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후의 후(土厚)자는 두터울 후(厚)와 같은 字다. 垕로도 쓴다. 垕로 통일한다. 厚로 써도 무방하고 (土厚)로 써도 되는데 글자가 깨진다. 모두 뜻은 같다.
진후 효자각은 충주댐 수몰후에 지금 장소로 이전하였고, 예성춘추는 1959년에 출판된 책이라 지금 효자각에 걸린 현판 내용과 차이가 있다. 신매리 입석거리에 있을때 현판 내용을 옮긴 것이다.
효자각 내부 현판에 다음과 같이 써있다.
『重修記
新梅旧立石巨里에 今旌閭閣이 傳來되었으나 西紀一九八五年에 忠州湖가 完工되어 遠近地域이 水沒됨에 따라 右往左往 念念不忘타가 終是 此該 武弓洞 先塋下에 旧形과 同然이 重修明視함』
글자를 고쳐 문장을 다듬었다. 武弓洞으로 표기하였는데 우리말로 무궁골이다. 그리고 진후의 묘는 부인 장수황씨와 떨어져 있다.
顯板文
有明朝鮮孝子驪陽陳公垕之門
丙寅(1986년) 三月十五日 中刊
行狀記 顯板文
孝子陳公垕行狀
公諱垕本驪陽 生甲午 終戊申 七月二十七日 墓忠州 武弓洞 卯坐 天性至孝事親 年甫八歲 適遭水漲 大人涉川而仆 見而大哭 曰吾將從父死 仍跳入水中 波浪忽息 扶救其親 里人驚歎 又十三歲 當親瘠 晝宵禱天號泣 嘗糞嘗藥 醫曰 鰲可得之否 時當臘天 江川大凍 乃伏氷上 終日哭泣 氷忽自拆 一鰲躍出 持歸奉親 久疾卽差 後又有疾 欲食西瓜 時値冬雪 偶往前春瓜田 彷徨求之 一個西瓜隱見於埋雪中 持歸奉供 親疾卽蘇 鄕人章甫擧槪聞官仍啓薦
太上甲申命 旌閭
配長水黃氏墓 聞慶 於項洞 後谷 午坐
<표점>
顯板文
有明朝鮮孝子驪陽陳公垕之門。
丙寅三月十五日中刊。
行狀記 顯板文
孝子陳公垕行狀。
公諱垕,本驪陽。生甲午,終戊申七月二十七日。墓忠州武弓洞,卯坐。
天性至孝,事親。年甫八歲,適遭水漲,大人涉川而仆。見而大哭,曰:「吾將從父死!」仍跳入水中。波浪忽息,扶救其親,里人驚歎。
又十三歲,當親瘠,晝宵禱天號泣,嘗糞嘗藥。醫曰:「鰲可得之否?」時當臘天,江川大凍,乃伏冰上,終日哭泣。冰忽自拆,一鰲躍出,持歸奉親,久疾即差。
後又有疾,欲食西瓜。時値冬雪,偶往前春瓜田,彷徨求之。一個西瓜隱見於埋雪中,持歸奉供,親疾即蘇。
鄕人章甫擧槪聞官,仍啓薦。
太太上甲申命旌閭。
配長水黃氏,墓聞慶於項洞後谷,午坐。
<번역>
현판문
유명조선효자여양진공후지문
(有明朝鮮孝子驪陽陳公垕之門)
병인년(丙寅, 1986년) 3월 15일에 다시 새겨 걸었다.
효자 진공(陳垕) 행장
공의 휘는 후(垕)이며, 본관은 여양(驪陽)이다.
갑오년에 태어나 무신년 7월 27일에 세상을 떠났다. 묘는 충주 무궁동에 있으며 묘좌(卯坐)이다.
공은 천성이 지극한 효성을 지녔다. 여덟 살 때 마침 큰물이 불어 아버지가 냇물을 건너다가 넘어졌다. 이를 보고 크게 울며 말하기를,
"저도 아버지를 따라 죽겠습니다."
하고는 곧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거센 물결이 갑자기 잔잔해졌고, 아버지를 붙들어 구하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라 감탄하였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 부모가 병이 들자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하며 통곡하였고, 대변을 맛보고 약도 몸소 맛보아
병세를 살폈다.
의사가 말하기를,
"자라를 구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마침 섣달이라 강이 꽁꽁 얼어 있었는데, 공은 얼음 위에 엎드려 하루 종일 울며 기도하였다. 그러자 얼음이 저절로 갈라지면서 자라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이를 가져다 부모에게 드리니 오랜 병이 곧 나았다.
그 뒤 다시 병이 들었을 때에는 수박을 먹고 싶어 하였다. 때는 한겨울이라 눈이 쌓여 있었으나, 우연히 지난해 수박밭으로 가서 이리저리 찾던 끝에 눈 속에 묻혀 있는 수박 한 통을 발견하였다. 이를 가져와 부모에게 올리니 병이 곧 회복되었다.
마을의 유생들이 이 사실을 모두 관청에 보고하였고, 관청에서는 다시 조정에 천거하였다. 이에 갑신년에 조정의 명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배위는 장수 황씨이며, 묘는 문경 어항동(於項洞) 후곡에 있고, 묘의 방향은 오좌(午坐)이다.
<예성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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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顯板文
有明朝鮮孝子驪陽陳公垕之門
丙寅三月十五日 中刊
行狀記 顯板文
孝子陳公垕行狀
譜
生甲午 忌戊申 七月 二十七日 墓武弓洞 紙防谷 卯坐 天性至孝 年甫八歲 適遭水漲 大人涉川而仆 見而大哭 跳入水中 波浪忽息 扶救其親 又十三歲 當親瘠 禱天號哭 嘗糞嘗藥 醫曰鰲可得之否 時當臘天 江川大凍 伏氷而終日哭泣 氷忽自拆 一鰲跳出 持皈奉親 父疾卽差 後有疾 欲食西瓜 時値冬雪 往前春瓜田 彷徨求之 得一個西瓜 奉供親疾卽蘇 鄕人章甫 聞官乃啓薦
高宗 甲申 命旌閭 在武陵洞 立石巨里
配長水黃氏 墓 聞慶郡 於頂里 後谷 午坐
<표점>
顯板文
有明朝鮮孝子驪陽陳公垕之門。
丙寅三月十五日,中刊。
行狀記 顯板文
孝子陳公垕行狀。
譜。
生甲午,忌戊申七月二十七日。墓武弓洞紙防谷,卯坐。
天性至孝,年甫八歲,適遭水漲,大人涉川而仆,見而大哭,跳入水中。波浪忽息,扶救其親。
又十三歲,當親瘠,禱天號哭,嘗糞嘗藥。醫曰:「鰲可得之否?」時當臘天,江川大凍,伏冰而終日哭泣。冰忽自拆,一鰲跳出,持歸奉親,父疾即差。
後有疾,欲食西瓜。時値冬雪,往前春瓜田,彷徨求之,得一個西瓜,奉供,親疾即蘇。
鄕人章甫聞官,乃啓薦。
高宗甲申,命旌閭,在武陵洞立石巨里。
配長水黃氏,墓聞慶郡於頂里後谷,午坐。
<번역>
현판문
유명조선효자여양진공후지문
병인년(丙寅) 3월 15일에 다시 새겨 걸었다.
효자 진공(陳垕) 행장
족보
공은 갑오년에 태어났으며, 무신년 7월 27일에 세상을 떠났다.
묘는 무궁동 지방곡(紙防谷)에 있으며 좌향은 묘좌(卯坐)이다.
공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여덟 살 때 마침 큰물이 불어 아버지께서 냇물을 건너시다가 넘어지셨다. 공은 이를 보고 크게 울며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거센 물결이 갑자기 잔잔해졌고, 아버지를 붙들어 구해 드렸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 부모가 병환을 앓으시자 하늘에 기도하며 통곡하였고, 대변을 맛보고 약도 직접 맛보아 병세를 살폈다.
의사가 말하기를,
"자라를 구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마침 섣달이라 강이 꽁꽁 얼어 있었는데, 공은 얼음 위에 엎드려 하루 종일 울며 기도하였다. 그러자 얼음이 저절로 갈라지고 자라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이를 가져다가 부모께 드리니 병이 곧 나았다.
그 뒤 다시 병환이 있었는데, 부모가 수박을 먹고 싶어 하였다. 때는 한겨울이라 눈이 쌓여 있었으나, 예전에 수박을 심었던 밭으로 가서 이리저리 찾아본 끝에 눈속에 묻혀 있는 수박 한 통을 얻었다. 이를 부모께 올리니 병이 곧 회복되었다.
마을의 유생들이 이 효행을 관청에 보고하였고, 관청에서는 다시 조정에 천거하였다.
고종 갑신년에 임금의 명으로 정려가 내려졌으며, 무릉동 거리에 정려비를 세웠다.
배위는 장수 황씨이며, 묘는 문경군 어항리 후곡에 있고 좌향은 오좌(午坐)이다.
<효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