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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문화의 이해
- 사이버와 현실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
1. 정보사회, Net 그리고 Cyber
사이버(Cyber)는 수학자였던 노버트 위너가 자신이 창안해 낸 메시지의 소통과 통제 이론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이버네틱스’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원래의 어원은 그리이스어로 배의 조타장치를 뜻하는 'kyber‘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윌리엄 깁슨이 1984년 <뉴로맨서>(Neuromancer)라는 소설에서 가상현실이 구현된 컴퓨터 네트워크의 세계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용어로 지칭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된다. 그리고 세기말적 불안과 미래에 대한 동경,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인터넷의 보편화가 맞물리면서 이제 ‘사이버’는 20세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중요한 화두가 되어 버렸다.
사실 다니엘 벨(D. Bell), 엘빈 토플러(E. Toffler), 존 네이스비츠(J. Naisbitt) 등 제1세대 정보화론자들이 정보사회를 이야기하던 70~80년대만 해도 사이버는 이들에게 주목할 만한 고려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들의 중심적인 관심사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이 사회구조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전망하고 물적 자본이 아닌 정보와 지식 등 무형의 지적 자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명(이른바 정보사회)의 도래를 예측하는 것이었다. 즉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현실세계와의 상관성이 분석 대상이었을 뿐, 사이버라고 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사이버란 현대 과학기술이 낳은 피조물임과 동시에 미래 정보사회의 핵심 자원인 지식 및 정보를 저장․유통시키기 위한 기술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전지구적인 디지털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었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부터 비롯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미래는 종종 전혀 예기치 못했던 곳으로부터 열리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네트(Net)의 문명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인터넷의 모태가 그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9년 미국방성의 군사 네트워크 프로젝트였던 알파넷(ARPANET)이었다. 국방성은 미 본토가 적국의 핵무기에 의해 피폭을 당할 경우 기존의 중앙집중식 네트워크 시스템으로는 통신망의 부분적인 파괴만으로도 전체 군사 네트워크의 운영이 실질적으로 곤란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때문에 중심이 여러 곳으로 흩어져 존재하는 분산적 네트워크의 구축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알파넷이었다. 태초에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알파넷은 1972년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제1차 국제회의’를 계기로 대학, 기업 등 여타의 네트워크들과 개방 연결되면서 명실상부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인 인터넷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소수 선택된 사람들만의 세계였다. 워크스테이션급 이상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기관이나 직장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각 가정에 보급된 PC들이 제각기 모뎀을 장착하고 전화선에 연결되면서 상황은 바뀌어갔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전자적 네트워크가 전지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건조한 지식과 정보의 데이터를 찾기 위해서 뿐 아니라 E-mail, 채팅, 게시판 그리고 가상 공동체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 그리고 사회적 교감을 얻기 위해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이제 네트워크 안에는 지식과 정보만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정서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래는 초기 정보화론자들이 말하던 지식정보 사회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네트의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점과 점이 연결되면 선이 만들어지고 다시 선과 선이 이어져서 하나의 면이 구성된다는 기초적인 수학 원리처럼 비트라는 단위로 디지털화된 변형된 각종 정보들이 네트로 연결되자 다시 네트들은 사이버라는 신대륙을 창조했다. 사이버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현실 세계의 모든 물질들은 디지털 형태로 탈물질화된다. 그리고 탈물질화된 모든 사회적 구성물들은 시간과 공간을 벽을 뛰어 넘어 네트의 선을 타고 빛의 속도로 사이버 속을 항해한다. 인간들 역시 육체라는 물적 굴레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자아로 자신을 변형시켜가며 사이버 속에서 살아간다. 마샬 맥루한의 말처럼 사이버에서의 인간은 전 세계로 확장된 중추신경계를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육체를 벗어난 영혼의 세계의 존재 여부는 미스테리로 남아있지만 육체를 벗어난 비트의 세계는 사이버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사이버’라는 영어는 우연찮게도 한국 땅에서 종종 ‘사이비’라는 단어와 발음상 혼동을 일으킨다. 단지 발음 뿐 아니라 정통에서 벗어난 것, 진짜와 비슷한 듯 싶지만 사실은 진짜가 아닌 모방에 불과한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사이비’라는 단어는 정말 우연찮게도 ‘사이버’라는 개념에 담겨있는 ‘가상의 세계’라는 의미와 맥을 같이 한다. 모든 사회적 구성물이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디지털 형태로 탈물질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는 분명 ‘가상의 세계’이다. 그리고 ‘가상의 세계’란 달리 말하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즉 허구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제는 지금까지 인간이 몸담고 살아왔던 물리적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만 유효하다. ‘사이버’는 결코 ‘사이비’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통신기술이 창출해 낸 ‘가상’이 결코 ‘가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버’는 분명 현실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우리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물리적 개념의 현실이 아닌 ‘가상 현실’, 다시 말해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일 뿐이다.
2. Cyber와 Real
사이버가 새로운 차원의 세계라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의미에서이다. 첫 번째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만들어졌다는 아주 단순한 의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실 세계와 달리 모든 사회적 구성물들이 시공의 한계를 초월한 탈물질적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바로 이 부분이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존재 방식이 현실 세계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서 운영 원리조차도 현실 세계와 다르게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기존의 지폐나 주화 형태로 교환되던 화폐는 사이버 세계 속에서는 전자화폐라는 탈물질적 형태로 교환되고 있다. 물론 화폐가 탈물질화되면서 교환 방식도 바뀌었다. 기존의 면 대 면(face to face) 접촉이 아닌 비대면적 온라인 방식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저 여기까지일 뿐이다. 현실 세계의 화폐 형태나 교환 방식이 사이버 스타일에 맞게 변형되었을 뿐 자본주의 시장에서 화폐 교환의 기본 원리 자체가 사이버 세계라고 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탈바꿈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 경우는 현실 세계가 사이버라는 신세계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다 극단적으로는 사이버의 상업화, 음란물에 대한 정부의 규제 그리고 최근 보도된 국정원의 E-mail 검열 등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권력구조는 사이버 세계에도 여지없이 침투하면서 ‘사이버 세계의 식민지화’를 기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 현실 세계의 모든 권력구조가 사이버 세계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어느 문화평론가의 경험담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얼마전 컴퓨터 통신에서 일어났던 일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중략)....하루는 몇 명의 젊은 세대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 문단에서도 잘 알려진 평론가 한 명이 그 대화방에 들어오게 되었죠....(중략)....그는 참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평론가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같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명의 친구로 선배로 그렇게 만나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견을 가지지 않은 그답게 소개가 끝마쳤을 때 그곳의 젊은이들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권위적이군. 누가 평론가로 만나고 싶다나, 왜 저러지’ 하는 식의. 그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이 부여한 권위가 아닌 나이나 사회적 권위에 대해선 무척 냉소적이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세대론 : 혼돈과 질서’, 현실문화연구, 1994 中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잘 드러나듯이 현실 세계의 연령, 직업, 계층 등과 같은 조건들이 부여했던 사회적 권위가 사이버에서의 의사소통과정에서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사이버 세계는 대화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쌍방향적 의사소통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와는 달리 강압적 물리력보다는 여론의 영향력과 동의에 근거하여 헤게모니가 성립된다. 설령 누군가가 현실 세계의 권위를 나에게 행사하려 한다해도 익명의 보호막 뒤로 숨어버리거나 접속을 끊어버리는 간단한 해결책이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볼 때 사이버 세계는 현실 세계와 구분되는 고유의 사회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사이버와 현실 세계가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별개의 세계로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이버와 현실 세계와의 관계 규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이버 세계는 현실 세계에 대하여 ‘상대적 독립성’을 갖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상대적 독립성’이라는 규정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이버 세계가 현실 세계에 대하여 ‘상대적’인 독립성을 가질 수밖에 없음은 역설적이게도 사이버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한 빌 게이츠의 “손 끝으로 열리는 세계”라는 유명한 문구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말 그대로 사이버 세계는 인간의 손끝으로부터 무한히 확장된다. 그러나 사이버 세계를 무한히 확장시키는 ‘손 끝’은 다름 아닌 현실 세계에 몸담고 있는 물적 존재이다. 따라서 ‘손 끝이 없으면 사이버도 없다’는 역의 명제가 성립하기에 사이버 세계는 상대적 독립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비트(bit)없는 아톰(atom)은 가능하지만 아톰 없는 비트는 존재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세계가 '독립적'이라는 것은 현실 세계의 미시적․거시적 권력관계에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세계는 새로운 세계이기에 현실 세계의 단순한 복제가 아닌 새로운 대안의 공간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현실 세계의 권력관계를 해체시키고 재구성하는 저항의 진지가 될 수 있다. 일례로 사이버 세계에서의 문학활동은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라는 현실 세계의 권위적 제도를 일시에 무력화시켜 버렸다. 딴지일보는 역대 어느 정권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국내 최고의 언론 제국 조선일보를 마음껏 조롱하며 당당히 사이버 세계의 대안 매체로 떠올랐다. 이러한 사이버 세계의 놀라운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사이버 세계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기술적 특징과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사이버 문화의 잠재력에서 찾을 수 있다.
3. 사이버의 세 가지 얼굴
사이버라는 세계는 전자적으로 형성된 가상의 공간 속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이 공간을 지칭하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용어는 이제 보통명사로 보편화되었다. 이 공간 안에는 ‘네티즌’이라 지칭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그들만의 ‘사이버 문화’가 형성된다. 사이버 문화가 갖는 현실 세계에 대한 저항의 잠재력은 바로 사이버에 내재되어 있는 다음의 세 가지 속성을 통하여 추출해 볼 수 있다.
① 데이터베이스(DB)로서의 사이버
애초에 컴퓨터와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시킨 목적은 하나의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의 데이터를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립적인 자신의 컴퓨터만으로는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컴퓨터를 마치 자기 컴퓨터의 연장인 양 서로 연결함으로써 다양한 데이터를 상호 공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초기에는 서버-클라이언트 방식, 즉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 PC통신과 같이 중앙의 대형 컴퓨터에 방대한 분량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시키고 각각의 단말기들이 여기에 연결되어 필요한 데이터를 검색․전송받는 중앙집중식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앙집중식 DB 시스템은 정보의 제공 및 관리의 모든 권한이 서버 관리자의 손에 주어지기 때문에 정보의 제한적 공개나 서버-클라이언트 간의 위계적 관계 형성 등 비민주적인 측면이 많은 방식이었다.
수평적이고 개방적 네트워크인 인터넷의 출현으로 데이터의 상호 공유라는 민주적 취지는 그대로 보존한 채 데이터베이스의 운영에서 나타나는 기존의 비민주적 성격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개개의 네티즌들은 스스로가 정보의 생산자임과 동시에 소비자이며 자기 정보의 관리자로서의 자격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데이터에 대한 중앙의 통제와 검열은 사실상 무의미해져 버렸다. 이제 데이터의 통제와 검열은 오직 개개의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의 자기 검열 과정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물론 심심찮게 일어나는 네티즌의 구속사건 등과 같이 현실 세계의 권력 구조는 여전히 네티즌 개개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권력이 데이터 자체에까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일단 공개된 데이터는 순식간에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이기 때문이다. 복제된 데이터는 원형 그대로 무수히 재복제가 이루어지고 이렇게 세포 분열된 수많은 데이터들은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는 네트워크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이버 자체가 온갖 종류의 디지털 데이터들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이버가 탈중심․분권화되었다는 것은 시스템의 구축 방식에서 뿐 아니라 데이터의 소재와 관리도 탈중심․분권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는 바, 이는 사이버 세계가 데이터의 장악 및 활용 측면에서 현실 세계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② 매체(Media)로서의 사이버
현실 세계에서 데이터는 운영과 관리 뿐 아니라 그 유통 경로까지 지배계급이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있으며 대중매체를 통하여 자신들의 메시지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에게 광범하게 유포한다. 즉 매체의 소유자가 곧 정보 제공자이며 다수의 대중들은 수동적인 정보의 수용자에 불과하다. 대중들에 대한 통제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고안된 매체는 그 자체가 곧 권력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매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물적 자산이 소요된다. 즉 영향력 있는 매체를 갖기 위해서는 독자의 수만큼 많은 양의 신문을 찍어내야 하고 방대한 규모의 인력을 운영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사이버 매체는 다르다. 1백만의 독자를 위해서는 1백만 부의 신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웹사이트로 충분하다. 또한 노동 집약적인 현실 매체와는 달리 사이버 매체는 기술 집약적이기 때문에 소수의 인력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사이버 매체가 현실 매체에 비해 우월한 또 다른 점은 바로 정보의 처리 속도이다. 신문이나 TV 뉴스에서는 방금 일어난 사건을 정기 뉴스 시간이나 다음날 신문 발행 후에나 접할 수 있다. 취재된 정보를 가공․제작하여 매체에 담고 보급하는 정형화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현실 매체에서 정보의 실시간 유통은 불가능하다. 신속하고 유연한 정보의 유통은 사이버 매체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이버 매체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바로 현실 세계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없는 일반 대중들이 자신의 매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PC통신이나 각종 인터넷 홈페이지에 널려 있는 수많은 게시판들은 경우에 따라 하루에 수천 명이 방문하는 전국적인 대중 매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실 매체에서는 소개조차 전혀 되지 않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경우에 따라서 일반 네티즌 독자들의 엄청난 반응과 여론을 불러 일으키면서 현실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③ 의사소통(Communcation) 수단으로서의 사이버
네트워크는 개개의 컴퓨터들 뿐 아니라 그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는 각각의 개인들까지도 연결시킨다. 그리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화줄 속에는 디지털 데이터 뿐 아니라 인간들의 감정과 정서, 의견과 사상까지도 비트 단위로 흘러 다닌다. 즉 사이버는 네티즌들 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사이버 속에서 네티즌들은 전자우편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뉴스그룹을 통해 관심 있는 현안을 토론하고, 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눈다.
사이버는 지금까지 인간이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가졌던 어떠한 의사소통 수단도 i) 비동시적이고 ii) 쌍방향적인 방식으로 iii) 시공간을 초월하여 iv) 익명성이 유지되는 v) 다수 대 다수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이버는 최초로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더욱이 정보통신기술의 계속적인 발전은 앞으로 시각과 청각, 텍스트와 동영상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말 그대로 사회적 실재감이 구현되는 멀티미디어적 의사소통까지 실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사이버가 갖는 이러한 특성은 첫째, 권위적이고 불평등한 현실 세계의 장벽이 제거된 상태에서 자유로운 의사 개진과 활발한 토론을 통한 자발적인 여론의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거시적인 정치․경제적 담론으로부터 사사로운 연예계의 뒷소문에 이르기까지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회적 현안들을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은채 공론화시킨다.. 셋째, 시공간적 제약 및 성별, 연령, 계층, 인종 등의 사회적 조건을 초월하여 개개의 관심과 이해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공동체의 결성을 촉진시킨다.
4. 인간 중심의 사이버를 위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사이버라는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사이버 문화가 현실 세계의 권력 관계에 저항과 대안의 잠재력을 가질 수 있는 조건들을 살펴보았다. 사이버에서 문화의 형성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그리고 이즈음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낳은 사이버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감탄과 경외심, 그리고 사이버에서의 철저한 이해득실의 계산속에서 우리가 자칫 놓쳐버리기 쉬운 중요한 화두 하나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이버라는 새로운 세계는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어떤 세계보다도 철저히 인간 중심의 세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금까지 추진해온 정보화 프로젝트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구축으로 대표되는 인프라 구축, 이른바 ‘망 까는 사업’이 고작이었다. 개인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정보화란 기껏해야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고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프라 구축보다 그리고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사이버에서 다른 네티즌과 제대로 생활하는 방법, 즉 올바른 사이버 문화를 구현하는 일일 것이다. 최근 정부는 전 국민의 컴퓨터 생활화를 촉진시킨다는 취지로 중저가의 국민PC 보급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컴퓨터를 생활화하고, 사이버에서 네티즌으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 초고속정보통신망에 연결된 중저가의 국민 PC만 갖추면 끝나는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문> 미래의 사이버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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