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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사회, 피해자스러움을,약자스러움을 강요하는 사회
지난 2월 1일 용인장애인학생학대사건 1심 유죄 판결이 났다.
가해 교사가 혼자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 훈육이라고 말했던 것이, 피해 학생이 인지능력이 부족해서 학대라고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가해자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장애 아동의 학대죄가 형사상 인정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법적 다툼보다 이 다툼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판 과정에서 사회 여론이 뜨겁다.
이 일을 계기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제 장애인은 어쨌거나 존재하는 학생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혐오이든, 배제이든, 학대이든, 배려든,지원이든, 인권이든 우리 사회 각자의 장애인 학생을 대하는 방식을 모두 적나라하게 목격하였다.
장애가 있는 학생을 특수교육대상자로 지정하여 지원하기로 한 특수교육진흥법이 재정된 1977년 12월 16일 이후에도, 1994년 동법이 전면 개정을 통해 장애인 학생의 의무교육과 통합교육이 구체적으로 명시되기 전까지는 학교장 재량으로 얼마든지 장애인 학생은 입학을 거부할 수 있었다.
2007년 5월 장애인등 특수교육법등이 ‘특별법’으로 새로 만들어 지면서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및 고등학교 과정의 17세까지 교육은 의무교육으로 규정하고 통합교육을 명시하여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분명히 하였다. 2008년 4월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고 2008년 12월 11일에 UN의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여 장애인 인권과 통합교육의 국제 기준을 따르기로 하였다.
1991년 11월 20일에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고 2021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진행한 제4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에서 특히 △아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과 학대의 근절과 예방을 강도 높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작 용인장애인학생학대 사건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국가와 전문가 집단과 언론과 정치인들의 사회적 현상은 우리나라가 유엔 인권 이사국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인권적으로, 법적으로도 당연한 장애인 학생에 대한 공교육의 의무교육을 안해도 그만인 ‘배려와 온정’으로 말하고 그 장애인 학생을 지원해야 할 교육 공무원들을 이미 현대에 언급조차 조심스러운 아동학대적이며 분리 교육으로 차별적인 특수교육을 자행했던 사적인 입주 교사였던 100년전 설리반 선생을 마치 지금 가장 좋은 공적인 교사 모델로 제시한 것에 한치의 부끄러움 조차 인지 하지 못한다.
특히나 2011년부터 지극히 민감하게 인권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장애인 인권교육과 아동 학대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할 그 가해 교사와 일부 교사들, 교사 노조의 반론, 언론기사는 그동안 국가와 지자체가 얼마나 관련 교육이 얼마나 무용지물이고 허술한지, 일부 교사들의 전문성과 언론의 공공성마저 심각하게 의심하게 만든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임금을 체불하면서 너희나라로 떠나가라는 말처럼 장애인 학생은 특수학교나 가라는 주장이나 기사가 ,,
얼마나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에게 차별적이고 위협적인지 실제 특수학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욕적인지 정말 기자들과 일부 교사들은 모른다 말인가? 분명 국가를 위시한 교육청과 교사 노조 등은 그런 기사와 그런 댓글과 그런 여론이 표현되지 않도록 각 당사자들을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예방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온갖 공개된 자리와 커뮤너티에서 교사의 이름을 걸고 장애 학생을 맡지 않겠다느니, 법대로 하겠다고 공개적인 차별과 혐오를 천명하는데 이는 그들의 말대로 모두 법적으로 감사 대상이며 법적 처벌을 해야할 차별 발언들이며 명백한 직무 유기다. 나는 이런 발언을 한 모든 현직 교사들을 교육부와 교육청은 반드시 엄중히 추적 감사할 것을 바란다. 비장애인 아동이었다면 절대로 이런 발언들이 공개적으로 할 수 없음에도 버젓이 할 수 있고 아무도 이를 뭐라 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혐오 권력이다.
그런데 임태희 교육감은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장애 혐오를 더 조장하고 갈등을 더 부추겼다. 그들의 주장대로 가해 교사의 언행이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닐지라도 ‘ 학대’가 분명하다면 피해 아동 부모의 비동의 녹음에 대한 증거 수집을 무작정 비난받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과거 학교 현장에서 비동의 녹음 증거로 고발했던 그 수많은 교사들의 장애인 차별과 학대 범죄를 교사들의 고생과 ‘궃은 일’로 다시 재심하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물론 가해 교사나 교사 이익을 대변하는 교사 노조는 적극적으로 무죄나 선처를 법정에서 주장할 수는 있다. 무죄를 주장하려면 자신의 행위가 학대 행위가 아닌 훈육이라는 것을 전문적으로 교육적으로 인권적으로 증명 해야 할 것이고 피해자와의 원만한 합의를 통해 선처를 구하려면 자신의 학대 학대 행위에 대한 피해 학생에게 적극적인 사과와 피해 구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발 방지와 반성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사 노조 등이 가해자의 일시적 실수라고 가해 교사를 법적으로 옹호하려면 피해 아동의 인권과 교육권을 본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믿음을 줘서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하도록 갈등을 중재해야 않겠는가? 그러나 가해자는 자신의 법적 이익과 방어권을 위해 자신이 공적으로 취한 장애인 학생의 장애 정보를 교사 노조 단톡방에 유출한 정황이 있고, 오히려 피해자 측에 자신에 대한 사과문과 금전 보상까지 요구 했었다.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은 정말 이런 가해 교사의 행위를 진상 부모에 당한 갑질 피해자의 온당한 방어라고 보는가? 이제라도 현장의 교사들은 장애인 학생의 인권과 교육권을 위한 최후 최선의 보루로서 국가와 사회에게 지원과 투자를 호소하고 투쟁해야 한다.
가해자는 장애인 학생의 장애 특성과 한계를 자신 가해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으로 악용했다. 일부 교사 집단은 가해 교사의 행위를 과거 다른 사건처럼 개인적인 일탈이나 실수로 남기지 않고 자신들의 직업을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면서 중증 장애인 학생 전체 자신들 공적 직업 책임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면서 펜스룰하거나 자폐인을 백래시하고 지금도 공공연히 장애인 부모 앞에서도 말하고 있다.
이건 일부 그런 교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이 사회 현상이 놀랍다. 심지어 장애인 당사자나 인권 단체에서 조차도 침묵하는 것은 괴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사적 자리에서의 개인 행동은 얼마든지 그러하더라도 이런 침묵이 조직적으로 여론으로 언론을 통해서 벌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으로 장애인 대하여 전근대적이며 혐오적인 사회인지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나 장애인같은 사회적 약자가 사회가 기대하는 약자스러움이 보이지 않고 그 동안의 관례에 순응하지 않고 생경한 모습으로 저항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혐오반응이다.
이런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은 가해자의 생계까지 박탈하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라는 것을 동의하더라도 이제까지 대부분의 유사 사건등에서 일부 여론과 상황이 유리했을 때 끝까지 피해자에게는 직접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사과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 가해 교사에 대한 엄한 처벌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과거에도 유사한 많은 학대와 차별 사건에도 피해자의 장애를 이유로 교사의 열악한 현실을 근거로 가해자를 선처하고 그들의 생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용서해 왔다. 그러나 종국에 은평대영학교 사례에서 보듯이 그런 온정적인 처벌과 용서가 어떻게 더 심한 학대와 차별로 상습범죄화 되어 왔는지도 교육 현장에서 모르는 바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원칙적인 엄한 처벌만이 교사들의 명예와 권위를 살려 줄 것이다.
그래서 학대 신고는 무고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신고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서 교사들과 교육 기관들에게 학대에 대한 즉시 신고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즉시 신고의무를 부여한 이유는 단 한번의 학대나 차별이라도 피해자에게는 돌이킬수 없는 것이기에 발생 자체를 예방 억제함과 동시에 그 피해를 지속하지 않겠다는 취지이고 즉시 고소가 아니라 즉시 신고인 이유가 형사처벌이 아닌 사과와 반성. 중재와 교육을 통해 재발방지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대체 학대가 지속적이지 않아서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일부 교사들의 주장을 보면 저들이 과연 공무원으로서 합당한 자질이 있는가 아연질색할 정도이다. 장애인 학생이 교사를 힘들게 하고 그의 행동이 교사를 어렵게 하면 그런 학생에 대하여 교사의 짜증과 학대는 과연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인가? 일부에서 녹취록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문제 삼지말라는데 어떻게 뜯어 보아도 그건 아동 학대 언어이며 장애인 학대의 언어 폭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전공 책에 저 발언이 온당한 훈육이었다고 나와 있는가? 이는 교육청과 교장의 대응에서도 잘 드러난다. 학부모의 녹음 행위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그 녹음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인지하는 순간 교장과 교육청은 그 특수교사를 '신고' 하여야 한다. 그런데 녹음 내용을 인지하고도 직접 녹음 내용듣기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장애인 부모의 바로 비동의 녹음을 하지 말라고 고소와 같은 진상 갑질을 하지 말라고, 교육청은 이미 지난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장애학생 인권지원단이라는 공적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지자체도 시스템을 구축했다.
경찰에게 신고 할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있는 장애인 권리 옹호기관에도 신고해야 한다. 그래서 피해아동의 양육자가 녹음된 내용을 즉시 신고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할 의무다.
그리고 신고 하지 않더라도 장애인 학생의 경우와 관련된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관심학생이라고 해서 학교장과 담임, 특수교사는 이를 교육청에서 '보고' 하게 되어 있다.
장애인 부모가 절차와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절차와 원칙을 사전에 충분히 부모들에게 알리고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교육 공무원인 교사와 교육 당국이다. 우리는 이미 관련 특별법을 통해 이것이 명백히 국가와 공공기관의 책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여전히 30년전처럼 부모와 장애인 개인에게 그 책임을 온 언론과 사회가 묻고 있는 이 기괴한 현상을 어찌 봐야 하는가?
그 피해 학생의 부모가 유일하게 한 잘못은 약하디 약한 피해자 스럽지 않게 가해 교사나 학교장, 교육청에게 감사하지 않고 처음부터 ‘법적 고소’라는 강자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가 유명 연예인 가족이 아니라서 어느 학교든 입학 거부를 당하고 식당에서 쫓겨나는 ‘약자 스러움’을 보여왔더라면 그 가해 학교의 장애인 부모들도 가해자 편에서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피해 당사자 부모는 교육청을 상대로 남들은 몇 년 걸릴 추가 특수학급 설치도 금방 뚝딱 얻어내는 강자스러움을 보여 주었다. 특수학교를 지어날라고 무릎을 꿇지 않고 교육청으로 쳐들어 갔다.
평소에 그 유명인 피해자 가족들이 방송에 나와서 다른 장애인 위한 옹호 활동도 하고 통합 교육을 위한 공적 활동을 했더라면 이들을 비난 하는 여론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도 같은 사회적 약자니까 개인 욕망이나 바람말고 다른,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여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또다른 약자스러움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정작 우리 사회는 책임 있고 이를 실행해야 하는 진짜 강자들에게는 그 책임을 따져 물어 보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이 광기와 혐오의 시간이 아픈 과거에서 보듯이 피해자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거나 도피하면 언제 그랬냐듯이 또 위선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이 사라지거나 이민가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그런 댓글을 달게 만드는 언론이 사실 이 약자 스러움을 파생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일부의 주장대로 무리한 기소였다면 '수사기관'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그런 갈등을 분담하도록 되어 있는 교장, 교육청이 직무를 유기하고 학부모에게만 그 갈등과 법적 절차에 대한 부담을 떠 넘겼다. 애초에 그 가해 교사가 직위해제가 되면 교육청은 학업 결손이 없도록 대체 교사를 즉시 파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임태희 교육감의 지시로 그 가해 교사를 병가 처리를 했다. 그래서 7번이나 기간제 교사가 바뀐 것이다. 이런 절차만 지켰더라도 다른 부모들이 피해 학생 부모를 비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여론이 확대 재생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이미 국가와 교육청과 학교 당국은 이번 사건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절차와 권한과 자원이 있었다. 설사 그 교사가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장애학생 인권지원단을 통해서 수사당국과 양육자, 특수교사와 충분히 협의해서 갈등을 플 기회가 있었다.
큰 문제는 이런 방법과 자원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취재 하는 보도나 언론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중들의 이런 여론의 뒤에서 혐오와 차별을 방패 삼아 자신들의 실질적 책임을 지우고 은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실에서 어떤 언어들이 발화 되어야 인권 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인지 찾고 연구하고 그것을 후학들에게 가르치겠다고 해야 하며 교육부와 교육청은 우리가 직무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실행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나는 피해자측이 이 형사소송과는 별개로 국가와 교육청에게 손해배상소송을 해볼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논리와 사회적 인식과 동일하다. 가해자의 방어를 위해 가해자가 얼마나 휼륭한 사람인지 주장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개인 신상을 공격하고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아 '피해자 스럽지 않음'을 공격하는 것 그것을 일부 언론과 댓글을 통해 증폭하는 것,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고 피해자를 압박하는 것 놀랍도록 유사하지 않은가? 피해자와 피해자 양육자들은 모든 것이 아웃팅되었지만 그 가해자 특수교사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가해자의 과거 행적이나 전문성은 아무도 검증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실무적 본질은 해당 학교와 교육청의 교육장, 초등교육과 과장,특수교육 장학사의 무지와 직무유기로 벌어진 특수교사의 권력에 의한 장애인 아동의 학대 사건이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사회는 사건의 책임과 예방, 재발 방지와 같이 공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나 헌신 배려 따위와 같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풀려고 하고 있다.
정작 교육적 훈육이라고 하든 학대라고 하든 상처받은 장애학생 피해자에게는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심지어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고 비동의 녹음을 해야했던 피해 부모도 당사자에게는 진정 사과하였을까? 그의 비장애인 형제 역시 공교육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는데 아무도 그에게는 사과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입학 거부를 당하고 모의 고사나 체험 학습 등에서 배제당하며 특수학교로 꺼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악착같이 동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자페인과 장애인을 낳은 것이 죄라고 듣고 사는 부모들에게 우리 사회나 언론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제 장애인이면 장애인의 부모이면, 장애인의 형제이면,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심판 받는, 아직도 연좌제의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