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4년, 송나라는 '전연의 맹'을 맺어 세폐를 바치는 것으로 거란의 침공을 일단락짓는데,
거란은 이를 통해 더욱 자신감을 얻고..
: 본격적으로 송나라를 공략하기 전 배후 안정을 목적으로 고려를 침공한다.
: 1010년 11월, 요 성종 야율융서가 이끄는 거란의 40만 대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넌다.
: 그러나 거란 황제의 40만 친정군이 양규 장군이 지키는 고려의 최전선 흥화진에서 장장 7일이나 발목이 잡히고,
거란군은 결국 흥화진을 지나쳐 통주로 향하는데..
: 전술적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이 앞선 고려의 총사령관 강조는 유목기병을 상대로 평지에서 대회전을 펼치는 악수를 둔다.
결국 강조는 적에게 사로잡히고, 고려군은 3만 이상의 전사자를 내며 패퇴하여 흩어진다.
: 서경이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그 순간, 북쪽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거란이 끝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흥화진에서 양규 장군이 이끄는 700 결사대가 성 밖을 나서고 있었다.
: 양규 장군은 함락을 겨우 면한 통주에서 병사 1천 남짓을 추가로 수습하여 다시 남하한다.
: 양규 장군이 이끄는 1,700 남짓의 병사들은 거란군의 병참선이 된 곽주로 향한다.
: 고려에서 거란으로 돌아갈 출입문에 자물쇠가 채워진 형국이 되었다.
: 양규 장군의 곽주 탈환으로 인해 시간은 고려의 편이 되었다.
: 곽주 소식을 들은 요 성종 야율융서는 수 일에 걸친 서경성 포위를 푼다.
그리고 곧장 개경으로 진군하여 고려 황제 현종을 사로잡으라 명한다.
: 이렇듯 풍전등화의 개경, 조정에서는 항복론이 대세가 되어 대소신료들이 현종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있었는데..
: 많은 나이에 비해 그닥 높은 관직은 아니던 예부시랑 강감찬이 현종에게 항복이 아닌 몽진을 주청한다.
: 1011년 정월 초하루, 개경은 거란군에 함락된다.
: 개경에 도착한 야율융서는 항복 대신 몽진을 택한 현종의 소식에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다.
: 개경이 불탔다. 개전 45일 째였다.
: 서경을 비롯한 대동강 이북의 주요 거점에서 고려의 장수와 병사들이 거란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 철수하는 거란군은 군영마다 수 천씩, 수 만의 고려 사람들을 약탈 포로로 데려갔다.
엄동설한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기 일쑤에 거란까지 살아서 돌아가도 이역만리에서 노비가 될 운명이었다.
: 거란군은 점령하지 못한 고려의 주요 거점을 피해가며 가까스로 압록강 인근까지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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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거란군을 양규가 기다리고 있었다.
첫댓글 이 담도 올려주세요ㅠㅠ
드라마에서 저 부분이 지나면 게시글 좀 써보려니 연말이라 결방이 잦네여 ㅎㅎ
아는 내용인데도 이렇게 보니 흥미진진~!
사실 병자호란도 이런 식으로 남하해 몽진하며 장기농성 했으면 이길 수 있었음 그러나 어가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데...
제대로 튀지도 못하는 무능의 극치;;
ㅋㅋㅋ 괜히 조선왕조 2대 바보가 아니죠
김자점이 강조처럼 싸우기만했더라도
@캡틴 차박손 아뇨 김자점은 통념과는 다르게 평안도, 황해도 장병들 징집하고 청이랑 한타싸움 준비하려다 타이밍도 뭣하게 인조가 먼저 항복한 거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