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했을까요, 슬퍼했을까요? 거기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광해왕은 제주도로 유배간 이후 죽었다는 것 말고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주도는 탐라도를 말함.)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지키는 관리가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을 달관한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것 봐라, 나 내쫓고 잘 될 줄 알았냐.
====
DNA 조사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인지 최종발표를 연기한다고 합니다. 뭐 결과야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니 알아볼 필요도 없고, 황의 목은 댕강 잘릴 겁니다. 황은 구속될 게 거의 확실합니다.
하지만,
황은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철저히 완전하게 매장당하더라도, 어떤 비굴한 꼴을 당하더라도 목숨만 부지하고 있으면,
최소한 살아 있을 동안에 한국이 어떤 꼴을 보게 될 지 그걸 감상하면서 광해왕처럼 그런 미소를 지을 날을 기대하며,
남상국, 박태영, 안상영 같은 꼴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죽었고 황은 아직 살아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황이 죽는다면 차라리 편할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도를 익히지 않은 저의 생각과, 국선도인지 뭔지 그걸 맹신한 황의 생각은 같지 않을 것이고, 황은 의외로 살기 위해 약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큰 승부는 끝났고, 황은 나락보다 깊은 곳으로 떨어질 건 확실해졌으니, 살아서 어떻게들 하나 보자 이런 생각으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
연산군은 유배된 그 해에 죽었지만 광해왕은 유배지에서 18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연산군은 어려서부터 세자로 자라 깡단이 없었지만, 광해왕은 세자 책봉 이후 16년을 가슴 조리며 살아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유배지에서는 자기를 죽이리란 걱정도 없었고, 아들, 며느리, 부인 다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으니, 평안하게 능양군과 그 무리들이 어떻게 나라를 말아먹나 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들었을 겁니다. (광해왕은 제주감영의 한 방에 갇혀 살았다고 하니 바깥소문은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광해왕의 진가가 밝혀지게 된 것은 그가 죽은 후 3백년도 지난 후의 일이지만, 삼전도의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그는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
저는 황의 연구를 지지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황의 연구를 부수는 과정이 너무나 대단하다는 것은, 즉 황의 연구가 그만큼 대단한 것으로 뿌리까지 뽑아내야 할 것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일입니다.
다시 고개조차 내밀 수 없도록 완전히 발려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는 이야기이지요.
황이 얼마나 진실이었는지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황의 죽음이 확정된 지금 어차피 무의미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세계가 황 때문에 벌벌 떨었다는 것은, 적어도 황의 업적이 세계질서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영웅이 없으면 영웅을 만드는 일본에서 황이 태어나지 못하고, 영웅이 있으면 반드시 죽이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으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일입니다.
이 글로 황 이야기는 그만 합니다. 석유대란이 엄습해오는 마당에 저도 이 문제로 너무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