니다. 그 감정을 수용하십시오. 그러나 그 감정에서 멈추지 말고, 그 감정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널 책임질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내가 너를 살려줄 것이다. 너의 도전이 멈출지라도, 너의 도전이 실패할지라도 내가 너를 살려낼 것이다. 내가 살아나면 너의 도전도 살아나고, 내가 살아나면 너의 사업도 일어서고, 내가 살아나면 너의 육체의 질병도 치유될 것이다.” 이것이 감정에서 멈추지 않는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오늘 이곳에 예수님이 함께하십니다.
- 제가 이렇게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왜 저를 부르셨냐고 절규하며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저의 실질적인 고백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신 것은 “치유에 대해 말하지 말고, 가서 나의 능력의 말씀을 전하라. 그 말씀이 병든 자를 치유할 것이다. 그 말씀이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것이다.” 오늘 제가 여기에 부름받은 목적은 저의 말과 경험으로 여러분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 말씀을 믿음으로, 이 말씀을 고백함으로, 오늘 여러분들은 치유가 될 것입니다. 주님이 살려주시길 원합니다. 우리 같이 기도할 때 감정에 의존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될 것 같은 느낌으로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차분하게, 침착하게,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그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되뇌이면서, “주님, 저를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에게 치유의 능력을 행하여 주시옵소서.” 부르짖으십시오.
- 의사가 말했습니다, 3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오래 살 수 없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을 거라고. 압니다, 상식입니다. 그러나 주님 저의 믿음이 상식에서 멈추지 않게 해 주시고, 이 상식을 존중하고 수용하나, 이 상식을 넘어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너는 산다, 너는 치유된다, 너는 고쳐진다.” 말씀하시면 우리는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정을 넘어서서, 상식을 넘어서서, 진리로 나아가서 진리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 우리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결핍은 우리를 속입니다. 우리는 속박됩니다. 우리의 결핍은 수 없는 거짓말을 양산해내면서 나를 파괴하려 듭니다. 믿음을 꺾으려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이 시간,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예수께서 진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감정을 넘어 진리로 치유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상식을 넘어 진리로 육체의 질병이 치유될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일어나 걸어라. 이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여러분 각자의 소망의 말씀을 되뇌이며, 붙잡으십시오. 우리의 감정은 상관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치유되는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주님 이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 결어 및 기도
1) 할렐루야!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정말 상처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차이만 있을 뿐이지, 타락한 죄성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나름의 상처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처가 생기면 문을 딱 닫아버리더라고요. 그리고 상처 속에 꼭꼭 숨으려고 하죠. 그런데 여러분, 그 상처가 숨겨질 수 없는 것이 언제는 그 결핍이 우리의 인격을 파괴하기도 하고, 우리 인생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주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이사야 61장에 보게 되면,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밤에 우리가 찬양하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나갈 때, 그 진리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서 진리 안에서 우리 모두가 자유함을 얻고, 도리어 그 인생의 상처가 별이 됩니다. 우리 목사님도 지난날의 그 아픔과 상처가 별이 되었잖아요? 그래서 상처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하나님 나라의 빛나는 별이 됐습니다. 여러분의 상처도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찬양 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2) 여러분, 누구에게나 다 상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 상처 안에 매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안에 있는 슬픔과 외로움과 두려움은 모두 감정이라고. 여러분! 감정도 중요하지만, 감정에 머물러서는 안 되죠. 우리는 진리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들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었어요. ‘암에서의 치유’라는 책을 쓰신 보디 오스틴 여사인데 그분이 이런 얘기를 했더라고요. “내가 암을 치료받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그 치유에 대해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매일매일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치유받게 된 가장 결정적인 요소였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상처가 도리어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상처가 주님 안에서 치유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내가 알고 있는 이 상처의 감정을 가지고, 그 상처의 감정으로 결핍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워주고, 치유하는 자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두 번째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많은 성도님들과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이기도 한데요. 상처받은 한 영혼에 대한 열정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 교회에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시지 않는가?’ 그래서 목회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 영혼에 대해 집중하고, 그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에 대한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한 영혼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준비된 사람들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왜 우리 교회가 부응하지 않느냐라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 나에게 그 한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 다 같이 ‘주여’ 한 번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3)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김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오늘 그 상처의 감정 속에서 힘들어하는 지체들에게 귀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시고, 그래서 그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셔서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도 많은 쓴 뿌리가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상처 때문에 내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버리고 숨어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안에 숨겨둔 그 상처들이 끊임없이 내 인생의 발목을 붙잡고 불안과 두려움을 우리 가운데 가져다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주님, 이 시간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붙들게 도와주십시오. 성령님, 강력하게 기름부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진리의 말씀으로 인하여 치유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여러 가지 암으로 인하여 육체의 질병과 고통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흔들림 없이 변치 않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매일매일 그 치유의 말씀을 고백하며 선포하게 도와주셔서,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도와주옵소서. 말씀대로 고침받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안에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시고, 한 영혼을 사랑하게 하시고, 한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게 도와주셔서, 그 한 영혼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경험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