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언어, 피의 언어
여당 대 야당
한국당 당권
‘타협은 없다’
“다시 전장에 서겠습니다.” ‘전장’이란 단어가 오늘 한국 정치의 분위기를 압축했다.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지고 당을 떠나면서 ‘홍준표가 옳았다’라는 국민의 믿음이 있을 때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는데, 막말과 거친 말로 매도됐던 저의 주장들이 민생경제 파탄, 북핵 위기 등이 현실이 되면서 ‘홍준표가 옳았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국민과 당원들의 엄숙한 부름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홍준표가 돌아왔다고 선언한 그날,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사건으로 구속됐다. 법정구속은 뜻밖이었다. 일주일 전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었다.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그 며칠 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손석희 JTBC 사장이 치명적 내상을 입었다. 또 하나의 신화적 아우라가 사라졌다. 누가 누구의 칼에 맞을지 모르는 시대다.
상대에게 퇴로를 열어주기에
본래 정치는 전쟁과 다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치는
‘이긴 자가 진 자를 죽이는’
전쟁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정치는 전쟁이 되었다. 정치는 승패를 다투는 점에서 전쟁과 본질이 같지만 상대에게 퇴로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전쟁과 다르다. 퇴로를 막고 섬멸해야 할 ‘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츠와 같이 ‘공정한 룰’ ‘치열한 경쟁’ ‘깨끗한 승복’의 아름다운 승부가 모두가 꿈꾸던 한국 정치의 미래였다. 하지만 2019년 한국 정치는 ‘이긴 자가 진 자를 죽이는’ 전쟁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전쟁의 언어, 피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김경수 지사 구속에 대해 민주당은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성 재판’으로 규정하고,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위원장을 맡은 박주민 의원은 “성(창호)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측근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도 (성 부장의) 사법농단 관여 사실이 적시돼 있다”고 지적한 후 “사법농단에 관련됐지만 징계나 처벌을 전혀 받지 않은 판사에 대해 탄핵을 하는 것”이 ‘사법농단 청산 대책위’의 목표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번 판결을 “양승태 적폐 사단의 조직적 저항”으로 규정하고 “판결이 보신과 보복의 수단이 되고 있다”며 ‘재판 불복’을 선언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대선의 정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이 태생부터 조작 정권, 위선 정권이 아니냐고 의심된다”며 사실상 ‘대선 불복’을 선언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이번 기회에 입법부 차원에서 법원 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 소속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김경수 지사가 끝이 아니고 더 있다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소추를 하지는 못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할 수 있다는 학설이 있다. 공정한 수사를 위해 대통령의 영향력이 없는 특검 수사를 촉구해야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이쯤 되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모두 참전하여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심리적 내전 상태다.
김경수 지사는 구속 직후 “다시금 진실을 향한 긴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과정을 이어갈 것이며 진실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손석희 사장도 온라인 팬카페에 “긴 싸움을 시작할 것 같다. 모든 사실은 밝혀지리라 믿는다”는 글을 남겼다. 그들이 예고한 ‘긴 싸움’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 명 정도는 살아남아야지”라는 대사가 인상적인 일본 영화 <아웃레이지>는 ‘나쁜 놈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광고 카피처럼 ‘모조리’ 죽는다. 한국 영화 <아수라> 역시 모조리 죽는 비극으로 끝난다. 긴 싸움 끝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제 정치인은 더 이상 통치하는 자가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원형극장의 검투사이거나,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는 격투기 선수, 혹은 ‘게임 캐릭터’ 신세가 되었다. 대중의 분노와 군중의 광기에 정치인의 삶과 죽음이 달려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문제 자체가 되었다.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선동가만 넘쳐 난다. 국민이 위임한 공적 권한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는 뻔뻔한 정치인에게 부끄러움은 기대난망이다. 적폐청산을 몇 년간 듣고 있지만 청산되기는커녕 더 쌓여만 간다. 개혁은 고사하고 그나마 작동하고 있던 민주주의마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솔직히 말해 모든 것이 더 나빠지고 있다. 불법과 비리가 드러나도 인정도 없고, 사과도 없고, 책임도 없다. 지지자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다짐뿐이다.
정치권 싸움에 국민 등만 터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진보의 확신>에서 경제적 양극화 때문에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대립 때문에 경제적 양극화가 커진다고 통찰했다.
우리도 정치의 극단적 대립이 빠른 속도로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다. 교육을 위한 입시가 아니라 입시를 위한 교육으로 전락했듯, 국정을 위한 정쟁이 아니라 정쟁을 위한 국정이 돼 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세계화와 기술혁신의 그림자가 대중을 증오와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보이지 않는) 진짜 적은 외부에 있는데 모든 나라가 (눈에 보이는) ‘내부의 적’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일자리는 예상보다 훨씬 큰 폭으로 훨씬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중산층은 붕괴하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 못지않게 (자녀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부모의 노후까지 위협하는) ‘가난의 대올림’이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불안과 분노 때문에) 모든 세대가 머리는 우파지만 몸은 좌파가 되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눈에 보이는 이웃에게 증오와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는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치는 합의를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해명하는 데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김정은의 완벽한 승리’라는 보수진영의 거센 공세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야당 시절 그토록 비판해왔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통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자칫하면 보수·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손혜원, 서영교, 김경수 이슈는 예고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쉴 새 없이 스캔들이 터져 나올 시간이다. 권력의 운명은 숙명적으로 그렇게 흘러간다. 밖에서 아무리 ‘2017체제’ ‘2018체제’를 위한 ‘개혁연대’를 외쳐도 권력에 취해 있을 때는 들리지 않는다. 새로운 체제는 오지 않았다. 지지의 환호 소리가 급격히 작아질 때는 이미 늦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정치는 늘 그렇게 국민을 배신한다.
설 연휴가 지난 직후의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지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35% 아래로 내려간다면 정권의 위기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다면 지지층 일부도 이탈한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당 지지율도 30%대 초반으로 내려가면 한국당과 오차범위 내 격차로 좁혀질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플랜 B’로 전환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청와대 개편은 이미 끝났고 당 지도부 교체도 총선 직전에나 동력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상황도 국면 전환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하고 있다. 보수진영이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당의 극적인 변화도 없다면 총선 승리 시나리오를 수정할 근거가 낮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선동가 득세
총선이 가까이 올수록
타협의 정치는 멀어지고
더 살벌히 물어뜯을 것이다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 호남 의원들 간에 통합 논의가 오가고 있는 모양이지만 정계개편의 변수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통합은 명분이 약해서 동력을 얻기 힘들다. 솔직히 말해 민주평화당은 국민의당에서 갈라져 나올 때 정치적 결사로서의 당의 미래는 사실상 끝났다.
풍전등화의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의 운명에 따라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만약 황교안과 홍준표가 전당대회에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국당 전당대회는 오세훈 대 김태호의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누가 되든 당은 분열과 갈등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연착륙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유승민은 한국당으로 돌아가고 바른미래당은 공중분해됐을 것이다.
황교안의 출마로 문제가 좀 복잡해졌다. (복당파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세훈은 힘들 것이다.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에 오른 황교안이 당 대표가 된다면 당분간은 황교안의 시간이 될 것이다. 황교안이 대표가 되려면 세 개의 벽을 넘어야 한다.
첫째는 박근혜다. 만에 하나라도 “황교안의 출마는 내 뜻이 아니다”라는 박근혜의 메시지가 나온다면 황교안은 순식간에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둘째는 황교안 자신이다. 홍준표가 “황교안은 박근혜가 탄핵될 때 정치적으로 같이 탄핵된 사람이다…이 당이 도로 탄핵당, 도로 친박당, 도로 특권당, 도로 병역기피당으로 회귀하게 방치하는 건 한국 보수우파세력에 죄를 짓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듯이 황교안이 당 대표가 되면 총선에서 (문재인 심판론은 사라지고) ‘야당 심판론’이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공안검사 출신의 강한 보수 이미지는 수도권 승부에서 외연확장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황교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자유한국당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의전에 익숙하고 선거 경험이 없다는 점도 치명적 약점이다.
셋째는 홍준표다. 백전노장의 인파이터인 홍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가장 두려워할 야당 대표다. 정권과의 투쟁 이력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그는 “보수우파는 물러 터졌다. 저쪽이 학을 떼도록 싸울 지도자가 있나? 없다.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당한다”며 자신의 강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대여 공격을 해야 할 처지에 (황교안의 약점 때문에) 당이 전부 나서서 수비를 하는 형태로 가면 수렁에 빠진다”며 황교안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홍준표를 꺾고 당 대표가 되면 세 가지의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유승민, 안철수까지 끌어들이는 ‘보수통합’ 정당으로 민주당과 일대일 승부를 하는 것이다. 사실상 유승민의 투항이다. 둘째,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친박당’으로 축소되어 외연확장에 실패하는 경우다. 사실상 수도권 승부가 어려운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유승민, 안철수를 비롯한 바른미래당 사람들과 중도·보수 인사들이 ‘중도보수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 셋째, 일부의 예상대로 총선 전에 황교안체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에도 자유한국당을 대체하는 ‘중도보수신당’이 나올 수 있다. 사실상 유승민의 정치적 승리다. 만약 홍준표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 바른미래당의 미래는 좀 더 암울할 것이다. 어느 시나리오든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솔직히 나는 보복의 도돌이표가 두렵다.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명절·술모임은 권력 확인하는 자리…고단한 어른들, 예술과 디저트를 음미하라
- 기자
- 유주현 기자
명절
제로섬게임처럼 선물 교환해도
어떤 뜻 주고받았다 생각하면 돼
한민족
남북관계 두리뭉실 넘어가고 있어
민족관계냐 국가관계냐 따져봐야
댓글
상대 글 비난하며 쾌감 느껴 중독
기명·무기명 두 가지 통로 필요해
예술
정신 말랑말랑하게 하는 스트레칭
유희를 넘어 삶의 상처 보듬어야
가족은 사적인 카르텔, 공적 기능 사라져
그런데 이 남자, 좀 이상하다. ‘하버드대 출신 서울대 교수’라는 성공한 인생과 권위의 대명사 같은 직함을 가지면서, 애들이나 좋아하는 미피 피규어를 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고, “술 대신 디저트를 달라”고 외치며, “배우 전도연을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엉뚱한 소리를 진지하게 한다. 애초에 대한민국의 50대 남자가 가족과 명절의 근본에 대해 도발한 것부터 전에 없던 특이한 ‘아재’상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뜬 그에게 ‘설’이란 무엇일까. 1월 말 미국으로 가 2월 말에 온다는 그에게 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 질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젊은 세대에게 환영받았는데, 설에는 음식 장만이 스트레스인 여성들에게 화두를 던져주시면 어떨까요.
- 응답 :“화두를 던지라니 주제넘은 일입니다. 중요한 건 죽은 사람은 음식을 안 먹는다는 것이고, 명절이란 산 사람들이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란 것이죠. 술을 누가 먼저 따르고 전을 누가 부치느냐라는 오래된 권력이 원기를 회복하는 작업이랄까. 가족이 공적인 의미를 가졌던 때가 있거든요. 몇 백년 전에는 대가족이 자본을 축적해 구성원들에게 대부 기관·구호 기관 역할도 했는데, 오늘날의 가족이란 사적인 이익을 위한 카르텔에 가까운 집단이죠. 공적인 기능이 사라진 상태에서 오래된 권력관계가 희미해질 때쯤 새삼 관계를 확인하는 정치적인 모임인데, 이런 모임은 소규모일수록 좋아요. 대규모가 될수록 권력적인 요소가 강해지니까.”
- 질의 :명절에 대한 칼럼을 많이 썼는데, 본인은 명절을 어떻게 보내나요.
- 응답 :“최대한 평소처럼 보냅니다. 저희 가족은 차례는 지내지 않기로 하고, 명절 즈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끼리 자기 방식대로 만나고 있죠.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죠. 그런데 주변에서 명절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은 못봤어요. 부모님, 친지는 대규모로 떼지어 다닐 게 아니라 각자 보고 싶을 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례를 없애지 못하는 집안도 있고 각자 처지가 다르지만, 제가 일반적으로 권하는 건 만화를 보며 플랭크나 스쿼트를 하면서 보내라는 겁니다. 잘 쉬고 체력을 보강하란 말이죠.”
- 질의 :차례를 지내거나 선물을 주고받는 의식이 인간의 삶에 필요하기도 한데요.
- 응답 :“인간이 의미적인 동물이라서 그렇죠. 선승이나 특별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몰라도 보통 사람들은 삶을 견디기 위해 의미 부여와 리듬을 필요로 합니다. 의미 부여라는 게 고통을 참는 방식 중 하나죠. 삶이 고통스러워도 여기에 의미가 있구나 싶으면 참을 수 있지 않나요. 노동요를 부르는 것도 노동의 고통을 완화하는 면이 있구요. 상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의식도 일종의 제로섬 게임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걸로 어떤 뜻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하면 그런 게 없는 벌거벗은 삶보다 훨씬 견딜 만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설’이란 의식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고통과 슬픔을 잊기 위한 것일까. 그는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늙음과 젊음의 차이는 사소해진다”고 했다. “어떤 늙음이냐 어떤 젊음이냐가 중요하지 늙음이나 젊음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죠. 젊음이 좋아 보이는 것도 늙은 사람의 관점일 뿐, 젊은 사람 입장에선 좋은 줄 모르는 법입니다. 저는 늙는다는 게 슬프지 않아요.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요. 탈모가 진행되고 질병에 걸리면 탈모와 질병이 슬픈 거겠죠.”
젊음이 좋아 보이는 건 늙은 사람 관점일 뿐
“요즘 필요한 질문 중의 하나가 ‘한국이란 무엇인가’입니다. 한창 남북관계·통일·다민족·난민 같은 단어가 뉴스를 장식하는데, 그 모든 논의에서 빠져있는 게 그 질문이에요. 우리가 관습적으로 ‘한 민족’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이 아니거든요. 민족이란 개념은 극히 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니 하나의 민족이란 근거 없는 주장이에요. 옛날부터 많은 이민족과의 교통이 있었고 오늘날 다민족 사회도 커져가고 있는데, 그걸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란 말로 가려왔던 것이죠. 점점 우리가 한 민족이란 걸 안 믿게 될텐데, 한 민족이 아니면서도 한국이란 나라를 구성하고 살게 만드는 핵심이 뭔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도 됐죠. 남북한 관계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고 있지만 민족 간 관계냐 국가간 관계냐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교육, 돈이 좌우하는 부르주아들 게임
- 질의 :최근 드라마 ‘SKY캐슬(스카이캐슬)’이 화제였는데, 왜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야 할까요.
- 응답 :“이런 식의 경쟁 자체는 언제 어디서나 있어왔어요. 최근 한국사회에 특징적인 거라면 돈이 좌우하는 부르주아들만의 게임이 됐다는 것이죠. 기억할 만한 건 군부독재 시절엔 과외가 금지됐었다는 거에요. 그 시절엔 부르주아의 권력이 군사 엘리트에 확실히 복속된 상태였는데, 요즘 세상엔 돈의 권력이 우위가 됐죠. ‘SKY캐슬’에서 보이는 것도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투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인데, 이런 난리법석 자체가 그나마 한국사회가 아직 계층이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사회라는 방증이기도 해요.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아예 불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법석피우지 않겠죠. 위로 상승하려는 게 아니라 여기서 지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큰 게 아닐까요.”
- 질의 :또 다른 인기 칼럼 ‘뱃살이 꾸는 꿈’에서는 한국 사회에 정치적 다양성이 상실된 현실을 개탄하고 있는데, ‘내로남불’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 응답 :“대개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의 이분법에 익숙한데, 사실 우리에겐 삼·사·오분법이 다 필요해요. ‘SKY캐슬’의 그 난리가 한국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 같지만 극히 돈 있는 일부의 얘기죠. 사실 진짜 부자는 그런 난리 칠 필요가 없고, 가난한 사람도 그 게임에서 배제돼 있어요. 옛날식 표현으로 ‘진골 대 육두품’의 대결이 과대평가되는 것이죠. 육두품은 진골과 육두품 사이에 거대한 벽이 있다 생각하지만, 훨씬 더 아래서나 위에서 보면 진골과 육두품이 다 한통속이거든요. 그런 입장에서 육두품의 불만이란 ‘내로남불’일 수 있죠.”
“반전이라면 오해의 소지가 있죠. 칼럼이나 에세이 같은 글의 목표는 인식의 쇄신이거든요. 기존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쇄신해서 달리 보게끔 하려는 것이죠. 좋은 에세이란 자기가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기까지 독자와 함께 걸어가는 일이거든요. 그런 순간이 오면 독자 입장에서는 반전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 질의 :요즘 신종 글쓰기 장르가 댓글인데, ‘댓글이란 무엇인가’ 질문도 해볼 법한데요.
- 응답 :“상대를 비난하며 느끼는 쾌감에 중독되기 쉬운 장르인 것 같아요. 비난 대상이 잘못이라 하더라도 비난하는 자신이 우월해지는 게 아닌데, 가끔 착각할 때가 있죠. 평가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쾌감이란 게 있거든요. 그 위치에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댓글은 큰 노력 없이 평가자의 위치에서 짧은 순간의 쾌감에 도취될 수 있는 거죠. 굉장히 쉽게 평가자의 권력을 향유하는 쾌감이란 면에서 댓글중독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 질의 :익명에 숨으니 너무 폭력적이 되는데.
- 응답 :“무기명 댓글이란 형식은 언론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한시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탈춤에서 탈을 쓰는 것도 얼굴을 드러냈을 때의 박해 때문인데, 억압 상황이 강하지 않다면 오히려 익명이 무책임한 글쓰기로 흐를 가능성이 있죠. 기명과 무기명 두 가지 통로를 다 만들어 놓는다면 댓글의 질을 비교할 수 있고, 어떤 공론의 장이 제대로 굴러가는지도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사실 교수 이전에 영화평론으로 등단한 작가다. 간혹 소설가 박민규나 하루키를 연상시키는 엉뚱한 상상력과 음악적 리듬감 충만한 글이 발견되는 이유다. “살면서 잘했다 싶은 일이 문학과 예술을 즐기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틈날 때마다 예술 사랑을 어필하는 그는 글쓰기 강연에서도 “글을 잘 쓰려면 현대미술관에 가라”고 했다. 현대무용을 꼭 배우고 싶다는 말도 한다.
“제가 좀 유연한 편입니다. 안 그래 보인다구요? 실제 제 몸을 본 사람들은 무용할 만하다고들 하던데, 겨울이라 인지 못하시는군요. 현대무용에 관심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굉장히 다양한 근육을 사용한다는 것이죠. 정신의 다양한 근육을 사용하고 싶듯이 몸도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써보고 싶거든요. 또 하나는 스스로 동작을 창조할 수 있잖아요. 발레나 사교댄스의 정형화된 움직임을 배우는 것과는 다르죠. 언젠간 배우고야 말겁니다.”
- 질의 :예술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 응답 :“예술에선 수동적으로 영향받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영감을 받아요. 예술가들은 대부분 미친 사람들이잖아요. 보통사람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니 여러 가지로 좋은 자극을 받죠. 정신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정신의 스트레칭이 된달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생각의 근육 사용하라
- 질의 :‘성장이란 무엇인가’란 칼럼에선 예술이 상처투성이 삶을 성숙하게 바라보게 한다는 예술론을 제시했는데.
- 응답 :“예술이야말로 어른의 유희라 생각해요. 어른이 유희를 못 찾으면 말초적 쾌락을 찾아 헤매게 되죠. 유희를 넘어 삶의 상처를 납득하고 심미적 차원을 부여하게 만드는 기능도 있어요. 리버 피닉스가 나왔던 ‘스탠바이 미’(1986)라는 영화가 그런 주제를 잘 다루고 있죠. 어린 소년들이 죽음을 목도하고 나서 자기들이 알던 세계가 전체가 아니라 큰 흐름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성숙해지는 이야기인데, 상처투성이 삶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심미적 향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거든요. 그런 영화를 보면 분명 느끼고 있는데 표현할 수 없었던 상처가 예술을 통해 잘 표현되고, 심미적인 차원까지 더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 질의 :‘술보다 디저트’라는 취향이 ‘일반 중년 남성들과 다르다’는 함의를 품고 있는 것 같아요.
- 응답 :“술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당연히 가끔 마시기도 하는데, 적잖은 한국사회 술자리가 권력을 확인하는 자리거든요. 누군가 담배를 사러 나가야 되고 누군가의 술잔 채우는 데 신경 써야하고, 그 와중에 공적으로 얘기되어야 할 일들이 사적으로 처리되는 문화 자체를 즐기지 않습니다. 디저트 먹으면서는 그러지 않거든요. 디저트 먹다가 담배 사러갈 일도 없고, 누가 떠먹여 주지도 않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정신의 사치가 필요하거든요. 디저트를 찬양하며 먹는다는 건 지쳐있는 삶에서 당분을 섭취하며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죠. 술값보다 훨씬 적게 드는 사치예요.”
- 질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책 제목은 결국 ‘메멘토 모리’로 통하나요.
- 응답 :“첫째, 살아있으라는 얘깁니다. 살아있어야 죽음을 생각할 수 있죠. 둘째는 오전 중 일어나란 얘깁니다. 늦잠을 자면 아침에 생각할 수 없잖아요. 셋째, 생각의 근육을 사용하라는 얘깁니다. ‘Thinking’이란 건 몽상과는 다르거든요. 덧붙이자면 생각한다는 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라 체력이 필요하니 플랭크와 스쿼트를 권합니다. 제 몸매도 플랭크와 스쿼트 덕이거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