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3-11 그리스 터키9편 / 이스탄불 보스프르스 해협 크루즈& 블루 모스크 (최종편)
오늘이 터키 여행의 마지막날 편이다.
우린 터키 이스탄불에서 2일밤을 묶은 호텔에서 짐을 챙겨서 버스에 싣고 최종일 여해길에 오른다.
오늘의 일정은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보스포로스해협 크루즈여행과 성소피아 성당 맞은편의 블루모스크를
관람한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보스포로스해협
보스포러스 해협 (BOSPHORUS STRAITS)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고 있다.
길이가 약 30km, 넓은 곳의 폭이 3500m, 좁은 곳이 700m로, 물 흐름이 세차서 여기저기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양측 해안에는 고대 유적지, 그림같이 아름다운 전통적인 터키 마을, 울창한 숲 등이 곳곳에 있어 아름다우며 ,
별장 등이 있는 매우 조용한 곳이다.
지중해와 흑해간의 거의 모든 상거래는 이 해협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국제무역에 매년 38,000여척의 배들이
이 곳을 통과하고 있다.
불과 몇 백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터키를 유럽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운데로 터키 본토와 유럽쪽 건너편인 이스탄불이 있는 지역
즉 양쪽이 모두 터키 영토가 됨에 따라서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해상 통로인 보스포러스이
사실상 터키의 내해가 되어 버렸다.
오늘날의 터키땅이 된 이스탄불은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약 100년 전인 1453년까지만 해도
콘스탄티노플이란 도시로서 오늘날 로마처럼 가톨릭교의 중심도시였습니다만 1453년에 터키(당시는
오스만 투르크였슴)에 점령당함으로써 땅덩어리 조금이 터키로 넘어간게 아니라 가톨릭교의 수도가 이슬람교에게
빼앗기고 보스포로스 해협이 터키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다.
좌우간 오늘날에는 유럽인들이 터키를 좀 우습게 보지만 500여년 전까지만 해도 터키가 막강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때부터는 유럽인들이 터키를 '아시아인'이라고 무시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터키 영토 대부분은 아시아에 속해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터키란 나라가 아시아에 속하는 것보다 유럽에 속하면 뭔 이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기네는
아시아가 아니고 유럽이라고 우기니깐 주위에서 그럼 유럽으로 봐준 거다.
그래서 터키는 아시안게임에도 참가를 안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 사실상 전 국토중 훨씬 많은 부분이 아시아에 속해 있는데도 유럽이라고 우기니까 유럽국가로...
아시아니 유럽이니 하는 것은 땅덩어리를 두고 하는 말이지 그 나라를 두고 구분하는 말은 아니다.
이곳이 크루즈 여행을 위한 유람선 선착장이다
이 다리가 2층 구조로 되어있는 갈라타 다리 이며 중앙부 수심이 제일 깊은쪽은 선박들이 드나들수있게 단층구조로
되어있다.
우리가 이스탄불 야경 투어를 하던날 카페에 들러 고등어 캐밥과 맥주를 마신곳이 바로 이곳 1층부이다.
블루 모스크 (술탄아흐멧 모스크 SULTAN AHMET MOSQUE)
1609년 술탄 아흐멧 1세는 성소피아 성당을 능가하는 사원을 짓고 싶어했다.
그의 바람은 당시 최고의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제자인 '메흐멧 아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8년의 시간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사원이 완성된 것이다.
화려한 사원의 모습은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재현해 놓은 듯 하다.
직경 23.5m, 높이 43m의 거대한 중앙 돔을 4개의 반돔이 에워싸고 있고, 모두 6개의 첨탑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있다.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첨탑의 수가 '6'이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설이 전해진다.
술탄 아흐멧 1세는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에 건축가 '메흐멧 아가'에게 황금으로 된 첨탑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당시 재정 형편상 황금으로 첨탑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궁리
끝에 유레카를 외쳤다.
황금(ALTIN) 첨탑을 세우는 대신 여섯(ALTI)개의 첨탑을 세우는 것이다.
터키어로 황금은 'ALTIN' 이고 '6'은 'ALTI'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은 원래 일곱 개의 기둥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성지에 있는 사원과 같을 수 없다는 주장
때문에 하나 둘 줄여 전부 6개의 첨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 후 이곳은 제국의 술탄들이 종교적인 선언을 하는 곳이자 메카로 향하는 성지순례의
출발지가 되었다고 한다.
블루모스크의 세련된 모습은 빛바랜 성 소피아 성당과는 대조적이다.
훨씬 앞서 지어졌던 건축물을 모방하여 그것을 능가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인가.
날카로운 첨탑과 둥근 돔들의 조화는 마치 과거의 한복판에 거대한 우주정거장이 세워진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블루모스크의 진정한 매력은 내부에서 뿜어져 나온다.
모스크에는 모두 5개의 문이 있다. 이중 안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3개인데 남쪽 문을 통해 들어서면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아낼 수 있다.
약 2만2000여장의 푸른빛을 띠는 이즈닉 타일들이 사원 내부를 온통 치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장과 내벽을 가득 메워 청록빛을 띠는 것이 마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듯하다.
이는 사원 안 260개의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의해 더욱 더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벌인다.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어두운 사원 안을 화려하게 수놓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천장에 매달린 수백개의 오일램프다.
일정한 간격으로 원을 그리며 켜져 있는 램프 속 불빛들은 실제로 움직이는 듯하다.
길이와 폭이 각각 50m가 넘는 바닥을 꽉 채운 카펫은 어떠한가.
이는 에디오피아에서 가져온 최고급 실크로 만들어진 것으로 맨발에 닿는 촉감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붉은 카펫이 깔린 바닥과 연꽃 모양의 둥근 돔, 벽을 장식한 독특한 모양의 이즈닉 타일과 은은한 오일램프.
이 모든 것이 넓은 사원 안에서 한데 어울려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사원 안은 비록 화려했지만 그 이면에는 경건함이 베어있다.
이슬람 신전에 부설된 연필을 깎아 놓은 듯한 높은 뾰족탑은 "미나렛"이라 부르며 아랍어로
‘등대’라는 뜻으로 무아딘(muaddin)이라는 기도 시보원(祈禱時報員)이 하루에 다섯번씩 이 탑에 올라가
외침으로써 회교 신자들에게 예배 시간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사람이 아닌 기계인 기도시보계가 미나렛 위에 돌출된 발코니에 설치되어 있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살았던 당시에는 이슬람사원 근처에서 가장 높은 지붕에 올라가 기도시간을 알렸다.
멀리서도 눈에 쉽게 띄는 미나렛은 이슬람교의 표지물로서 회교 사원에 부속되어 있는데,
한 사원에는 1~6개의 미나렛이 있다.
블루 모스크는 터키에서 6개의 첨탑 (미나렛)이 있는 유일한 사원이다.
히포드럼 광장
술탄아흐메트모스크 맞은편에는 비잔틴 시대에 전차경주를 하던 원형경기장인 히포드럼 광장이 있다.
이곳은 "U"자 형태의 큰 경기장이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고 이집트 오벨리스크와 뱀기둥, 콘스탄틴기둥 분수대 등의
유적들만 남아있다. 고대 도시의 심장부였던 굉장히 의미있는 곳이다.
10만명 정도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던 경기장이라니, 그 규모가 감히 짐작되지 않는다.
검투경기장이었다가 검투가 금지되고 대전차경기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
이스탄불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념비인 이 오벨리스크는 BC 15세기, 즉 3,500년전에 만들어졌다.
이집트의 파라호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이집트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
이와 비슷한 것들이 있다.
이집트의 룩소에서 가져와 현재의 위치에 세웠는데 지진이 이 도시를 강타 했어도 1,600년간
오벨리스크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연한 핑크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의 무게는 약300톤이며 32.5미터였는데 수송과정에서
밑 부분의 약 40%가 깨졌고 그래서 현재의 높이는 20미터 밖에 되지 않으며 사면에는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의 용맹성을 말해주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오벨리스크 받침대 4면에는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것을 지켜보는 황제의 모습, 전차 경기 후 무희들의
춤추는 모습,전차 경기 모습, 외국의 사신들로 부터 공물을 받는 황제의 모습등이 행해진 일들이
부조되어 있다.
326년에 콘스탄틴 대제가그리스에서 가져와 이 곳에 세워 놓은 뱀기둥은 팔라태아 전투에서 페르시아
에 대항해 싸운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뱀기둥의 모습은
세마리의 뱀이 몸을 서로 꼬고 올라간 모습이며 머리 위에는 직경이 2미터나 되는 거대한
황금 트로피가 있었는데 이스탄불에 오기 전에 분실 되었고 뱀들의 머리는 오스만 시대 때 돌에 맞아
부서졌으며 이 머리중의 하나는 이스탄불, 또 하나는 런던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콘스탄틴 7세에 의해 세워진 이 기둥은 황제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바실레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히포드럼 광장의 중심부에 세워 놓은 것으로, 10세기에 세워진 이 기둥의 높이는 32미터이며 외부는
청동이 입혀져 있었는데 13세기 초 라틴군이 이 도시를 점령한 후 청동을 떼어내 동전을 주조하는데
사용하였다
지금 까지 변변치 못한 저의 여행 후기를 읽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 드리며 후기를 마무리하고져 합니다.
여행을 다녀온후 2주 이상이나 지난후 부터 사진을 정리하고 후기를 기록할려다보니
여행을 떠나기전 사전 정보 수집과 현지에서 가이드 설명을 대충 메모는 했지만 기억력이나 몸이 예전 같지않아
충실히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몇편은 기록을 정확히 하고자 인터넷을 검색 해서 비교 해가며 기록을 했지만 여러편으로 이어지면서
실증도 나고 눈이 피로해서 세부적으로 기록을 남기지 못한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보니 여행을 하면서 가이드가 설명도 하지않고 건너 뛴 부분도 드러있어
사진 기록도 남기지 못한 부분들도 있는것 같습니다.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은 가이드가 건너 뛰면 모르고 넘어가는 뷰뷴이 많은것 같습니다.
꼼꼼한 가이드를 만나는것도 여행에서의 행운일것입니다.
다시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면서 서둘러 후기를 마감합니다.
다음 여행지는 3월5일 부터 3월20일 예정으로 아프리카 캐냐를 저희 부부 둘만이 자유 여행으로 떠난후
현지 캐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숙소를 정해두고 책자를 들고 찾아다니는 여행과 먼곳은 현지 여행사를 이용
코스별로 나누어 살펴 볼 예정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