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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우먼 누군가 나에게 실패의 경험을 물으면 떠오르는 날이 있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가 생생히 기억난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등줄기에서는 통영 바 다의 차가운 물이 흘러내렸다. 2018년 통영에서 철인 레이스가 열렸다. 망망대해에서 수영 1.5킬로미터, 자전거 40킬로미터, 달리기 10킬로미터를 연달아 하는 경기로, '운동의 끝 판왕'이라 불린다. 달리기?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자신 있다. 자전거? 선수처럼 멋있을 자 신은 없지만 소싯적 또래 사이에서 '자전거 우두머리'로 놀이터 곳곳을 누 볐으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영은 자신 없었다. 어릴 적 물속에 빠졌던 일이 트라우마로 남은 탓이었다. 그래도 '튜브 끼고 물장구 는 칠 수 있으니 어떻게든 수영만 잘 넘기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 로 도전하기로 했다. 대회 당일, 첫 과제는 수영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청년부터 새벽반 수영 강습을 통해 실력을 갈고닦은 듯한 중년과 노년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모였다. 그 사이에서 섣불렀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사 시나무 떨듯 덜덜 떨기만 했다. 철인은커녕 소나무에 달라붙은 딱따구리 가 된 심정이었달까. 수영복을 입고 맨발로 출발대에 섰다. 다른 사람들처럼 바다로 풍덩 뛰어 들 용기는 없어 최대한 조심스레 들어갔다. 심호흡을 한 뒤 정수리를 차디 찬 물속에 넣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깜짝 놀라 황급히 물안경을 벗었다. 바다는 그동안 연습해 온 수영장 과 달랐다. 시야는 칠흑같이 깜깜했고, 물결은 일렁였다. 겁을 먹기에 충분했다. 괜찮 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겨우 참았다. 정수리를 차가 운 어둠 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지만, 앞서가던 한 중년 남성의 물장구에 코를 맞고 말았다. 철없던 생각과 눈물을 통영 바다로 흘려보내며 천천히 완주만 하자는 생 각으로 아주 조금씩 나아갔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나는 물에 불은 미역처럼 육지로 올라왔다. 그때 펜스가 닫혔다. 기적처럼 제한 시간 50분 중 5초를 남기고 올라온 것이다. ‘됐다. 가장 두려워한 수영이 끝났으니 이제 완주할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전거 안장에 앉았다. 꼴찌로 출발한 덕에 한 명, 한 명 추월하는 재미로 달렸다. 바닥에 파인 홈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집중하며 달리고 있는 그때, 저 멀리 멈춰 선 선수들이 보였다. 심판이 종목 제한 시간을 넘긴 선수들을 중간 지점에 멈춰 세운 뒤 기록 측정용 칩을 수거하고 있었다. 그저 완주가 하고 싶었던 나는 심판에게 물 었다. "칩을 반납해도 레이스를 마칠 수 있는 건가요?" 심판은 그렇다고 답했다. 1초의 고민과 망설임도 없이 발목에 달고 있던 칩을 반납한 후 레이스를 이어 나갔다. 칩이 없어 탈락한 채로. 신기하게도 칩을 풀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다. 몇 그램도 안 되는 그것이 족쇄처럼 내 발목을 꽉 조이며 부담을 줬나 보다. 안 보이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바람도 시원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통 영 바다는 끝내주게 예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달렸고, 칩을 달고 있는 수십 명의 선수를 앞질렀다. 그리고 기록 없는 완주를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나는 그날 헬멧도 거꾸로 쓰고, 소금에 잘 절여진 모양새로 결승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생선구이 집에서 트레이너 선생님을 앞에 두고 꾹꾹 눌렀던 울음을 터트렸다. 철인 레이스는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그럼에도 많은 선수가 자신만의 고독한 레이스를 이어 간다. 책자에도 이렇게 나와 있다. '기록 측정용 칩 반납 후 달리기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으며 완주자 전원 에게 메달이 주어진다’. 심마니는 산삼을 먹고 몸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산삼을 캐기 위해 산을 타 느라 몸이 절로 좋아진다고 한다. 철인은 몸이나 힘이 무쇠처럼 강한 사람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자신만의 외로운 레이스 앞에서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다잡는 것. 이 과정 에서 철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첫 도전은 그렇게 실패했지만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은 나는 '아이언 우먼(철인)'이다. 안정은 / 러닝 전도사 |
Henrik Chaim Goldschmidt plays "Gabriel's Ob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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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방문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가운 봄비가
여름을 재촉하는 듯,,
즐거움과 웃음 가득한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아이언 우먼
망실봉님 덕분에..
감사히 즐감 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움과 웃음 가득한
행복한 하루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