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최고 경영자과정연합 단톡방에서]
[홍선 강봉수선생님제공]
🌲청백리 세 분의 자녀교육🌲
우리는, 청렴 결백한 관리를 청백리라 호칭하며 그분들 존함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조선시대 초기 어수선 할때 청백리의 표상...
이 세분이 없었다면 세종과 같은 대왕이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감히 해본다.
지금 이 시대 세분의 삶을 비교 해 보면...
️먼저, 황희 정승께서는 아들 셋 중에 한 명의 아들이 주색잡기로 방탕한 짓을 해서 골치 거리였을때
몇번을 좋게 타일렀지만 고쳐지지 않아서...
하루는 밤늦은 시간까지 관복을 차려입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다, 고주망태가 돼서 들어오는 아들에게 “이제 들어오는 것입니까?”그러자 아들은 깜짝 놀라며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께서,
“무릇 자식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집안의 사람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아니라 내 집에 들어온 손님이나 마찬가지가 되지요.”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은 예의인즉, 저는 지금 손님을 맞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무릎을 꿇어 통곡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둘째, 맹사성 선생께서는 세종 초기에 이조판서였다.
그의 복장은 늘 허름하고 낡은 차림이었다.
하루는 내를 건너 가려고 짚신을 벗고, 옷을 걷어 올리는데, 한 젊은이가 맹사성에게 “제가 내를 건너야 하는데 제 옷이 물에 젖으면 안돼서 그러니 저를 업어다 건너에 내려 주면 10전을 드리겠다.”
맹사성은 그 젊은이를 업어다 내려 준후
“어디를 가는데 좋은 옷을 입고 가는가?”
“제 부친이 맹사성 이조판서와 친구인데, 저의 관직을 부탁하러 부친의 서찰을 가지고 맹사성 어른을 뵈러갑니다.”
“내가 맹사성이다. 자네가 관직에 오를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부친에게 가서 자식 인성교육이나 똑 바로 시켜서 관직에 보내라.’ 한다고 전해라.” 하고서는, 호되게 야단을 쳐서 보냈다 했다.
벗의 자식이지만 잘못을 지적하여 야단을 쳤고, 그 청년은 몇년을 자숙하며 겸손을 깨달은 후, 말단 관직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세 번째로, 세종 초기 대사헌(검찰총장)과 판서를 역임한 정갑손 선생께서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셋째 아들 정오는 효성이 지극했고 문재가 빼어났다.
정갑손이 함길도(함경도의 옛 이름) 관찰사로 있을때, 아들 오도 어느덧 훤칠한 대장부로 자라 있었다.
함경도 관찰사 재임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에서
한달가량 머물다 함경도로 돌아와서, 밀린 서류를 점검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사이 치러진 향시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아들
'오'의 이름이 ‘장원 급제자’로 적혀 있었다.
향시는 지금의 도청격인 각도의 관찰부에서 치르는 지방과거로, 향시에 합격하면 초시나 생원이 되어 한양에서 치르는 본 고사인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정갑손은 즉각 향시 출제위원들을 불러서 "정오의 합격을 취소하라." 명령했다.
출제와 채점을 했던 위원들은 “채점은 공정했고 장원 자격이 충분하다.”며 거세게 항변했지만, 정갑손의 태도는 꿈적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이곳 관찰사로 있는 한, 정오는 합격시킬수 없소이다.”
그날밤, 정갑손은
셋째 아들을 조용히 불러서 “오야, 나는 네가 함길도 향시쯤이야 장원을 하고도 남으리란 것을 잘 알고있다.”
아들 ‘오’ 역시 미소로 답했다.
“네, 아버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후 ‘정오’는 경상도 외가로 잠시 내려갔고,
그곳 향시에서 장원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한양에서 치러진 과거에서 장원급제, 어사화를 꽂고 함길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청렴했던 정갑손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초가집에서 평생토록 무명 이불에 부들자리를 깔았고, 비단이불
한번 덮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몰염치가 오히려 당당하게 호도되며, 당연지사로
여기는 즉물적 가치관이 횡행하는 혼란스러운
이 시대 선현들의 검박했던 청백리 표상 세분의 올곧은 삶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담아서 새겨봅니다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일부 인사들의 도덕 불감증과 자녀 교육에 대한 그릇된 행태들이
만연하고 있는 오늘날,
경종을 울리고 귀감이 되는
위 공감글을 옮겨 와 공유해 봅니다ᆢ👌
(2)============================
[ 如意吉常 (여의길상) 이란? ]
"항상 길(恒常 吉)하고
상서(祥瑞) 로운 좋은 일들은
자기 의지 에 달려 있다.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질 수 있다고 믿으시면
반드시 그것을 갖게 됩니다.
믿음은 산을 움직이게 하고,
자신에게 무한한 힘을 공급하여
소망하는 것을 실현시켜 줍니다.
믿음과 신념이 쌓이게 되면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법칙처럼 됩니다.
" 자기암시(自己暗示)"
즉,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도,소망을 간절이 기원하면 반드시
이루워 진다고 믿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데일 카네기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까지 배운
최대의 교훈을 묻는 방송진행자의 말에
카네기는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면
어떤 인물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당신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생각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행복을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비참한 생각을 하면 비참해지고,
병적인 것을 생각을 하면 정말 아프고,
실패를 생각하면 정말 실패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보기 나름 입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말하는
생각이 바뀌면 습관(習慣)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行動)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性格)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격(人格)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運命)이 바뀐다.
는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말 할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날이든
오늘이 가장 아름답고
가슴 벅찬 날이 되기를
좋은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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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호선생님제공]
[지금 견디기 어려운 일이 나중에는 달콤한
추억임을 기억하라.]
지금 견디기 어려운 일이 나중에는 달콤한 추억임을 기억하라.
-도트 야마다-
당신은 자서전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역경이 필요한 것이다.
방황이나 고난도 없이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는 인생은 부럽기는 하지만 감동을 전해줄 수는 없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고 무엇 하나 실패하지 않고 살아간 삶에서는 교훈이 부족하다.
그런 내용만을 적고 있는 자서전은 빈약해 보일 것이다.
면 훗날 당신이 자서전을 쓰게 되었을 때를 떠올려라.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을 어느 페이지에 어떻게 적어나갈지 생각하라.
언젠가는 '그땐 그랬지'라며 지금의 순간들을 회상할 날이 올 것이다.
(2)==========================
存心篇(존심편)
素書에 云 薄施厚望者는 不報하고 貴而忘賤者는 不久니라
소서에 운 박시후망자는 불보하고 귀이망천자는 불구니라
소서에 이르기를 엷게 베풀고서 두텁게 바라는 자는 보답 받지 못 하고
귀하게 되고서 천할 때를 잊은 자는 오래가지 못하느니라
素 본래 소 薄 엷을 박 厚 두터울 후 報 갚을 보 賤 천할 천
久 오랠 구 永久(영구) 耐久(내구) 長久(장구) 悠久(유구)
素書 : 진나라 때 황석공이 장량에게 준 병서 흔히 黃石公素書라고함
忘잊을망 : 亡 + 心 = 忘 (형성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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