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순간에도 "난 괜찮아".
니체가 말한대로 스스로의 혼을 더럽히지 않고
청탁을 함께 쓸어담았다가 이를 소화하여 한반도라는 화폭에 큰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박정희는 김일성과 차원을 달리하는 인간이다. 김일성은 권력으로 부패했으나 박정희는 권력을 쥐고도 끝까지 맑은 혼을 유지하였다. 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에 그가 인용하여 실은 시의 한 구절은 '2등 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였다. 그는 이 시를 인용한 뒤에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고 덧붙였다. 이 책 끝장에서 박정희는 '가난은 나의 스승이고 군림 사회와 특권 계층을 증오하는 것은 나의 생리'라면서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서민의 인정 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 고 했다. 박정희는 1979년 10월26일 저녁 7시40분 김재규가 벽력 같은 고함을 지르면서 차지철을 쏠 때, 그리고 차지철이 실내 화장실로 달아날 때, 이어서 김재규가 일어서서 4∼5초쯤 주저하다가 박정희의 가슴을 향하여 발사할 때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이는 곁에 있었던 두여인의 일치된 증언이다. 차지철이 실내 화장실 문을 빼꼼이 열고 "각하 괜찮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박정희는 "난 괜찮아"라고 했다. 두 여인이 "각하 진짜 괜찮습니까"라고 했을 때 그는 또다시 "난괜찮아"라고 했다. 이 순간 그는 관통상으로 인해 등에서는 선혈을 콸 콸 쏟고 있었다. 세계의 암살사를 다 뒤져도 이런 초인적인 장면을 발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준비없이 맞이한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이 모습이야말로 인간 박정희의 꾸밈없는 진면목이다. 육영수는 선을 볼 때
박정희가 구두 끈을 푸는 뒷모습이 좋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인간은 앞 모습은 꾸밀 수가 있지만 뒷모습은 꾸밀 수가 없다. 뒷모습이야말로 그 인간의 참 얼굴일 것이다. 총알이 허파를 꿰뚫고 지나간 뒤에도 "난 괜찮아"라는 말을 한 그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우리가 본 그의 뒷모습이었다. 이런 행동은 죽음과 오랫동안 대면해 왔던 사람, 그리하여 죽음과 친구가 된 사람만이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리라. 그는 어머니가 임신 했을 때 지워버리려고 그렇게 애썼던 생명이었다. 44세에 며느리를 둘이나 둔 어머니는 박정희를 임신하자 간장을 두 사발이나 마시고 기절해 보기도 하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 상처를 내보기도 했다고 한다. 무거운 것을 배에 얹어서 뒤로 넘어져 보기도 했으나 뱃속의 생명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태어나서는 안 될 생명'이 태어났고 이 인물에 의하여 이 나라가 천지개벽의 변화를 겪었으니 운명적이란 말로써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박정희는 지옥의 문턱까지, 그리고 인생의 골짜기까지 떨어졌던 경험을 여러 번 했던 사람이다. 남로당에 포섭되었다가 탄로가 나서 전기고문을 받는 가혹한 수사 끝에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그의 인간됨을 아낀 많은 사람들의 운동에 의해서 생환했다. 그때 동거하던 이 모 여인은 가출하여 그를 버렸고 피난 중 부산의 어느 술집에서 이상한 관계로 재회했다. |
첫댓글 잘 읽었읍니다.감사합니다. 많이 들은 이야기인데, 그중 1번 이야기는 처음 듣는 듯
이번 답사에 6,70년대의 추억을 가진 회원님이 많이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제87회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 가므로, 박정희대통령에 관한 인간적인 면모등, 진실로 나라를 사랑한 대통령입니다.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
대통령 선거때 한번도 박정히 대통령 후보에게 기표를 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존경 합니다
저도 20 - 30대 까지는 박정희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 . .
그 이후 전**, 노**, 김**, 김**, 노**, 이** 까지 겪으면서 정말 이나라와 국민을 위해
제일 많이 고민하고 애쓰고 노력한 대통령으로 생각이 됩니다.
귀한자료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많은것을 느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