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럼 뉴욕 사건 말입니까?"
놀란 다카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어떻게 그자가 이곳에. 미국에 숨어있는 줄 알았는데."
"조사해보았더니 fBi가 놓아주었습니다. 한 달 반쯤 전에 LA에
서 배를 타고 빠져나가 하와이에서 비행기로 서울로 갔습니다. "
"FBI가 왜 놓아주었답니까?"
"그건 정치적인 일이오. 말하기 복잡합니다. "
이맛살을 찌푸렸던 레커맨이 정색했다.
"그자가 지금도 국정원 요원들의 숙소에 있습니까?"
"들어가는 것은 확인했지요 나오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
"그럼 오늘까지 닷새 동안 숙소 안에."
"그자를 잡으실 겁니까?"
"아직 본부의 지시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
어깨를 늘어뜨린 레커맨이 처음으로 서너 번 눈을 껌벅였다.
"다카다 씨, 협조해주시오 아무래도 그놈이 온 것이 심상치 않
습니다. "
"이제까지 베이징의 일미 관계는 협조가 잘 되고 있지 않습니
까?"
다카다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긴장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레커맨 씨, 그까짓 킬러 한 놈을
가지고 왜 그러십니까?"
그로부터 사흘 후인 3월 15일 오전, 연평도에서 출항한 20톤급
어선 동남호는 5척의 어선단과 함께 남방 한계선의 어장 안으로
들어섰다. 파도는 잔잔했고 햇살이 노곤하게 내리쬐는 맑은 날씨
였지만 선장 오명길은 오늘 어획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20
년 전만 해도 연평 앞바다에는 철따라 잡히는 어군을 쫓아 수백
척의 어선이 몰려왔지만 지금의 어획량은 그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가끔씩 철에 맞지도 않는 어군을 만나 만선을 이루는 배가 있었
지만 그건 마치 섰다 판에서 38광땡을 잡는 것만큼의 확률이었다.
"어이, 선장. 이쯤 해서 슬슬 시작하지."
눈을 가늘게 뜨고 북쪽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있던 박춘배가 말
했다. 그는 오명길의 동네 친구로 30년 넘게 배를 탄 어부였다.
그러나 3년 전에 20톤 어선을 팔고 인천에서 횟집을 했다가 1년
만에 망해먹고는 다시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오명길이 머리를
끄덕였다. 눈으로도 북쪽과의 거리를 계산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어, 선장 저길 좀 봐라."
하고 박춘배가 말했을 때 오명길도 이미 북방 한계선 근처에 머
물고 있던 3척의 북한 경비정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저 새끼들이."
온몸을 굳힌 오명길이 무의식 상태에서 남쪽으로 머리를 돌렸
다. 남방 한계선 근처에도 3척의 한국 경비함이 서 있었는데 그들
도 북한 경비정의 이동을 보았을 것이었다.
"20노트의 속력입니다. 월경했습니다. "
237경비함의 함장 조석훈 대위는 무전기에 대고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 어선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거리는 약 1,500미터.
그가 옆에 선 함대 사령부에서 파견 나온 강순철 소령을 힐끗
보았다. 그의 237함은 좌우로 239, 240함을 거느리고 시속 25노트
의 속력으로 북상하는 중이었다. 2년 전에 일어났던 서해 해전과
거의 똑같은 상황이다. 그때였다. 북한 경비정의 앞쪽 선수에서
횐 연기가 풀썩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고 곧 어선 한 척의 선미에
서 조금 떨어진 부근의 바닷물이 거품을 퉁기면서 솟아올랐다. 그
러고 나서야 포성이 울렸다.
"북한 경비정이 어선을 포격했습니다. "
이번에는 조석훈이 목청을 높였을 때였다. 아까부터 함내 무전
기를 쥐고 있던 강순철이 짧게 지시했다.
"사격 준비"
"아이구!"
다시 오명길이 뱃전에 납작 엎드린 채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
날아온 포탄은 배의 우측 바로 옆에서 폭발했으므로 배가 와락
기울면서 바닷물이 쏟아진 것이다.
"이 씨발놈들이."
오명길은 이를 갈았다. 아직 여섯 명의 선원들 중 다친 사람은
없었고 배도 파손되지 않았지만 포탄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동남
호는 선수를 무작정 남쪽으로 돌렸으나 북한 경비정과의 거리는
이제 5백 미터쯤으로 가까워졌다. 다시 폭음이 울렸으므로 오명길
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러나 이쪽은 아니다. 100여 미터
쯤 뒤쪽에 있던 강진호의 선미 부분이 폭발하면서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북한 경비정 세 척은 이쪽 어선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씨발놈들은 뭣하고 있는 거여."
무전기도 내팽개친 채 조타실에 엎드려 있던 오명길이 다시 악
을 썼다. 이제는 남쪽에 있는 한국 경비함들을 원망하는 욕이었
다. 그때였다. 남쪽에서 일제히 포성이 울렸으므로 그는 번쩍 머
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 경비함 세 척의 포신에서 뿜어진
횐 연기를 보았다.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수십 가닥 들
렸으므로 왕년에 일빵빵 주특기의 보병으로 박격포도 쏘아본 오
명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반대쪽 북한 경비정으로 옮겨졌다.
"황꽝꽝황꽝."
오명길로서는 이런 광경이 난생 처음이었다. 텔레비전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나란히 달려오던 3척의 북한 경비정은 수십 발의
포탄에 일제히 명중되어 하늘로 불기둥과 함께 선체의 잔해를 뿜
어 올렸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전진을 일제히 멈춘 3척 중에서
한 척은 번쩍 선수를 치켜올리더니 연기를 뿜으며 선미 부분부터
가라앉기 시작했고 두 척의 화염은 더욱 거세졌다.
"만세"
만세는 박춘배가 먼저 불렀다. 그러자 제각기 일어선 선원들이
목청을 높여 만세를 따라 불렀다. 그러나 오명길은 만세를 부르는
대신 울었다.
"전쟁이요"
북한의 요청으로 긴급 소집된 판문점의 회담에서 북한측 대표
인 한동규 소장이 선언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져 있었다.
그가 소리쳐 말했다.
"남조선의 도발이었소 우리 공화국 해군 함정 3척은 무방비 상
태에서 남조선 함정의 기습공격을 받은 것이오."
"소장, 우리는 해전 당시의 비디오 촬영을 했습니다. 보시오."
유엔군측 수석 대표인 미군 소장 토마스 월슨이 항의하고는 뒤
쪽에 서 있는 장교에게 눈짓을 했다.
"필름을 보시요"
장교가 영사기를 작동시키려고 몸을 굽히자 한동규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남조선 정부는 공화국에 이미 선전포고를 했소 그들은 곧 응
분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오."
한동규는 따라 일어선 북한측 대표단과 함께 몸을 돌렸다. 회
담이 결렬되기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북한은 유엔군측 대
표단을 통해 한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북한의 억지입니다. "
유엔군 사령관이자 미 8군사령관을 겸한 매그루더 대장이 전화
기에 대고 말했다.
"한국 해군은 북한 함정이 한계선을 넘어와 한국 어선 6척을
향해 먼저 포격을 하는 장면을 찍어놓았습니다. "
"상황은 어떻소?"
클린턴의 목소리는 짜증기가 배어져 있었다. 임기 말년의 그에
게 한국은 악몽 같은 존재였다. 남북한 모두가 마찬가지인 것이
다. 매그루더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였다. 워싱턴 시간은
새벽 3시일 것이다.
"전방의 기갑사단이 일제히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보병
사단으로도 차량의 이동이 두 시간 전부터 급증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그자들 말대로 전쟁인가?"
클린턴의 목소리가 생생해졌다. 이제 잠이 다 달아난 목소리였다.
"한국군은 장악하고 있지요?"
"대통령, 그것이."
이를 악물었던 매그루더가 어깨를 치켜올렸다. 그가 긴장할 때
의 동작이다.
"한국군 지휘부가 연합사의 통제를 거부하고 독자 행동으로 나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북한의 선제 공격 기미가 보이면
즉각 공격하라는 지시가 전방 각 부대로 하달된 것이 화인되었습
니다. "
"이런 망할‥‥‥‥
클린턴의 뒤쪽 욕은 송화기에서 입을 멀리 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매그루더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평양의 감시단을 활용해서 북한 고위층과 접촉해 주십
시요 이쪽은‥‥‥‥
"알았소, 장군."
전화가 끊기자 매그루더는 앞에 서 있는 정보국장 처크 웨일스
소장을 노려보았다.
"처크, 전쟁이 날 것 같은가?"
"이번에는 확률이 높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