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몽구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의 뜻
회사 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항소심 공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법원은 정 회장에 대한 공소 사실에 대해 1심 판결과 같이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정상을 참작해 실형을 사는 대신 사회봉사명령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재판을 담당한 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죄인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재능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실질적인 공헌을 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봉사 명령”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재능 없고 돈 없는 사람만 감옥에 가야 하는가? 이 점에서 그 논리가 명쾌하지는 않다. 가진 자에 대한 특혜나 면죄부로 비칠 수도 있다.
물론 정 회장 처벌을 두고 ‘법 앞의 평등’과 ‘현실적 고려’ 사이에서 재판부가 고민했을 것이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재판부는 여론에서 찾았다. 이 판사는 정 회장 사건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에서 “부유층보다 서민층이 집행유예를 강하게 주장했다”면서 “이는 서민들이 얼마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민들의 감정은 이른바 ‘유전무죄(有錢無罪)’에 대한 반감보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기회를 주자는 현실론으로 기울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 회장은 재판부가 아니라 국민이 살려준 것이다. 회사를 통해 그 빚을 갚으라는 명령으로 들어야 한다. 이것을 면죄부나, 재벌회장에 대한 특혜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간의 잘못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경영에 매진하라는 채찍이자, 더 큰 족쇄다. 현대차는 지금 안팎으로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현대차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이끌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정 회장에게 걸려 있다. 경영 전반에 걸쳐 과거의 불미스러운 관행을 불식하고 국민에게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을 만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사회환원 약속도 꼭 지켜야 한다. 국민들은 정 회장의 처신과 행보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