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한국에서도 사기업이 주도하는 주택 공급 대신 공공 개발과 공급 방안이 조명을 받고 있다. 협동조합형 주택, 기본주택, 청년주택 등의 아이디어가 하나씩 현실이 됐다. 미국에서도 사회주택(Social Housing)이 급속히 대두되고 있다. 미국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의 기사를 두 편에 걸쳐 소개한다.
원문:Social Housing Is Becoming a Mainstream Policy Goal in the US
앞기사:사회주택, 미국 주류의 정책목표가 되다(1) 지금 캘리포니아에서는
메릴랜드 본 스튜어트의 사회주택 사례에서 배울 주요 교훈
물론 미국의 모든 주가 서로 다르다. 그래도 캘리포니아가 3년간 추진됐던 메릴랜드의 사회주택 프로젝트를 공부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메릴랜드 하원과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 회원인 본 스튜어트가 서샤 고윈의 도움으로 사회주택 관련 첫 법안을 발의한 것은 2019년이었다. (서샤 고윈은 라이언 쿠퍼와 함께 ‘민중을 위한 정책 프로젝트(PPP)’를 위해 2018년에 ‘미국의 사회주택’이라는 보고서를 집필해 사회주택이라는 개념을 많은 좌파에게 재소개 했다. 고윈과 쿠퍼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핀란드와 스웨덴의 사회주택 모델에 기반해 향후 10년간 소득혼합 사회주택 1천만 호를 짓는 대담한 계획을 제안했다.)
본 스튜어트는 캘리포니아 주의회에 ‘2021년 사회주택안’을 발의한 알렉스 리와 마찬가지로 사회주택 관련 법안을 발의할 당시 젊은 초선 주의원이었다. 스튜어트가 필자에게 메시지 전략을 얘기했다. 메시지가 잘 다듬어지기도 했지만 이를 전달하기 위해 그가 연습을 많이 한 것이 분명했다.
“민간 시장이 메릴랜드 세입자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실패했다. 이 법안은 그로 인해 발생한 주택의 수요와 공급 간의 엄청난 간극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직화된 노동으로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진 데다 충분히 부담 가능한 임대료의 공공소유 주택 수천 호를 지을 자금을 지원할 테니 말이다. 이 법안은 널리 성공한 비엔나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이 주택들은 아름답게 설계되고 대중교통이 편리하며 다양한 소득층에게 제공될 것이다”
스튜어트는 이 메시지만 반복해서 얘기했다고 한다. 이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는지 10여 개의 이해관계자 집단이 법안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볼티모어의 한 200호 공공주택 단지의 모습이다. 이 단지는 주택기관 감사에서 2017년 100점 만점에 17점, 2020년에는 71점을 받았다. 메릴랜드는 2013년부터 공공주택의 32%가 감사를 통과하지 못해 미국에서 가장 좋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사진=AP/뉴시스
다양한 소득계층이 어울려 사는 소득혼합 사회주택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지만, 메릴랜드의 법안은 캘리포니아 법안과는 달리 주 단위가 아닌 카운티 단위의 주택 담당 기관들이 주택을 개발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메릴랜드에서 소득혼합 사회주택이 이미 지어지고 있다. 스튜어트가 사는 몬트거머리 카운티의 주택기관은 고품질 건물로 전국적인 차원의 상을 여러 개 받기도 했다. 스튜어트는 “일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자금이 아직 충분하지 않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주택의 자금 확보를 위해 스튜어트의 첫 제안은 부자세와 사회주택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고 첫 법안은 하원 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했다. 스튜어트가 2020년에 또 다시 사회주택 법안을 발의했을 때에는 100만 달러 이상의 부동산에 대한 양도세를 새로 만들고 25만 달러 이하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감면하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사회주택 법안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늘었다.
스튜어트는 사회주택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자칭 ‘좌파 통합’에 초점을 맞춘 연합을 꾸준히 구축해 왔다. 그는 2020년에 ‘모두를 위한 주택’ 법안 패키지를 발의해 사회주택과 세입자 권리 강화, 부촌에 중산층을 위한 주택을 지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용도 변경 등을 제안했다. 이해 당사자들이 법안의 내용 결정에 모두 의견을 보탰기 때문에 일의 진척은 느렸다. 하지만 그 과정은 훨씬 민주적이었다. 게다가 작년에 이 법안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그때 만들어진 세력 연합은 여전히 공고하다.
스튜어트는 “좌파와 임비(YIMBY, Yes In My Backyard, 님비의 반대 뜻)의 사이가 더 나쁜 캘리포니아에서는 일이 좀 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힘을 합친 좌파의 도움으로 주 지원금 받기를 좋아하는 주택기관과 주 정치인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좌파가 아닌 ‘일반’ 시장과 카운티 대표들의 지지를 얻고 났더니 스튜어트의 동료 주 하원의원들의 마음도 많이 바뀌었다. 스튜어트는 “(중도파도) 이게 허황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주택은 다른 여러 곳에서 이미 성공한 현실적인 대책으로 서민과 주택 위기를 염려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방도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워싱턴 D.C. DSA 활동가들처럼 사람들을 끌어내고 조직화하는 급진적인 사람도 필요하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튜어트는 민주당 동료들의 마음을 바꿀 때 사회주택과 인종차별 철폐의 연관성을 부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회주택으로 가장 혜택을 받을 집단 중 하나가 유색인종 사회일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메릴랜드에서 사회주택 법안이 쉽게 통과된다는 것은 아니다. 주지사도 공화당이지만 민주당 주의원 중 다수가 꽥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라고 한다. 스튜어트는 “마지막 열쇠는 우리 편으로 끌어올 수 있는 기업들이다.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기업 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을 통과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튜어트는 ‘사회주택을 꼭 반대하는 건 아닌’ 건설업자와 부동산업자들도 열심히 만나왔는데 이들도 곧 지지세력의 일부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스튜어트에게 사회주택을 추진하는 캘리포니아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일부 좌파들이 정책 관련 얘기를 할 때 갖는 기본 태도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대답을 했다. 스튜어트는 “비엔나가 사회주택 추진을 얼마나 훌륭하게 해 냈는지에 감탄하는 사람들이라면 비엔나 모델에 대해 많은 미사여구를 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상 정말 중요했던 것 중 하나는 사회주택의 현실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사회주택을 합리적이고 평범하며 상식적인 것처럼, 유토피아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중요했다”고 답변했다. 스튜어트는 국내 성공사례를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세이지혼이 캘리포니아대학의 기숙사 얘기를 하고 자신이 메릴랜드 주택기관들이 하는 일을 얘기하듯 말이다.
이제 3년째 사회주택에 매진해 온 스튜어트는 법안 통과가 멀지 않았다고 얘기하며 “터널 끝의 빛이 보인다”며 기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회주택 지지 연합을 성공적으로 꾸릴 수 있을까
DSA 샌프란시스코 지부의 싱은 사회주택 이슈로 캘리포니아의 정치세력이 ‘재편성’의 촉발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최근 캘리포니아에서는 대중교통 정거장이나 역 근처에 고층 빌딩을 허용하기 위한 용도변경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싱은 ‘용도변경이 젠트리피케이션(외부인과 돈이 유입되면서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과 투자가 중단된 지역, 유색인종이 모여 사는 지역에 적용될 경우’ 세입자 단체들이 도시주의자들(urbanist)과 입장을 같이 하며 사회주택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시주의자는 교외보다는 도시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미국 맥락에서 베이비 부머들이 대부분 교외의 단독 주택을 선호했는데, 1990년 이후 그런 교외화에 반발하면서 도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걸 뉴어버니즘이라 불렀는데 최근에는 그냥 어바니즘, 어바니스트라 부른다.)
미국에서 노숙자가 가장 밀집돼 있는 로스엔젤레스 스키드로우 지역에서 한 노숙자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지난 3년간 15만 명에 이르는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3bil.달러를 투자했지만 파편적이고 불완전한 접근방식으로 인해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2021년 2월 11일 발표된 캘리포니아 국정감사 보고서가 지적했다.ⓒ사진=AP/뉴시스
한편 도시주의자와 YIMBY와 같은 입장이었던 부동산업자들은 오히려 NIMBY파와 함께 사회주택을 반대하게 될 수도 있다. 싱은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을 반대하는 이들 ‘시장 도시주의자’들이 YIMBY파에서 분리해 나가게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세입자 단체와 YIMBY파보다 더 넓은 연합을 꾸려야 한다. 노동계는 안정적인 일자리로 사회주택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적 이익 논리를 따르는 부동산 시장은 호황과 불황을 오가지 않는가. 특히 코로나19 시대 때 말이다. 그리고 환경론자들도 임대료가 감당 가능한 그린 주택이 대중교통 근처에 고밀도로 만들어진다면 탄소배기량 감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수백만의 세입자들이 빚더미에 앉고 퇴거와 노숙의 위협을 처하게 되자 사회주택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세입자를 조직화하는 싱과 같은 활동가들에게 부담이 된다. 이미 여러 어려움에 처한 세입자들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택은 장기적인 해결책이고 사회주택을 확산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 메릴랜드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사회주택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스튜어트는 캘리포니아 사회주택 법안 소식을 듣고 너무 기쁘다고 한다. 스튜어트는 “정책 개발 면에서 보면 미국에서는 우파가 지난 수십 년간 갖췄던 준비 수준에 좌파가 이제 막 도달하려는 시점”이라면서 “오늘은 더 큰 프로젝트를 위해 중요한 날이자 중요한 한 주”라고 했다. 그리고 “한 주의 하원의원으로서 몇 년 간 혼자 이 일에만 매달렸는데 다른 주들도 사회주택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