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박경철: 글
여기서 내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그녀는 많은 병원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다.
간호사로서의 직분, 동료로서의 신망, 진실된 봉사자에게서만 느껴지는 어떤 아우라의 느낌.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마주쳐도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는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늦은 수술을 마치고 퇴근길에 입원대기 중이던 환자를 보러 응급실에 들렀다.
이미 시계가 밤 열한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응급실은 이래저래 아픈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저쪽 응급실 구석에 병실을 기다리며 입원 대기 중인 내 환자를 체크하고 돌아서는데 응급실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늘상 있는 일이다.
응급실 침대까지 꽉차서 더이상 응급환자를 받을 자리도 없는데, 엠블란스가 들이닥치자 응급실 근무자들의 이마에 주름이 지나갔다.
그래도 도리가 없는일.
응급실 오더리 아저씨가 일단 구급차에서 내린 스트레치카를 처치실로 밀고 들어갔다.
내 옆에서 있던 간호사가 혼잣말로 "DOA 네.."
라고 말했다.
진짜 그런것 같았다.
침대에 실려져 내린 환자의 얼굴과 몸에는 하연 모포가 덮여있었고, 앰블런스에서 내린 환자를 진찰도 거치지 않고 처치실로 데려가는 것은 환자가 이미 사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잠시후 응급실 간호사 한명과 인턴선생이 검안기록지를 들고 심전도를 끌면서 처치실로 들어갔다.
반쯤열린 처치실 사이로 두사람이 환자의 가슴에 심전도계를 연결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개 사망자의 경우 심전도를 연결해서 전기신호가 없음을 확인하고 제온이나 동공반사가 확실한 사망 상태임이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에 두사람은 응급실에 흔히 있는 교통사고 사망자에 대한 조치를 프로토콜대로 하고 있는 듯 했다.
인턴 선생은 검안기록지를 들고 환자의 몸을 살피며 외상을 기록하고, 간호사는 바이탈 사인을 체크한 후 환자의 신원을 확인 할만한 유류품을 뒤적이고 있었다.
잠시후 처치실에서 나온 인턴선생은 시니어에게 사망상태임을 보고하고, 시니어 닥터는 인턴선생에게 사인 규명을 위한 몇 장의 방사선 촬영을 주문했고. 간호사는 책임 간호사에게 환자의 주머니나 옷가지에는 유류품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제 남은 일은 환자의 사인을 추정하고 일단 영안실로 보낸다음 경찰에 신고해서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보호자들에게 연락하는 일 뿐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겠지만, 병원은 사자에게 냉혹하다.
병원이란 산자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지 사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병원 근무자들은 사자에 대해 지나치게 보일 정도로 무덤덤하게 된다.
포터블 엑스레이를 찍기위해 이동식 방사선기계가 처치실로 들어가고, 처치실의 문이 닫히는 순간 막 병원을 떠나던 119 엠블란스에서 구급요원이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이라며 환자의 손가방을 들고들어왔다.
응급실 책임간호사가 그것을 받아서 자크를 연 다음 안에 들어있는 손지갑에서 신분증을 찾았다.
그리고 책임 간호사가 그 신분증을 꺼내드는 순간 갑자기 표정이 하얗게 질리더니, 그 자리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신분증의 주인공은 "김간호사"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응급실 직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간호사들이 처치실에 뛰어들어 가는 순간, 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귀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눈이 아플 정도로 하얀 응급실의 조명들과, 침상마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아우성과, 그 와중에 동료의 처참한 모습에 울음바다가 되버린 상황들이 뒤섞이면서 현기증이 밀려왔다.
차마 볼 수 없었지만, 봐야했다.
그녀의 몸을 감싼 하얀 시트는 이미 배어나온 검붉은 피에 젖어 있었고, 그 시트를 걷어내자 골절로 뒤틀려진 좌측 어깨와 팔, 아직도 피가 흐르는 부러진 다리까지, 그 아름답고 고운 자태의 "김간호사"가, 차마 기억하기도 싫은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그자리에 누워있었다.
머리에 엉켜붙은 피와 오물들로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쉽게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누워있는 사람은 분명히 김간호사가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어이없이 죽음을 맞았다.
그녀는 낮에 그날 저녁을 사겠다는 내 제안을 복지원 당직을 서는 날이라는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 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과가 끝난 후 야간에 복지원에서 버려진 이들을 돌보기위해 퇴근 한다음, 버스에서 내려 길을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갑자기 자신을 덥친 뺑소니 차량을 피하지 못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이 세상과 이별했다.
김간호사의 죽음은 그녀의 미소를 기억하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겼고 물론 나도 그중의 한사람이었다.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병원 영안실에 차려진 그녀의 빈소를 방문했다.
나는 하루종일 안절부절하면서도 차마 그녀의 빈소를 찾지 못했다.
이미 확인된 죽음임에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 역시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적지않게 겪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늘 생경하고 버거운 일이었다.
결국 밤늦게 영안실을 찾았다.
영안실에는 같이 밤을 세우는 병원직원들이 가득했지만, 빈청에는 마침 병원 신우회에서 수녀님들과 같이 연도( 죽은자를 위해 기도하는 천주교 의식)를 바치고 있었고, 그 중간에는 그녀의 친언니이자 수녀님인 율리아나 수녀님도 본래 모습처럼 그대로 단정하게 앉아 연도를 위한 기도문을 음송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연도가 끝나기를 기다려야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조용히 어깨를 잡아 당겼다.
영안실 관리인 아저씨가 내게 자기를 따라 오라는 몸짓을 한다음 앞장 서 걸었다.
아저씨는 사체 안치소 문을 열고 들어섰고, 나도 무엇에 홀린듯 그를 따라 안치소로 들어갔다.
그가 안치소 안쪽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자 망자들이 잠시 누워있는 냉장실 한편의 문이 열려있었고, 그곳 트레이에는 그녀의 몸이 조용히 누운채 잠들어 있었다.
응급실에서 자신의 동료들이 알콜솜으로 깨끗이 딲아서 인지 얼굴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있었고, 혈색이 사라진 창백한 얼굴은 망자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마치 한송이의 하얀꽃인양 싶었다.
아저씨는 나를 뒤에 세워놓고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아저씨 주머니에서는 망자에게 염을 할 때 사용하는 몇가지 조악한 화장품이 들려 있었고,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얼굴을 정성들여 화장을 하시 시작했다.
아저씨는 울고 있었다.
그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루종일 지하 1층 어두운 영안실에서 머물다가 중환자실에서 누군가가 사망 할 때면 복도끝의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트레치카를 끌고 나타나는 아저씨들은 모든 병원사람들로부터 경원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분은 사람들로부터 마치 노틀담의 콰지모도처럼 뜨거운 피도 감정도 없는 사람인양 취급받으며, 산 사람보다 죽은자를 더 많이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김간호사"는 이분이 올라 오실 때마다, 항상 예의 고운 미소로 수고를 위로하고, 손에 박카스를 한병씩 쥐어 주었다.
병원의 콰지모도는 그래서 그녀의 가는 길에 화장이라도 곱게 해주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정말 그녀의 얼굴에 온 정성을 기울여 곱게 화장했다.
그녀의 고운 볼에 분가루가 붇혀지고, 입술에는 빨간색 립스틱이 발라졌고, 마지막으로 이마의 눈썹에도 고운 선이 그려졌다.
그는 주먹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화장을 했고, 나는 그의 뒤에 가만히 서서 그의 손에 되살아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후, 화장이 끝나고, 연도를 마친 그녀의 언니 율리아나 수녀님이 다른 몇몇 분들과 함께 안치실에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막 화장을 마친 동생의 고운 얼굴을 한참을 그렇게 어루만지며 들여다보더니, 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가만히 성호를 긋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날 왜 영안실 아저씨가 나를 잡아 끌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거기서 그녀의 몸이 이승에서 마지막 떠나기전날을 함께 지켜보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어떻게 이별하는지, 그리고 또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 떠나보내는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음날 병원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지다고.
그렇게 그녀는 져버렸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한송이 붉은 꽃잎으로 곱게 다시 피어났다.
편히 잠드세요... 헬레나..
-옮긴글-