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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에 사시는 저희 42회 선배님을 찼았기 보고 드립니다.
보신 바와같이 2002년12월에 제가 받은 e-메일 입니다
발송인은 강수균 교수의 從弟였던가 그랬는데 당시 甲乙貿易會社의
독일 지사장으로 Frankfurt a. Main 에 주재하고 있었답니다
華峰兄과는 두산시절에 동료였던 인연도 있었던 모양 이더군요
갑을무역이라기에 갑을방적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드군요 동문들 모임에 참석해 주십사고 수차례 연락이 왔으나
방우(바위(巖)의 대구지방 사투리)에 댓침 이니까(들은체도 않으니까) 회원들 에게 回覽으로 쪽지를 보내면서 저에게 嚴砲(엄포)를 놓는 것이지요
경맥회원명부 라는것을 첨부해서 보냈던데 모두 밥술걱정을 않아도 될
사람들 같았고 사실은 내가아는 동문들도 상당수가 있었는데...
삼성에만도... 그리고 등잔밑이 어둡다고 프랑크푸르트에서 Atasche라는
Hotel을 경영하기도 했고 한국기원 프로기사로 쏘련과 독일에서 활약했던
이창세 6단인지 7단인지 단위는 확실히 모르겠네요) 씨도 39회 동문이었는데... 우즈베키스탄으로 전근을 갈때도 그쪽에 오실일이 있으면 꼭 연락을
주십사던 강동문에겐 지금도 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오늘(3월 10일독일 날자 한국은 지금 벌써 11일 입니다
우연히 핸디로 뉴스를 보다가 엊그제부터 트럼프가 김정은이와
만나자고 했다는 보도가 보이길래 좀 알아보려고 잘 보지도 않던
한국의 소식들을 한국언론을 통해서 보았으나 왼통 사기와 협잡질을 밥먹드시 하는 년놈들의 개수작들 뿐이라(내 눈에는 훤히 보입니다) 실망을 하면서 제발 트럼프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저놈들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기를 바랄뿐...
그래서 YOU TOBE를 살펴보니 지만원 박사님의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지금은 정기적으로 방송을 하시는지... 그래서 당장 열어 보았습니다
내용을 보니 신영복의 얘기가 나오고 청와대에 걸려있는 사진이 신영복의 글씨와 어떤 사람의 한반도 그림을 합성하여 청와대에 걸어 놓고 그 앞에서
문재인 이와 북한대표 년놈과 사진을 찍은게 보이고 신영복이가 통혁당? 사건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었는데 무기징역형으로 감형이 되어 20여년의 감옥생활을 하다가 석방되었다고 해설을 하시고...
지만원 박사님께서 정확하게 분석과 해설을 하시기에 내가 사람은 정말 볼줄을 아는구나 하는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만원 박사님,
문재인이 일당이 고소를 하거든 재판정에 저를 증인으로 불러 주십시오
그리고 고영주전직 공안부장님도 재판정에서 증인이 필요하시면 저를 증인으로 불러 주십시오 제가 문재인은 빨갱이 임을 증언을 할수가 있을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지만원박사님, 고영주 이사님? 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서 증언 하기보다는 문재인이나 임종석 박지원 홍석현 권성동......... 이런 자식들이 명예훼손이나 국가원수모독죄 등으로 나를 고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가 권양숙이와 노건평, 노무현의 아들과 딸 그리고 그 주변의 누구 누구를 증인으로 불러세워 빼도박도 못할 증거들을 제시를 할수가 있겠지요
뿐만 아니라 내가 당장 몇자 적을려고 하는데 문재인이는 적과 내통하는 현행범입니다 이석기를 석방하라고 광화문 광장에서 데모하던 년놈들 영상자료 잘 보관하고 있길 바랍니다
金秀行(김수행) 교수가 모교인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신영복이는 내가 알기론 우리동기들 보다 1년 빠른 60학번 이었던걸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의 고향은 경남 밀양이고...
아마도 학사장교(ROTC) 출신 이었던지 육군장교로 복무중에 체포가 되었고...
여러분 감옥에서 보내온 엽서인지 뭔지 신영복이가 감옥에서 쓴 엽서를 모아 낸 책이 있지요 나는 독일에서 그것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니까 수형생활을 하면서 紙筆墨을 차입해 주십사고 아버지께 부탁을 하고 독학으로 習字練習(습자연습)을 한것도 읽을수가 있더군요
어쨋거나 그의 글씨솜씨는 감옥생활의 産物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신영복이는 간첩으로 형을 살기도 했고 그의 좌경성향은 만천하가 알고있는 사실일진데... 죽을때 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재직을 했었지요
내 친구 김수행 이도 서울대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가 미국에 아들 만나러 간다고 갔다가 미국에서 急死를 하게 되었지요
이 急逝(급서) 소식을 독일에 살던 내가 가장먼저 접하고 원평재 형에게 우리 사랑방 친구들께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하여 원평재형이 사랑방에 訃告를 올렸던 적이... 김수행이가 성공회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봉직하게 된것도 사실은 신영복이의 영향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질 않습니까?
내가 그냥 입을닫고 무덤까지(나는 무덤도 없을것입니다 내 사체를 의과대학생들 연구용으로 기증을 했으니까요) 아니 저 세상까지 가지고 갈 얘기 들이 있었는데 이제 빨갱이들 실체를 밝히는데 간접적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어 오늘 지만원 박사님의 방송을 보고(문재인이가 신영복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보도) 이런 뒷얘기 조차도 언젠가 그들의 실체를 밝히는데 도움이 되질 않을까 싶어서 털어 놓을까 합니다
여러분, 내 친구 김수행이는 이름에서 보시는 바와같이 일본식 이름이고 또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서 해방후에 귀국을 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도 같은학교 고등학교는 3년동안 같은반에 있기도 했었지요 김수행이는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못하여(누님 한분이 교사로 재직한것으로 알고있었음) 대학교 진학이 불가한 것으로 판단을 해서 어디서 들었던지 대구상고에서 서울상대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면 장학생으로 동창회에서 지원을 해주는 장학제도가 있다는것을 알고 대구상고로 입학하게 되었답디다
나는 졸업할때 까지도 그런것을 알지도 못했었는데...
그리고 또 여러분(우리동기회원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동기 임무현과 김수행이 서울대 工大와 商大에 수석으로 입학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일도 있었지요 우리가 고교 2학년때인지 3학년 때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하루는 수행이가 울상을 하고 있길래 너 무슨일이 있나? 고 물었더니 처음엔 말도않고 머리만 쥐어 뜯다가 미술성적이 너무 엉망이라 그런다고 했었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말이 그까짓 미술성적이 좀 나쁘다고 사내자식이 울상을 짓고 있느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 대학교(서울상대)엘 갈려면 좋은 성적으로 입학해야 동창회에서 장학금을 주는데... 그런 얘길 하더라구요
그래서 너 몇점을 받았길래 하고 물어 보았더니 정말 형편없는 성적이더군요
수행이의 가정형편이 어렵다는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그 당시 상업미술 이란 과목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시간 이었을 겁니다
나는 관심도 별로 없었고 미술에는 소질도 없었고 그저 이론이나 상식수준 이었을 뿐... 그런데도 수행이 보다는 월등히 좋았었답니다
그날 오후 방과후에 나는 교무실로 미술선생님을 찿아 갔습니다
선생님, 혹시 이번시험 내 성적을 알아볼수 있습니까 하고 서두를 꺼내었지요
몇점인지 다 알려졌는데 무슨 얘기냐고? 하시더라구요 선생님 그게 아니고 뭔가 잘못된것 같아서요.... 선생님이 말씀 하시길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그제서야 제가 자초지종을 선생님께 말씀 드릴수가... 그래서 선생님 내 성적이 수행이 보다는 좋은것 같은데 수행이거와 제것을 바꾸어 주실수는 없겠는지요? 라고 여쭈어 보았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 후로 어쩧게 되었다는 얘기는 선생님이나 수행이나 아무에게도 어떻게 처리가 되었는지는 오늘 까지도 나는 모릅니다 다만 얼마후 급우들 사이에 미술성적이 이러쿵 저러쿵 수근 거렸던 적이 있었던 기억이 있긴한데 김수행이가 알기나 했었던지... 아마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아마도 3학년 1학기때 인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실업고등학교라 3학년 8학급 가운데 7학급과 8학급 두 반만 진학반이고 나머지 6반은 취직반이라서 수업교과목이 달랐답니다 그래서 진학반에는 영어 수학같은 과목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취직반들은 주산, 부기,타자 등 실무교육 위주로...
그때 벌써 김수행이는 웬만한 영어책은 낯선 단어정도는 사전을 찿아볼까 앞뒤 문맥을 보면 그 마저도... 한번은 영어 수업시간 이었는데 그때 영어선생님 성함이 이덕윤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싶네요 점잖고 후덕스럽게 생기신 선생님 이셨는데 선생님께서 한문장을 읽으시고 해석을 하셨는데 김수행이가 한다는 말이 "선생님 그건 그런뜻이 아니고 이런 말입니다"하고는 당돌하게... 내가 보아도 수행이의 말이 맞기는 한게 틀림이 없는데... 선생님께서 당황해 하시면서
그러고 보니 수행이 네말이 맞는것 같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지요
그날 수업이 끝나고 김수행이와 내가 시비가 붙었는데 내가 수행이 너 임마 아무리 그렇지만 선생님한테 말 버릇이 그게 뭐냐고 힐난을 했더니 수행이가 한다는 말이 "이자식 니가 뭔데 함 치자" 글자 한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겼답니다 내가 그냥 있을사람 같습니까? 당장 너 나와... 학급 급우들은 구경꺼리 생겼다고 우~ 따라 나오고... 상고 옆이 達城製絲(달성제사, 가다꾸라 공장) 이었는데 그 쪽 담옆에 까지 왔었지요 그 당시 나는 앞잇빨이 두세개 부러진 상태였고 김수행이도 앞에 해넣은 義齒가 대문짝 처럼...
그쪽 야구장 쪽으로 난 교실에는 럭비부에서 사용하던 창고같은 용도로 쓰던 곳과 달성제사 쪽으론 관악반(악대부)에서 연습실)로 사용했던 교실이 있었는데 그 앞모퉁이 에서 "네가 함 치자해서 내가 나오긴 했는데 지금도 똑 같은 생각이냐 한번 더 묻겠다 다만 네가 먼저 함치자고 했으니 잇빨이 부러져도 내가 치료비는 못내겠다 여기 많은 친구들이 증인이 될것인데... 대답해라 지금도 함치자는 네말에 자신있나? 햇더니 얼른 대답을 안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괜히 나선건 내 잘못일지는 몰라도 너 선생님께 그 태도는 잘한게 아니다고 했더니 그건 자기도 잘못한것 같다고... 나중에 선생님께 용서를 빌겠다고 하고선 악수하고 말았던 추억도 있었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金秀行이가 Karl Marx 의 資本論을 번역을 했지요
칼 마르크스는 독일태생이고 자본론도 독일어로 썻답니다 그런데 김수행이가 독일어 원본을 번역을 한게 아니라 거의 틀림없이 영어로 번역된 영어판 자본론을 번역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본론을 원서를 한글로 번역하는것과 영어로 된 자본론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것입니다 외국어를 번역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번역의 잘되고 못됨이 문제가 아니라 왜 그런 不穩書籍(불온서적,우리가 경제학을 배울 당시엔)을 접하게 되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드시 수행이는 가정형편이 여유롭지 못하여 많은 책들을 친구 선배 동료들로부터 빌려서 읽었을 것이고 시대상황에 따라 불온서적에 접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 가운데 한명이 신영복이었던 것입니다
김수행이는 서울상대를 졸업을 하고 어떤 은행장 비서실에서 근무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었고 내가 독일에 올 즈음엔 대연각호텔 건물에 입주해 있던 한국외환은행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답니다 내가 출국하기 2-3일 전에 내가 찿아가서 만난적이 있었는데 그게 그와 나의 마지막 만남 이었답니다
내가 독일에 와서 몇년이 지난후 프랑크푸르트의 외환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창구 직원에게 김수행이를 혹시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분 지금 런던 지점장으로 재직중이라고... 후일 안 사실이지만 신영복이나 주변의 친구들 때문에 출국조차 쉽지 않았으나 몇몇 교수님들이 보증을 서고 출국을 했었다는...
또 2009년에 나의 한국방문때 성공회본부앞길에서 성공회 고위간부들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처음엔 경계의 눈빛으로 쭈빗쭈빗하던 사람들이 내가 김수행이와 竹馬故友라고 하자 금방 환한 얼굴로 들어 오셔서 차도 한잔 하시고 박물관도 구경하시라고... 김교수에게 금방 연락을 하겠노라고...
나는 감사하다며 점잖게 사양을 하고 온 적이 있답니다
그런 빨갱이 신영복이를 문재인이가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는데 저것을 어찌 그냥두고 보고 있답니까?
그 신영복이가 썼다는 글씨는 보니까 通(통할 통字) 이더군요
손혜원이란 좌빨국회의원이 한문을 破字하여 소주이름으로 사용했던것은
다 아실것이고 신영복의 글씨를 소주이름으로 사용한것도 있고, 또 손혜원의 지역구가 껍죽거리면서 서울시장 해 보겠다는 정청래의 지역구인것도 아실것이고 정청래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안기부의 대공수사요원을 싹 물갈이를 하여 대공업무를 거의 마비시킬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 이었지요
국회의원 공천도 못받아서 보좌진을 그대로 유지하면 지역구를 손혜원에게 맡겨놓고 손혜원이는 공공연히 다음번에는 자기는 물러난다고 하면서...
손혜원이가 고영태 후견인처럼 굴었는데 지금은 왜 조용하지? 그리고 안민석이와 청문회 한다고 얼씨구 지랄들을 하더니... 안민석이란 자식 어디갔나?
박지원이란 수박 빨갱이놈 속임수에...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의 곳간을 도둑놈들이 꿰차고 앉았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텝니까?
며칠전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어서(무슨 일이었던지는 모르겠음) 중단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게 또 일주일이 지났군요 지난 일주일 동안에도 부지런하게? 살고 있기에 어쩌다 틈이나면 우리 사랑방에 연결하여 글이나 읽어보고 짧은 댓글이나 달고....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어디 Karl Marx 의 자본론 뿐이겠습니까 Adam Smith의 國富論 같은것은 물론이고 특히나 Friedrich Engels의 경제이론은 반드시 배우는 과목이기도 했었지요 여러분 경제적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척도인 엥겔지수는 바로 이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론이지요 Karl Marx와 Friedrich Engels는 떼어놓고 얘기할수 없는 不可分의 관계였으며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보통 독일 사람들도 누구나 다 아는 역사의 한 토막 이랍니다
나는 상당한 분량의 글을 썼다가 다시 지웠습니다 아무리 이래 써보고 저래 써봐도 못난놈 제 자랑하는것 처럼 보이고...
결론은 김수행이는 원래 사회주의를 표방한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한 것도 아니고 가난했던 집안 경제형편 때문에 많은 책들을 빌려서 읽을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校友관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을 수가....
어찌 되었던 자기가 한 행동의 책임은 본인이 져야 마땅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일진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김수행이가 신영복이와 같이 서울상대 시절에 가까운 친분이 있었다는것, 졸업후에도 그런 관계때문에 어려움이 있었고 심지어 출국금지 조치도 되었 있었지요 내가 출국할 당시 외환은행 본점에서 근무하고 있었고요
서울상대 정치경제학 교수로서 정년 퇴임후에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서 신영복과 함께 근무를 했답니다
餘談이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물어 보아야지 했는데 결국 묻지를 못했네요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물어 보았을 것을...
여러분(동기 학우들),
김수행이는 경북중학교 2학년 5반(담임 이을기 선생님) 반장을 지냈지요
내가 알고자 하는것은 김수행이가 1학년때 성적이 좋지 않아서(내 생각은 그렇진 않았을것 같음) 그 반에 배정이 되었던지 아니면 엄한 선생님과 똑똑한 반장을 선정하여 반을 편성을 했던지... 누가 좀 얘길 해 주었으면...
한국에서 살아온 친구들은 서초회나 분경회같은 모임에서 얘기도 나누었을 것이고 분경회장님을 지낸 사회학 박사 박중남 형, 나와 군대 같은날 입대했던 안선출, 구송우 였으며 사부링놓고 기원에 바둑두러 다녔던 김의원 등등 생각나는 몇사람들...
2학년이 되자 순서대로 교실배정을 했는데 5반과 6반의 교실순서가 바뀌어 있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그반(5반) 애들은 농땡이 들이라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내가 6반(실장 김길수 담임 김옥진 선생님)이라 수업이 끝나고 청소를 한다고 떠들석 하면 김수행이가 상을 찡그리고 나와서 "어이~ 너그 좀 조용히 해라 우리는 공부를 해야하는데..." 몇번을 그러다가 아랫층에 따로 뚝 떨어진 반(아마도 7반 이었을것)과 교실을 맞 바꾸었드랬지요
그 뚝 떨어진 교실은 1학년때는 남규복 선생님, 한원격선생님이 담임 이셨던 기억이 있는데 두분다 생물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아련한 追憶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