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로' 문화를 아로새기다
콘크리트 천정 지탱한 와이어, 꽈배기처럼 꼬인 4000t 지붕…이것이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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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와이어센터(왼쪽), 영화의전당. 사진=이승헌 제공 |
딱딱한 기계 주변 환경에 녹여
- 드라마틱 사색 제공하는
- 키스와이어센터
- 메마른 땅 표피 뚫고 솟구쳐
- 천지개벽 상황 연출한
- 영화의전당
- '생각하는 이'가 만들어낸
- 가히 새로운 문화·패턴·결
- 일상의 이벤트가 일어나는
- 진정한 랜드마크가 되기를
대장장이는 쇠를 불에 녹여 벼리고 담금질해 용도에 적합한 연장을 만든다.
수공 작업에는 무엇보다도 재료의 성질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장인들은 재료의 성질을 파악하는 데 오랜 숙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 숙련의 과정을 통해 체득한 세밀한 방법에 의존해 감각적으로 연장을 '제작'(製作)한다.
그런데 기술을 이용한 이런 반복적 제작 과정 중에도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는 이들이 있다.
땅의 특질에 따라, 지역의 풍습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습성에 따라 거기에 맞는 형태로 조금씩 변형을 가한다.
이 때문에 연장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며, 새로운 행동을 유발한다.
전승된 방식의 고유한 본성을 간직하면서도, 시대적 필요와 요구에 대응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들을 우리는 '창작'(創作)이라 구분한다.
제작의 세상 속에서 창작의 실험들은 진흙 속의 숨은 진주와 같이 빛난다.
이런 신기술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발아하며, 이 땅에 또 하나의 새로운 결이 아로새겨지게 된다.
■ 땅에 거꾸로 매달린 와이어 구조물-키스와이어센터
'키스와이어센터'는 부산의 향토기업인
고려제강(주)이 만든 기념관의 이름이다.
기념관 1층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으로 그동안 이 회사 와이어(wire)로
만들어진 세계 유수의 교량 축소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광안대교나 부산항대교도 물론 포함.
교량뿐 아니라 생활 속 곳곳에 크고 작은 와이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서 알게 되니, 전시 콘텐츠의 신선함도 있다.
건물 입구 외벽에 보면 교량에서 쓰일 법한 와이어로프 여러 가닥이
건물에서 튀어나와 땅으로 탱탱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와이어로프는 다시 2층 전시홀 천정으로 이어져 반대쪽 벽을 관통해 나간다.
현수교나 사장교에서 케이블이 교량 전체의 무게를 잡아당기는 것과 같이, 묵직한 콘크리트 천정의 무게를
온통 와이어로프가 지탱하고 있는 구조이다.
건물을 물구나무 세워 거꾸로 뒤집어 놓고 보면, 마치 땅에 매달린 와이어로
건물의 모든 하중을 붙들고 있는 꼴이다.
이런 독특한 구조 방식으로 인해 높이 7m, 너비 27m는 족히 되어 보이는 2층의 넓은 전시홀 내부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다.
드라마틱한 공간이다.
뻥 뚫린 거대 공간의 중앙에 타원형으로 휘어져 올라가는 긴 철재 연결로(램프)를 두었는데, 그 역시
와이어로만 상호 지지되도록 디자인했다.
그리고는 타원의 공간 한가운데 설치된 피아노의 청아한 소리가 무주(無柱)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웠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 피아노 소리마저도 건반과 연결된 와이어가 한몫하고 있다는 점이다.
휘감겨 오른 타원 램프는 외부 수공간 중정을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곧장 뒷마당까지 연결된다.
하늘을 담을 만큼 크고 조용한 수공간은 와이어의 기계적 성격을 모두 잊게 하였고, 또한 사각 창처럼 뚫린
벽면 개구부를 통해 주변 자연과 도시의 모습까지도 관통되어 보이게 만들었다.
기술이 딱딱한 기계적 기능으로만 덩그러니 남아있지 않고, 오히려 땅과의 유기성, 하늘을 향한 수직성,
주변 환경으로 손을 내미는 수평적 성격까지 모두 모아들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머무는 내내 사색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느끼게 된다.
■ 땅에서 솟구쳐 오른 캔틸레버 구조물-영화의전당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전당'. 전국의 영화 관련 제작자와 배우들이 한 해에 한번 총집결하여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화려한 축제에 걸맞은 멋진 외양을 가진 건물이다.
규모에서나 건물의 형태미에 있어 세계에 내놓을 만한 부산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거대한 곡면 천정에서 연출되는 야간의 디지털 아트 조명 연출은 또 얼마나 환상적인가.
영화의전당이 가진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는 바로 실험적인 구조 기법일 것이다.
세계 최장의 캔틸레버(외팔보) 구조로 기네스에 등재됐다.
무려 길이 163m, 너비 61m(축구장 1.5배)에 무게 4000t이나 되는 울트라 지붕을 꽈배기처럼 꽈놓은
더블콘에서 유일하게 지탱해 내는 구조이다.
태풍과 지진 등 천재지변을 대비해 지하에서 올라오는 보조 기둥이 있다지만, 그건 심리적 안전장치일 뿐이다.
그런데 어째 이리도 독특한 건물 외형이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건물이 세워질 당시 부산은 영화산업이라고 내세울 만한 별다른 요소도 없던 문화의 불모지였다.
거기에 이 땅은 원래 영화랑은 아무런 맥락도 없던 수영비행장이었다.
건축가는 이 건물이야말로 메마른 땅의 표피를 뚫고 솟구쳐 오른 천지개벽의 상황이라 여겼던 것 같다.
융기와 침강의 지각변동 과정을 거쳐 시네마운틴과 비프힐이라는 건물이 생기고, 비스듬하게 걸쳐진
빅루프와 스몰루프의 언밸란스 지붕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 독특하고 거대한 건물의 곳곳에 흥미로운 공간들이 숨어있다.
우선 시네마운틴과 더블콘을 잇는 공중부양 브리지를 체험해 봐야 한다.
영화제에 참석한 스타인 양 주변을 둘러보며, 가끔 손도 흔들어가며 건너보는 것도 추천한다.
시네마운틴 6층 대기홀에서 야외극장이 있는 발코니 쪽으로 나가 주변을 내려다보는 것도 흥미로운 체험이다.
그리고 비프힐 2층 자료실에서 지나간 예술영화들을 찾아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 다른 직조 방식으로 새 결을 만들다
키스와이어센터와 영화의전당은 이전에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임이 틀림없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겨도 괜찮을 건물이다.
일차적으로는 실험적 신기술력에 찬사를 보내야겠지만, 더욱 진중하게 감흥해야 하는 것은 땅을 읽어내고
다루는 건축가의 관점이다.
같은 체크무늬가 들어있는 옷감이라 하더라도 몸빼바지와 버버리의 그것이 같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세한 듯한 그 차이는 기실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바로 그 '관점'에 있다.
다시 말하지만 생각을 하고 있는 이에 의한 신기술은 가히 새로운 패턴,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다만 아쉬운 건 두 건물 모두 아직 '손에 딱 붙은 연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 없던 창작이라 신기하고 제법 쓸모 있어 보이긴 하지만, 아직 사용법이 손에 채 익지 않다.
활용도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영화의전당도 아직은 행사가 있을 때에만 시끌벅적할 뿐
평상시에는 여전히 휑한 동네다.
광장에서, 야외극장에서, 로비에서, 곳곳 숨은 공간에서 크고 작은 일상의 이벤트가 일어나야지만 진정한 부산의 랜드마크요 대표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다.
키스와이어센터 역시 전시홀과 야외무대, 산책로 등에 있어 더 다양한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
◇ 영화의전당
위치 : 부산 해운대구 우동
규모 : 연면적 5만4335㎡
시설 : 극장, 시사실, 자료실, 카페
건축가 : 쿱 힘멜블라우
견학 : 5인 이상(7일 전 예약)
예약 : (051)780-6000
www.dureraum.org
◇ 키스와이어센터
위치 : 부산 수영구 망미동
규모 : 연면적 8518㎡
시설 : 기념관, 연수원, 야외극장
건축가 : 조병수
견학 : 사전 예약제(60분 소요)
예약 : (051)760-2604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