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가 아침밥을 먹었다'는 얘기보다 '철수는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는 얘기가 더 얘깃거리가 된다.
그와 같이.... 열심히 공부해서 관련 직종에 취업을 했다거나, 미대 나와서 화가가 되었다거나, 음대 나와서 시향市響에 들어갔다거나, 사시 패스한 사람들이 50억 클럽이 되었다는 얘기도 재밌지만,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가 하버드 철학 학사라거나, 치대 졸업 후 KBS 공채 개그맨이 되었다가 지금은 세계적인 사랑니 발치 전문의가 되었다거나(김영삼, 75년 정읍産, 전북대), 기타 知와 藝를 넘나들면서 두각을 나타내는 얘기도 흥미롭다.
물론 안정되고 무난하고 FM적인 자기 삶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에 들었지만....
아무튼 개그맨 출신 치과의사의 얘기가 인상적이다.
"크면서 주위에서 자기만큼 웃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는 정말 웃기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게 KBS 공채 개그맨이 되었고 개그 프로에도 출연했지만..... 막상 그 세계에 가보니 내 얘기에 웃는 사람이 많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개그맨을 접었다."
<여담1>
20여년전 EBS 교양국의 모 PD는 대학교 때 스승이었던 도올 김용옥(당시 51세)과 의기투합?하여 <노자와 21세기>를 기획, 제작했다.
<노자와 21세기>는 교육방송의 교양프로 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도올의 팬덤이 형성되었으며, 반대로 그의 음색과 직설로 인해 많은 안티를 형성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의 정치적 견해와 관계없이) 학자로서 그만큼 호불호가 극명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문득, 효과가 불분명한 건강보조식품은 부작용도 없지만 약효가 확실한 전문의약품은 부작용도 그만큼 클 수 있다는 구조와 비슷한 양상이 아닌가 싶다.
<여담2>
오랜 세월이 흐르고 우연히 도올의 강의를 듣는데 그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느끼고 의아했다.
강의 도중 여담 중에 "추사의 제자로 3代를 이어 한국화의 대가라고 칭송받는 남도의 화가를 과연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까......."라며 아쉬운 표정으로 말 끝을 흐리면서 바로 화제를 바꿔 본론으로 들어간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할 때여서 (본 강의 내용은 기억이 안나는데) 그 얘기는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예전의 도올 같았으면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했을텐데 도올답지 않게 말 끝을 흐리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세월을 이길 자는 없는 것인가?ㅎ
그리고 또 한번은 "막내 딸내미가 미국에서 멀쩡히 잘 다니던 의대를 그만두고 미대를 간다고 하니.... 그것 참...." 하며 또 말끝을 흐리며 씁쓸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아마 미국에서 공부하던 딸이 아빠의 권유에 따라 의전원에 잘 다니다가 어느날 갑자기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며 미술대학원을 가겠다고 연락이 왔는가 보다.
부모 입장에서 타국에서 공부하는 딸이 "안정적인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성공률이 희박한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연락이 왔으니.... 자식을 둔 부모 입장이라면 그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유명한 학자나 석학이 아니라 그저 자식 걱정을 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
오늘은 바로 그 막내딸 얘기를 할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행히 그 딸은 아버지의 걱정과는 달리 맨하탄에서 터를 잡고 뉴욕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김미루(金彌陋- 한자를 보면 도올 작품같죠?)
1981년 미국産
이대부속 초교, 금란여중 2학년 때 도미 결정
....
컬럼비아대학 불어불문학 학사
의전원 중퇴 후 서양화 전공(미술학 석사 MFA)
그녀의 책을 읽다가 흥미로웠던 몇 구절을 옮깁니다.
<서구 교육의 커리큘럼을 엿볼 수 있는 구절>
컬럼비아대학은 비록 과학전공자라 할지라도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게 만드는 것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대학으로서 악명이 높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예체능계에서의 성공은 어려운가 보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미대를 선택했지만 막상 미대의 생활은 공허했다. 우선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제자들의 장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한 학생이 현대적 예술환경 속에서 예술가로서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전혀 배제하고, 씨니칼한 얘기만 내뱉었다. 학생들도 인문학의 소양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서로의 작품에 대하여 수준 이하의 잡설만 늘어놓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꿈이란 유명한 첼시 갤러리 주인의 눈에 띄어 작품이 걸리고, 스타덤에 입문하여, 화려한 뉴욕 씨티의 라이프스타일을 엔죠이하는 것, 그런 허황된 꿈이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나 하면 좋으련만 근원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나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나는 나의 미대생활을 통하여 먼저 나의 현실을 직시했다. 뉴욕의 미술대학원에서 매년 수천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지만, 그 중에 자기 작품을 유명한 상업갤러리에 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사람은 한두명도 어렵다.....
내가 아무리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재능을 발휘하여 현대예술 세계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거의 무의미한 꿈이라는 것을 점점 자각하게 되었지만, 그 낙심의 과정에 나를 격려하는 하나의 주제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행히 화려한 맨하탄의 이면을 소재로 한 첫 프로젝트 <나도裸都의 우수憂愁 Naked City Spleen>부터 미국에서 뜨기 시작했다.
(*Spleen 비장脾臟 이라는 단어는 보들레르의 시집 "파리의 우수 Paris Spleen"에서 따왔다고 하며, 비장은 서양에서 우울한 감정과 관련있는 기관으로 여긴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도 비위는 사색思索과 관련있는 기관으로 본다.
그녀는 뉴욕의 미술대학원에서 매년 배출되는 수천명의 졸업생 중에 한 두명 성공한다는 그 한 명이 된 것이다.
두번째 프로젝트 <돼지가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The Pig That Therefore I am>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대규모 공장형 동물사육의 문제점에 관한 작업이란다.
<예전에 가축은 준 가족이었다.
특히 유목민들은 가축을 죽일 때 늘 미안한 마음으로 종교적 의식(희생제)을 치러 주었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대규모 공장형 양돈산업에 의해 비인간적으로 사육되어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는 형태로 바뀌면서 우리도 포장된 육류를 마치 시금치 한 단, 과자 한 봉지 쯤으로 여기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세번째 낙타에 관심을 가지고 사막에서의 작품 여정에 관한 글을 3년간 월간 중앙에 연재한 내용을 2020년 문도선행록(問道禪行錄)이란 이름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문도선행록(問道禪行錄)이란 '도道를 묻고 선禪을 행하다'라는 뜻이란다. 거창하다.
이 책은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하면서 문명사회를 여행할 때는 5성급 호텔만 이용했다는) 작가가 역시 홀로 몇 년 동안 세계의 사막 오지에 가서 현지인과 같은 옷을 입고 현지인과 함께 생활하며 작업한 내용을 쓴 책이다.
영어 한마디도 못한 채 13살 때 미국에 건너가 왕따를 당하던 소녀가 언제 그렇게 많은 동서양의 도서를 섭렵했는지 그의 동서양의 어휘력 등이 놀랍다.
<그야말로 광대한 허공, 동방인들이 태허太虛라 부른 우주의 기운, 내가 일찍이 체험해본 적이 없는 황홀한 은하의 빛줄기 속을 나는 끊임없이 헤매고 있었다.>
<생명체의 현존을 흠상하게 만든다.>
<우물 속의 세계가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이고 최선의 것이라는 환상은 장자 추수(秋水)편 우화에도 잘 그려져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도 비슷한 표현 구조일 것이다.
<불편한 환경에서 도구를 만들면서 쓴 글>
예기(禮記)의 악기(樂記)편에는 '만드는 자가 성인이다 (作者之謂聖人)'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문명의 진보의 계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치를 극상으로 높인 유가적 발언이겠지만, 사실 불교가 말하는 해탈이라는 표현도 근원적으로 문명을 거부하는 작업 속에만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곳곳에 도의 경지가 있다. 그것은 스님이나 도사, 수사의 전유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눈물이 터져나온 것은 존재의 허약의 느낌 때문이었다. 신체적 한계가 불러일으키는 존재의 허약처럼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 무서운 고문을 견뎌낸 많은 투사들의 의지를 생각하며 나의 존재의 초라함은 더욱 더 나의 눈물을 자아냈다.>
<사막의 모기는 행동이 느리다. 한국의 모기는 모두 손흥민처럼 민첩하다.>
<베두인과 결혼한 그 영국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 이미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였다. 한국의 태국기부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같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 광신의 맹목성을 알 수가 있다.>
<한자 문화권의 차(茶), 서양의 tea라는 단어는 모두 인도의 '짜이'에서 유래되었다.>
<낙타의 원조 동물은 (몽골로이드가 건너가 아메리칸 인디언이 된 역방향으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알래스카 베링해(베링 랜드 브릿지)를 통해 아시아(고비사막)- 중동,인도- 아랍으로 이동하며 현재의 일봉, 쌍봉 낙타가 되었고..... 낙타의 원조 동물은 빙하기 때 멸종되었다.>
<사막의 바위에 기원전 수세기의 문자를 보며....>
갑골문과 문자학, 성운학의 대학자인 엄마와 같이 왔더라면....
<내가 의학도에서 미술학도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공을 바꾸었던 결단은 나의 의술보다 나의 심미적 비전으로써 인류에게 더 큰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인터뷰하곤 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양이 있어 5살 때 그린 그림이 어머니의 중국 번역 소설의 표지 그림으로 쓸 정도였다고 한다.
눈과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